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14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14 부모의 마음
빨리 5월이 와서 홋카이도의 별장에 가기를 기대하면서 봄 동안 꽃가루알레르기와 싸우며 열심히 일했다. 하던 일이 일단락 되어 여행할 수 있게 되어, 이번에는 딸이 페리를 이용하여 북해도 남부의 도마코마이항까지 자동차를 가지고 가고 나는 비행기로 가서 페리로 오는 딸과 북해도의 치도세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는 일정을 세웠다.
딸은 나보다 이틀 전에 도쿄항의 아리아케 부두를 출발한다. 밤 11시경 승선하여 다다음날 아침에 도마코마이항에 입항한다. 아직 태풍 시즌은 멀다. 바다는 온화한 계절이다. 그러나 유럽 어딘가에서 페리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본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걱정되어 견딜 수 없다.
걱정이 되지만 그것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말하여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할 수 없다. 왜 말하지 못할까. 지금 말해 본들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페리로 가기로 딸이 이미 결정한 일이다. 그녀는 페리를 이용한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걱정된다고 해서 그만두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보니 의외로, 나도 걱정이 많은 늙은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다.
출항은 11시이지만 8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일찍 저녁을 먹게 했다. 배의 식사는 좋지 않기 때문에, 딸이 좋아하는 가다랑어포가 든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식사가 끝나자 딸은 여행준비를 위하여 2층의 자신의 방으로 올라 갔다. 나는 식탁 위의 접시와 찻잔을 겹쳐서 싱크대로 옮긴다. 자신이 여행에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설렌다. 평소라면 식기 운반용 바구니로 옮기는데, 쌓은 접시를 맨손으로 옮겼다. 도대체 왜 그렇게 서두르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서둘고 있다.
포갠 접시와 찻잔을 조리대에 올려 놓으려고 하던 순간, 겹쳐진 접시가 무너지고, 맨 위에 있던 찻잔이 떨어져 깨어졌다. 보니까 딸의 찻잔이다. 그건 가라쓰산 고급찬잔이다. 아차 싶었다.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불길한 예감이 가슴에 퍼졌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아침 저녁 사용하고 있던 밥그릇이나 찻잔을 깬다는 풍습이 있다.
만약 이것이 딸의 배여행이 죽음을 향한 여로가 된다는 전조는 아닐까? 찻잔은 실로 간단히 쨍그랑하면서 깨졌다. 깨진 찻잔을 수습하는 내 가슴은 먹구름에 덮혀 있다. 이렇게 쓰면 독자들은 나를 미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철저한 미신 신봉자는 아니다.
점술사로부터 이 날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해도, 아무래도 타야 하는 때는 나는 탄다. 점술사의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듣지 않을 때도 있다. 매사가 그때의 기분이다. 절대 해외여행 등 해서는 안 된다는 점술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스페인여행에 나섰는데 출발 당일에 갑자기 목구멍의 심한 통증을 시작으로
십일여를 기침과 열로 힘들게 여행을 강행한 경험도 있다.
폐렴으로까지는 진행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주위의 사람들이 위로해 주었으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힘든 여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위기고난을 겪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딸의 경우가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진 탓인가 보다. 아마 부모라는 것은 그런 것이어서 나도 결국 세상의 보통 부모와 같은 부류인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깨진 찻잔을 급하게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이 불길함을 딸에게 말할 수 없다. 말하면 아무리 활기찬 딸이라도 신경 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기우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90%까지 불필요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나머지 10퍼센트의 불안은 껌딱지 같이 내 가슴 속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아, 왜 바구니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항상 딸이 바구니를 사용하지 않고 식기를 쌓아 옮긴다고 화내고 있던 내가, 그때에 한해서 바구니를 사용하지 않았다――이 "그 때에 한해서" 라고 하는 말은, 사건이나 재난이 발생한 후에 자주 듣는 말이다. ――그 때, 이미 불행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등등.
이윽고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준비를 완료한 후 2층에서 내려왔다. 흰색과 감색의 야구 모자 같은 것을 쓰고 청바지에 흰색 재킷을 입고 있다. 언제나 얄미운 듯한 모습의 딸이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왠지 어린애 같이 귀엽게 보인다. 그것이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한다.
문득 "아리아케 부두까지 갔디가 만약 바다가 거칠어지게 되면 차만 실어 보내고, 너는 집으로 돌아와." 라고 말했다. 페리는 차만 실어 보낼 수 있다. "그럴께요" 라고 딸은 말한다. "하지만 부두에서 먼바다가 거칠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도 그렇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닫고 잠시 생각 후 밀했다.
"그럼, 만약,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가 많이 거칠어지게 된다면 도중 기항하는 센다이에서 내려 센다이에서 비행기로 치토세로 가면 돼." "응…알았어요. 그렇지만..." "뭐야? 뭐가 그렇지만이야?" "아깝잖아요, 그렇게 쓸데 없이 경비를 더 지출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 돈이란 그럴 때 쓰기 위한 것이야!"
언제나 나를, 아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깍쟁이로 알고 있는 딸은, 절약하는 마음 일념으로 위험을 무릅쓸 지도 모른다. 그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했다. "이럴 때는 좀 낭비성 사치를 해도 좋은 거야? 그것이 우리 사토 집안의 내력이야!" "알았어요..,"
'부모의 마음 자식은 모른다'는 말과 같이 딸은 귀찮은 듯한 투로 대꾸하고 출발했다. 이럴 땐 남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염려 말아요." 라는 남편의 한 마디면 아내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다음날, 온화한 항해를계속하고 있다는 배에서 걸려 온 딸의 전화를 받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비행기로 치토세로 가서 도마코마이에서 하선한 딸과 무사히 만났다. 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실은..." 하고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그래서 그때 그렇게 침울해 있었군요. 어째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딸은 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나서 문득 딸이 말했다. "그런데 엄미, 저가 요 며칠 동안 가슴앓이를 하고 있어요." "뭐라고?" "저기 실은 엄마가 깨뜨린 그 찻잔 그 전에 내가 깨뜨린 것을 꾸중 들을까 봐 본드로 붙여 놓은 것이 었어요...." "뭐라고..."라면서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순간, 부모의 마음이란 게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