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사랑, 가장 큰 보상”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마치 한 단체의 대변인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주님을 따르기위해 가정, 다시 말해 부모형제, 심지어는 토지까지 버렸는데,
거기에 따른 ‘보상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이지요. 제자들은 다 소중한 가족이
있었는데, 스승을 만나면서 자신의 직업인 어부, 세리 등을 떠나야 했습니다.
호숫가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과 야고보가
자신들의 배와 가족을 버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이런 질문은
당연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
그들이 포기했던 것들을 백 배나 보상을 받을 것이며 또한 영원한 생명도 받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이런 것들이었습니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떼지어 돌아다니는 ‘먹보’이며 율법의 예식도 모르는
‘무식’ 집단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눈총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들판의 밀 이삭을
비벼 먹는 ‘배고픔’이었습니다.
특히 후대에 기록된 요한복음에 와서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사랑이 주 주제로
떠오릅니다.
제자들은 제대로 쉴만한 집도 없었고 보장 받은 식사도 할 처지도 아닌
그야말로 ‘떠돌이 신세’였지만 스승은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했고 제자들도 스승을
존경과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 사랑으로 스승과 제자는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을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집회서 저자는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저자는 마지못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바쳐야 하느님께서 그에게 보상을
주신다는 사실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집회 35,12-13)
집회서 저자는 기쁘게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는 사람은 일곱 배,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복음을 위해서 버린 것들에서 보상이 백 배와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곱 배나 백 배는 다르게는 무한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받을 보상 특히 내세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제자들은 그 어떤 것도 현세에서는 그 어떤 보상도
받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는 성경이 전해주는 것도 또 우리가
아는 것도 없습니다.
제자들이 받은 것은 주님의 좁고 험한 길, 아무나 갈 수 없는 스승의 삶이었습니다.
특히 하느님과 율법을 독차지한다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도 받지 못했던 하느님 아들의
삶을 제자들은 받은 것입니다.
스승이신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의 영광, 승천의 목격,
그리고 성령강림의 참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와
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은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보상을 바라는 행동 자체가 진정한 봉사는 아닌 것이지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사랑이었고 주님께서도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지만 주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에게는 사실 가장 큰 보상인 셈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사랑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감사드립니다.
주님,한주간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평화로운
시간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