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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은 저편으로 밀려났다. 애비 조셉 코언이 말하자, 주식시장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Move over, Alan Greenspan. When Abby Joseph Cohen speaks, the stock markets listen.)"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3월 29일 이렇게 보도했다.
골드만 삭스의 수석 투자전략가(chief investment strategist)인 코언은 3월 28일 주식투자비중을 70%에서 65%로 낮추고, 현금비중을 5%포인트 늘릴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고객들에게 보냈다. 특히 기술주에 대해서는 근 10년만에 처음으로 투자의견을 낮추었다. "기술주들은 지난 18개월간 많이 상승했으며, 더 이상 저평가돼 있지 않다."
코언의 의견이 알려지자 기술주는 큰 폭으로 떨어졌고, 이 날 나스닥 지수는 124.67포인트(2.5%)나 급락해 4,833.89에 마감했다. 나스닥 지수는 다음날인 29일에는 189.34포인트, 30일에는 186.78포인트나 추가 하락해 결국 4,400대까지 떨어졌고, 그 이후 다시는 4,500선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나스닥 지수의 폭락세는 사실 코언의 보고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코언의 보고서는 무척이나 의외의 것이었다. 코언의 보고서가 나오기 20일 전인 3월 9일 나스닥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했고, 10일 장중에는 5,132.52까지 치솟았다. 짧은 조정을 거친 나스닥 지수는 3월 21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0.25%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상승세로 돌아서 5,000포인트를 다시 돌파하며 신고가를 향해 치달을 태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코언의 보고서가 발표됐고, 그린스펀 FRB 의장도 잠재우지 못한 기술주의 끝없는 상승행진은 마침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애비 효과(Abby effect)"가 그린스펀 효과보다 더 컸던 셈이다.
그러나 월가 최고의 시장분석가로 꼽히는 코언의 명성은 1990년대 미국 주식시장의 최장기 강세시장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얻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가리켜 "강세장 코언(Abby Bullish Cohen)"이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특히 1990년대 후반 "주가수익비율(PER)이나 배당수익률 등에 비춰볼 때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너무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 "전통적인 잣대로는 현재의 강세장을 설명할 수 없으며, 현재의 주식시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해 '새 패러다임 주창자(New Paradigmist)'로 불리기도 했다.
코언은 1990년 10월 골드만 삭스 시장분석가로 자리를 옮긴 뒤 4개월만인 1991년 2월 처음으로 강세장 의견을 낸 뒤 1990년대 내내 강세장 의견을 지켰다. 그녀는 특히 신기술의 성장에 뒷받침된 생산성 향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없는 견조한 경제성장세가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견인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1990년대 중반이후 첨단 기술주에 대한 투자비중을 계속 높여왔다.
1990년대 중 그녀가 단 한번 강세장에서 약세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1993년 초 빌 클린턴 대통령의 첫 연두교서 발표 직후였다. 그녀는 연방예산 감축규모가 예상을 밑돌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주식투자비중을 대폭 줄였다. 실제로 주식시장도 그 후 10%수준의 조정을 거쳤다.
월가의 시장분석가들 가운데 코언만큼 강세장을 꾸준하게, 또 장기적으로 유지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약세장을 주장하는 시장분석가와 맞서야 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파국으로 향해 치닫던 1997년 10월 27일, 당시 시장분위기와는 정반대되는 과감한 투자의견을 내놓은 것이었다. 당시 다우지수는 동남아 주식시장에 이어 홍콩과 대만, 한국 주식시장까지 폭락한 영향으로 10월 27일 무려 554포인트(7.1%)나 급락해 7,161까지 떨어졌고, 모건스탠리의 수석 시장전략가인 바튼 빅스는 "아시아 경제위기에 따라 미국 주식시장에도 약세장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코언은 주식투자비중을 60%에서 65%로 늘리라는 보고서를 냈고, 다우 지수는 이에 화답하듯 다음날 334포인트의 반등에 이어 한 달 여만에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돌파하게 된다. 이 때 그녀가 말한 게 "수퍼탱커론"이다. "아시아는 잊어라. 미국 경제는 세계(를 이끄는) 초대형 유조선이다.(Forget Asia, the U.S.Economy is the World's Super Tanker.)"
1996년 10월 다우 존스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돌파했을 때도 많은 시장분석가들은 주식투자비중을 줄이고, 채권비중을 늘릴 것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다우 지수는 1,000포인트의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우 지수는 실제로 그로부터 1년도 채 안돼 7,000선을 넘어섰다. 1998년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과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위기가 겹치며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이제 코언의 수퍼탱커도 침몰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강세장은 잠시 쉴 수는 있지만 멈추지 않았으며, 다우 지수는 1999년 사상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우 지수는 1999년 3월 마침내 1만포인트를 돌파했다.
이처럼 1990년대 내내 꾸준히 강세장을 주장했던 코언이지만 1999년 말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강세장의 종언"을 고하는 말을 남겼다. 다우 지수와 나스닥 지수, S&P500 지수 등 뉴욕 주식시장의 3대 지수가 모두 1995년부터 1999년까지 5년 연속 두자리수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이제 미국의 주가가 적정가치(fair value)에 도달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시장이 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We no longer think the market is cheap.)"
그녀는 인터뷰후 3개월만에 실제로 주식투자비중을 줄였고, 나스닥 지수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코언이 투자의견을 바꾸면 주식시장이 최소한 며칠동안 급락할 것"이라고 했던 월가의 예측은 그대로 현실화한 셈이다. 그러나 그녀가 전체적인 주식투자비중을 축소하면서도 "저평가돼 있다"며 매수의견을 유지했던 금융주들은 첨단기술주들이 폭락하는 와중에서도 지난해 양호한 수익률을 올렸다. 코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어쨌든 코언이 투자비중을 축소한 지 8개월만에 나스닥 지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마침내 지난해 11월 그녀는 주가하락이 과도하다며 S&P500 지수가 15%이상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일 FRB가 전격적인 금리인하 조치를 발표하자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S&P500 지수가 20%나 저평가돼 있으며, 올해 주식시장은 "괜찮은 수익률(hansome gains)"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언이 왜 다시 예전과 같은 강세장 입장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과도한 단기급락으로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지난해말의 주식매각으로 투자자들이 현재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그녀가 주가 상승을 전망하는 이유이다. 이와 함께 FRB의 금리인하 조치로 정책 당국자들이 더 이상의 경기하강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투자자들에게 심어주었다는 점을 그녀는 강조하고 있다.
월가가 가장 신뢰한다는 코언의 예측이 이번에도 그대로 적중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주가가 말해줄 것이다.
애비 조셉 코언은 월가가 가장 신뢰하는 시장분석가이다. 워렌 버펫과 함께 미국 주식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코언에 대한 이같은 시장의 신뢰는 그녀 특유의 탁월한 분석력에서 나온다. 그녀는 동료 분석가인 가브리엘 나폴리타노와 함께 매 분기별로 S&P 500 지수에 포함되는 기업들의 실적보고서를 직접 모두 챙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무실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하고, 휴일에도 집에서 실적자료를 분석해야 할 정도 엄청난 분석량이다.
그녀는 특히 자신만의 분석모델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시장을 예측한다. 그녀가 전통적인 잣대로 시장을 바라봤다면 근 10년간에 걸친 초장기 강세장을 고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1990년대 중반과 후반에 이르는 기술주의 강세 역시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언은 특히 일시적인 시장분위기의 반전이나 다른 시장분석가의 의견에 기울어지지 않는다. 상식처럼 통하는 월가의 도그마는 더욱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시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5개의 단어는 'This time it is different.(이번에는 뭔가 달라.)'라고. 하지만 나는 '때로는 정말 뭔가 다르다.(But sometimes it really is different.)'고 말하고 싶다."
그녀는 1990년대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정말 다르다고 봤다. 코언의 이같은 시각은 "계단형 상승론(staircase pattern)"을 낳았다. 어느 정도의 조정을 거친 뒤 급격한 상승을 통해 주가가 한 단계 레벨업되고, 또다시 지루한 조정이 이어지다가 다시 단기간에 큰폭으로 상승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녀가 미국 경제의 장기성장세 지속을 예견하면서 "수퍼탱커(초대형 유조선)"에 비교했던 것도 음미해볼만 하다. "이 배는 가장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풍랑에) 방향을 잃고 좌초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 기업과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에 기초한 말이다.
코언은 1952년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폴란드 이민자 출신이지만 직장을 다니며 대학교육을 마쳤고, 아버지는 뉴욕대학에서 금융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1969년 마틴 반 부렌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그녀의 학교성적은 1,636명중 12등이었다. 과학성적이 뛰어났고, 부모 역시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그녀는 코넬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후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1973년 경제학과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따고 졸업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 그녀가 첫 직장을 잡은 곳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였다. 워싱턴으로 옮겨간 그녀는 이곳에서 연구원(리서치 어시스턴트)으로 일하면서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6년에 볼티모어에 있는 뮤추얼펀드회사인 로우 프라이스 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한다. 이 회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언이 FRB 근무당시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던 베드 라덴이었고, 그녀는 이곳에서 7년간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게 된다.
그녀는 FRB 근무 당시 "작동하지도 않는 낡은 경제 모델에 집착하다 보니 현실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훗날 그녀가 시장 분석에 유연한 자세를 갖고, 그녀 고유의 모델을 만들어 기업을 분석하게 된 것은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녀는 또 로우 프라이스에서 전체 시장 분석 뿐만 아니라 당시 막 떠오르던 산업이었던 반도체 등 하이테크 산업을 분석하게 되는데 이 역시 1990년대의 기술주 견인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코언이 월가에 처음으로 발을 딛은 것은 31살이 되던 1983년,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포오트폴리오 전략가로서 였다. 드렉셀 번햄은 당시 마이클 밀켄의 정크 본드 거래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녀는 이곳에서 1987년 수석 전략가로 승진한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의 주가폭락을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러나 다음날 보유 현금으로 모두 주식을 매입하라는 보고서를 냈다. "펀더맨틀의 악화 때문이 아니라 금융시장 자체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빚어진 폭락이었다."는 게 코언의 시각이었고, 시장은 그녀의 예상처럼 곧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정크 본드 거래로 잘 나가던 드렉셀 번햄은 불법 내부자거래에 연루돼 결국 1990년초 도산하게 된다. 그녀는 결국 40명의 직원들과 함께 영국계 은행인 바클레이즈로 옮겼으나 몇 개월만에 그만두고 골드만 삭스로 옮기게 된다. 이때가 1990년 10월, 다우존스 지수가 막 2,600선을 지나던 무렵이었다.
지금 코언은 골드만 삭스의 최고 스타로 각광받고 있고, 투자전략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1993년까지도 그녀는 월가의 애널리스트 평가순위로 가장 권위있는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Institutional Investor)"가 선정한 시장분석가 랭킹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한 시장분석으로 성가를 높였고, 1997년 "월 스트리트 위크(Wall Street Week)"가 선정하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오르게 된다. 인터넷 금융정보사이트도 운영하는 "스마트머니(Smartmoney)"가 1997년부터 월가 전문가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전문가 시각(Pundit Watch)" 순위에서도 올해로 5년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코언의 예측이 틀린 적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소형주의 상승률이 블루칩보다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1996년 11월의 보고서일 것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그녀도 실수를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언젠가는 강세장이 끝나고, 결국 약세장이 될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분석을 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고객들에게 적절한 시점에, 올바른 분석을 전해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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