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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9일 오늘의 역사
2024년 한국국적 화물선 일본 근해서 침몰 5명 사망 6명 구조
2023년 국내 첫 민간 우주발사체 한빛-TLV 브라질 공군산라 우주센터에서 발사
국내 우주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독자 개발한 엔진 검증용 시험 발사체 '한빛-TLV'가 19일 오후 2시 52분(한국시간 20일 오전 2시 52분) 브라질 공군 산하 알칸타라 우주센터(CLA)에서 발사됐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처럼 한국에서도 스스로 개발한 발사체로 고객의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로 실어나르는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노스페이스는 "엔진 비행 성능 검증과 탑재체 임무 성공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비행 데이터를 종합 분석 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2년 초봄 강원 산간지방 80㎝가 넘는 폭설로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차량 17대가 눈길 추돌사고 발생
2019 30년 장기집권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79세) 카자흐스탄 대통령 스스로 물러남
2018 미국에서 자율주행차에 의한 첫 보행자 사망사고 일어남
2016 터키 이스탄불서 자살폭탄테러 사망 5명
2014 동북아역사재단이 일제 식민사관 답습한다고 주장하며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발족
2013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1세(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
76세) 취임, 1,282년 만에 처음으로 비 유럽권 교황, 미주 대륙 사상 첫 교황
2010년 현암사 조근태 회장 별세
현암사를 창업한 고(故) 조상원 회장(2001년 타계)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42년 경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현암사에 입사해 1972년부터 대표로 일했다.
1959년 처음 발간된 '법전(法典)'을 해마다 개정증보판을 내며 대표 간행물로 이어갔고, 1980~1990년대 황석영의 '장길산', 최순우의 '한국미술 5000년', 요스타인 가더의 '소피의 세계' 등 인기도서를 출간했다.
1994~1998년 한국출판문화협회 이사, 1999~2000년 전자책업체 북토피아 대표를 지냈다. 2004년 대통령표창, 2005년 출판인쇄상을 받았다.
2009년 대법원, 명의자만 예금주 판결
2009년 3월 19일 대법원은 금융실명제에서 예금 명의자만이 예금주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금융실명제를 강화하고 예금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금융실명제 이전 대법원 판례는 거래 현실을 중시해 예금 출연자를 예금주로 보는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자신의 자금 노출을 꺼린 예금 출연자는 차명·가명으로 통장을 개설하고서도 예금주로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비자금 조성, 조세 회피 등의 탈법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이후 대법원은 예금 명의자를 예금주로 봐야 하지만 예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한을 출연자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출연자를 예금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실명 거래가 원칙이지만 예외 상황에 대해서도 인정한 것이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예금 출연자를 예금주로 인정하는 판결이 늘어나면서 차명계좌 존재를 인정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금융실명제의 입법 취지를 존중해 예금 출연자가 예금주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를 사실상 봉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예금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예금 명의자를 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 며 “예금 출연자를 계약 당사자로 보려면 출연자에게 예금 반환 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 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부인 또는 자식 명의로 돈을 분산 입금한 경우 예금 명의자가 예금주라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실제 돈의 소유주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졌다
1999년 서울시, 버스 토큰 판매 금지
1997년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화가 데 쿠닝 사망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26년 미국에 밀입국했다. 주택에 페인트 칠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며 그림을 그리던 중, 화가 아실 고르키와 알게 되어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1930, 1940년대에는 구상화와 추상화를 동시에 그렸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는 거친 터치로 이미지가 거의 용해된 독자적인 작풍을 개척했다. 1950년대에는 여자의 모습을 주로 그렸고, 그 형태는 더욱 평면적이며 일그러진 경향을 띠게 되었다. 두껍게 물감을 짓이겨 채색하는 기법이 액션 페인팅에 다시 사용되고, 분홍, 노랑에 가까운 황토색, 파랑색 등 데 쿠닝 특유의 색감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특히 연작 ‘여인 Ⅰ~Ⅵ’(1952-53)은 그 격렬한 이미지와 충동적이고 정력적인 기법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6년 태아 성감별 의사 자격정지
태아 성감별 및 ‘아들 낳는 시술’ 등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를 벌여온 의료인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단속과 처벌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이른바 아들낳기 시술 성공률이 94라고 선전하면서 환자들을 치료해온 경기도 김환규산부인과 원장 김환규씨에 대해 1개월간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복지부는 김씨가 아직 확립되거나 공인되지도 않은 아들낳기 비법을 공언하는 등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를 시행한 것으로 확인돼 의료법 위반으로 1개월간 면허정지 처벌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92년부터 배란촉진제 등을 사용,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며 환자 1천8백여명으로부터 진료비 8억7천여만을 받았으나 비법의 효과가 없었다는 환자들의 고소로 지난해 10월 수원지검에 사기혐의로 구속된 뒤 금년 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복지부는 또 서울 강동구 암사동 김산부인과와 금천구 시흥본동 권조산원의 태아 성감별 행위를 적발했으며 이들에게도 현행 의료법상 허용된 범위(면허정지 7-12개월) 내에서 최대의 처벌을 내릴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92년 태아 성감별 등 비윤리적 불법의료행위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여 적발된 10명에게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 일이 있으며 최근 들어 비윤리적인 불법행위가 다시 성행,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6년 국보급 통일신라시대 금동 사리함 출토
1996년 KEDO, 한국전력을 대북 경수로 주계약자로 지정
1995년 미국 우주왕복선 엔데버호가 16일 15시간의 최장 체류 기록 세우고 귀환
1993년 이인모 북한 송환 결정 미전향 장기수 판문점 통해 북측에 인계.
1993년 3월 19일 전향을 거부하며 장기수로 복역해 온 이인모 노인이 남한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에 의해 북으로 송환되었다.
판문점 중립국 감독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인 등 북측의 가족들과 42년만에 상봉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북측에 인계돼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부인 김순임씨(66)와 딸 현옥씨(44) 등과 재회, 42년 7개월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송환을 하루 앞둔 이씨는 18일 입원중인 부산대병원 내과 병동 932호실에서 치료와 휴식을 취하며 남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날 병원측의 요구에 따라 일반인의 면회를 사절한 이씨는 지리산 빨치산 출신 정순덕씨 등 10여명의 장기수 출신들만을 만난 뒤 밤 9시 10분쯤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이씨의 마지막밤에는 그동안 간병을 해온 김상원씨(51)의 자녀 2명과 장선화씨(25.여), 부경총련 소속 대학생 2명이 함께 했다.
면회를 마친 장기수들과 20여명의 학생-재야인사들은 19일 새벽 이씨의 전송을 위해 병실 부근 세미나실과 복도에서 밤을 샜다.
이에 앞서 김씨 등 간병인들은 이날 오전부터 통일원-안기부 등 관계자의 입회하에 가방에 재야단체 회원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챙겨 넣었다.
민가협 부경총련 등 재야단채 회원과 대학생 1백50여명은 이날 밤 10시쯤부터 부산대병원 안 의과대 학생휴게실에서 철야 통일기원 집회를 갖고 이씨의 출발에 맞춰 환송대회를 열 준비 를 했다.
이씨는 19일 오전 6시 30분쯤 그동안 치료를 받아오던 부산대병원을 출발, 헬기를 타고 이동해 10시 20분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 도착했다.
1993년 문민정부 신 경제5개년계획-공무원 월급 현수준 동결
1993년 북한이 개풍군 해선리에서 발굴한 고려 태조 왕건의 능에 그려진 벽화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화
1993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판문점 통해 북한으로 송환
1992년 조선왕조의 첫 법전인 경국대전의 최고본인 辛卯卵大典이 삼성출판사 박물관 장서 중에서 발견.
1992년 재무부, 한국노총이 추진해 온 노동은행 인가
1992년 이승만 전대통령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 사망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92)가 1992년 3월 19일 0시 15분 자택인 이화장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프란체스카 여사는 34살 때인 1934년 자신보다 25살이나 많은 독립운동가인 이승만 박사와 결혼한 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의 부인이 됐다.
여사가 이 박사를 만난 것은 스위스 제네바의 한 식당. 우연히 합석을 하게된 인연으로 사랑을 나누게 됐고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이듬해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48년 이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던 여사는 채 2년이 안 돼 터진 6 25전쟁으로 큰 시련을 겪는다. 이 대통령이 하야한 뒤 한달 만에 함께 망명길에 오른 프란체스카 여사는 망명지 하와이에서 1965년 7월18일 향수병에 시달리던 이 박사를 먼저 보냈다.
이 대통령 서거 후 5년여를 모국인 오스트리아에서 보내다가 1970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권유 등으로 귀국, 양자 이인수씨(61) 가족과 함께 이화장에서 성경읽기와 방문객 접견 등으로 여생을 보내왔다. 까다로운 벽안의 서양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생애는 영과 욕이 점철된 것이었다.
1992년 영국 앤드루왕자와 퍼커슨왕자비 이혼 공식발표
1991년 이해방 박사, 인슐린 피부투여법 세계최초 개발
1991년 3월 19일 이해방 박사가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파스처럼 피부에 붙여 인체(혈관)에 투여하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한국화학연구소 고분자 제3연구실의 이해방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병철 박사 등과 공동개발한 인슐린 피부전달시스템은 인슐린을 직접 피부를 통해 인체에 투여하는 획기적인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토끼 6백마리와 돼지 20마리의 피부에 부착하여 인슐린에 의한 혈당강하효과가 탁월함을 증명했다. 당뇨병환자는 지금까지는 주사로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주사에 의한 투여는 환자가 원하는 시기에 임의대로 인슐린을 투여하기 어렵고 반복주사할 경우 피부가 손상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인슐린은 또 단백질로 되어 있어서 먹을 경우 그냥 소화되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인슐린을 손쉽게 인체에 투여하는 방법을 연구해왔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박사가 개발한 인슐린 피부전달시스템은 인슐린을 끈끈이처럼 만든 파스, 0.1ma의 전류를 흘려주는 전원, 전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박사팀은 이 시스템으로 토끼를 치료해본 결과 최고 6일까지 성능이 나타났으며 주사제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효능을 발휘했다.
1991년 정부, 해외 이주 허가절차 등을 완화,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前보안사)가 민간인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사찰
1989년 이열우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89년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 엘살바도르 대통령 당선
1989년 전민련 전대협 등 재야 11개 단체 5000여 명, 한양대에서 '노정권퇴진투쟁대회' 개최
1987년 일본 AIDS 예방 치료약 VFC-A개발
1985년 서울신정.목동철거주민 시위-강서 부구청장 16시간 연금
1982년 서울올림픽 범시민추진위 구성
1981년 한국청소년연맹 발족
1981년 삼국사기 최고본(最古) 발견
1976년 해운항만청 발족
1975년 국회, 외국인 상대의 반국가언동을 규제한 형법개정안 통관
1975년 철원 동북방 북한의 제2땅굴 확증 발표
중부전선 철원동북방 비무장지대 중앙군사분계선 남쪽의 유엔군측 지역내에 북괴군이 땅굴을 파들어오고 있다는 확증을 잡았다고 국방부 대변인과 유엔사령부가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철원동북방 13km지점 중앙분계선 남쪽에서 이미 수직 시추작업으로 인지한 북괴땅굴을 확인하기 위해 약 800m길이의 차단터널 굴착작업을 진행했던 바 북괴터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는 제3백61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인지한 이 땅굴을 특수 카메라로 촬영, 증거로서 제시하고 북괴가 불법적으로 땅굴을 구축했다고 비난했었다.
육군공병대가 굴착으로 발견, 도달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정확한 크기는 폭이 상부 2.1m, 하부 2.2m, 높이 2m였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1973년 11월 이 지역의 북괴 땅굴작전을 낌새 챈 전방부대에서는 각종 시설로 땅굴굴착폭음을 포착, 이 지하작업이 진행중인 지점을 철원동북방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의 낮은 구릉지대로 추정하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하 100m남짓의 굴착작업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1974년 창원에서 성산패총 발굴
1973년 박정희 대통령, 헌법위원회 구성하고 위원장에 김현철씨 임명
1971년 고리원자력발전소 기공
경남 양산군 장안면 고리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원전(原電) 1호기가 1971년 3월 19일 경남 동래군 장안면(당시 주소) 고리현장에서 기공됐다. 공사 7년 만인 1978년 4월 29일 처음 상업운전을 시작해 7월 20일부터 설비용량 58만7000kw로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1호기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한 나라로 기록됐다.
1호기에 이어 2호기(1983.7.25) 3호기(1985.9.30) 4호기(1986.4.29) 등 고리에서만 4기가 준공돼 현재 가동중이고, 전국적으로는 전남 영광에 6기, 경북 울진에 4기, 경북 월성에 4기 등 모두 18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울진에서는 2004년과 2005년 준공을 목표로 2기가 건설중이다. 인류가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은 1942년 12월2일 페르미가 미국 시카고대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실험에 성공하면서였다.
1970년 동ㆍ서독 첫 정상회담 개최
제2차대전 후 미ㆍ소 양국에 분할점령되면서 적대시해 온 동서독이 1970년 3월 19일 동독국경의 소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9년 동서독 국가탄생 이래 첫 정상회담으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독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1966년 빌리 브란트가 대연립 부수상 겸 외상이 된 이래 전개해 온 동유럽 제국과의 관계개선을 목적으로한 ‘동방정책’ 의 일환이었다.
1969년 10월 브란트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 외국이 아니다. 두 국가는 단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며 소위 ‘2국가론’ 을 제기했다. 이는 기존의 외교원칙인 ‘할슈타인원칙(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단절도 불사한다)’ 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야당은 반통일노선, 분단 고착화, 매국행위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브란트 총리는 동서독 정상회담, 소련과 무력행사 포기 협정 체결,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대 동독 정책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조약으로 규율되는 협력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차원의 협상을 동독에 제의했다. 이어 브란트 총리는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에게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회담을 제의했고, 동독은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날 오전 7시 45분 브란트 일행을 태우고 서독의 본을 출발한 열차는 11시간 45분 만에 국경에 위치한 게어스퉁겐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동독 기관차로 교체한 뒤 에르푸르트를 향했다. 브란트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회담은 부드러운 분위기속에서 약 6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나 양측의 견해차이는 좁힐 수 없었다. 결국 구체적인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2차 회담을 5월 21일 서독에서 갖는 것으로 결론짓고 회담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이날 정상회담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70여 차례의 실무접촉을 거쳐 1972년 12월 21일 서로를 ‘사실상의 국가’ 로 인정한다는 기본조약을 체결한 양측은 1973년 9월 유엔 동시가입과 1974년 3월 상주대표부 개설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첫 회담 이후 20년 만에 통일을 이루었다.
1965년 미국 흑인 민권행진
1964년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서 무력 충돌
1962년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 최초의 원자로 점화시험에 성공
1962년 최고회의, 1963년 민정이양 발표
1959년 반공 예술인단(단장 임화수) 결성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유럽연합의 전신)의 유럽의회 출범
1957년 필리핀 가르시아 부통령, 대통령직 계승
1955년 북한 아오지탄광 광부 의거
1953년 서독의회, 유럽군조약 가결
1952년 광무 신문지법 폐기
1951년 훈련시설 부족으로 국민방위군 20만 소집해제
1950년 선거법 국회통과
1950년 원폭을 반대하는 `스톡홀름 호소문`에 전세계 5억명 서명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평화옹호대회 상임위 최종일인 1950년 3월 19일, 전 세계를 향해 `핵무기사용 절대금지`에 서명할 것을 호소하는 `스톡홀름 호소문`이 발표됐다. 호소문은 핵무기에 대해 `무조건 금지` `국제관리기관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호소문은 냉전상태로 인해 발발할 지도 모르는 제3차 세계대전을 우려하는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미국, 소련, 중국, 동독,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세계각국으로부터 총5억여명이 서명했다.
1948년 김구 김규식 방북, 남북대표자 연석회의(제1차) 참석.
1944년 학도동원 비상조치 발표
1920년 항일 무장군,은성서 일본 경찰과 교전
1913년 그리스 조지1세 황제 피살
1902년 우리 나라 처음으로 전화 개통(서울-인천)
1813년 탐험가 리빙스턴 출생
1716년 강희자전 완성(청 강희55년)
청나라 2대 황제 강희제(康熙帝)의 명에 따라 30여명의 학자가 1710년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한자자전 강희자전(康熙字典)이 1716년(강희 55년) 3월 19일 완성됐다. 강희제는 1661년부터 1722년까지 무려 61년간 중국을 다스린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강희제는 타이완과 티베트를 정복하고 남하하는 제정 러시아를 물리쳐 현대 중국의 국경선을 확정한 정복군주였으며 강희자전을 비롯해 역사에 남을 여러 책들을 펴낸 문화군주이기도 했다.
명나라 때 편찬된 ‘자휘(字彙)’와 ‘정자통(正字通)’을 참고한 강희자전은 214개의 부수를 획순으로 배열하고, 각 부수에 배속된 문자 역시 획순으로 배열해 오늘날 한자자전의 원조 격이 됐다.
표제한자 4만 7,035자와 고대의 이체자(異體字) 1,995자를 수록, 20세기 이전까지는 최대규모를 자랑했다.
글자풀이와 적절한 고전용례를 덧붙였고 총 42권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인용문에 착오가 많아 1827년 왕인지가 ‘자전고증(字典考證)’을 편찬, 2.588개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1644년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 자살, 명나라 멸망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이 북경의 외성을 점령하자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1644년 3월 19일 새벽 자살했다. 이로써 명나라는 16제 277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비극의 일생을 마친 숭정제의 체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자성이 이끄는 수십만의 반란군은 북경의 내성으로 입성했다.
숭정제는 자살 하루전인 18일 자신의 세 아들을 평민차림으로 변장시켜 각각 그들의 외가로 피난시킨 후 황후와 후비들에게는 자결하도록 명했다. 황후 주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후비 가운데서도 자결하는 이가 많았다. 각각 15세, 6세인 공주들은 황제가 직접 칼로 찔렀으나 첫째인 장평공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훗날 이자성군을 진압한 청나라 태종의 도움으로 평범한 일생을 누릴수 있었다. 이자성은 숭정제와 주황후를 황제-황후의 예로써 장사지내 주었다.
1324년 개경, 대화재 발생
721년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 최초로 개기월식을 사서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