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법무아는 유위법, 무위법 포함한 모든 법에 자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띠, 알아차림, mindfulness, 마음챙김 등은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쓰는 의미가 다르지만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개념적 분별을 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걸 의미합니다. 북방불교 전통적으론 사띠는 흔히 염念 혹은 정념으로 번역되고 쓰이는 의미도 좀 다르지만요.
티벳불교에서는 무분별적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공성에 대한 직접적인 지각을 닦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수행에 들어갈 순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식에는 대상이 자성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현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착란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째깍째깍하는 시계 소리가 들릴 때 '시계 소리'라는 개념적 분별을 붙이기 전이든 후든 중생의 식에 그 소리 대상은 자성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현현합니다.
그래서 티벳불교 현교에서는 이러한 착란을 극복하기 위해 공성에 대한 분석명상을 수행하고, 분석을 통해 얻은 공성에 대한 확신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집중명상을 반복적으로 수행합니다.
첫댓글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되고, 이런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같은 말이라도 같은 뜻인 거는 아니니까... 예로, 알아차림을 선정에서 하기도 하는데, 알아차림이 선정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고... 서로 모순이 아니고, 다 나름의 타당성은 있어요.
기법에 따라 그래서 사용한 말의 뜻에 따라, 글자만으로는 다른 거 같지만, 뜻은 같은 경우가 많아요.
불교 전통마다 견해가 갈려서
테라와다는 알아차림을 중요하게 보고,
티베트 불교는 공성에 대한 분석명상을 강조하고,
선불교는 오히려 분석을 내려놓고 직관을 강조하는 편이죠.
제가 접했던 불교글들은 알아차림과 선불교의 직관 쪽이었는데
법무아님의 티벳불교의 분석명상은 어떠한 방식으로 들어가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