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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NBA 원문보기 글쓴이: jordan_lebanon
천시 빌럽스가 7년 연속 컨퍼런스 결승 진출을 달성했죠.
이는 1970년 이래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 마이클 쿠퍼, 커트 램비스를 제외하고 빌럽스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적잖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자바-매직-쿠퍼-램비스는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를 함께 했던 전설들이고,
빌럽스의 트레이드 이후 6년 연속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던 피스톤즈는 1라운드에서 스윕을 당했으며
너겟츠는 1985년 이래 처음으로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난 7년간 빌럽스가 매경기를 원맨쇼로 장식하며 홀로 피스톤즈와 너겟츠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고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겠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기록들은 한낱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적잖은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기, 자신의 팀원들을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주는 빌럽스의 얘기를 대충 옮겨봅니다.
빌럽스는 NBA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파이널 MVP를 수상했으며 이제는 플레이오프에서 너겟츠를 이끌고 있는데, 팀을 6번이나 바꾼 선수 치고는 나쁘지 않은 활약이다.
레이 빌럽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천시도 같이 다녔고 -- 왕년 농구선수였던 레이는 어디에선가 농구를 하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레이가 한창 젊었을 적 그는 덴버 이스트고교의 스코어러였으나, 나이를 먹고 농구 동호회에서 그는 어느새 이기심이 없는 포인트가드가 되어있었다. 그는 천시에게 볼을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고, 포인트가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포지션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8살짜리 아들 천시는 그러한 레이의 활약을 코트 밖에서 앉아 지켜보며 웃었고, 다른 일부 사람들은 그러런 천시를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레이는 천시를 바라보며 마냥 웃었다.
그러한 아버지와 함께 항상 농구를 하길 원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면 둘은 부자지간인 동시에 베스트 프렌드였으니까. 하지만 레이는 천시를 위해 생업 또한 해야만 했고, 덴버의 Safeway 창고에 출근하기 위해 매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였다. 그렇게 레이가 주변에 없을 때 천시는 옷걸이를 문 위에 고정시키고 그의 미니어처 볼로 슛연습을 했으며, 레이는 천시를 바라보며 마냥 웃었다.
레이는 그러한 천시가 포텐셜이 있음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천시의 6학년팀 코치는 왕년 덴버 너겟츠 출신 바비 윌커슨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모든 어린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닉네임을 붙여주는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Smooth'라는 가장 아껴뒀던 호칭을 바로 천시에게 선사했다.
예전에 이 카페에도 'Mr. Smooth'란 닉네임의 회원분이 있기는 했는데..
머지않아, 덴버 전역에는 'Smooth'라 불리는 신동이 있다는 소문들이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다. 사실 그 중 일부 사람들만이 그의 본명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질 수록, 그는 여러 학교의 타겟들이 되어갔다. 레이와 천시는 농구 경기를 하기 위해, 혹은 체육관들로 가기 위해 항상 차 안에서 함께 했고, 레이는 그의 13살 아들 천시에게 운전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천시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아주 성숙한 편이었고, 둘 사이에는 그 어떤 벽도 없었다. 심지어 레이의 알콜중독도..
그때 레이는 술에 중독되어 있었고, 술을 계속 마시면서도 천시에게 "이건 아주, 끔찍한 버릇이야."라고 말하고는 했다. "전 그 당시 알딸딸하게 살았죠." 레이가 회고한다. "천시는 그렇게 사방에 풍기던 제 술냄새를 싫어했습니다. 천시는 알딸딸한 제 모습을 보며 저에게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전 술 때문에 속이 항상 좋지 않았죠."
그리고 1993년까지, 췌장염 진단을 받은 레이는 이제 술을 끊겠다고 아들에게 다짐했고, 그 말을 들은 천시는 정말 좋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레이는 약속을 지켰다. 2년째, 여전히 레이는 약속을 지켰다. 4년째, 레이는 여전히 약속을 지켰다. 천시는 그렇게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고, 정신력으로는 이뤄내지 못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이는 여전히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고, 천시 역시 새벽 일찍 일어났다. 농구 연습을 하기 위해.
레이,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천시와 로드니.
1994년, 천시의 어머니 페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낙담에 빠졌고 천시는 그러한 자신의 어머니 곁에 남아 위로해주길 원했는데, 한편 미 전역에 걸친 대학들에서는 덴버의 농구천재로 알려졌던 천시를 스카웃하기 위해 애썼고 천시는 덴버를 떠나느냐 마느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이슨 키드의 공백을 채울 선수가 필요했던 캘리포니아대에 가서 샤립 압둘라힘과 함께 해볼까 생각해봤고, 심지어 키드의 드래프트 파티에 초대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레이와 페이는 캘리포니아대 코치 토드 부즈맨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그렇게 캘리포니아대는 천시의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캔자스대도 천시를 원했는데, 레이는 캔자스대로부터 로이 윌리엄스가 폴 피어스와 천시 둘 중 한 명을 선택할 것이며 둘 중 먼저 제안을 수락하는 선수를 영입할 것이라고 통보 받았다. 하지만 천시가 로렌스에 방문하기 하룻밤 전에 피어스가 먼저 수락하여, 캔자스도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조지아 공대 역시 천시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바비 크레민스는 스테판 마베리에게도 빠져있었고 마베리가 천시에 앞서 수락함으로 인해 조지아 공대 역시 제외되었다.
조지 워싱턴 고교의 이 선수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고향에 남는다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던 와중에 레이의 아버지 토미 D. 빌럽스 역시 암으로 별세하고 천시는 그러한 가족들을 남기고 떠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천시는 콜로라도대의 리차도 패튼(이듬해 감독이 되었던)으로부터 밤늦게까지 전화로 구애를 받았고, 결국 방문 한 번 없이 콜로라도대에 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덴버 파크힐 주변에 살던 그의 친구들은 천시를 바보라고 불렀다. 그들은 천시에게 볼더(Boulder) 캠퍼스에서 흑인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 한다고 말했고, NCAA 토너먼트에 나가던 학교 또한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천시가 회상한다. "그들은 '바보야, TV에 매주 비춰지고 1-2년 후 NBA에 진출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란 말야.'라고 했죠."
그리고 천시가 콜로라도대에서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NCAA 토너먼트에서 뛰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디애나대의 바비 나잇 감독을 엿먹이고 있었다. 그는 전반에만 20 득점을 쏟아부으며 나잇의 후지어스에게 승리를 거뒀고 경기 후 열 받은 나잇은 2.5마일 떨어진 팀 호텔까지 폭우를 맞으며 걸어갔다. 기뻐한 것은 천시뿐만이 아니었고, 풋볼 도시 덴버 전체가 March Madness에 열광하게 되었다. 콜로라도대는 다음 라운드에서 노스 캐롤라이나대를 만나 타르 힐 벤치 뒤에 앉아있던 조지 칼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패배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천시는 공식적인 덴버의 전설이자 아이콘이 되었고 1970년대의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이후 콜로라도 최고의 선수로 불렸다. 그리고 천시가 소포모어를 마치고 NBA 진출을 선언하자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으며, 천시는 던컨, 밴 혼에 이어 보스턴으로부터 199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픽으로 선정되었고 덴버에게 작별인사를 고함과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 ... 그 대상의 이름은 아마도 '불행'이 아니었을까.
천시는 부엌에 앉아 레이와 페이에게 자신들이 살게 될 새로운 집의 증서를 보여주었다. 약 65평에 달하는 넓은 크기에 높은 천정, 대리석 바닥으로 이루어진. 하지만 페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싫어, 싫어, 싫어." 그의 어머니는 정든 고향 파크 힐을 떠나길 원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천시가 그의 샐러리 $2,384,640 중 일부로 자신에게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를 사주는 것까진 허락했지만, 그녀의 노랗고 빨간 벽돌집을 떠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시는 자신의 아버지 레이에게 앞으로도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봤고, 레이의 대답은 "물론이쥐"였다. 싫든 좋든간에, 바로 이게 천시의 블루 워커 스타일 가족이었다. 레이와 페이는 집을 리모델링 하는 것까지만 허락했으며, 천시는 그렇게 부모님을 위해 새로운 차고와 벽, 나무 재질로 된 바닥까지만 선사하고 보스턴으로 향했다.
한편, 불행하게도 이변이 없는 한 1라운드 1픽 획득과 함께 던컨을 뽑을 것으로 예상했던 셀틱스는 여전히 비탄에 잠겨있었다. 던컨, 던컨, 던컨 -- 셀틱스 팬들이 그칠 줄 모르고 얘기하던 건 그것뿐이었다. 드래프트 1픽으로 던컨을 뽑을 것을 예상하고 왔던 릭 피티노는 그보다 덜한 루키들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고, 천시의 오랜 여자친구인 파이퍼 라일리는 피티노가 천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으며, 실제로 피티노는 천시의 포인트가드 스킬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콜로라도대를 NCAA 토너먼트까지 이끌기 위해 패스보다 슛을 더 많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해와야 했던 천시의 탓이 아니라 하더라도, 피티노는 천시가 공격을 풀어가는 능력을 좋아하지 않았고 천시를 지켜보는 대신 그를 다른 팀에 보내버리는 데 더 관심이 있었으며, 결국 경기당 11.1 득점, 4.3 어시스트 기록과 함께 시즌 51경기째를 맞이했던 루키는 케니 앤더슨과 트레이드 되고 토론토로 건너가게 된다.
피티노가 진정 웃었던 건 시즌 오프닝에서 조던의 불스를 제압했던 날까지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 득점형 포인트가드였습니다." 천시가 회고한다. "그리고 당신이 그때를 떠올려보면 알겠지만, 러닝 쿼터백 같았던 득점형 포인트가드는 별 인기가 없었습니다."
토론토에 간 천시는 힘든 시기를 맞이한다. "언제 득점하고 언제 패스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포인트가드로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에게 알려줄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천시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한편 천시의 이미지 또한 점점 좋지 않아졌으니, 그는 1978-79 시즌 릭 로비 이후 처음으로 드래프트 1라운드에 선정되고 루키 시즌에 바로 트레이드 당한 선수가 되었고, 그에게는 이러한 꼬리표들이 따라 붙었다: '그는 팀 케미스트리를 와해시킨다. 그는 포인트가드의 몸으로 슛팅가드의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다. 그는 이기적이다.'
"그 트레이드는 저를 좋지 않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천시가 얘기한다. "누가 그렇게 되던가요? 누가 3픽에 뽑히고 루키 시즌 중반이 되어 트레이드 되겠습니까?"
여름이 되자, 덴버로 돌아간 천시는 친인척들과 함께 축하 파티를 벌였다. 그게 매일밤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술을 퍼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 천시가 레이의 알콜중독으로부터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배웠듯이 -- 천시에게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아첨이 필요했다면, 바로 그때가 그 순간이었다. 폭음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여기저기 클럽을 쏘다니며 돈을 뿌리고 다녔다.
"그는 원래 그 전까지는 겸손한 사람이었어요." 천시의 첫 번째 아기, 시드니란 이름의 딸을 낳은 파이퍼가 당시를 회상하며 얘기한다. "3픽으로 뽑히고 그렇게 트레이드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이는 집에 오면 여전히 가장이었고 모두들 그이를 여전히 예전처럼 변함 없이 사랑했죠. 하지만 그이는 여전히 파티를 다녔고 우리 관계는 그때 소원해졌어요. 전 그를 하룻동안 잠깐 볼 수 있을 뿐이었어요. 아주 잠깐 말이죠."
게다가 1998-99 시즌은 파업이 진행 중이었고 천시는 1월까지 파티에 빠져살았다. 그리고 파업이 해결되자, 뉴스가 나왔다. 천시가 또다시 트레이드 되었고, 이번엔 덴버라는 것이다. 그의 동네는 경기장에서 겨우 15분 남짓이었고, 그것은 기쁜 소식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천시는 덴버에서의 첫 연습 이후 자문해야만 했다. '언제쯤 나를 포인트가드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당시 너겟츠 감독이었던 젊은 마이크 디앤토니는 천시에게 그를 포인트가드로도, 슛팅가드로도 쓰지 않을 것이며 두 역할을 어중간하게 수행하는 짬뽕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디앤토니는 닉 밴 액셀이라는, 또 한 명의 공격형 포인트가드와 그를 같이 쓸 것이라 말했고, 누가 슛을 쏘고, 누가 패스할 것이고, 누가 볼을 운반할 것인지는 둘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으며, 천시는 그것을 싫어했다. 천시는 정말 그러한 무질서함을 싫어했다.
게다가 덴버에 머문다는 것은 천시에게 업혀 득 좀 보자고 하는 친인척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었다. "전 그때 천시가 덴버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페이가 말한다. "주위 사람들은 천시에게 티켓을, 돈을 청했고 그러한 요구들은 계속 이어졌으니까요. 그리고 천시를 꼬셔서 파티에 가길 원하는 거죠."
천시의 98-99 시즌 기록은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13.9 득점, 3.8 어시스트. 그는 자신이 득점을 원할 때 언제나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천시가 코트에 있을 때 그는 종종 들어가지 않을 법해보이는 슛들을 시도했고, 아무에게도 패스를 하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고, 디앤토니는 해고 되었으며 댄 아이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아이즐이 천시와 무언가를 채 해보기도 전에 천시는 발목과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어버리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되자 그는 올랜도로 또다시 트레이드가 되어버린다. 세 시즌만에 네 번째 팀이었다. 그리고 천시는 올랜도의 팀 연습이나 원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올랜도가 원했던 것은 천시의 활약이 아니라, 던컨을 영입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그의 샐러리였을 뿐이니까. 그렇다. 또 팀 던컨이었다. 높은 기대를 받으며 3픽으로 뽑혔던 덴버의 농구 천재는 세 시즌만에 샐러리 비우기용으로 전락한 셈이었다.
그렇게 또 시즌이 끝나고, 천시는 혼란스런 모습으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페이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페이는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듣던 것과 똑같은 얘기를 천시에게 해주었다. "지난 일로 더이상 문제삼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케빈 가넷이었다.
천시와 케빈 가넷은 미네소타에서 빠른 친구가 되었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2001년 자선 행사를 위해 같이 쇼핑을 했던 날을 포함하여.
1995년 맥도널즈 All-American 경기에서 인연을 맺게 된 그의 오랜 동료, KG. 그는 천시에게 온갖 구애를 펼치며 그와 함께 뛰고 싶어했다. 그리고 천시를 미네소타로 데려오기 위해, 그를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벽에 포스터를 붙여놨다. 'The Billups Suite'.
천시가 울브스와 사인한 후, KG는 락커룸 동료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포인트가드, 테럴 브랜든이야." KG가 말한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 샘 미첼."
초면에, 브랜든과 미첼은 별 말이 없었다. 그들은 천시가 여기저기 팀을 옮겨다니는 걸, 그리고 그의 괴이한 샷 셀렉션들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친절했지만, 천시가 팀을 먼저 생각하는 자신들에게 전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팀 연습이 진행되고, 천시는 그들의 슬리브를 잡아당기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닝 캠프 저녁식사가 열리면, 천시는 꼭 왕년의 올스타이자 스포츠맨십 상을 수상했던 브랜든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항상 제 오른쪽에 위치하더군요." 브랜든이 회상한다. "제 주변 사람들을 다른 데로 보내고 꼭 제 오른쪽 옆자리에 앉는 겁니다."
심지어 천시는 그의 락커까지 브랜든의 바로 옆자리로 이동한다. 천시는 브랜든에게 언제 패스해야 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브랜든은 그에게 간단히, 볼을 이동시키라고 답했다. 브랜든은 포인트가드로서 자신의 역할은 자신의 팀동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KG가 경기당 20번의 샷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저비액이 15번의 샷을 시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공격에 있어 서로간의 자존심 다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브랜든은 천시에게 어떻게 경기 필름을 보고 분석하는지에 대해 알려줬고, 전반전에 픽앤롤 수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고, 후반전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줬다. 브랜든은 만약 KG가 2쿼터 중반까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면, 그에게 볼을 투입해줘야 한다고 알려줬으며 만약 그래도 KG가 득점을 올리지 못 한다면, 그때가 스스로 득점을 올릴 때라고 알려줬다. 브랜든은 양팀 선수들의 파울 상황이 어떠한지, 누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는지, 어느 선수가 자신의 침착함을 잃었는지에 대해 읽는 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또 하나, 너와 나는 한 경기에서 두 개 이상의 턴오버를 범하면 안 돼."
"두 개? 단 두 개라고요?" 천시가 웃으며 말한다.
"사실, 두 개도 너무 많은 거야." 브랜든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다.
한편, 천시는 KG와 미첼이 서로 어떻게 그리 절친하게 지내는지 곁에서 보며 놀라워했다. 미첼은 가넷보다 12살이나 많았음에도, 둘은 마치 일심동체 같았다. 천시는 그러한 지혜를 배우길 원했고, 그래서 미첼에게 NBA 생활에 대하여,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언젠가는 자신의 팀을 리드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질문했다.
미첼은 천시에게 리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반드시 코치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천시에게 경기 전날에 파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해주었고, 다이어트시 패스트푸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미첼은 천시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이 격언 하나만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너의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사람을 챙겨주면, 가장 많은 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미첼은 천시에게 어떻게 팀원들과 어울리고, 어떻게 팀을 리드하는지 등 많은 것을 알려줬다.
천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고, 미첼은 KG와 이른 아침에 함께 하는 아침식사와 연습에 그를 초대했다. 천시는 언제나 그 중 가장 먼저 도착했고, 레이라는 사람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는 사실을 모르는 미첼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 놀라워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한 무수한 소문들을 접했죠." 미첼이 말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기적인 선수라고 들었고, 좋은 팀동료가 아니며, 그가 오로지 원하는 건 슛 하나라는 것을요. 그러나 천시는 지금 저에게 오만가지에 대하여 배우고자 질문하고 있고, 전 생각했습니다. '이 녀석은 내가 듣던 것처럼 나쁜 녀석이 아닌데.' 그래서 저는 천시에게 물어봤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보스턴에서 아무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그냥 이랬답니다. '야, 봐봐, 넌 벤치에서 나올 건데, 경기에 들어와서 볼을 잡으면 그냥 슛을 쏘도록 해.' 그래서 그렇게 했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천시의 새로운 감독, 플립 선더스가 천시에게 원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Shoot it'. 그리고 천시는 그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미첼의 조언에 따라 천시는 코치하기 쉬운 선수가 되었고 명령을 따랐다. 그는 슛팅가드였던 동시에 브랜든을 보좌하는 백업 포인트가드 역할을 수행했으며 경기당 23분 출전에 9.3 득점, 3.4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천시는 감독의 명령이 좋든 싫든, 처음으로 감독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듬해 2001년, 트레이닝 캠프에서 미첼은 KG를 아들이라 불렀고 천시를 조카라 불렀으며, 천시는 미첼을 삼촌이라 불렀다. 어느날 이른 아침 식사 도중, KG는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을 'The Kid'라고 생각하는 데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했다. 미첼은 가넷과 천시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바지를 올려입고 타이를 메고 재킷을 입어. 그리고 얘기할 때,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고 답변을 할 때는 명확하게 얘기해. 그들이 너희를 어리게 보는 이유는 너희가 얘기할 때 고개를 숙이고 말하기 때문이야. 스스로 애들처럼 행동하는 거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바지를 올려입고, 상대방의 눈을 보고 얘기해. 그러면 너희는 남자가 될 거야."
뭔가 되기 시작했다. 천시는 막 결혼한 파이퍼에게 수트와 타이를 부탁했다. 그리고 2월, 브랜든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했다. 마침내, 천시가 NBA 주전 포인트가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천시는 미네소타가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도록 이끌었다. "녀석에게 희망의 불이 켜진 거죠." 브랜든이 말한다. "천시가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더 큰 선수가 되어 있었어요. 자신감은 당신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것이 당신을 수퍼스타로 만드는 것입니다."
천시는 플레이오프에서 매브스를 맞아 22.0 득점, 5.0 리바운드, 5.7 어시스트로 활약한다. 비록 매브스에게 스윕을 당하긴 했지만, 천시는 스타가 되었다. 그는 FA가 되었고, 자신의 추종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디트로이트의 GM 조 듀마스. 듀마스는 그에게 $4.5M을 제시했고, 미드 레벨 익셉션 상황에서 울브스는 그와 같은 액수를 매치시킬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GM 케빈 맥헤일이 그에 앞서 천시에게 미리 일러준 것이 하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테럴은 여전히 우리팀의 주전 포인트가드야."
천시는 맥헤일의 솔직함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신의 5년 커리어 중 여섯 번째 팀인 피스톤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 단행된 트레이드였다. 소식을 접한 미첼은 울먹였고, 천시는 미첼과 자신이 포인트가드로서 성장하도록 도와준 브랜든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그리고 Billups Suite에서, 천시와 KG는 포옹을 나눴다.
둘의 바지는 모두 올려져있었다.
조명은 꺼져있었고, 관중들은 모두 기립해있었으며, 샥과 코비는 상대팀 벤치에 앉아있었고 더 팰리스 오브 어번힐즈의 아나운서는 목청이 떠나가라 외치기 시작했다. "앤, 앳 가드 ... 천시 비-비-비-비-빌럽스!!!"
피스톤즈에서의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릭 칼라일 감독 아래 함께 한 첫 번째 시즌, 그는 골대에 무수한 동점샷들과 결승 3점 폭탄들을 투하했고, 'Mr. Big Shot'이란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Mr. Calm이었다. 무엇도 그를 동요시킬 수 없었으며, 그의 이러한 태도는 두 동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립 해밀턴과 테이션 프린스.
셋 모두는 디트로이트에 함께 왔고 -- 천시는 FA로, 해밀턴은 트레이드를 통해서, 프린스는 드래프트를 통하여 -- 천시는 어느새 그들의 카운슬러가 되어있었다. 해밀턴은 심판들에게 다가가 불만을 표출하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면 천시는 항상 다가가 말했다. "지난 일로 더이상 문제삼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프린스는 소극적인 선수였기에, 천시는 다가가 얘기하고는 했다. "쉴 새 없이 더욱 자신을 몰아붙여라." 2002-03 시즌 피스톤즈는 릭 칼라일 하에 50승을 거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동부 결승에서 뉴저지에 스윕을 당했고, 듀마스는 칼라일을 다혈질의 래리 브라운으로 대체한다. 미첼은 인디애나 시절 브라운 아래서 뛰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천시는 스카우팅 리포트를 위하여 미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미첼은 천시에게 말했다. "조카, 브라운 감독에 대해 내가 뭔가 알려주지. 넌 시즌 첫 25경기 동안 그를 무척 싫어하게 될 거야. 그리고 다음 16경기 동안은 그에 대해 알게 되기 시작하지. 그리고 나머지 41경기 동안은 ... 넌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 한 최고를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미첼은 예언가였다. 2003-04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시는 그에게 말했다. "삼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난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 해." 그리고 3월이 되자, 천시는 완성품이 되어있었다. 그는 전반전에는 경기를 분석하며 상태팀의 수비를 읽었고, 팀동료들 모두가 경기 감각을 갖도록 도왔으며, 3쿼터가 되자, 스스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4쿼터가 되어서야 공격 모드로 선회하였고, 미첼은 천시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리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기억해? 좋아, 이제 너는 미네소타에서 따르는 법을 배웠고, 래리는 너에게 리드하는 방법을 가르쳤지."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피스톤즈는 다시 네츠와 만나게 되었고, 2-3으로 시리즈를 뒤진 가운데 6차전을 Meadowlands(뉴저지)에서 갖게 된다. 아침 슛연습에 앞서, 브라운은 당시 ESPN 해설을 맡고 있던 노스 캐롤라이나대 친구 조지 칼을 만나게 되었다. 브라운은 천시가 한 성질 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함께, 자기 대신 천시에게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라는 조언을 대신 해줄 수 있겠냐고 칼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칼은 천시와 초면이었으나, 그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코트에서의 너의 결정들이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고 얘기해준다. 둘은 악수를 나누고, 나중에 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작별인사와 함께.
그리고 그날밤, 천시의 리드와 함께 피스톤즈는 6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7차전에서 21점차로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NBA 파이널에서 샥, 코비, 필 잭슨을 상대하게 된 것이며, 천시는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는 이날 경기에 앞서 관중석 다섯 번째 줄에 자리잡은 레이와 페이를 가리켰다. 천시는 감정적인 타입의 선수가 아니지만, 그는 이날 많은 생각들에 거의 눈물을 보일 뻔 했다. 레이는 아직까지도 공장에 출근하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고 있었으며, 사실 레이는 자신의 아들이 플레이오프에서 뛰는 것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근무시간을 바꾸거나 휴가를 당겨 써야만 했다.
빌럽스 패밀리.
그리고 다섯 경기만에 피스톤즈의 우승이 확정되고 천시가 파이널 MVP를 수상하게 된 후, 천시와 레이는 긴 포옹을 나누었다.
경기가 끝난 후, 천시는 레이와 페이를 샴페인이 터지는 포스트게임 파티에 초대했다. 물론 레이는 단 한 모금도 마시지는 않았다. 그러길 어언 13년째. 누구도 천시보다 레이를 감사히 여기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몇 달이 지난 후, 레이에게 하나의 소포가 도착했다.
그것은 천시가 레이에게 감사의 표시로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반지를 끼던 레이의 시선은 반지의 옆면에 쓰여진 문구에서 멈췄다. 'Billups: The Right Way.'
천시가 다시 파크 힐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파이널 MVP 트로피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덴버의 시장 웰링턴 웹은 관중들에게 외쳤다.
"오늘은 브롱코스가 수퍼볼을 차지한 이래 덴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스포츠 이벤트 날입니다.'
이듬해 2004-05 시즌, 피스톤즈는 다시 한 번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리고 또 그 이름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팀 던컨. 천시는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18.7 득점, 6.5 어시스트로 더 나은 활약을 보였지만, 피스톤즈는 7차전 끝에 스퍼스에게 패하고 만다. 듀마스는 래리 브라운을 해임시키고 천시의 예전 감독이었던 플립 선더스를 데려왔다. 천시는 이제 눈을 감고도 선더스의 공격 시스템을 따라갈 수 있었지만, 선더스는 피스톤즈를 3년 연속 컨퍼런스 결승까지만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해 마지막, 보스턴과의 시리즈는 쓰라린 것이었다. 천시는 햄스트링 부상을 달고 뛰어야 했고, 보스턴의 라이잔 론도는 천시가 노쇠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천시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이제 그는 32살이다, 이제 천시는 끝났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했고, 처음으로 디트로이트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젠장, 천시는 늙어가고 있어.'"
시즌이 끝나고, 듀마스는 커다란 변화를 암시한다. 첫째로 그는 선더스를 경질했고, 기자회견에서 그 누구의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2006년에 벤 월러스를 보냈던 듀마스이기에, 사람들의 궁금증은 '다음 주자는 누가 될까'였다. 2008년 여름이 시작되고, 모든 징후들은 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프시즌 당시, 천시는 덴버로 돌아왔고 어느날 칼과 만나게 되었다. 칼은 천시에게 왜 피스톤즈가 그렇게 감독을 많이 갈아치우느냐 물으며 왜 브라운과 선더스를 내쫓았냐고 물었고, 듀마스가 트레이드를 정말 신중하게 단행하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천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대화를 나누던 칼의 머리 속에는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업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돌던 가운데 새로운 시즌은 시작되었고, 천시는 밥캣츠와의 경기를 위해 노스 캐롤라이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 전날 밤, 파이퍼는 천시가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전에 트레이드 될 것으로 예상했고, 천시는 파이퍼에게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우리는 이번 시즌 챔피언십을 차지할 거야."
오랫동안 천시와 함께 해온 파이퍼는 그와 다른 예감을 느꼈다.
하지만 파이퍼의 말이 맞았다. 피스톤즈는 천시를 하루빨리 트레이드 하고 싶어했다. 첫째로, 그들은 로드니 스터키를 좋아했으며 그가 천시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또한 그들의 로스터로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샐러리캡을 비워 2010년에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바쉬, 드웨인 웨이드 같은 선수들을 잡고 싶어했다. 라쉬드 월러스의 계약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만기될 것이고, 만약 그들이 천시로 또다른 만기 계약을 잘 이용한다면 -- 이를테면 앨런 아이버슨 같은 --, 그들에게는 충분한 여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사실 듀마스는 덴버와 트레이드를 논할 때 아이버슨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앤써니를 요구했었다. 만약 올림픽이 없었다면, 덴버가 고려를 했을 지도 -- 아니면 최소한 논의를 해봤을 지도 --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앤써니는 베이징에서 좋은 활약과 발전된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트레이닝 캠프에서 조지 칼에게 앞으로 잘 하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따라서 앤써니는 트레이드 불가였고, 빌럽스-아이버슨 교환이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천시는 맥다이스로부터 트레이드가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건 아니었지만, 피스톤즈는 그 트레이드에 샐러리를 맞추기 위해 맥다이스를 껴넣었고 트레이드가 성사되면 나중에 덴버가 그를 방출할 것이며 그러면 그때 다시 자신들과 계약을 맺으면 된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스톤즈는 천시에겐 트레이드와 관련하여 어떠한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이미 앞서 여러번 트레이드 되었던 천시지만, 여전히 그러한 기분은 좋지 않았다. 11월 2일, 팀 호텔에서 듀마스와 코치들은 천시의 룸 바로 근처에 위치했었지만, 아무도 작별 인사를 위해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3일 오전, 슛 연습 직전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났다. 'Chauncey to Denver'.
천시는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고, 그는 파이퍼에게 전화를 걸어 달콤씁쓸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여보, 난 그녀석들과 때론 어두운 길도 함께 걸어왔어." 천시가 이어서 말한다. "녀석들은 내 형제들이야."
천시는 호텔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해밀턴과 프린스였다. 그리고 그 삼형제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껴안고, 울고, 웃기도 하며, 추억을 회상하고. 이제는 캐브스에 있는 벤 월러스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연결을 하고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천시의 트레이드로부터 가장 뒤통수를 맞은 건 연장 계약을 맺은 해밀턴이었다. 그는 천시가 이렇게 트레이드 될 줄 알았다면 자신도 절대 연장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도 트레이드 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지난 경기들과 순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해밀턴은 언제나 천시에게 자신의 어린 아들이 나중에 자라면 지금 천시의 어린 딸과 결혼시키겠다고 얘기해왔고, 다시 미래의 사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러던 중에 파이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천시는 파이퍼에게 "나중에 다시 전화 걸어줘. 지금 내 형제들과 얘기 중이야."라고 답변했다. 그들은 그렇게 3시간을 보냈다. 천시가 말한다. "전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거에요. 우리는 그저 믿기 힘든 현실에 '와우, 와우'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이제는 끝이라는 현실에 말이죠.
결국 천시는 비행기 출발 시간 얘기를 꺼내야 하며 문 밖으로 나왔고, 셋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천시는 마지막 포옹을 위해 해밀턴에게 다가갔다.
해밀턴은 흐느끼고 있었다. 분명하게 흐느껴 울고 있었다.
6년 연속 컨퍼런스 결승 진출을 함께 해온 해밀턴과 프린스는 천시가 덴버로 가야만 하는 것을 보길 정말 싫어했다.
말수가 많은 조지 칼이 그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감상에 젖게 된 건 트레이드가 결정된 시간으로부터 1분이 지난 후였다. 5분에서 10분 동안 조지 칼의 전화기에서는 그의 깊은 호흡 소리들이 들릴 뿐이었다. 칼은 분명한 평화와 희망을 느꼈고, 그는 어쩌면 이것이 하나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버슨은 덴버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동시에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팀의 몇몇 핵심 멤버들은 아이버슨이 새벽 3시까지 파티를 한다며 불만을 표출했고,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 두 명인 앤써니와 J.R. 스미스는 아이버슨을 따른다고 했다. 그들은 천시의 세대가 마이클 조던을 우러러보고 자랐듯이, 앤써니와 스미스는 아이버슨을 존경하며 아이버슨이 가자고 하면 그 둘도 가는 거고 아이버슨이 팔에 슬리브를 착용하면 그들도 하는 것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J.R. 스미스는 특히나 그러했다.
너겟츠는 2007-08 시즌 이러한 방법으로 50승을 기록했지만, 그 셋이 무질서한 공격을 펼치는 것도 명백한 것이었다. A.I., 앤써니와 마커스 캠비는 모두 '볼 스타퍼'들로, 그들은 거의 패스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덴버의 공격은 아이버슨의 오른쪽 돌파, 왼쪽 돌파, 그리고 그의 페이드어웨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짜임새 없는 공격은 더 짜임새 없는 수비까지 만들어냈고, 볼 무브먼트를 요청하던 조지 칼의 얘기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번 시즌의 경우, 트레이닝 캠프에서 앤써니와 케년 마틴을 앞세운 선수들은 더 프로페셔널해지고 더 열심히 수비하겠다고 칼에게 다짐했다. ... 심지어 아이버슨도. "나중에 돼봐야죠." 칼이 말한다. "만약 8경기 중 7패를 당하게 되면, 그들은 제 말을 듣지 않고 또다시 파티를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트레이닝 캠프에서의 팀 연습은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너겟츠 프론트진들이 그의 늦은 밤 파티들로 인해 아이버슨의 다리가 빠르지 않음을 직감하긴 했지만. 여름에 캠비를 보냈던 너겟츠는 천시를 영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천시가 처음 너겟츠에 합류했을 때, 그는 어디서부터 해나가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천시는 너겟츠의 탤런트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종잡을 수 없는 스미스와 같이 연습을 가져보기도 했고, 스미스가 훗날 올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라고 평했다. 천시가 걱정한 부분은 바로 그들의 경기 템포와 경기 조율 능력 같은 것이었다. 천시는 무질서함을 아주 싫어한다. "제가 오기 전까지 본 그들의 플레이는 산만했습니다." 천시가 말한다. "전 그것을 역기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아무런 질서가 없는 것이죠. 전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플레이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플레이 하기에는 경기는 저에게 대단히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칼이 팀 미팅 첫 날 천시가 자기소개를 했던 때를 떠올린다. "천시가 그러더군요. '모두들 봐봐, 나는 승리하기 위해 여기에 왔어. 난 말만 많이 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야. 난 행동으로 보일 거야. 그리고 너희들도 똑같은 태도로 경기에 임하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팀은 하나가 될 거야.'"
천시의 유니폼은 여러번 바꼈지만, 그의 뿌리는 여전히 콜로라도에 있다.
2008년 11월 7일, 처음으로 예전과 다르게 생긴 너겟츠 유니폼을 입고 매브스와 경기를 갖기 전에 앞서, 관중들은 모두 덴버의 농구 영웅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서 'Welcome Home' 푯말이 보인다. 그리고 마이크를 집어든 천시는 모든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전 이 팀을 우승권으로 이끌 것입니다."
철저하게 '천시 = 덴버'이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예전과는 다를 것임을 알고 있다. 10년 전 천시에게 티켓과 돈을 요청하던 지인들은 이제 어느덧 결혼을 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이상 그는 예전처럼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35주년을 맞이하는 레이와 페이는 관중석 다섯 번째 줄에 앉아 자랑스런 아들을 바라보고 있고, 한편으로 레이는 다음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기 위해 시계를 체크하고 있다. 천시가 NBA에 들어온지 12년째고, 레이가 Safeway 공장에서 일한지 32년째가 되었다. 레이는 이제 조만간 은퇴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프타임이 지나고 후반이 시작되자, 천시는 그의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 그리고 공격을 시작한다. 18풋 점퍼를 꽂아넣고 3점슛을 꽂아넣으며 3쿼터 시작을 장식한다. 언제나 3쿼터, 디트로이트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이 경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있었다. 피스톤즈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이날 경기에 앞서 오전, 천시는 뉴저지와 경기를 갖는 해밀턴에게 전화를 걸어 "너네는 오늘 졌으면 하는데." 하고 농담을 건넸고, 해밀턴은 웃었다.
54승과 함께 서부 컨퍼런스 2위. 너겟츠에게 이번 시즌은 기억할 만한 시즌이었다. 시즌 초 셀틱스의 홈에서 승리를 거뒀고, 케년 마틴과 앤써니가 테크니컬 파울 수위를 넘나들면 그들을 위해 대신 심판에게 다가가서 논쟁을 하며 테크니컬 파울을 받기도 했고, 락커룸에서는 이따금 조지 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나타내는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해결사 역할도 맡았다. 그리고 어느날, 마틴은 천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가 그렇게 여러번 트레이드 되었을 때, 난 너가 아주 재수 없는 놈인줄 알았어. 좋은 활약을 보이지만, 결국 트레이드 되어버리지. 난 너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줄 알았어."
사실은 그 반대로, 천시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일종의 심리학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어느날 밤 천시는 페이와 함께 위기의 주부들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해밀턴이 전화를 걸어 자신이 벤치로 내려가게 된 것에 대하여 그에게 속상함을 내비쳤다. 해밀턴은 수화기를 내리지 않았고, 천시는 1시간 분량의 에피소드를 놓쳐야 했다. 피스톤즈는 천시 없이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그가 떠나기 전, 천시는 마이클 커리의 진정한 동맹군이었으며, 심지어 커리의 올케를 보모로 고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시가 떠나고 나서, 라쉬드 월러스의 폭주나 해밀턴의 다혈질로부터 커리를 보호해줄 사람이 더이상 없는 상황이다.
한편 너겟츠는 천시를 얻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으며, 팀의 동지애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덴버 선수들이 천시가 언제나 핑거롤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 마틴은 천시가 한 번이라도 덩크를 성공시키면 $500을 주기로 약속했고, 천시가 미네소타를 상대로 덩크를 터뜨리자 벤치에 있던 팀동료들은 전부 쓰러졌다. "천시가 이 정도로 뛰어날 거라고 예상했냐구요? 아니요." 칼이 말한다. "그는 농구의 신이 내린 선물입니다."
조지 칼은 천시야말로 그의 젊은 팀이 가장 필요로 하던 타입의 포인트가드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느꼈다.
천시의 영입 이래 모든 것은 하나하나 놀랍게 바뀌고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호네츠와 처음으로 경기를 갖게 될 너겟츠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경기장에 들어섰고, 수수께끼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두 선수 -- 앤써니와 스미스 -- 는 멋드러진 정장 차림으로 들어섰으며 그들의 바지는 한껏 올려져있었다.
"멜로와 J.R.은 그 어느 해보다 이번 시즌 많은 정장을 차려입었습니다." 부사장 렉스 채프먼이 말한다. "옷차림으로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시는 이들에게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보이고 있죠."
특히 스미스는, 사람들에게 이제까지 천시보다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다고 얘기한다. 코트에서, 천시는 스미스가 수비에 집중하길 원하고, 코트 밖에서 천시는 스미스가 클럽으로부터 멀리 하길 원한다. 그리고 스미스는 모두 귀담아 듣고 있다. 어느날, 경기가 끝난 후 스미스는 천시에게 다가가 왜 여섯 번의 샷밖에 시도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천시는 답했다. "난 경기의 흐름을 읽었을 뿐이야. 난 그 어떤 개인 스탯을 위해서도 경기하지 않아. 승리를 위해서 경기하는 거지." 그 얘길 들은 스미스가 말했다. "젠장, 맞는 말이네."
앤써니의 배스킷볼 IQ 또한 올라갔다. 그의 유일하게 부정적이었던 사건은 3월 1일 인디애나와의 경기 중 벤치로 들어가길 거부했던 것인데, 자신의 리듬을 찾지 못 하던 앤써니의 샷이 슬슬 들어가기 시작하던 무렵 벤치로 불리자 경기장 밖으로 나가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덴버의 프론트진은 그에게 1경기 징계를 내렸고, 다음 경기에서 조지 칼이 앤써니를 벤치로 부르자 그는 뛰어서 벤치로 갔다. 천시의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이번 시즌, 제 스트레스 수준은 8에서 0까지 내려갔습니다." 앤써니가 말한다. "제 어깨에 있던 많은 짐들이 덜어졌어요. 이게 제가 원하던 농구입니다. 개인을 위해서 팀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앤써니는 긴장이 되었다. 사실, 모든 너겟츠 선수들이 뻣뻣해보였다. 첫 번째 공격 시도에서 네네가 실수했고, 팀의 처음 세 번의 샷은 모두 림을 빗나갔다. 칼은 즉각 타임아웃을 불렀고, 오직 한 선수만이 손가락을 흔들며 얘기했다. 천시였다.
"어떻게 플레이오프의 첫 플레이에서 그런 뭣같은 활약을 보일 수 있는 거야, 네네! 정신 똑바로 차려!"
너겟츠가 플레이오프에서 온순한 사슴처럼 보여왔던 것은 명백하다. 이 프랜차이즈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15년 동안 통과하지 못 했고, 앤써니는 한 번도 2라운드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었다.
천시가 3쿼터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슛팅모드로 선회했다. 그는 9개의 3점슛 중 8개를 꽂아넣으며 36 득점을 폭발시켰고 0개의 턴오버를 기록하며 너겟츠의 대승을 이끌었다. 천시는 플레이오프 일찍이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긴장을 풀어. 내가 너의 뒤에 있으니까.'
2차전에서도, 천시는 31 득점과 0개의 턴오버를 기록하며 낙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천시는 그냥 좋은 활약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미첼과 브랜든이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가운데, 천시는 타임아웃 동안 선수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를 나누어주었다. 3차전에서 거친 파울들이 나왔던 가운데, 그들은 천시가 무슨 말을 했을지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일로 더이상 문제삼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천시는 덴버에서 일어난 최고의 일일 겁니다." 너겟츠에 의해 1라운드 시리즈에서 탈락한 크리스 폴이 말한다. "그가 이 팀에 가져온 마인드는 그들이 다음 라운드에서도 느슨해지지 않도록 만들 겁니다."
그리고 너겟츠에 의해 2라운드에서 탈락한 릭 칼라일은 증명된 승리자 천시와 다른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앤써니의 조합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그들은 우승을 하기 위한 모든 퍼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우승후보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멜로도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천시는 리더입니다. 그는 우리팀 선수들의 태도를 변화시켰고, 우리가 찾고 있던 수비 마인드를 가져왔습니다."
한편 동부로 돌아와서, 시즌 5할 아래 성적을 거둔 피스톤즈는 캐브스에게 스윕을 당했다. 아이버슨은 한 시즌을 플레잉타임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는 데 보냈고 등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선언했다. "아마 그들은 제가 피스톤즈에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 알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시의 말이다.
만일 그가 과거에 팀에서 가장 가치있는 선수상의 후보가 아니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여야 할 것이다. 6개월만에, 그는 너겟츠를 구원해냈고 피스톤즈를 무너뜨렸다. 찰스 바클리와 케니 스미스는 천시를 가리켜 '보디가드'라고 부른다. 2년 전 너겟츠를 말살했던 팀 던컨 -- 그 팀 던컨 -- 은 너겟츠에게 감명을 받고 있다. 천시는 '조 듀마스'의 이름이 붙은 스포츠맨십 어워드도 수상했다. 그의 GM 마크 워켄티엔은 천시를 데려온 공적으로 올해의 GM으로 선정되었다.
이제 샘 미첼은 농구 클리닉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의 조카, 천시 빌럽스의 스토리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그리고 천시 빌럽스는 농구 클리닉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의 삼촌, 샘 미첼의 스토리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이제는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카멜로 앤써니, 자신의 왼쪽에 있는 J.R. 스미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득을 보는 사람은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일 것이다.
Smooth.
http://sports.espn.go.com/espn/eticket/story?page=090511/bill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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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NBA 원문보기 글쓴이: jordan_lebanon
첫댓글 NBA 게시판 글에 댓글 남기고, 스크랩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정도 글은 공지에 올라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명깊게 잘 봤습니다.
팸에서 포럼으로 바뀌면서, 제 임의로 할 수가 없네요 ㅎㅎ
좋은글이네요~ 와,,
네 게시판에 정말 좋은 글 있어서 새벽녁에 찬찬히 읽었습니다^^ 홈타운의 대학으로 진학했던 미스터 컬러라도 미스터 덴버.. 천시 빌럽스.. 그리고 미네소타시절.. 제가 군에 있었는데, 저런 일들이 있었군요.. 샘미첼, 케빈가넷, 테렐브랜든 이 분들은 정말이지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UNC 앨럼나이들은 엄청 끈끈하고 래리브라운과 죠지칼이 엄청 친밀하던데, 죠지칼이 래리브라운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트레이드전부터 많이 듣지 않았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네요, 천시빌럽스, 역시 대단한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사견이지만 (보스턴 팬이지만) 저 당시의 보스턴의 행색을 보니.... 90년대의 영광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네요. 훌륭한 선수를 저토록 망칠수 있는 프랜차이즈라-_-....그리고 다시한번 느끼지만 빌럽스 정말 마인드가 훌륭하네요. 덴버도 그렇게 되었구요.
천시는 은퇴해도 영구결번될 가능성이 있을까요??있으면 디트로이트??덴버??
3-4시즌 뛰고 좋은성적 거두면 영구결번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글은 정말 ㅠㅠ
잘 읽었습니다. !! 빌럽스 진짜 멋지네요
천시에 대해서 다시 보게되는 뭉클한 글입니다. 덴버팬들은 축복 받았습니다.
검색하다 봤어요. 매우 잘봤습니다!
추천 받고 온 글인데...정말 좋은 글이네요...개인적으로 농구 외 외적인 부분까지 표현하는 글들이 너무 좋습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