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 그 문 벽을 측량하니 이쪽 두께도 여섯 척이요 저쪽 두께도 여섯 척이라 두께가 그와 같으며 그 문의 통로의 너비는 열 척이요…” (에스겔 41:1~2) 아멘! 하나님께서 성전과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읍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여기 저기를 자세히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에스겔이 설명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레위가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겠다고 하는 사람이 레위기를 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는 그 의미를 알면 레위기만큼 은혜로운 말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쉽지 않은 것이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읽기 힘든 부분이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름이 나오는 부분은 은혜가 있지도 않습니다. 레위기처럼 은혜가 되지도 않는데 이름들이 왜 이렇게 길게 나오나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 통독을 하는 사람들도 이름이 나오는 부분은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읽기 쉽지 않고 어려운 부분이 성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성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아니고 상상도 잘 되지 않습니다. 상상이 돼야 그래도 조금 나은데 상상도 되지 않고 성전을 측량하는 단위도 생소하다보니 이름보다 더 힘들게 읽는 부분이 성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대한 부분을 모세 때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서도 많은 부분을 성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의미도 아니고 성전의 역할도 아니고 성전의 모양을 길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성전에 대해서 길게 묘사하고 있을까 싶습니다. 이해도 상상도 가지 않는데 말입니다. … 그 이유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은혜를 받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참새도 그 보금자리를 얻는 은혜의 자리 말입니다.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상상이 되지 않아도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라면 성전을 귀히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날 성전은 없지만 성전의 역할을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고 또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에 대해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만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로하고 섬길 사람들이 또한 성도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고 그들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잘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상상도 잘 안되는 성전을 이렇게 길게 설명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