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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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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야기 주머니 스크랩 인사동(11.10)
설악산 추천 0 조회 38 07.11.20 08:3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인사동(11.10)

 

북촌한옥마을에서 길을 건너가니 인사동이다.

인사동으로 해서 집으로 갈까? 아니면 조금 더 가서 조계사로 해서 갈까 하다가 인사동으로 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어두워져 가는데도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내외국인이 모두 우리문화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 인사동에 온 것일 것이다.

현재 우리 고유의 생활용품을 가장 많이 파는 곳이 인사동일 것이다.

붓, 먹, 벼루, 자기류, 골동품류, 전래되어 온 생활용품 거기다 젊은이들이 길에서 간식을 즐기기도 한다.

오늘은 주로 가판의 사진을 주로 찍을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기회 포착이 쉽지 않다.

기다렸다 찍는 것을 반복했다.

어떤 분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더러 있다.

정신없이 내려와서 초상화 찍는 곳을 지났다.

걸어서 종각역까지 가는데 길거리에 가판대가 많다.

왜 그런지 사주, 관상보는 가판대가 여러개 눈에 보인다.

포장마차처럼 치고 보는데 옆에 사주, 관상, 궁합 등등 본다고 쓰여 있다.

종로에 보석상 가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혼수품같은데 패물류를 고르고 있었다.

종각역에 도착하니 인천가는 전철이 2개가 있다 잠시후 수원, 병점가는 전철이 와서 전철을 타고 안양역까지 와서 집으로 돌아 왔다.

가게에서 상추를 사오라는 마눌님의 엄명이 떨어져서 아파트앞 가게에서 상추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래 내용은 인사동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예전의 인사동길은 종로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 한다.

1987년부터 시작된 인사전통문화축제는 충분한 볼거리와 흥미 거리를 제공하여 전통문화 명소로 인사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인사 전통문화축제는 인사동 지역의 번영을 기원하는 장승제로 시작되며 행사중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 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

인사동 문화장터

민족 문화라는 것은 그 민족의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에 활용 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 발전되어 가는 것이다. 과거의 것을 무조건 추종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문화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생활에 필요하지 않는 죽어있는 옛 문화도 진정한 의미의 문화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민족 문화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변화 발전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살아있는 민족 문화는 대중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 발전되어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사동은 살아 있는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알려져있다. 특히 일요일마 다 형성되는 전통문화 장터는 그 현장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갖가지 전통문화 행사와 함께 전통문화 예술품들을 사고파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문화 장터에서 거래되는 품목들은 다양하다. 각종 골동품, 그림, 소장품, 수공예품, 먹거리, 그리고 곱게 채색된 부채, 물레, 삼태기, 절구, 짚신, 고무신 등 각종 우리 전래 생활용품에서부터 도자기, 보석류, 장신구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옛 생활 모습을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문화의 뿌리를 알게하는 현장학습의 장소로서의 역할도 허고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직접 만들어보게 하거나 잔칫날 떡을 치는 흥겨움을 직접 느끼게 해주는것,옛날 사람들이 사용한 등잔불과 짚신, 곰방대, 갓 등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생활도구들을 직접 대하고 만져봄으로써 한국인다운

한국인으로 만드는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인사동 문화 장터는 우리민족의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시민들의자발적인 참여 속에 형성되고 발전하고 있는 현장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특정한 구역을 형성하기도 어렵지만 하루 10만명에 달하는 동원 인력을 끌어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살아있는 인사동 문화 거리는 우리시대가 만든 우리의 소중한 문화이다.


인사동 화랑가/오세권 미술평론가

오늘날 국가의 역량은 대부분 경제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문화정책은 복지정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문화정책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책을 세운 만큼 피부로 와 닿는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단지 더 나은 개선 이라는 명분으로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듯하다.

미술문화계 내에서도 정부의 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제도 개선을 위하여 많은 논의를 거쳐 일부는 개선하기도 하였으나 아직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하는 상태이다. 아직까지 일반 시민들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화랑의 기능을 서로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동안 우리 시민들에게 미술문화가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였고 시민들도 미술문화를 많이 향유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박물관. 미술관. 화랑

박물관, 미술관, 화랑들은 나름의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나 역할에서 차이점이 있다 박물관은 자연물이나 생산품 그리고 역사 자료나 예술품 및 학술적 자료들을 널리 수집하고 진열하여 보이는 곳이고, 미술관은 미술품만을 수집 진열하는 곳이다. 화랑은 '갤러리'를 뜻하는 것으로 미술품의 전시와 매매의 상업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미술관과 화랑의 차이점을 보면 미술관을 운영하려면 갖추어야할 작품수, 미술관의 크기와 인력 등이 법률로써 정해져 있으며 상업적 운영보다 미술품을 수집하여 자료화하고 시민들에게 관람하게 하는 공공성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화랑운영에는 크기나 인력의 제한이 없으며 일반사업자 등록으로서 운영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현재 인사동 내에는 미술관은 없으며 모두가 화랑인셈이다. 가끔 화랑에 xx미술관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xx화랑' 또는 'xx갤러리'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화랑은 미술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전시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며 미술품의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작가가 만든 작품을 관리하거나 작품을 매매하기도 하며 작가나 작품을 상업적으로 광고하는등 실제적인 상업행위를 한다. 곧 작가는 미술품을 생산하고 화랑은 생산된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거나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랑은 미술문화의 형성에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미술문화가 형성되는 진원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사동 화랑의 위상과 역사

서울의 화랑가를 보면 대체로 크게 네 개의 지역 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북으로는 '인사동'과 '사간동'지역, 강남에는 '청담동'과 '신사동' 지역이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개의 지역군을보면 나름의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 인사동 지역은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많은 화랑이 있으며, 항상 작가와 관람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미술품들이 매매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는 판매되는 미술품에 대한 공식적 통계가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지역역시 판매되는 미술품에대한 공식적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지역들이 모두 판매를 위주로 하는 상업성이 전제된다면 오히려 인사동은 젊은 작가들이 전시를 많이 가지고 있어 상업성도 전제되어 있지만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보여준다는 의미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다른 지역들이 기획, 초대 전시가 대부분이고 기간도 신축성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지만 유독 인사동 만큼은 일주일 단위로 행하여지고 있으며, 대관화랑이 타지역보다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인사동에는 미술품 관련 상점이나 단체뿐 아니라 문학 단체와 옛 풍물 상점 그리고 골목 곳 곳에 자리잡은 카페나 커피숍과 식당들이있어 다른 지역 화랑군에 비하여 일반 시민들이나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지역이다. 그러기에 인사동 거리는 항상 붐비는 곳이다. 이와같이 화랑들의 오랜 전통이 있는 점 작품세계를 보여준다는 의미의 대관 화랑이 많은점, 일반 시민과 문화인들이 즐겨찾는 장소라는 점들은 타 지역의 화랑들에 비하여 특별한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동의 화랑군들은 대체로 1970년대 이후 현대적 상업화랑의 성격을 지니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대화랑이 1970년대에 관훈동 7번지에 문을 열고 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없지만 74년 문헌화랑, 76년 경미화랑이 개관하였다. 76년 동산방화랑이 문을 열었으며 77년에는 선화랑, 83년에는 가나화랑,등 능력있는 화랑이 문을 열면서 화랑가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외 지금 강남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화랑, 서림화랑, 예화랑, 표화랑 등이 모두 인사동에서 사간동의 국제화랑도 초기에는 인사동에서 문을 열고 화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기에 인사동은 한국화랑들의 근원적인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기 무렵 인사동 화랑가는 호황을 누리고 80년대말기에서90년 초반기에 이름있는 화랑들이 강남 지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화랑가를 형성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인사동 화랑은 개업과 폐업의 순환 속에서 오늘까지 그 면모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인사동 보존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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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20 09:48

    첫댓글 인사동 약도가 멋지게 표현되었네요. 즐감 합니다.

  • 작성자 07.11.20 10:05

    그거 인사동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찾기 쉽게 만들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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