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직폭력의 계보와 실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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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이정재계등이 효시 해방후 종로 부민관을 중심으로한 김두환계와 동대문을 무대로한이정재,임화수계가 형성돼 활동한 것이 우리나라 폭력조직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이후 자유당후반 서울명동을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신상사파까지를 조직폭력의 초기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정재등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동안 광주등 호남일각에서는 50년대 후반부터 <케세라> <행여나> 등 고교 폭력써클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광주시내 대호다방과 동아다방을 무대로 <대호파>와 <동아파>를 조직했다.
*60년대 호남계가 주도 60년대 전반 이들 양계파간의 주도권쟁탈전에서 동아파가 패배하자 동아파 부두목 박영장이 상경,서울 무대에 진출했다.
박의 상경후 분파되는 과정에서 <서방파>가 탄생했으며 대호파는 로 이름을 바꾼뒤 다시 <구OB파>와 <신OB파>로 분파됐다.
신OB파 부두목 이동재는 78년 직계행동대장 안득순에게 두목박남현을 살해토록 지시했으나 실패하자 상경,서울에서 를 재건했다.
70년 상경,무교동일대 범호남파 두목 오종철사단에 들어간 조양은은 75년1월 명동 신상사파와의 싸움에서 이긴뒤 78년11월 독자계보인 <양은파>를 결성해 서울,광주,순천등지까지 세력을 넓혔다.
김태촌은 74년6월 번개파두목 박종석의 권유로 번개파에 들어가 번개파와 범호남파(두목 오종철)의 전쟁중 오종철을 난자,불구로 만드는 <승리의 주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김은 구신민당 전당대회등 각종 정치집회에서 활약,수차례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은 <자금>을 독식하는 스타일이어서 의리를 중시하는 다른 폭력배들이 경원시 하기도했다.
이동재는 78년에 자신의 두목 박남현에게 반기를 들고 서울서두목으로 활약,조양은,김태촌파등과의 전쟁중에 세력을 넓혔다.
*70년대 김태촌등 3대 패밀리 탄생 이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조양은,김태촌,이동재의 <3대 패밀리>가 탄생했다.
3대패밀리는 전국폭력계의 천하통일을 꿈꾸며 자리를 넓혀가다 80년 삼청교육이 시작되면서 주춤해졌다.
그러나 12대총선과 87년12월 대통령선거,88년4월 국회의원선거를 치르면서 폭력조직은 호국청년연합회,신우회,일송회,새마음회등의 이름으로 우익반공단체 또는 청소년선도사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전국적 조직으로 확대재편하는 경향을 보였고 심지어 일본동경과 미국LA까지 지부를 결성하는등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 폭력조직들은 올들어 두목급등이 수사당국의 추적대상이 되자 호청련등은 자진해산했으며 신우회의 실질보스인 김태촌은 구속되는등 다시 세력이 와해되는 과정에 있다.
*저명인사 초청 축구대회로 세과시 현재 검찰이 분류하고 있는 전국규모의 10대 조직폭력배는 서방파(두목 김태촌,구속),양은파(두목 이양은,구속),OB파(두목 이동재,해외도피),번개파(두목 박종석),부산칠성파(두목 이강선),영도파(두목 천달남),전주파(두목 문용택),이리배차장파(두목 신규섭),군산파(두목 형철우),목포파(두목 강대우)등이다.
이밖에도 맘보파(두목 오재홍),전주월드컵파(두목 주오택),대전진술파(두목 김진술),옥태파(두목 김옥태),영등포파(두목 유사춘)등도 관할지역을 근거로 폭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조직폭력배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