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 어메!, 우리 어메!
참 그립습니다
많이 보고싶습니다
한 번 만이라도 꿈에서라도 만나 보고 싶습니다
어메, 아베 불러 봅니다
먼동이 트면
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살며시 비단샘이 솟는 금천의 그리움속으로 들어간다.
샘물 한바가지를 떠 정화수 기도 드리며
맑은 샘물에 목을 추기던 어머니!
햇살이 곱게 피어 오를때
싸리 대문 앞에서
활짝 미소 지으시며
서 계시던 어머니!
자식들이 객지에서
돌아오는 발길
가벼워지라고
아침부터 대문밖을
서성이시던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을 울리고 있다.
봄이면 온 산천을 다니며
산 나물을 하시어
자식놈 전과 수련장 싸 주시고
탑리 장날에는
먼길 걸어 장을 보시고
시장한 배를 움켜지시고
샘물로 배를 채우며
우리들 옷을 장만 하시며
맛있는 국밥도 한 그릇 싸 잡수씨지 않은 어메
멀리 대구로 유학 보내시고
앞산에 해뜨기전 들로 나가시면
복두산으로 해가 져야 집으로 오신다
점심은 보리밥, 된장, 흙과 썩어 잡수시고
참으로 보리가루를 옹달샘 물을 떠다
타 잡수시며 오직 일 밖에 모르신 어메
방학에 집에 오면 속옷에서 꼬깃꼬깃 모이온 돈용으로 주시던 어메
졸업식 날 무명 옷을 입고 오셨어
졸업식이 끝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 시키고서
나는 배부르다
짜장면 맛있게 먹어라 하시던 어메
교사 발령을 받고 임지로 떠날 때
새 이뿔 보타리, 새로 장만한 속옷을
아버지에게 짐어 지어 보 내시며
‘얘야! 단디해라’(겸손)
‘애야! 남을 위해 좋은 일 해라!’(평생 선하고 인자하게)
‘세상은 혼자 사는 기 아이다. 남 열리대로 살고’(어울려)
‘이기려하지 말고 저주고 (겸손)
멀리보고 살아라’( 참고. 기다리고, 견디어라)
‘야야! 니 잘해라’(참되게 살아라)
‘기본에 충실하라’(예의염치)
귀에 딱지 않도록 당부 하시던 어메
어릴 때 백일해 기침으로, 홍진으로
몸이 약한 나를 위해
산천에 나는 쑥, 약풀을 모아
조청을 만들어
육십이 다된 어른이 될 때까지 보내주신 어메
집 나간 놈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아랫 목에는 언제 따뜻한 옥식기 밥이 묻어 있다
고향집 들으때마다 바리바리 보따리 싸서 들러주며
대문 앞 까지 엉금엉금 기어나와 내 차의 뒤를 바라보며 손만 흔들고 계신다
할 말이 없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머니 젖가슴을 확 만졌다. 효자가 되고 싶었다. 김선굉 시인가 생각났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된다/ 너거무이 기겁을 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기 와 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된다”
(‘효자가 될라카머’ 전문).
엄마 젖 만져뿌라
바로 이때다. 어머니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싼다.
“야야, 왜 이러는데….”“넘서 스럽게” 그때 알았다.
목계(木鷄) 같던 어머니도 천상 ‘여자였구나!’
어머니의 정성 기도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감승진을 남 먼저하고
어려운 장학사 시험에 2등 합격하고
나이 오십에 교장 승진하였다
승진 할 때마다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시며
우리 아가 돈을 보내어 잔치하다고
마을 사람들을 속이신 어메
교장 12년을 하면서도 내자식 때문이라는 핑계로
제주도 여행도 한번 시켜주시 못하고
큰 사무실 회전 의자에 한번도 앉혀 보지 못한 불효자
어메, 아베 죄송해요
어메는 평생을 희생하며 기도 하셨다
어메 아베는 마음이 착하시어
하늘에 흰 눈이 내리는 날 하늘 나라로 가셨다
눈처럼 아름답게 세상 삶을 사셨다
어메 미안해요
그리고 참 보고 싶어요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