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세숫대야
우리 아버지, 결벽증의 원조이다. 모든 자식에게 그 힘든 결벽증을 물려주셨고 나는 유난히 그것을 많이 물려받았다. 결벽증 아버지도 질려 하실 만큼.
우리 집 욕실에는 세숫대야가 유난히 많다. 그것도 그냥 대야가 아니고 색깔이 다른 플라스틱 대야들이다. 혹여 손님들이 오셔서 욕실을 다녀올라치면 다들 묻곤 하신다.
"아니 이 집에는 식구 수보다 대야 수가 더 많네요?"
맞다. 식구 수보다 대야 수가 늘 더 많았다.
일단 아버지 전용 대야가 대여섯 개는 된다. 아버지는 용도에 따라 대야의 색깔이 달랐다. 세수는 빨간 대야에 발은 파란 대야에 뒷물은 하얀 대야에 양말을 세탁하는 대야는 초록색 대야에.
이렇게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대야가 달랐다. 아버지의 주장은 이러셨다.
"어떻게 얼굴을 씻는 대야에 발을 씻을 수가 있느냐."
대야만이 아니라 아버지 전용 수건은 요일마다 색깔이 달랐으며 가끔 어머니가 어제 노란 수건을 오늘 아침에 새로 꺼낸 것이라 우기는 바람에 수건에 아예 요일별로 자수를 놓아 표시하셨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어제 월요일 수건이 걸려 있으면 난리가 난다.
욕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 있어도 기어이 그 머리카락 주인을 찾아내셨고 그 주인은 일주일간 욕실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우리 집 여자들, 다른 집 여자들과 비교하면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절대 두 가지는 하지 못했다. 머리 기르는 것과 손톱 기르는 것. 머리는 엄마나 여동생이나 며느리나 다 같이 짧은 단말 생머리였다. 손톱을 기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손톱에 칠을 하지도 못했다.
여동생은 그것이 죽기보다 싫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동창과 결혼을 했다. 그런 여동생도 친정집에 올 때는 손톱 자르고 색도 지우고 왔다.
"음식을 만지는 여자가 손톱을 기르다니." 이것이 아버지의 주장이셨다.
가끔, 시장을 지나가다 그릇 가게를 지나칠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하늘에서도 그렇게 많은 대야를 사용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엄마와는 또 만나셨는지. 오늘 빨간색 대야를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첫댓글 결벽증이 심하셨던 아버님이시군요
그 것이 건강한 삶인 거 같아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양돈장의 돼지들도 그렇습니다
위생을 너무 철저히 해서 키우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적당히 병원균에 노출되고 단련되며
생산성이 더 올라간다고 합니다
흔히 항병력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집사람과 어긋납니다
나는 가끔씩 청소를 하자는 주의고
집사람은 자주 반질반질하게 닦아야 좋다고
사소하지만 가끔 언쟁을 합니다
저는 전공이 그래서 그런지
적당히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중간쯤 가자는 주의입니다
제일 어려운것이 중간인듯합니다.
이도저도. ㅋ
와우
대단하신 결벽증 이십니더
다 부질없는 일이죠
일본에서 공전을 나오신
울 아부지는
손을 자주 닦으시는거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변 보시고도 손씻으시고 식사전에도 씻어셔서
저도 손은 디기 자주 씻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 나면서 감기 한번
안걸렸습니다
저 역시. 손을 자주 씻고
고무장갑이 익숙지 않아 맨 손으로 살림 하는 편이라
손이 곱지 못합니다.
살림이라야 그릇 두 개가 전부지만.
손이 곱고 흰 사람을 보면 부럽더라고요
부친께서 대단한 결벽증이 있으셨던 분이셨네요.
옛날에는 어려운 사회분위기와 가정분위기가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고집하실 여유가 없으셨을텐데 그렇게 느껴집니다. ㅎ가끔은 비 위생적인
생활 환경이 싫게 느껴지지만 너무 깔끔한 환경도 사람을 주늑들게 하더군요. ㅎㅎ옛 생각을
하게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가락님 감사합니다.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우고 자라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도 다 우리 집처럼 하고 사는 줄 알았지요...
처음 친구 집에 놀라가서 놀란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강요가 사랑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 때는....
다빈치님~^^
농담 좀.. 하겠습니다..ㅎㅎ
제 생각에는 하늘나라에서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은 못만나셨을꺼 같고요
세수대야 장수들이 아버님을 서로 뵐려고(세수대야 팔을려고)
했을 거로 생각됩니다
암튼 대단하신 아버님이셨네요..ㅎㄷㄷㄷ
네. 소식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