권영희 권사 간증(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왕, 방송인 김주하씨 모친)
- 강사는 안철호 작사 작곡 복음성가 ‘주를 위해 바칩니다’를 먼저 찬송하였다. -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나는 불신자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우리 집안에 마귀가 역사하여서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4남매 중 제일 큰 오빠는 정신병자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자를 데려오셨는데, 여러 명이 거쳐갔고 그 여자들은 모두 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돈을 챙기고는 다 집을 나가버렸다. 그 여자들 모두 집을 나가면서 자녀들이 전실 자식이라 못 살겠다는 핑계를 댔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구타하기 시작하셨다. 정신 이상인 큰 오빠는 가끔 정상으로 돌아왔다가 정신이상을 반복하였는데, 어느날 지게에다 돌덩어리를 가득 실어와서 나에게 금덩어리를 가져왔는데 이것 팔아서 영희 너에게 필요한 것 사다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그 오빠는 추운 겨울 길에서 객사하셨다. 그 후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졌고, 가정은 풍비박산의 길을 걸었다. 견디다 못해 언니와 나는 고향을 떠나 충청도로 갔다.
언니는 목사님댁 가정부로 들어간 후 나를 고아원에 맡겼다. 나는 고아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고아원은 기독교 재단 소속의 임시아동보호소였으며, 전쟁고아들이 많았다. 그러다 언니가 나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 시절 어려웠지만 행복해던 시간이었다. 언니와 둘이 모은 돈으로 방을 구하고, 생계를 위해 호떡장사, 신문배달을 했는데, 중고등학교를 언니가 가르쳤고 결혼까지 시켜주었다.
마귀의 또다른 시련이 찾아왔는데,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지하실 셋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하와 경하를 낳고 8년을 그렇게 고생하였다. 끼니를 위해서 2층 주인집에 올라가 쌀을 몰래 훔쳐서 아이들 밥을 지어 먹여서 학교에 보냈다. 여기서 좌절할 수 없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에 힘을 얻고 야쿠르트를 배달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다. 첫번째 간 것이 교회 새벽기도회였다. 기도를 드리면서 신세한탄으로 엉엉 울다시피 했다. 그 교회는 열명 정도의 성도가 모이는 조그만 교회였다. 나는 기도를 마친 후 돌아가려 했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나를 붙드시고 곧 예배가 있을 테니 예배를 드리고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그 교회 새벽기도회에 계속 참석하였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며, 나는 내심 그 교회에서 최고의 재물을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이여,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1년 아침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실행하였는데, 1년을 이틀 남겨두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우리교회 장로님이 남편을 KBS 방송국에 입사시켜 주셨다. “내 힘으로는 더 버틸 수 없습니다. 남편을 취직시켜 주시옵소서.” 남편이 방송국에 취직되자 두 딸을 대학까지 무료로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처음 십일조. 수입이 십만원이었는데 만원 드리기가 너무 미안해서 만 오천원을 드렸다. 그때부터 십일조가 늘어나게 해 주셨고, 지금은 매월 백만원이 넘게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어려운 시절 불 가운데 물 가운데를 통과하면 살게 하신 이유를 이제 깨닫고 있는데, 그것은 나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다.
주하가 MBC 아나운서 입사시험을 보았는데, 그 때는 IMF 시절로서 만 명 중 한 사람을 뽑는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였다. 어려움이 왔을 때 모든 것을 하나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기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나가서 만나서 전하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소명을 주셨다. 동네교회에서 집사직분을 얻었는데, 그 교회에 환란이 발생해서 교회가 풍비박산이 났고 목사님은 해외로 이민을 가셨다. 그러자 그 동안 함께 다니며 은혜받던 오산리 순복음교회가 생각나서 그 교회에서 섬겼다. 그 교회로 온지 15년인데, 작년에 남편과 함께 권사,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데 앞이 캄캄했다.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 하나님이 피값으로 사신 그 영혼들에게 전도하는 것이다.
기도가 적더라도 현장에서 부딪쳐라. 하나님이 내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무조건 나가서 전도하고, 핸드폰 번호를 받아라. 영혼의 자녀로 인해서 배가 아파야 한다. 번호 적어오면 그 다음 기도한다. 안믿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이므로, 절대 마귀가 놓아주지 않으므로 누군가가 기도로 그를 데려와야 한다. 5-8년을 기도해서 온 사람, 전날 만나 다음 날 데려 온 사람…. 하나님 역사는 놀랍다.
인간적으로 기도 많이 해도 하나님 음성 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공원에서 60세 노인을 전도했다. 무작정 나와서 하나님 음성 듣고 그에게 다가가 전도한 것이다. 그를 위해서 몇 달간을 기도했고, 결국 당산역에서 만나 부활절 예배에 인도하였다. 그 노인은 고물상에서 벗겨낸 쇳가루 판 돈으로 아들 학비를 준비하던 분이었다. 그 분께 쓰시라고 쌀값을 드렸는데, 극구 거절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고맙다고 하셨다. 천하보다 한 생명이 더 귀하다.
전도는 하나님의 어명이다.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전도하다보면 상대방이 자신은 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에 모르고 열심히 다니세요라고 인사하고 돌아선다. 이것은 흔히 쓰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전도를 시도했다. 1년이 넘도록 애를 썼고, 이튿날 아침 1부 예배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경비원이 나를 외면하고 당산역으로 뛰어갔다. 교회 가자고 부르니까 나를 돌아보더니 “내 동생이 보살인데, 무슨 교회를 가”하며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아닌 것을 아시면서 아니라고 하시지 왜 날 기도하게 하셨습니까라고 울며 원망의 기도를 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경비원 전도를 헛탕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는 아파트 정반대 방향에 서있게 되었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80세 할머니가 파지 싣는 리어커를 끌고 앞으로 오시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자 갑자기 저 영혼을 전도해야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밖으로 뛰어나가서 “할머니 할머니”하고 불렀다. 할머니가 안보여 놓친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그 할머니가 다시 나타나셨다. 잠시 복음을 전한 후, 교회 다니시라고 하니까 자기는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거짓말임을 깨닫고, “할머니, 지금 교회 안다니시잖아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사실대로 말씀하셨다. 15년 전에 다녔는데 큰 아들의 극렬한 반대로 교회에 못나갔다고 한다. 할머니 전화번호를 받고 그 후 계속 기도한 다음 그 번호로 전화했다. 할머니에게 드릴게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파지라도 받을 욕심으로 그 분이 다시 오셨다. 나는 2시간 동안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달하였더니 자기는 글을 모르니 교회 다닐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믿음을 들음에서 납니다”라고 한 후 용돈으로 쓰시라고 십만원을 드렸다. “부모들은 모두 지옥가셨습니다. 할머니는 막차입니다. 내일 9시 당산역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1주일 만에 할머니를 전도할 수 있었다. 그 할머니는 한 달 만에 성령을 받았다. 방언도 하고 두 손을 들고 눈물로 탄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인생 역정을 그림처럼 한 눈에 다 보여주셨다고 한다.
영의 자녀는 육의 자녀와 마찬가지 귀하다. 오히려 영의 자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영의 자녀도 내가 난 새끼이다. 내가 난 새끼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영의 자녀도 돌봐줘야 한다. 더 해야 한다. 막내는 기도대장이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중고등학교 영어선생이 되었는데, 전도할 수 있는 여건을 위해서 의사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하며 오년간을 계속 기도했고, 32세가 되던 해 믿음 좋은 안과의사와 결혼했다. 내가 머무는 것에서 전도하면 내가 선교사이지, 일부러 먼 곳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담임 맡으면 그 반 아이들 끌어안고 기도하며, 예배 드리라고 하고 교회 주보를 증거로 가져오라고 했다. 반 아이들이 학기말이 되면 거의 다 교회에 나간다고 한다.
남편도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아니다. 답십리교회 다니던 아들이 군대가서 하나님을 버렸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던 아들이 환란 중에 하나님 앞에 거꾸러 지고 지금은 나보다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긴다. 남편이 처음엔 교회를 안나가서 20년 동안을 새벽기도회에서 남편을 위해서 울었다. 남편은 일생 전도 한 명 못했지만, 내가 간증하러 가는 곳은 항상 운전해서 같이 다닌다. 어릴 때부터 눈물로 살아온 것 주하가 배웠다. 주하는 돈 만원에도 벌벌 떨고 동대문에 가서 싼 옷을 사 입는다. 막내는 십의 이조도 드린다. 하나님께서 붙드셨고 앞으로도 사용하실 줄 믿는다.
남편 중고등학교 동창이 한 사람이 있는데 절친하여 가끔 만난다. 그 분은 아내 집안에 불상을 모셔놓았고, 자신은 팔남매의 장손이며 조상대대로 유교집안이라고 교회 나오기를 거부했다. 그 분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전화하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남편 수첩을 몰래 꺼내서 뒤져서 그 분 이름을 찾아서 그 번호로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나는 계속 통곡을 했다. 한참 통곡하니까 그 분은 우리 집에 상이 난 줄 알았던 것이다. 전도하려고 전화한 줄 알고는 그 분은 욕을 하면서 50년 친구인 남편과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남편이 친구 아들 결혼식에 다녀오더니 허겁지겁 나에게 현중이가 교회 다닌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 그래 누가 전도를 했나 보지요.”라고 하니까, 누구긴 누구야 바로 당신이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알고보니 내가 그 때 전화로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한 말이 그 분의 머리를 계속 때렸다고 한다. 그 당시 그 분은 자신의 전재산을 부동산에 잘못 투자하여 다 날려버린 후였다고 한다. 자기 아내에게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하니까 등록하지 말고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 다닌 지 삼개월 만에 남편을 결혼식장에서 만난 것이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욕심 버리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심령 속에 박히면, 눈 만 뜨면 기도하게 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순복음교회 구호이다. 목표를 크게 세우자. 영혼 구원할 때 장소 구분하지 말라. 영화관, 목욕탕, 찜질방 등등. 첫째 영혼에 관심을 가질 것. 둘째 목표를 세울 것. 셋째 그 목표를 위해 나갈 것. 항상 2등만 하다가 올 해는 최우수전도자로 1등을 했다. 전에는 매월 한 명씩 전도하겠다고 기도했다가, 이번에는 최우수전도자가 되겠다고 기도했더니 응답을 받았다. 내 목표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혼을 바쳐서 그 영혼이 천국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나는 통장이나 부동산이 없다. 들어오면 그 영혼을 위해서 모두 사용한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나의 필요한 것들을 거저 제공해 준다.
<간증 요약>
- 간청, 절규로 기도할 것
- 진돗개처럼 목표를 두고 집요하게 전도할 것
- 계속 양육할 것
- 전도의 열매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할 것
첫댓글 주님의 은혜와 사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