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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가족도 외면하는 전과자들 편견 거두면 새 삶 살아요" 남자들은 나씨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한다. 때로 "교도소에 갔다 온 게 알려져 직장 다니기 싫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그럴 때면 나씨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야!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해. 그리고 깔보는 사람한테 가서 똑바로 말해. '너, 직장생활 나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남자들은 교도소 출소자들이다. 여기서 먹고 자며 일을 해 자립할 자금이 모이면 떠난다. 나씨가 이들을 돕는다. 그는 2005년 교화(敎化)복지 사단법인 '뷰티풀라이프'를 만들어 이곳에 숙소를 차렸다. 나씨는 6년 전까지만 해도 수녀였다. 출소자 봉사활동을 놓고 수녀원과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해 수녀복을 벗었다. 나씨는 "신부님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하지만 나는 교도소 재소자와 출소자를 위해 수녀원에 갔기 때문에 뭔가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재소자·출소자들과의 인연은 중학 2학년이던 1964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나씨는 군산교도소 재소자들에게 합창을 가르치는 성당 봉사활동을 갔다가 '살인범'을 만났다. 자기를 키워준 부모 같은 친누나를 기절하도록 때리고는 옆에서 태연히 술 마시는 매형에게 화가 치밀어 때렸다가 그만 숨지게 해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나씨는 "교도소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고 했다. 나씨는 1972년 스물둘 나이에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1986년 경주의 한 성당으로 옮겨가면서 재소자들을 만났다. 성당은 경주교도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씨는 거기서 40명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상당수 출소자는 3~6개월 뒤면 재수감됐다. 그들은 "일자리도 없고 가족도 등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수녀님이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나씨는 수녀원과 가족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외면당했다. 나씨의 가족조차 "할머니나 고아랑 사는 수녀는 봤어도 출소자랑 살겠다는 수녀는 못 봤다"며 말렸다. 그는 1992년 지인들로부터 6000만원을 모아 대구 월성동에 아파트 2채를 얻어 출소자들과 생활하며 사회적응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가 닥치자 어렵사리 취업시킨 15명 모두 해고당했다. 전과자였기 때문이다. 나씨는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무시하는 전과자도 쓸 만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 뒤 나씨는 출소자들과 두부를 만들어 팔고 생선장사도 했다. 쉽지 않았다. 나씨는 "단골마저도 직원들 신분을 알고 나면 발길을 끊곤 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택배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출소자에게 배달을 맡긴다. - 조선일보 이영민 기자 2010.06.08 -
마 10:42
제 목 : 예수님의 눈에 든 믿음 성 경 : 막2:1012 성경에 보면 의외의 인물들이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사건들이 나옵니다. 예> 마8:5~13 백부장. 하인을 위해 간구함 - 예수님이 기이히 여기며 칭찬. 마8: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15:21~28 가나안 여자. 귀신 들린 딸 위해 기도. 예수님이 시험하려고 거절하심. 그러나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는다고 매달림. 이때 예수님이 칭찬. 마15:28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반대로 예수님께 책망받은 사건들도 종종 등장합니다. 예> 마8:23~27 갈릴리 호수 지나던 제자들. 풍랑을 만남. 두려워 떨며 잠을 자던 예수님을 깨우며 난리. 이때 책망하심. 마8:26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 마17:14~21 한 사람이 그 아들이 간질병에 걸려 예수님 출타 중에 제자들을 찾아 왔으나 해결받지 못함. 이 사람과 제자들을 향하여 책망, 한탄. 마17:17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여러분, 이 사람들이 칭찬받고, 책망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칭찬을 받고, 믿음이 없는 자들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평가하실 때 어떤 외적인 조건이나 신분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것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좀 부족해도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인간적으로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해 보여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칭찬받고 복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남보다 신분이 높았던 까닭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남다른 선행을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5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칭찬받기를 원합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큰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만한 좋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인간적으로 노력해서 훌륭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선행을 하려고 애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고 선결되어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이 있는 자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진정으로 복된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우선 본문 사건의 개요를 살펴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있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는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요단강 동서를 이어 주고, 멀리 지중해변까지 이르는 'Via Maris'(해변의 길)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었고, 예수님의 소문은 사방으로 잘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도 보니까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한 집(베드로의 집일 가능성이 큼)에 머물어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듭니다. 그 중에 중풍병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반신불수가 되어 꼼짝을 못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지만 혼자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네 사람이 침상 채로 그를 데려다 줍니다. 문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붕을 뚫고 예수님을 만나는 진기한 사건이 생깁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무례한 일입니다. 한참 말씀을 강론하는데 그 난리가 났으니 ...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믿음을 칭찬하셨고, 중풍병자와 네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 그러면 과연 그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습니까? [1] 간절한 믿음 그들의 아름다운 믿음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게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이란? 막연하게 지성이면 감천식으로 아무데나 비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참 믿음입니다. 그런 참 믿음이 있으면서 그 믿음이 간절할 때 귀한 것입니다. 그 간절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마디로 '절대 의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끝장이라는 마음 상태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기에 울며 보채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의 중풍병자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예수님 만나지 못하면 영영 병을 고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병을 고쳐 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였을 겁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귀신을 쫓고, 고질병을 고쳐주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 그가 이런 소문을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분은 분명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분을 만나면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이 바로 이런 겁니다. 어린 아이처럼, 모든 것을 잃은 파산자처럼,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중환자처럼, 아무 데에도 기댈 수 없고 오직 주님 한분만 자기를 책임져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매달리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 금번 성지 순례를 중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는 유익한 시간을 가져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곳곳에 만들어 놓은 기념 교회당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동안 방황했던 광야! 그때의 모습과 큰 차이 없이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지금은 이집트 국경 내에 있는 시내 광야를 쭉 지나오면서, 성경에서 읽고 상상하던 것보다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그리고 구릿빛의 험준한 산악, ...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운 곳! 흔히 성경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정죄하고 비난했었는데, 그 광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라면? 우리라면? 100%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하고 애굽땅을 그리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비옥한 애굽땅에서 이스라엘을 굳이 불러내셨는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에 왜 광야에서 오래 방황하도록 하셨을까? 한 가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우리가 의존하고 살아야 할 분임을 가르치고 훈련하시려는, 즉 믿음의 연단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에, 오히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맹수와 독충의 위험만 가득하기에, 하나님을 실컷 원망하든지, 아니면 하나님 한분만을 절대 의존하거나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광야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 바로 절대 의존의 믿음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살 길 임을! 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게 너무나도 많아졌습니다. 현대 문명, 물질, 사회 제도, 지식, 과학 기술, 경험, 캐리어, 지위, ... 그 자체는 다 가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하는 위치에서 인간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할지언정 그것을 의지하고 즐기다가 하나님을 놓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는 믿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자산입니다. 부디 본문의 중풍 병자처럼,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오직 하나님만 절대 의존하는 신앙을 배우시고 늘 하나님의 은총 속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불굴(不屈)의 믿음 중풍병자와 네 친구가 예수님이 계신 집에 당도합니다. 발붙일 틈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그 어려운 길을 힘겹게 왔는데 큰 장애물이 생긴 겁니다. 낙심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달랐습니다. 집 뒤로 돌아가서 지붕을 뜯어 내고 침상 채로 내려 기어코 예수님을 만나고야 맙니다. 당시 유대인의 가옥 구조는 이런 사건을 가능케 합니다. 현무암으로 집을 짓고 지붕은 갈대나 종려(대추 야자)나무 잎을 엮어 얹힙니다.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위에 흙을 덮어 기와처럼 만듭니다. 그리고 계단을 만들어 놓고 수시로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거나 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문으로 못 들어가게 되자 낙심하지 않고 지혜를 짭니다.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만나고자 애를 씁니다. 참 믿음이 바로 이런 겁니다. 어려운 난관이 생겨도 굴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게 진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도우십니다. 예> 카타콤베(카타코움) - 로마 박해 시대 지하 공동 묘지. 꼬불 꼬불한 미로. 예수 믿는 신자들을 잡아다 맹수 밥으로 죽이고, 십자가에 매달고 , ... 온갖 박해 ...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지하에 묘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서 피해 기거하기도 하고, ... 300여년 간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로마인들은 네크로폴리스(죽음의 도시)라고 불렀는데, 초대 기독교 성도들은 체메떼리아(휴식처, 안식처)라고 불렀다고 함. 무려 600만명이 카타콤베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함. 결국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었고, 전 세계를 변화시키게 되었던 겁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은 바로 이런 겁니다. 고난이 와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돌파할 때, 거기에서 기적이 나타납니다. 고난에 굴복하면 그만큼 돌아갑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고난의 상황이 있습니까? 낙심 말고 주님 바라보십시오. 지혜를 주실 겁니다. 그리고 주의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중에도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협력과 사랑 있는 믿음 아무리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이 있었다 해도 만일 네 친구가 믿음으로 일치되지 않았다면? 본문의 역사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퐁병자가 믿음이 있어도 다른 친구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구박이나 받습니다. 반대로 네 친구가 아무리 권면해도 본인이 싫다고 고집 부리면 소용 없습니다. 다섯 사람의 믿음이 일치되고, 협력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만났고,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혼자서 믿어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까지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믿음으로 힘이 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믿음으로 격려하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히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마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한 사람보다 두 사람,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이 기도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간의 신앙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복음화가 중요합니다. 혼자서는 힘들 때가 많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치유의 은총 외에 죄사함의 은총을 주셨는데 짚고 넘어갈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맨 먼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의심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인가? 예수님은 그들에게 병을 고치는 것과 죄사하는 것이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묻습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병 고치는 게 더 어렵습니다. 금새 들통 나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전능자 예수님에게는 다 쉽습니다. 다만 죄사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말씀하신 겁니다. 결국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두 가지 다 해 주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강조점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죄사함이었습니다. 왜? 치유는 제한적입니다. 다시 병듭니다. 그리고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은 영원합니다. 죄사함 받은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죽어도 삽니다. 다른 것은 남의 믿음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물질 축복, 치유의 역사 등 ... 그러나 죄사함 만큼은 오직 본인의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믿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모든 사람이, ... 예수만이 나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에 이끌어 주실 분임을 믿을 때에 육신적인 축복을 너머 영생의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아무쪼록 우리는 분문의 다섯 사람들처럼 주님의 눈에 딱 드는 믿음을 소유하셔서 구원의 은총과 더불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늘 복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