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세계에서의 고난들은 가장 크게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의로운 믿음의 몸부림들 속에서의 고난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죄악들로 인한 징계적 차원으로서의 고난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실상 의로운 고난인 경우들은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증거되어 있지는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거의 대부분의 고난들이 징계 또는 심판의 경우들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고난들에 있어 대표적인 사례들 중 하나는 요셉에 있어서의 고난인 경우로 아래 본문 이후의 창세기 39장 9절에서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요셉은 결코 작을 수 없는 불이익과 박해들이 충분이 예상될 수 있었고 게다가 그 자신부터도 연약한 육신을 입은 채 적지 않은 유혹과 시험들이 아닐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짧아 보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것이고, 그로 인해 실제로 그 전에 자신의 이복형들에게 합당한 잘못도 없이 어의가 없고 비통하게도 애굽에 노예로 팔려오게 된 것도 모자라 아무 잘못도 없이 전적인 모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갇히게 된 것인데..
다만 그러한 의로운 고난들에 있어서는 창세기 39장 23절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라고 증거된 말씀 등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통과 시련들 이상으로 하늘의 힘과 은혜들로 순간순간 잘 감당하고 이길 수 있도록 지키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고난들 이상으로 깊은 연단과 준비들이 되게 하시고 그 고난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광과 역전들을 예비하시고 생생하게 누리게 하시며 언젠가는 강렬한 간증이 되게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아래의 본문에서와 같이 우상 숭배 등과 같은 죄악들과 벗하거나 숨기거나 점점 익숙하고 반복하며 갈수록 심각해짐으로 인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또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위기들, 더 나아가 현실적, 상황적으로 절망스러울 수 있고 목숨까지도 위태할 수 있는 실제와 실상들 등과 같은 고난의 때에는..
아래 본문의 야곱과 그 모든 가족들 등과 같이 단순히 그러한 악들을 버리고 전적으로 돌이키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며 전심으로 순복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들, 대적들, 두려움들, 위험들, 위기들 등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생각도 못할 반전과 역사들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사실상 그러한 때에는 오직 그와 같은 자복과 돌이킴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들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진정 따지고 보면 그러한 믿음의 회복만이 유일한 해결의 통로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그 사면 고을들을 두렵게 하시는 등과 같이 실질적, 현실적으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모든 실제와 누림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시면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말씀의 영이신 분이기 때문인 것이고..
게다가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을 그 위치와 역할 상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바꾸어 말해 바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특히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 가운데 가장 기뻐하시면서 말씀 그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세기35: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24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