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조와 위대한 후손들...
강릉유씨대종회 임원으로 선조님의 유적지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부 평회원도 몇 분 참여하셨지만 대부분 시도지부장이나 대종회 원로님과 중앙회임원들이 다수로 모두 37분이 이번 여정에 참여하였다.
아침일찍 상일동대종회 사무실에 들렀더니 모두 탑승하시고 총무님만 뒤처리 하느라 분주하였다. 버스에 오르니 모든 분들이 눈인사로 반가워하신다.
60이 갓 넘은 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 나보다는 연배로서 나중에 안일이지만 최고령 종친은 90세가 되시는 분도 있었다.
오전8시가 조금 넘어 상일동을 출발하여 판교IC를 지날 무렵 대종회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참여 종친회간부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서울.경기.충북.충남.경북.경남.전북.전남.강원도 지부장님의 소개에 이어 대종회 이사 부회장님의 소개가 있은 후
9시30분이지나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 삼충사 제각에 다다르게 되어 병사공파 14대종손인 유기태님의 안내를 받았다.
이곳은 “삼충사”사당으로 공주유림들 주관으로 2007년도에 건립되어 첫 제향을 공주유림향사로 지낸 후 매년 음력 2월27일 제를 지낸다고 한다.
삼충사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삼충신(의당.유대남/송헌.유일남/강제.유기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성균관의 인가를 받아 향사한다고 한다.
30여분 고속도로를 달려 10시20분경에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오석산에 이르게 되었다.
폐점이 된 주유소 지방도옆길에 산길 입구에 우뚝 서있는 성조삼대종비는 1995년도 충남지회 종친들이 합심하여 건립한 것으로
종친 일체가 되어 숭조정신으로 조상의 업적을 찬양하고 강릉 유 씨 후손의 자긍심을 널리 알리고자 한 태조 고황제 유방과
강릉 유 씨의 도시조 문양공 유전(송조 병부상서) 조선개국공신 문희공 유창 세분의 행장이 기록된 유일한 비라 전한다.
다소 아쉬운 점은 세울 때는 거창하였겠지만, 주변의 칡넝쿨이 어우러져 칸막이 구획 안까지 얽히고 설켜 있어
제단주변의 관리가 미흡하여 이를 지켜보는 우리들 모두가 죄스러운 감이 들어 일부 종원들께서는 칡넝쿨을 손으로 제거하였다.
2시간을 달려 12시 10분경 고창군 아산면 중월리 상복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강릉 유씨(60여세 대 거주)와 전주최씨 집성촌으로 최초 로 삼대종숭모비를 건립하여
오석산의 삼대종비와 같은 뜻으로 세분 선조님을 추모하고 종파 자손 분들의 16위 위패를 모신 제각을 세워
전 종원들이 제를 지낸다는 유찬식 종친님의 설명이다.
20여분을 지나 오후 1시에 들린 곳이 고창군 고수면 하두치 마을에 위치한 조산사이다.
조산사는 1976년 건립된 사당으로 문희공 유창 선조님과 길사순(조선 초기 문관으로 야은 길재의 아들로 문희공의 수제자임)선생과
김숙자(야은선생의 성리학 수제자로 길재의 학통을 이어 아들 김종직(호, 점필재)에게 이어 정주학을 발전시킴)
유한량(호, 은재)(승비 시조의 7세손으로 무장현감을 역임. 임진왜란시 진주성에서 전사함.)
정읍 종친회장님의 안내로 참례를 한 후 법성포로 향했다.
(수로가 잘 정비된 법성포 )
(법성포 시가지)
(길암천 약수터)
(길암천의 유래비)
(강릉유씨 참의공 묘소앞)
억불산 정상에 마련된 묘소들
원모재 제실 등
정원에 세운 숭모비들
(보성 녹차 박물관 주차장)
순천만 갈대밭 공원 전시관
(순천만 갈대 밭)
(김승오 정채봉 문학관 전경)
동화작가 정채봉의 가족들?
정채봉 작가
김승오 문학관
순천만 관광 열차
갈대밭 전망대
고래모양 토피어 작품
대종회 여수 박람회준비관 방문 환영
여수시장님과 대종회장
서울지부장과 부회장 --만창장
(월계사 수덕문)
복사골이기도 한 마을 과수원
월계서원
이곳 면장 출신 종친님의 안내
서울지부장(유재복)수석부회장(유영일)나 부회장(유승태)
오후 2시경 굴비의 주산지 법성포에 도착하여 주변을 들러보니 전형적인 배산 임수형 어촌마을로
깨끗이 수로를 정비하여 점포앞 주렁주렁 엮어 진열해 놓은 굴비와 어우러져 굴비특산지란 풍경을 돋보이게 한다.
일행은 이곳에서 제일 음식을 잘한다는 토우식당에 들려 굴비정식으로 점심을 한 후 다시금 버스에 승차하여
길종 대종회장님의 경찰 초임지인 영암군 미암면 선황산쪽을 향했다.
이곳은 1959년 지서장으로 재임 시에 선황산 고개 넘어 독천5일장을 넘나드는 주민들을 위하여
약수터와 쉼터를 조성한 후 대종회장님의 이름자 길자와 미암면의 암자를 따서 길암천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영암군에서 대대적인 보수, 확장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 갖추어 찾는 이들의 목을 축이게 했다고 한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쪽 바가지에 받아 한 모금 목을 축이니 감로주가 따로 없다.
1시간정도 이동하여(17:30)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에 위치한 치경재에 다다르니 차도 우측 편에 큰 표석이 우뚝 서있어
산길로 접어드니 참의공 할아버지 묘소가 있어 참배를 하고 이어 억불산 입구에 이르니 큰 차는 올라가지 못하고
이곳 종친들이 동원한 승용차 및 화물차10여대로 분산하여 산길을 오르니
이곳이 그 유명한 우드랜드라고 편백나무 숲이다.
또한 이곳에는 정남진 천체과학관이 산 정상에 둥그런 모습으로 우뚝 서있었지만
그곳은 가보지 못하고 3Km정도 더 올라
참의공의 아들인 덕창이하 자손들의 묘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곳 참의공 막내아들을 임진왜란 때 신안 비금도로 피란시키므로 신안 쪽의 유 씨 문중의 선조님이 되셨다는
유동종 원로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일행 모두는 참배를 하고 다시금 마을로 내려와 평화리 마을에 위치한 제실을 찾았다.
이곳은 원모재에 모시던 천방공 제씨 산재공을 비롯한 8위와 치경재에 모시던 참의공 할아버지 후손들 9위를 합하여
현재는 17위를 모신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를 부지런히 답사하고 보니 어느덧 해는 져서 어두움이 내려앉는다.
우리일행은 장흥의 옥섬워터파크랜드로 이동하여 숙소를 정하였다.
모두들 피곤한 탓인지 이내 잠이 들었지만 아침 일찍 잠을 깨어 창밖을 보니 바다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조금 낡은 11층 건물로 6층에서 밤을 보낸 것 같다.
아침은 전복죽으로 맛있게 요기를 하고 08:20분에 옥섬을 출발하여
순천만으로 향하는 중 산비탈에 즐비하게 심어진 차밭을 바라보니
올해는 지난겨울 차가운 날씨로 70%이상 차나무가 냉해를 입어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란다.
지금쯤 파래야 할 차밭이 누렇게 변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보성녹차박물관 주차장에 내려 사진 한 컷 찍고서 순천만 갈대밭 공원에 들어서니
순천의회부의장인 종친이 마중 나왔다.
덕분에 전기열차로 2Km 제방뚝길을 편하게 보면서 회차 하는 도중에 이 고장이 낳은 문학가
정채봉 김승오 두 분의 문학관을 둘러보게 되었다.
순천만 갈대밭은 70만평의 늪지에 각종 철새들이 12월과 1.2월에는 수백 마리가 찾아와서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올해는 여수 순천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많은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해설자의 설명이다.
순천만을 떠나 정오경 여수에 도착하니 박정희란 안내 해설자가 동행하여
여수공단을 한 바퀴 둘러 한창 건설 중인 이순신교를 지나
엑스포 홍보관에 들러 진행상황을 들으니 100개국 참가에 800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행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97개국이 참가 엔트리를 보내왔다는 해설자의 전언이다.
곧 이어 대종회장의 친구 분의 자제분이 마련한 만찬장을 향했다.
한정식 집에 마련한 만찬장에는 여수시장님과 여수시의회 의장의 환대를 받으면서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씀이 있은 후
엑스포홍보 영상물을 10여분 감상하고 중식을 맛있게 먹었다.
20여 년 전에 대종회장님이 이곳에서 여당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황색바람에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는 전언과 함께
대종 회장께서 고향사랑 지역사랑의 참인물이란 인물평과 후배들의 존경받는 인물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일행은 바쁜 일정에 이분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2시간쯤 후(16: 30) 순천시 월등면 섬계리에 있는 월계사에 다다랐다.
월등농협지소장과 전 면장 출신의 종친회 사무국장의 안내로 향사에 참배하고 앞마당에 마련한 과일과 음료수를 맛보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월계사는 1959년 이곳 유림들이 건립한곳으로 문희공 유창 선조를 주벽으로 천방공 유호인과 사산공 유덕소 선조님을 배향하고
이분들의 유덕을 기리며 매년 2월20일 향사하는 곳이라 한다.
이어 차를 달려 오후7시에 도착한 곳이 송계서원으로 장성군 북이면 오월리 송산에 위치하고 문희공 선조의 현손 되시는
휘 선조께서 장성현감으로 재직 시 고조부인 문희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세운사당이 송계서원이지만 임진왜란시 소실되고
정조22년1798년에 복원되었다가 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회철 되었다는 한다.
이 곳 인근 야산에 조선말기 갑신정변의 주동자로 죽은 유대치선조의 묘가 발견되어 존치한다고 하여 일행은 방문하여 참례하니
주변 한분의 말씀이 조그만 표석이 있어 발굴해 보니 “백의 유대치 홍규”(대동보에는 홍규라고 수록 됨)라는 글자가 있었으며,
전언에 의하면 부관참시 당할 것을 어느 노파의 희생으로 묘지를 지킬 수 있었다는 설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1박2일간의 긴 여정을 끝으로 선조님 유적을 답사하고 고속도로를 달려 죽암 휴계소에 들려 저녁 식사를 하고
서울 상일동에 도착하니 저녁 늦은 밤 11시가 되었다. 모두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귀가를 하였다.
월계사 안내표석
송계사 유래 등 안내 표지
갑신정변의 희생자 유대치의 묘(좌측 표석 발견하신 종친)
이표석이 아니면 유대치선조의 묘를 어떻게 알수 있었을까?
마을어귀에 건립된 숭모비
첫댓글 뼈대있는 가문이십니다.... 후손들 모두 종중을 함께 지키길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우짠지`~~뼈가 굵어 보이데요~~히히히~~ㅎㅎ해서`~한 덩치 하시고요`~ㅎ
이분들은 뿌리는 같지만 우리선조님의 자손들이죠
강릉유시는 10개파가 있는데 호남쪽은 대부분 경력공파.좌랑공파.충청도는 병사공파 경상도는
저를 막론하고 대부분 군수공파와 금성군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