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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만진 자
민 19:11-22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민 19:11-22 / [부정을 벗겨 내는 잿물] 누구든 시체에 손을 댄 사람은 이레 동안 부정하다. 12) 이 사람은 부정 탄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 암송아지를 태운 잿물로 몸을 깨끗이 해야 부정 탄 것을 벗을 수 있다.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 그 잿물로 몸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부정 탄 것을 벗지 못한다.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져 부정을 타고도 그것을 벗겨 내지 않으면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될 것이다. 이는 그가 부정 탄 몸임에도 불구하고 잿물로 그 부정을 벗겨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14) 어떤 사람이 천막 안에서 죽었을 경우에 그의 천막 안에 함께 있었거나 그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이레 동안 부정하다. 15) 뚜껑을 닫지 않고 열어 놓은 그릇이 그 천막에 있었다면 그 그릇도 부정하다. 16) 들에서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나 목숨이 다하여 죽은 사람이나 또는 사람의 뼈나 무덤에 손을 댄 사람도 이레 동안 부정하다. 17) 이렇게 부정 탄 사람이 있을 경우에 부정 탄 것을 벗겨 내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암송아지를 태워 거두어들인 재를 가져다 그릇에 담고 깨끗한 물을 떠다가 그 그릇에 부어라. 18) 그리고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이 우슬초 가지를 가져와 그 잿물에 적셔 부정탄 사람이 사는 천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건에 뿌려라. 또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 잿물을 뿌려라. 그리고 사람의 뼈를 만져 부정 탄 사람과 갑자기 죽음을 당한 사람과 목숨이 다하여 죽은 사람과 무덤에 손을 대어 부정 탄 사람에게도 우슬초에 그 잿물을 적셔 뿌려라. 19)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이 부정 탄 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 부정 탄 사람에게 잿물을 뿌려라. 부정 탄 사람은 이레째 되는 날 몸을 깨끗이 씻고 입고 있던 옷을 빨아 입으면 저녁때에는 부정 탄 것을 벗을 수 있다. 20) 부정 타고서도 잿물을 몸에 뿌리지 않고 부정 탄 채로 그냥 지내는 것은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짓이다. 그런 사람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될 것이다. 21) 우리 규정은 오고오는 세대가 언제까지나 지켜야 할 규정이다. 부정을 벗기려고 잿물을 뿌린 사람도 입고 있던 옷을 빨아 입어야 한다. 그 잿물을 만진 사람도 그날 저녁때까지는 부정 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22) 부정 탄 사람이 만진 것은 무엇이든 그것도 부정하다. 또한 부정 탄 물건을 만진 사람도 그날 저녁 때까지는 부정하다.'
민수기 5장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진영 밖으로 격리하도록 하지만 그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본문에서 그 이후에 행해야 할 규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하리니(11) 먼저 시체를 만진 사람은 이레 동안 부정합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지는 이유는 죽음이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이 부정한 것은 죄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을 잃는 것이며, 삶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미화시킬 때, 우리는 죽음의 본질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함을 의미하는 칠 일이 채워지면 그 죽음의 부정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정하려니와(12-19) 시체에 접촉해서 부정하게 된 사람은 이레 동안 진영 밖에 있으면서, 세 번째 날과 일곱 번째 날에 이 정결 잿물의 뿌림으로만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부정함이 그대로 있으면 결국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으로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뿐입니다. 또한 거주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에도 그 장막과 안에 있는 사람과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이 모두 부정하고, 그 안에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않은 그릇이 모두 부정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직접적으로 시체와 접촉하지 않아도 부정하게 됩니다. 또한 일반적인 임종이 아니라, 살해된 사람이나 혹은 사람의 뼈 심지어 무덤을 만져도 부정하게 됩니다. 이들이 정결해지는 길은 이 정결의 잿물이 뿌려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속죄의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정결하게 할 것이며 하지 아니하면 끊어질 것이라(20-22) 이 단락 말씀은 12절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한 설명입니다. 스스로 잿물을 자신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고, 정결한 다른 사람이 뿌려줍니다. 또한 정결한 사람은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대신 부정해집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부정해짐을 감내하는 사람만이 그 잿물을 뿌릴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사람도 자기의 옷을 빨아야 합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에 몸이 닿아도,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되게 하는 속죄의 방법은 그 의미 면에서 변함이 없고 예수 십자가의 피뿌림(히 9:14; 벧전 1:2)에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속죄 규례를 통한 구원이라는 은혜를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깨끗하게 하는 영원한 속죄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히 10:12-22).
방부제로도 사용되는 소금은 쉽게 상하는 누룩이나 과일 꿀과는 달리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소금은 동맹, 친목, 약속, 충성의 맹세에 사용되었습니다. 소금은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을 기억나게 하므로 모든 제물에 소금을 뿌려서 그 의미를 각인시켰을 것입니다. 언약 백성이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불변의 언약은 일종의 소금 언약으로써 제물에 첨가한 소금은 언약을 상기시키는 언약의 소금입니다.
< 설 교 >
모든 부정성은 보혈로 씻어야만 정결해진다.
민 19:11-22 / 조 용 호
◈ 주해
1. 백성들이 지은 죄는 성막 안 번제단에서 속죄제물을 드림으로 죄사함을 받는다.
1) 그러나 부정하게 된 것은 성막 밖에서 만들어진 암송아지의 죄로 정결하게 된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든 제사장과 암송아지를 불사른 자와 재를 거둔자가 모두 저녁까지 부정해진다.
3) 부정해진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부정에 노출이 되어 부정해 질 수 있다.
- 실제로 부정성이 많은 사람들을 받아주고 섬기다보면 그 부정성에 오염이 된다.
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긴 후에는 십자가의 보혈로 부정성을 씻고, 주님이 하셨음을 인정하며 죄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
2. 오늘 본문은 정결케 하는 암송아지의 재로 어떻게 부정하게 된 자를 정결하게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다.
1) 부정하게 된 자를 정결하게 하는 방법은 암송아지의 재를 흐르는 샘물과 섞어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든다.
2) 그 다음에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서 부정해진 사람들에게 뿌린다.
3. 오늘 본문에서 부정한 대상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자는 세 부류다.
1)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동안 부정하다.
2) 시체가 있는 집에 들어가는 자와 그 집에 있는 자는 칠일동안 부정하다.
3) 들에서 칼에 맞아 죽은 자나 자연적으로 죽은 자나 죽은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진 자는 칠일동안 부정하다.
4. 부정해진 자들은 셋째 날과 일곱 째 날에 정결하게 하는 물로 정결하게 해야만 한다.
1) 시체가 있는 집의 경우에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 집과 모든 기구에도 뿌린다.
2) 부정하게 되는 것은 죄가 아니다.
3)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부정해 지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다.
5. 부정은 사망과 주로 연관이 된다. 즉 우리가 사망에 거하는 사람과 접촉하면 우리의 잘못이 없어도 부정해 질 수 있다.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안에 부정성이 많거나, 믿는 자라도 사망 안에 거하는 자와 접촉하면 우리의 잘못,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부정해 진다.
2) 우리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저절로 정결해지지 않는다.
3) 상담에서도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표면적인 상처는 잊혀지지만 무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계속 우리의 마음을 괴롭힌다. 세상 학문에서 연구해도 부정성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민 19:12)
6. 중요한 것은 “부정하게 되면 반드시 보혈로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잘못이 아니고, 부정성이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이기에 화만 내고 보혈로 씻지 않는 경우가 많다.
1) 죄는 자백함으로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부당한 사람, 악한 사람을 만나서 부정하게 된 경우에는 주의 보혈로 반드시 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방치한다.
2)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주의 보혈로 씻지 않으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기억에서 잊혀져도 “그 부정성에서 정결하게 되지 않고 여전히 부정하다”는 것이다.
3) 오랜 세월 부정성을 씻지 못했다면 “여전히 부정하게 된 영혼의 상태”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곳에 먼지가 뭉치로 쌓이듯이, 부정성이 겹겹이 쌓여 있게 된다.
4) 그리고 정결해지지 못한 부정성은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표현되어 그들을 부정하게 한다.
7. 만일 사람이 부정하게 되었는데도 정결하게 하는 물로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게 네 가지 악을 행하게 된다.
①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고, ② 공동체에서 끊어진다.
③ 그가 접촉하는 대상을 부정하게 만들고, ④ 그것을 만진 자를 부정하게 만든다.
1) 그러므로 부정한 자를 정결하게 하는 것은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19:20).
8. 부정한 자와의 접촉으로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만남에 문제가 생긴다.
1) 즉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힌다. 실제로 부정성이 많은 사람은 예배가 잘 되지 않고, 말씀을 가난한 마음으로 듣지 못한다. 말씀을 판단하느라고 말씀을 마음에 두지 못한다.
2) 부정을 씻지 않는 자의 두 번째 문제는 공동체에서 끊어진다.
- 실제로 부정성이 많은 사람은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부정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다. 영적으로 말하면 개인성전과 교회성전을 더럽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3) 그래서 하나님은 부정을 씻지 않는 자는 공동체에서 끊어진다고 하신다.
4) 그리고 자신의 의도는 아니지만 부정한 자와 접촉하고 있는 개인성전과 교회성전은 그 사람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다.
9. 십계명을 어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에서 분리되게 하는 것이 “부정성”이다.
1)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은 이 부정성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소홀하다.
2) 직장에서 수시로 부정하게 되며, 학교에서 수시로 부정하게 된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활동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수시로 부정하게 된다.
- 심지어 부정성을 씻지 않은 성도들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도 부정하게 된다.
3) 그 부정성을 씻는 유일한 방법은 “정결하게 하는 물인 보혈”로 씻는 것이다.
4) 나를 부정하게 한 사람과 싸우거나, 그에게 사과를 받는다고 부정성이 다 씻어진다고 하지 않는다. 일부는 해결되지만, 근원적인 부정성의 해결은 십자가의 보혈에 의해서다.
5) 부정성과의 접촉은 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부정성을 씻지 않았다면, 부정성을 보혈로 씻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6)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이 부정성을 보혈로 정결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날마다 우리의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씻어야 한다.
1)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하고, 날마다 우리의 부정성을 씻어야 한다. 부정하게 된 사건을 구체적으로 안다면, 그 사건을 아뢰며 부정성을 씻어야 한다.
2) 부정성을 씻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하신다. 반드시 씻어야만 정결해지고, 반드시 정결하게 되어야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공동체에서 하나가 된다고 하신다.
3) 정결하게 하는 물은 오늘날 예수님의 보혈이다. 그러므로 부정성을 씻는 일은 신약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영원한 율례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11. 정결하게 하는 재를 만든 사람만 저녁까지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정해진 자에게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된다.
1) 누군가의 부정성을 씻어 주는 사람도 부정성에 노출되기 때문에 저녁까지 부정해 진다. - 다만, 섬김으로 인하여 부정해진 사람은 정결하게 하는 물로 씻으라는 규정이 없다.
2) 섬김으로 부정해진 자들도 부정해졌음을 알고, 예수 생명 안에 거해야만 한다.
3) 그리고 자신이 섬김으로 부정해 졌기 때문에 정결해지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 접촉해서는 않된다.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2. 부정해진 사람을 정결하게 해 줌으로 부정하게 된 상태로, 또 다른 사람을 정결하게 해주려고 하면, 자신도 부정하고, 남도 오히려 부정하게 만들게 된다.
1) 그러므로 무조건 부정하게 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부정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내가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어야만 한다.
2) 가정에서던, 교회에서던, 부정성을 돕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주의 보혈로 부정성을 씻은 후에야만 도울 수 있다.
13.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부정성의 전염으로 너무나 끔찍하다.
1)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 직장은 부정한 사람들 투성이다.
2) 그렇게 부정함을 입은 상태로 집에 와서 자녀들을 훈육하고 가족을 도우려다가 도리어 부정하게 만든다.
3) 그 부정성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오면, 마음은 섬기고 평안을 주고 싶지만, 의도와 다르게 다른 성도들을 부정하게 만든다.
4) 이렇게 부정성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사회에서 가정으로 교회로 코로나보다도 더 강한 전염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래서 모든 곳에서 힘들다.
5) 그러므로 모든 장소, 모든 관계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부정성을 씻어야 한다. 부정성을 씻고 정결하게 하는 자로 설 때, 그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6) 부정성을 씻는 이 복음, 보혈의 능력이 강력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이 보혈의 능력을 모든 성도와 공동체는 누려야 한다.
14. 마지막으로 부정성은 정결하게 된 후 반드시 새 옷을 입어야 한다.
1) 옛 사람의 옷(부정성)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을 것이다.
2) 의와 진리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은 그리스도와 접촉(연합)함으로써 나타나는 그의 성품이다.
‘엡 4:32절’에서는 서로 친절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골 3:10-12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입는 것이다.
3) 사람의 옷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듯이 옛사람의 옷도 새사람의 옷도 보여진다.
4) 새사람의 옷을 입은 자,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는 다른 사람을 정결하게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 나의 묵상
1. 회개: 말씀의 검이 드러낸 비참한 존재
쓴뿌리라고 말해왔던 부정성에 대하여 주님이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시는지를 몰랐다. 어려서부터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서 분노가 많다. 관계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청년시절에는 ‘내적치유 집회’를 여러번 참여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부정성은 강력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는 치명적이지만 부정성은 가벼이 여겼다.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핑계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부정성은 죄악보다 더 치명적임을 본다. 내 속의 죄악은 나를 사망으로 이끌지만, 부정성은 다른 사람들까지 파괴한다. 부정성이 죄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보혈로 항상 씻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방치하였다. 부정성을 전염하고 동시에 부정성으로 전염이 많이 되었다. 왜 나이가 들수록 부정성이 많이 드러나는지를 의아해 했다. 예수님의 성품이 더 드러나야 하는데, 고집은 세지고, 마음은 교만하고, 상처는 더 잘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씻지 않은 부정성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부정함이 내 영혼을 오염시켰으니 부정성이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오, 주님, 무지하여 부정성에 찌든 나의 영혼, “그냥 부정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저의 마음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 주십시오. 부정성은 저의 잘못이 아니나, 부정성을 방치한 것은 저의 죄입니다.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환하게 나타내다.
날마다 씻어야 하지만, 오늘의 말씀을 의지하여 주의 보혈로 내 안에 있는 부정성을 씻는다. 부정성으로 오염된 통로가 너무나 많아서 다 열거 할 수도 없다. 영원한 보혈로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부정성을 씻는다. 어려서 받은 부정성, 세상으로부터 받은 부정성, 가정에서 받은 부정성, 교회에서 받은 부정성을 주의 보혈로 씻는다. 부정성을 끼친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부정성을 주의 보혈로 씻기를 원한다. 만물보다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에 부정성까지 섞여서 이 마음을 새롭게 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 주의 보혈로 부정한 마음을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 내 영혼을 맡긴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주의 은혜를 더욱 의지한다. 죄와 부정성으로 찌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했는가? 주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고, 나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영혼들이 주의 은총으로 정결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죄만이 아니라, 부정성도 감당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단절되고 공동체에서 쫓겨나야 할 자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의 긍휼을 구하며 십자가로 나아간다. 다시 십자가의 보혈로 내 영혼을 씻고, 정결하게 하지 아니한 죄도 보혈로 씻는다. 주의 긍휼로 용서를 구하고,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되기를 구한다.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유일한 분, 나의 죄를 사하는 유일한 분, 옛사람을 처리하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간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나를 초대하시고 붙들어 주심이 나의 소망이다. 그분이 나를 영접하여 주심이 은혜다.
◈ 묵상기도
주님, 날마다 씻어야 할 부정성을 씻지 않고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오래입니다. 어릴적 부정성을 씻지도 못하고, 청년기의 부정성이 쌓였고, 또 장년기의 부정성, 교회 사역을 하다 입은 부정성, 섬기다가 입은 부정성..셀수도 없는 부정성으로 부정해 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예수생명이 드러나길 원했지만 오히려 사망이 역사했습니다. 부정성 때문으로 인함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오, 주 성령님 지금까지 쌓인 부정성을 어찌 씻을지 모릅니다. 주의 보혈로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에 포함된 부정성을 씻어 주옵소서. 정결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날마다, 부정하게 될 때마다 부혈을 믿음으로 씻게 하옵소서. 부정성을 끼친 죄를 용서하옵소서. 부정하게 된 것은 저의 죄가 아니지만, 부정성을 끼친 것은 저의 죄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부정성을 끼쳤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더 이상 부정성을 끼치지 않는 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죄사함과 함께 부정성을 씻게 하는 복음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보혈의 능력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성을 모두 담당하여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나의 소망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부정에 노출되더라고 정결하게 하는 직무를 다 하게 도와 주십시오. 한밤의 기도회를 통하여 주님의 생명이 증거되고, 주 사랑안에서 하늘에 속한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함으로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가 많이 연약합니다. 주의 생명과 긍휼로 세워주시고, 부정성이 정결해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일 향존직 선거에 함께하여 주시고, 요르단 이집트 캠프도 성령님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머물러야 할 곳
민 19:11-22 / 윤성식 목사
1. 부정의 문제
본문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부정해지는 문제 중, 시체와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부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볼 때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그들 주변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만 만 오천 명이었다(16:49). 이미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출애굽 1세대가 다 광야에서 죽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얼른 계산해 봐도 60만 명이 40년 동안에 죽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상황이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사람들이 시체로 부정해지는 상황은 먼저 시체에 접촉할 때 부정해진다(11-13절). 그러나 장막 안에 있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시체를 만지지 않고 함께 있기만 했어도 7일간 부정하게 된다(14절). 장막 안에 뚜껑을 덮지 않은 그릇들도 부정해진다(15절). 만일 실내가 아닌 들이라면 시체나 유골 혹은 무덤을 만질 때만 7일간 부정해진다(16절).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 이런 조건에서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자신들의 의식적 정결함을 항상 유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늘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 죽음을 목격하고 겪으며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본문이 다루는 문제는 일상에서 시체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부정함을 씻는 문제지만, 이것은 치명적으로 중요하고 위험한 문제라고 가르쳐준다. 만일 이런 부정함을 입고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는 죽게 될 것이라고 13절과 20절에 경고한다.
2. 죽음이 왜 부정하게 하는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는 것이나, 한 장막 안에 시체와 함께 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본문에서 다루는 부정함의 문제는 죽음과 접촉할 때 혹은 죽음과 관련해서 일어난다. 이런 경우의 부정함은 사실 문둥병이나 유출병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으며 여전히 모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과 온 세상의 생명 있는 피조물들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이십니다.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께 죽음은 정복할 마지막 원수이다. 문둥병이나 유출병도 부정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질병들이고 이것들도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데 본문은 죽음에 접촉하는 것을 최고로 부정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3. 부정함의 전염성
하나님께서 의식상 부정의 문제를 크게 다루시는 이유는 부정함이 지닌 전염성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부정이 씻김을 받아 정결함을 입지 못한 채, 공동체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가 접촉하게 되는 모든 것에 부정하다. 부정한 것이 전염되는 힘은 거룩함보다 훨씬 더 강하다. 부정함이 가지는 점염성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부정함의 문제를 크게 다루시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주시는 치료책
하나님의 치료책은 1-10절이다. 그리고 이 재를 어떻게 정결의식에 사용하게 되는지를 17절 이하에서 말씀한다. 재는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 정결한 자가 우슬초로 물을 찍어 장막과 모든 기구와 사람에게 뿌리는데,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두 차례 부정한 사람에게 뿌려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행하게 된다. 이때, 이 물을 뿌리는 사람은 이 일을 함으로써 저녁까지 부정해진다(19, 21절).
제사 의식이 있는데 정결의식이 더해져야 할 이유는 고비용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의식상 부정의 경우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가지고, 와야 한다면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했던 백성들은 그 비용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정결하게 하는 물로 정결의식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회복된 관계로 나아가는 은혜로 얻을 수 있었다. 정결의식은 날마다 부정에 더럽혀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의 방편이다.
5. 적용
우리는 더 이상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인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재를 만들어서 흐르는 물에 풀어 뿌려야 할 필요가 없다. 일상에서 더럽혀지는 일, 범죄하는 일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암송아지의 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은혜의 기회를 주셨다. 사도 요한의 말씀대로 날마다 미쁘신 주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 회개다. 회개는 하나님과 비뚤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의 수단이다. 우리가 부정함을 입을 때마다 행하고 하나님과의 사귐의 은혜를 회복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정결의식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부정한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것이다. 부정한 자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자리이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20절에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무서운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방편을 주셨다. 정결해지는 길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의 피로 제공하신 그 방법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거절하면서 부정함 가운데 살아간다면 멸망할 것이다. 참된 하나님 자녀의 특성은 회개이다.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감으로써 자신이 그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했다. 아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그리고 자비하신 아버지께서는 돌아올 길을 열어놓고 기다리신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활짝 열린 그 은혜의 길을 향하여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복된 교제의 자리에서 영광을 누리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