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걸음은 정체가 없다.
백두대간이나 100대명산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가까운 주변의 뒷산을 걷기도 한다.
산악회도 따라가고 가끔은 중국이나 일본의 산도 가고 싶다.
서울의 신선생님을 한번 만나고나서 산을 걸어도 공부하는 자세로 뭔가에 기여하는 것이
의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죽기전에 북쪽까지의 벡두대간을 걷고, 내 사는 곳의 호남정맥을 걷고
그리고 고흥지맥과 봉두단맥을 걸으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제대로 보일까?
호남정맥은 띄엄띄엄 많이 걸었으니 안 가본 구간만 혼자라도 걸어볼까?
헛생각을 하다가 지난 밤 선아네에서 가져 온 김밥을 바보가 먹지 않고 두었기에
그거하고 반 남은 막걸리를 후다닥 챙긴다.
송광 창촌을 지나 접치마을을 지나 입구를 찾아 한번 왔다갔다 한다.
길 가에 차를 세우고 오성산 이정표를 보고 편백숲 사이를 오른다.
길은 완만하다가 줄을 매어둔 가파른 구간도 있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땀이 벨 무렵 오성산 깃대봉 산불감시초소에 닿는다.
오르느라 땀이 나 겉옷을 벗으려는데 뒷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참나무 낙엽 수북한 내리막은 지그재그로 가파르다.
600미터에서 320미터 두모재까지 미끌리지 않고 내려온다.
완만한 능선을 걸어 한방이재까지 간다. 배가 고파온다.
내 몸은 정직한지 허약한지 금방 다리에 힘이 떨어진다.
바람을 피해 따스한 곳을 만나면 막걸리를 마셔야지.
유치산 530m 푯말을 지나니 1시가 넘는다.
바위 사이 산죽가에 앉아 김밥에 막걸리를 마신다.
바위 사이를 돌아오는 바람이 등짝의 땀을 차갑게 한다.
앞에 곧추 선 산봉우리를 우측의 목장을 보며 오른다.
또 유치산의 표지석이 네모 반듯한 돌로 서 있다.
내가 지나온 오성산이 조계산 안에 안겨 봉긋하다.
기상관측소가 서 있는 모후산은 뾰족하고 그 뒤로 무등의 둥그스름한 덩치가 흐릿하다.
다시 오르막을 가파르게 오르니 닭봉이다.
뒷쪽으로 더 높은 산봉우리가 벋어 있는데 정맥의 구간에서 벗어난다.
다녀오고 싶은데 힘이 없다.
실은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내려온 길이 겁나 간데까지 앞으로 가 보기로 한다.
월등면소재지가 내려다보이고 승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버스가 오겠지.
3시까지 걷고 차로 5시까지는 돌아갈 수 있겠지.
차를 끌고 혼자걷는 정맥길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목장을 우측으로 보고 내리막 능선을 걷는다.
훈련봉이라는 글씨가 나무에 걸려 있다.
건너편 산줄기 아래로 마을이 보이고 찻소리도 난다.
토취장인듯 잘린 산등성이를 지나 지그재그 축사사이를 내려오니 고산마을 정류장이 나타난다.
네이버로 버스 시각을 알아보니 4시 20분쯤이다. 3시 반이 안되었으니 고약하다.
걸어볼까 하다가 정류장 의자에 앉아 찬바람을 피한다.
걸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4시가 못 되어 보라색 순천시 버스가 올라온다.
월등으로 넘어가나 했는데 차를 돌린다.
4시가 조금 지나자 차가 출발한다.
차의 행선지는 순천 시내쪽이라 원다리에서 내리려는데 승주읍행정복지센터까지 간다.
차에서 내려 접치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으러 걷는사이 111번 버스가 지나가 버린다.
다시 내린 곳으로 와 보니 거기에도 차가 멈춘다.
난 왜 이리 멍청하게 띨할까?
다음 차는 언제 올 수 알 수없어 택시부를 찾아 본다.
네이버에서 찾아 전화하니 순천 통합택시이며 카카오로 부르란다.
카카오 택시가 10분 이내에 잡힌다. 학구쪽에서 온다.
찬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왔다갔다 하다 택시를 탄다.
순천시내로 가는 길인데 잘못 응답해 왔다고 하시지만 혼자 걷는 산길이 무섭지 않느냐고 말을 붙인다.
백두대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접치에 도착한다.
12,500원 정도가 결재되었다.
12km도 안되는 거리를 4시간 남짓에 걸었다. 갈수록 힘은 떨어질텐데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