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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4: 5. 룻에게서 사라. - 룻 4: 6. 무르지 못한다.
룻 4: 5. 룻에게서 사라. -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니라. )
기업 무르는 일은 가정의 끊어진 대를 잇는 일도 포함했고, 이것은 신명기 25: 5-6의 수혼(嫂婚) 제도에 근거한 것 같다(NBD).
누구든지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려면, 나오미의 며느리 룻을 아내로 취해 자녀를 출산케 함으로써 엘리멜렉의 집의 대를 이어주어야 했다.
1]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1) 나오미의 손에서
베들레헴 사람들은 엘리멜렉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기업의 땅에 대하여 권리자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그 밭을 사는 날에
그러므로 그 밭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나오미에게 사면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보아스는 여기에서 그 문제를 들춰낸다.
2]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엘리멜렉에게는 본래 두 아들이 있었다. (1: 1-2).
따라서 엘리멜렉 사후(死後), 그 기업의 땅은 당연히 두 아들의 몫으로 상속되었다. 그러나 두 아들마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기업의 땅은 가까운 친족의 순서를 따라 나오미의 두 자부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자부 중 하나(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 기업의 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는 룻뿐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 사실을 고지했고, 아울러 고엘로서의 의무를 완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룻과 계대 결혼하여 룻의 전 남편의 이름으로 그 기업의 땅을 잇게 하여야 할 것까지 알려 주었다.
이전까지는 '기업 무르는 일'에 대한 언급만 있었으나, 이제는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그 형제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계대 결혼'(신 25: 5)에 관한 내용까지 이어진다.
계대 결혼에 관한 율법은 죽은 자의 형제에게 부여된 것이다. 여기서 친족에까지 확대된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혹자는 본 절의 내용을 나오미가 거래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Matthew Henry). 그러나 신명기의 계대 결혼에 관한 조항에서 언급된 '형제'의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욱 폭넓게 적용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따라서 본 절에서 보아스가 했던 말은 나오미가 내세운 조건도 아니고, 보아스가 첨가시킨 말도 아니다. 즉 그것은 율법의 확대 적용에 따른 것이다.
(1)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보아스는 나오미가 아니라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야 한다고 말한다.
재판 첫머리에 모압 여인에 대한 말을 꺼냈다면 성읍 백성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으로 방관했을 것이다.
(2)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핵심은 룻이지 나오미가 아니다.
나오미는 룻을 이곳으로 인도해낸 역할에 불과하다. 그가 모압에서 룻을 찾으므로 인하여 베들레헴이 베들레헴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다.
룻 4: 6. 무르지 못한다. -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의 설명을 듣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였다.
1]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는 단순히 나오미의 기업만 무르게 되면 자기에게 분명히 유익이 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땅을 팔아도 '희년'이 되면 도로 찾을 수 있었다.
* 레 25: 25-28 -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상속자가 없는 친족의 땅을 무르게 되면 그것은 무른 자에게 영원히 속하게 되어 무른 자는 그의 기업을 확장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자는 처음에는 선뜻 '무르리라'(4절)고 대답했다.
그런데 5절에서 보아스의 다음 설명을 듣고 난 그 사람은 재빨리 마음을 바꾸게 된다.
왜냐하면 그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사람은, 룻과 계대결혼하게 되어 아들을 낳게 되면 무른 그 땅이 룻을 통해 출생하는 아들에게 상속되어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을 잇게 되므로 자신에게 유익은 커녕 손해만 돌아오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Keil).
따라서 이 근족이 취한 자세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이용하는 이기적인 태도라 볼 수 있다.
2]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가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겨준 이유로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혹자는 룻이 모압 여인이며, 엘리멜렉 가정의 불행이 모압으로 이주한 탓이며, 말론과 기룐의 죽음 역시 모압 여인과 결혼한 탓으로 돌린다(Cassel).
시리아 역(the Peshitta)은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가 아내를 갖고 있었다. 룻을 자기 아내로 맡게 되면 그들 사이에 다툼이 일고 후에는 재산 상속 문제가 까다롭게 되는 것 때문에 그가 자기의 권리를 포기했다. (Matthew Henry).
이러한 해석은 본문 상에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은 사실 무근한 추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충실한 성경적 진술을 따라 그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재산상의 손해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3] 룻기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사랑하셨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사랑이기도 합니다. 보아스가 룻과 그 가문에게 베푼 애틋한 사랑의 실화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사랑을 잘 설명하는 그림자이다.
보아스는 룻을 위하여 토지를 찾아 주고 끊겼던 가문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헌신적인 사랑의 수고를 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룻에게 베푼 보아스의 사랑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가득 넘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보아스는 아무리 룻과의 약속을 실행하는 일이 급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날 수는 없었다. 성경대로 그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엘리멜렉의 한 형제를 만나서 룻의 기업을 되찾는 책임을 수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분배한 토지는 하나님의 토지이므로 누구든지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고 누가 빚으로 팔았더라도 형제 중에 가장 가까운 자가 빚을 갚고 토지를 찾도록 규정하였다.
* 레 25: 24-25 –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보아스는 성문 위에 있는 공적인 장소인 마을 회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엘리멜렉의 형제를 만났고, 성읍의 장로 10명을 불러내어 증인을 삼아 룻의 기업을 되찾는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다. (1-2). 율법대로 일했다.
룻에 대한 자비한 마음이 누구보다 깊은 보아스였으나 성경대로 가장 가까운 그 형제에게 기업 무르기의 책임 권을 양보하였다. (3-5). 보아스는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대로 일을 진행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목적이 옳으면 방법도 옳아야 한다. 목적이 좋으면 방법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혼전에 미리 동거생활을 해도 별 이상하지 않게 여기거나, 부자가 되는 일이라면 나라 돈이라도 꿀꺽 삼키고, 교회가 부흥되는 일이라면 경품대회라도 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우리의 세태이다.
보아스는 룻의 기업을 회복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았다. 의지할 때 없는 룻과 죽은 자 엘리멜렉의 가문에 임한 「기업의 회복」과 가문의 회복은 보아스가 성경 말씀에 따라 움직이므로 시작되었다.
보아스가 성경대로 룻과 나오미 가문의 구원의 일을 시작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일하시므로 우리들을 구원하셨고 새 생명을 주셨습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시다.
성경대로 베들레헴에 나셨으며(마 2: 6), 성경대로 애굽으로 피신 하셨고(마 2: 15), 성경대로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셨다(마 2: 23). 예수님의 사신 일은 모두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창 3: 16 -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도 예수 그리스도이다.
* 창 12: 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와 왕위도 예수 그리스도이다.
* 삼하 7: 12-13 –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2)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왕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핵심은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리라.
* 사 53: 1-5 –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사셨고, 일하셨고,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인 복음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고전 15: 1-5 –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하십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1500년대 중세 카톨릭 교회는 이상한 풍조에 무너졌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리아에서 찾았고, 성자들의 뼈에서 찾았고, 교황의 권세에서 찾았고, 면죄부라는 해괴망측한 종교 사기권에서 찾았다. 청년 신부 루터는 분연히 일어났다. 1516년 봄, 윗텐베르히 성 교회의 대문에 95개조의 질문을 붙였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 사상이었다.
(3) 성경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시오.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우리은 죄인이었다. 죄인은 심판받는다. 죄인의 심판은 지옥이다. 죄인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으시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모든 죄는 용서받고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성경에서 교훈을 받아 삽시다. 당신은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으면 천국에서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교훈을 받고, 책망도 받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아 온전한 사람이 되는데 힘써야 한다.
* 딤후 3: 16-17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성경은 여러분들의 신령한 젖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경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성경을 사모하십시오.
(5)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십시오. 심판 날에 들림을 받는 슬기로운 성도가 될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이 세상의 왕 마귀는 그냥 두지 않는다. 어려움과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신앙을 지켜야 한다. 죄악에 물들지 말고 믿음을 지켜 세상 쾌락과 풍조에 휩싸이지 않는 정결한 하나님의 자녀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이 세상에 오시면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깨어 준비한 성도들을 안아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그 날을 고대하면서 이 세상에서 어떤 유혹과 시험에도 빠지지 말고 정신차려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
* 마 24: 42-44 –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성경대로 일하신다.
성경을 떠나서는 「영원한 천국」도 「새 생명」도 얻을 수 없다. 성경을 통하여 일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을 생활의 철학으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룻의 기업을 무르는 일에 대하여 그 기업을 무를 자는 처음에 응낙하였다. 그러자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는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이 일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그가 갖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값아 땅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룻을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아들에게 산 땅을 물려주어 죽은 엘리멜렉의 가문을 되살려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기업 무르기는 모두 주는 일이다. 밑지는 장사다.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흔듭니다.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6절)
인간은 자기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손해나는 일은 남이 해주기를 바란다. 남에게 떠넘기기를 좋아한다. 그는 신발을 던져 보아스에게 줌으로 룻에 대한 「기업 무르기」 「빚 갚아 주기」의무를 넘겨 버렸다(7절). 그러나 보아스는 기쁨으로 이 일을 맡았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엘리멜렉의 모든 빚을 떠맡았다. 그리고 그 값을 지불하였다. (9절) 땅을 사서 죽은 자의 기업을 회복하게 하였다. 룻과 결혼하여 죽은 자의 이름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기업과 후손」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복이다. 「천국」과 「새 생명」이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다.
영원한 처소인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기업, 가장 중요한 재산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꺼이 자원하여 우리의 기업(천국과 영생)을 되찾아 주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시므로 죗값을 지불하셨다. 석가모니나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밑지는 장사를 하셨다.
죗값은 사망이다.
죄의 용서를 받으려면 피를 흘려야 한다.
* 레 17: 11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것은 육체의 생명이 죄를 지었으면 그 죄의 댓가는 육체의 생명을 바쳐야 속죄되는데 그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를 흘려야 만이 죄를 속함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던”(히 9: 12)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의 사업, 기업 무르기, 빚 갚는 일을 완성하시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요 19: 30)고 하시고 운명하셨다. 그리고 다시 사셨다.
* 요 6: 54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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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걸고, 움직일 시기는 지금 뿐입니다,
과거는 잊으세요, 결국은 현실이 가장 소중하고, 미래는 꿈이 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으로 좋은 꿈 그리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