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의 싸움]⑨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돌연사 위험이 있으나 치료와 관리를 통해 평생 건강 유지가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언젠가는 죽지만, 죽을 날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을 수 있는 상태란 걸 알게 되면 절망에 빠지고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막연한 가정이 아니라 돌연사의 위험을 늘 안고 살아야 하는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의 현실 이야기이다.
◇두꺼워진 심장 근육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예측할 수 없는 돌연사 위험
일단 ‘비대성 심근병증(비후성 심근증)’은 심근병증 중에서도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희귀 심장 질환 중 하나다. 이 중에서도 전신에 혈액을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좌심실의 근육이 두꺼워져, 좌심실에서 심장 바깥 대동맥으로 혈류를 내보내는 유출로 부위의 근육이 두꺼워지고 폐쇄된 상태를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HCM)’이라고 한다.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긴 하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다. 돌연변이가 있어도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이 발현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돌연변이가 없는데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이 확인되기도 한다. 모든 비대성 심근병증이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비대성 심근병증은 500명 중의 1명꼴로 나타난다고 알려졌는데, 그 중 1/10~1/25 정도만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로 추정된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보통의 심장질환과 증상이 크게 다르진 않다. 좌심실 유출로가 막혀 혈류가 차단되면 산소가 부족해져 호흡곤란, 피로감, 어지럼증, 흉통, 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계단이나 언덕 오르기 등 일상생활에서 늘 해오던 가벼운 활동만 해도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심장 근육이 비대해지면서 심장의 형태와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보니 부정맥, 심부전 등 심각한 심혈관계 합병증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흔하다. 실제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에서 심부전 발생 위험은 최대 43% 높다. 심방세동 발생 위험도 일반인보다 약 6배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이 병의 제일 큰 문제는 돌연사 위험이 크단 것이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의 돌연사 위험도를 예측하는 기준이 있긴 하나 특정 요소가 돌연사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젊은 환자일수록 돌연사 위험이 큰 것으로 보고된다. 실제 20대 젊은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의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35세 미만 운동선수에서 발생하는 심장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이 꼽히고 있어, 미국 등에선 프로선수 입단 전 심장 초음파를 필수로 실시할 정도다.
비대성 심근병증은 환자마다 중증도는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돌연사 위험이 공통으로 존재한다. 특히 돌연사와 연관이 깊은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환자가 진단받은 순간부터 갑자기 죽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불가피하다.
◇초특급 신약 등장했지만… '최우선 대상'은 아냐
최근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신약 '캄지오스'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캄지오스는 임상시험에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였다. /BMS 제공
다행히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희귀난치질환임에도 치료법이 다양한 편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비대해진 심장 구조와 증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증상을 완화하고 돌연사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약물, 시술, 수술 등이 있다. 개인차는 있으나 치료를 빨리 시작할수록 예후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기존 약물은 효과가 적은 편이고, 효과가 좋은 신약은 사용이 제한된다. 시술이나 수술은 약물보다 효과가 좋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존재한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이상철 교수(한국심초음파학회 비후성심근증 연구회장)는 "비대성 심근병증 치료는 '돌연사 위험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모든 치료법이 장단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첫 증상 발현이 심장마비라 돌연사하는 20대가 있지만, 불편함은 있으나 아무 일 없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90세가 있듯 중증도가 다양한 병이라 치료법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돌연사 위험이 매우 크다고 판단된 경우, 바로 제세동기 삽입술을 시행한다.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한 번이라도 쓰러진 경험이 있으면, 제세동기를 삽입이 이뤄지는 편이다. 다만, 제세동기 삽입은 몸에 기계를 넣는 일이라 그 자체로 위험부담이 있다. 제세동기를 삽입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도와 삽입했을 때의 안전도 등을 계산한 후 이득이 더 커야 삽입이 가능하다.
당장 제세동기를 삽입해야 할 만큼 돌연사 위험이 큰 게 아니라면, 약물 또는 수술·시술, 심장이식 등을 시도할 수 있다. 수술(심근절제술)은 현재 효과가 가장 분명한 치료법에 속한다. 혈액의 심출박을 막는 두꺼워진 근육 부위를 잘라내 직접적으로 증상을 완화하기에, 수술만 잘된다면 증상 개선 확률은 99%에 달한다.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에겐 시술을 시도할 수 있다. 시술로는 비대해진 심장 근육에 알코올을 주사해 심장 근육 일부를 파괴, 혈류를 개선하는 알코올 심실중격 절제술이 주로 사용된다.
약물치료는 가장 광범위한 치료법이다. 기존 치료제로는 이뇨제, 베타차단제 또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등이 있다. 이 약물들은 심장근육을 이완시켜 심장 과부하를 줄이거나 박출량을 늘려 증상을 개선한다. 그 효과가 크진 않아 증상도 크게 개선되진 않는다. 최신약으로는 BMS의 '캄지오스(성분명 마바캄텐)'가 있다. 이 약은 임상시험에서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성인 환자의 운동 기능과 증상을 2배 이상 개선함을 입증한 바 있다. 특히 74%의 환자는 수술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폐색됐던 좌심실 유출로 압력문제가 개선됐다.
그러나 캄지오스도 절대적인 효과가 있는 약은 아니다. 이상철 교수는 "수술을 하거나 효과가 덜한 약만 사용해야 했던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에게 신약(캄지오스)는 새로운 옵션을 줬다"며 "다만 신약은 실제 임상현장에서 사용해봐야 그 효과를 알 수 있으며, 장기 사용에 대한 안전성이나 중단 시기 등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에 '일단 써보자'는 식의 선택은 어렵다"고 밝혔다. 캄지오스는 2022년 4월에 미국 FDA 승인을, 올해 5월 말 국내 승인을 받은 그야말로 최신 약이다.
이 교수는 "기존 환자 중 약물치료 효과는 애매하고, 다른 질환 등으로 인해 수술하긴 어렵거나 수술에 거부감이 있고, 제세동기를 이식하긴 했으나 관리가 계속 필요한 환자들에게 우선으로 캄지오스를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약의 효과가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것으로 보이나 장기적으로 치료 효과가 좋다는 게 입증된 수술을 두고, 장기 데이터가 없는 새로운 약을 쓰는 부담을 무릅쓸 이유는 없다"며, "물론 기존 선택지가 마땅치않았던 이들에겐 굉장히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관리하면 평생 건강한 삶, 의심될 땐 검진 필수
현재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가 돌연사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대수술을 결심하거나 효과가 애매한 약 또는 오래 써도 안전하다는 근거가 부족한 약을 선택하는 일밖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외에도 돌연사를 피할 수 있는 아주 여러가지 방법들은 존재한다. 전문가들이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을 '관리만 잘해줘도 되는 병'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상철 교수는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완전히 해결 가능한 질환이라기보단 관리가 필요한 '상태'이고 '체질'이다"며, "충치가 생기지 않게 매일 이를 닦는 것처럼 생각하고 관리하면 충분히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여러 유형의 비후성 심근병증의 중에서도 폐쇄성 비후성 심근병증은 치료하고, 관리하면 돌연사 위험을 가장 확실히 낮출 수 있는 유형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은 재미없는 걸 재미있게 하고 살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이상철 교수는 "암벽 등반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축구, 농구, 테니스, 마라톤 등 신체를 극단의 상황에 몰아가는 운동, 심혈관에 악영향을 주는 흡연, 탈수 유발 가능성이 있는 폭음(소주 반 병 이상)이나 과식은 피해야 한다"며,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심장을 단련시켜야 전반적인 체력과 근력이 좋아지면서 심장의 과부하를 덜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가벼운 운동이란 움직일 때 약간 숨이 찬 수준으로 하는 것이다. 옆 사람과 말을 하는 데 무리가 없는 강도로만 운동해야 심장이 단련된다. 그 이상의 격렬한 운동은 돌연사를 유발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어 절대 해선 안 된다.
더불어 그는 심장질환이 의심되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반드시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환자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을 악화시키고 있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전 세계 통계를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도 약 100만 명의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와 약 30만명의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철 교수는 "희귀난치질환 중 이렇게 많은 환자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질환은 드물다"며,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불규칙해지는 부정맥 증상이 반복되거나 심장이 너무 크게 뛴다고 느껴지는 등의 심장병 의심 증상이나 호흡곤란, 흉통 등으로 인해 불편하다면 가까운 병원에서 꼭 진찰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