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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홍지효
넷플릭스 글리치 후기•해석 (부제: 나를 찾아줘)
여성서사 처돌이 + 굿와이프 김단 나나 + 믿고 보는 전여빈 조합이라 연기합은 좋겠네 싶어서 그냥 별생각 없이 틀었는데, 그 자리에서 밤 새워서 다 봤다..! 전여빈 연기 잘 하는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나나가 순정양아치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려서 놀랐어. 중요한 순간에 표정을 잘 써서 감정이입이 잘 되더라구. 기대 안 했는데 여운이 정말 오래 가는 잘 만든 웰메이드 작품이였어. 처음엔 외계인 얘기라길래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반감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ㅋㅋ) 외계인은 거들 뿐, 사실은 여성 버디 무비 끝판왕이야. 정말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어.
양아치x너드 조합인 것부터 맛도리인데 그 둘의 눈물나는 애증 섞인 관계성 … 우정 …
sf 장르+코미디+미스테리+멜로+블랙코미디+독립영화+버디 무비 다 섞인 혼종 같지만서도 막상 다 보고 나면 저 모든걸 조화롭게 즐길 수 있는 코스 요리 같달까? 너무 참신했어
그런데 마이너한 소재 & 마케팅 미스 & 홍보 부족으로 생각보다 넷플릭스에서 나온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ㅠㅠ 나도 그랬고.. 하지만 정말 확실한건 이건 요약본으로 스토리만 넘기면서 볼 그런 류의 가벼운 드라마는 절대 아니란 것! 처음엔 낯설고 엥스러울 수도 있는데 뒤로 갈수록 넘넘 재밌어지니까 혹시
1,2화 보다가 그만 둔 여시들 있으면 한번만 내 말 믿고 꼭 꼭 조금만 더 봐줘!
여시 소원🫶
+ 구경이, 보건교사안은영, 기묘한이야기, 블랙미러 샌주니페로 편, 영화 메기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더 추천할게!
——————————— 스포, 스압——————————-—-
우선 두 여성 주인공의 성장 연대기라는 점이 가장 좋았어.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감과 연출, 미장센, 음악 다 너무 잘 어울렸고,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명연기를 펼치는 배우들 덕분에 몰입이 잘 됐고 두 주인공의 케미가 돋보여서 즐겁게 감상했어. 보라와 지효는 지금도 서울 복층집 어딘가에서 투닥거리며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해. 이 시대 평범하고 불안한 청춘에 대한 자화상 같은 모습의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게 공감을 잘 이끌어낸 것 같아. 초반부 고구마 같은 지효 때문에 답답하다는 의견을 종종 봤는데, 나는 이런 지효야말로 현실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 평범함을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 앞에선 늘 주저하며 의심부터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미라클 모닝, 아침 조깅, 자기 개발, 건강 식단.. 또렷한 정신을 위해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지만 에너지 음료는 산처럼 쌓아 놓고 마시는 서른 살 건축설계사 홍지효가 항상 혼자 되뇌이는 말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자.” 어린 시절 기억에서 잊힌 어떤 미지의 사건 이후 항상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몰아가며 살아오던 지효는 그저 그렇게 남들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얼떨결에 남자친구 시국과의 동거와 결혼이라는 일생일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돼. 나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스스로 반문하던 찰나 지효 앞에 근 몇 년간 안보이던 외계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해. 예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척 무시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형태로 나타나는 외계인과 갑작스러운 시국의 실종을 계기로 지효는 오랫 동안 잊고 살던 친구 보라를 재회하게 되면서 애써 외면하던 자신의 과거에 한걸음 다가설 준비를 해.
리뷰를 읽다보니 초반 1-2 에피소드까지는 전반적으로 루즈하다는 평이 많았어. 글리치는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기 보다는 사건을 던져놓고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 보여주는 방식에 좀 더 집중하는데, 그래서 초반부가 조금 루즈하게 느껴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중반부터 휘몰아치듯 확장되는 플롯과 대비되면서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오히려 초반의 탄탄한 빌드업 덕분에 지효 보라의 서사나 관계성이 더 잘 납득되었던 것 같아.
소재가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라 까딱 하면 중심을 잃고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기 십상인 스토리고, 보면서도 과감한 전개 때문에 조급함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결국 본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 착륙한 이 드라마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딱 하나이더라고. 그 점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어.
누구나 가슴 속에 외계인 하나씩은 품고 있잖아요
지효가 최면 받았을 때 보았다던 철갑상어는 지효 자신을 의미해. 어린 시절 지효가 방 안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효에게 관심이 적던 아빠와 낯선 새엄마의 애정 행각을 집안에서 목격하고서도 그런 그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자기 자신이 제일 싫다던 어린 지효는 마치 그물에 걸려버린 상어 같아. 그런 상처 받은 지효를 구출해준 과학자들이 의미하는 건 어린 지효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외계인일거야. 과학자들이 상어에게 전자 태그를 심은 것처럼 외계인도 지효에게 칩을 심고선 궁금했던거지. 지효가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안전하게 잘 살고 있는지, 혹시 또 어디서 자신을 미워하며 슬퍼하고 있는건 아닌지.. 하고. 지효가 주변의 상황과 기대에 휩쓸려 잘못된(=자신 답지 않은) 선택지 앞에 놓일 위기에 처한 그 때, 외계인이 또 다시 눈 앞에 나타난 건 아마도 지효를 돕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나는 이 외계인이 과거의 지효가 아닐까 생각했어. 스스로 봉인하고 외면했던 진짜의 나를 마주할 용기를 준 건 바로 과거의 나, 과거의 홍지효였던거지. 소중했던 어린 시절 지효와 보라가 함께 상상하며 그렸던 귀여운 모습 그대로 지효 눈 앞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외계인이 어렴풋한 과거 기억 속의 장소로 지효를 데려가고,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던 건 내가 잘 지켜보고 있으니, 이젠 더 이상 자기를 부정하지 말고 진짜 자신을 찾아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말을 지효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물론 과거 지효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미성숙한 존재인터라 조금 거친 방법을 사용한 탓에, 지효는 그 신호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지만..ㅎㅎ 환상적인 방법은 별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현실적인(?) 마지막 수단으로 시국을 냅다 납치했다고 생각하니 외계인이 너무 귀엽게 느껴졌어.
글리치에서 [외계인]이 상징하는 건 남들에게 이해 받지 못해서 숨기는 자신만의 진짜 모습, 진실된 어떤 것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믿음이라고 해석했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남들과 조금만 다르고 특이해도 그것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해버리고 ‘이상하다’는 낙인을 찍어버리잖아.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성의 기준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나를 잃고 사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지효도 외계인을 직접 목격 했으면서도 아무런 증거가 없고 그런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세상이 두려워 자신을 믿지 못해 진실을 지워버리고 도망쳤던 걸지도 몰라.
나 보다도 나를 더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조금은 무섭게 생긴 외모와 불량한 태도 탓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가 피하지만 그런 어린 보라에게 먼저 다가와준 건 지효가 유일했어. 지효는 겉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모두의 ‘외계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유일하게 보라가 마음을 열었던 친구는 지효뿐이었던 것 같아. 보라는 영문도 이유도 모른 채 지효에게 손절 당한 그 순간부터 지효를 마음 한 켠에 묻고 살아왔을 거야. 하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우정의 배신으로 타인에 대한 불신을 쌓는 대신, 보라는 친구가 남기고 간 유치한 외계인 탐지 장비를 소중히 보관하는 걸 택했어. 지효의 영향으로 생긴 새로운 취향과 그가 남긴 부산물들을 그대로 안고서 그 흔적으로 뒤덮힌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자신은 잃지 않으며 말 그대로 허보라스럽고 과감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만끽하며 살아왔던 보라가 이제 막 자신의 진실을 진심으로 마주할 용기를 낸 지효 곁에 없었다면 지효는 영영 자신을 되찾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직접 두 눈으로 외계인을 목격하고도 자신을 믿지 못해서 오히려 그 기억을 스스로 차단했던 지효인데 보라는 그런 지효를 그냥 믿어주잖아.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내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조차도 나를 믿어주고 확신을 주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많은 용기를 주고 큰 힘이 될 것 같아.
극 초반 시국의 집에 몰래 침입했을 때 보라가 “내 남자친구는 외계인에게 납치 당했다”라는 말을 지효에게 따라 해보라고 하지만 지효는 그 쉬운 말조차 망설이면서 따라하지 못해. 그때까지만 해도 지효는 자신의 진실을 인지 했으면서도 외면하려 했어. 그랬던 지효가 보라와 함께 진실을 찾는 과정을 거쳐 결국 서로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진짜 실재하는 외계인을 목격하는 둘만의 경험을 한 건 지효가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게 된 걸 보여주는 장면 같아서 너무 좋았어.
무엇을 믿을 것인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믿음” 이야. 글리치에선 다양한 형태의 믿음이 등장하는데, 믿음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발현되는 방식과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는걸 알 수 있었어. 믿음이 허황되고 왜곡된 방향으로 향한다면 사이비 종교나 집단자살 등 사람을 파멸로 이끌겠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믿음을 사용했던 좁이 그토록 바랐던 진실(외계인의 존재)은 끝내 보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것처럼.
보라의 믿음 덕분에 자기를 부정하던 지효가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만약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가족, 친구들이 그 믿음의 대상이라면 그 상대방도 분명 나를 믿고 그 서로 간의 믿음을 양분 삼아 앞으로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겠지. 무엇을 믿을 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본인이 책임진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어. 덕분에 나도 내 믿음을 끝까지 믿어나갈 힘을 얻었어. 또 그런 믿음을 함께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떠올라서 괜시리 고맙더라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의미있는 작품 같아.
조금 이상해도 괜찮아
나는 지효와 보라의 결말이 특히 인상 깊었어. 사회가 규정한,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인 나이에 남자친구와 직장 모두 잃고서 갑자기 외계인 좋아하는 여자랑 동거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남들 눈에는 어쩌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지도 몰라. 글리치를 보기 전의 나였다면 은연 중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불확실성만 내비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하고, 아빠의 도움으로 들어갔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해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취미를 나누면서 살아갈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지효는 이제서야 가장 지효다운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지.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해내고 만 지효를 내내 응원하다 보니 보고 있던 나조차도 작은 용기를 얻은 것 같더라.
글리치가 평범하고 불안한 청춘들을 묘사했다고 앞서 말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견고한 정상성의 벽을 과감하게 직접 부수고 봉인된 자신(자아)을 찾아 뛰어드는 지효의 결단력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지효처럼 내 외계인을 내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자고 다짐했어.
“세상에 근거 있어서 생기는 일들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
극중에서 보라의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나는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s성향이 98%로 나올 정도로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건 믿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저 대사를 듣고 난 후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 세상엔 근거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도 많지만, 분명히 별 근거 없이 생기는 일도 많이 있을텐데 나는 그동안 무엇이든지 근거가 있어야 믿으려고 애썼거든. 극이 끝나고도 문득 여러모로 곱씹어 볼 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작품이었던것 같아.
개인적으로 세상엔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말을 좋아해. 연인 간의 성애적 사랑 말고도 그 이상의 깊이를 가진 우정도, 반려동물을 아끼는 마음도, 가족간의 애증도, 내 취미를 온전히 즐기는 마음도 모두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극 중 지효와 보라의 관계도 그런 다른 형태의 사랑 중 하나인것 같아.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점도 너무 매력있는 작품이었어. 이미 두번 정주행했지만 앞으로 종종 계속 볼것 같은 예감이 들어 😌
첫댓글 구경이랑 안은영 재밌게봤는데 추천 고마워!!!
ㅠㅠㅠㅠㅠㅠ 글리치 최근에 감명깊게 봤는데 나도 이 드라마 키워드는 믿음이라고 생각혀 !!!! 여시 글 낼 다시 정독해야지 🥹❤️좋은글 고마워~~
와 나도 글리치 봐야겠다 추천해줘서 고마워!
셀라👽진짜 존재임 진짜증맬루임 안보면 후회함
존잼이야... 연기도 다 잘하고 독특함 계속 보게 돼ㅋㅋ
존잼인데 ㅠㅠㅠ 초반에 외계인 장벽만 넘으면 존잼이라고요..주변 사람들보니까 외계인 징그러워서 못보겠다하더라..
와 구경이 안은영 메기 다 재밌게 봤는데 이것도 봐야겠다 추천 고마워! 나도 여시에게 작은아씨들 추천할래
작씨들 당연 봤지유😗
여시덕분에 재밌게 봄!
우와 글 너무좋다! 나도 재미있게 봤고 여시 후기 완전 공감해
여시 후기 너무 잘쓴다 나도 이거 재밌게 봤는데 둘의 관계성이 진짜 맛집인 거 같아 센주니페로 좋아하는 여시들 좋아할 거라고 하는 거 너무 맞말ㅋㅋㅋㅋㅋ 잘 읽었어!!!
진짜 존잼이야.....점심때마다 봤는데 하 진짜 존잼
여시 정성스런 후기 무슨일이야…꼭 볼게 고마워!
셀라!!!! 글리치때문에 잠을 설쳤다구요
무조건 추천함 재밋어 레알
후반부 갈수록 병맛+신기함+쫄림 다있어
고마워노!
진짜 존잼이였어 !!
존잼이야 이거 초반엔 지루하나 했는데 볼수록 재밌어 하루만에 다 봄
이 글보고 봤는데 존잼이라 한번에 5화까지 쭉봄!! 출근땜에 더 못본게 아쉽 ㅠ
글리치 진짜 휘몰아쳐 개존잼 다들 얼른 봐줬으면!!!!
셀라...!
존잼 4호ㅓ부터 존잼
연어하다가 후기 너무 잘 읽고간다!!
넘 감동적인 글이다... 글리치 다보고 연어하다 발견했는데 감동그자체애
글 잘 읽었어!!! 왜 이제야 봤지 재탕해야겠다ㅠㅠ 뒤늦게 보고 과몰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