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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월북 뒤 화엄사 맡겨져
훗날 모친 만나 모시고 살아
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영결식은 10일 화성 용주사
원경 스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사진) 스님이 6일 입적했다. 세수 81, 법랍 62.고인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지도자였던 박헌영의 아들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지하 활동을 하던 박헌영이 1941년 자신을 돕던 여성과 사랑을 나누어 낳은 자식이 고인이다. 박헌영은 해방 공간에서 월북했다가 1958년 북에서 미제국주의 간첩이란 혐의를 받고 사형당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하 운동가들의 이 집 저 집을 부초처럼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낸 고인은 1950년 초 부모의 지인들이 일제히 검거되면서 남로당의 연락책 한산 스님의 손에 이끌려 지리산 화엄사에 맡겨졌다. 이후 피아골 연곡사를 거쳐 한때 빨치산들과 살던 중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만났고, 한국전쟁 중 인민군 피복창이 있던 강원도 동해로 보내졌다가 소백산 구인사, 무주의 송시열 사당, 전남 담양군 가막골 남부군 노령지구 사령부 등으로 옮겨다녔다. 부친 박헌영은 월북하기 전 여섯번 봤다고 한다.
원경 스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고인은 1958년 한산 스님으로부터 부친의 죽음을 전해 듣고 충격으로 전국을 유리걸식하며 떠돌았다. 1960년 당대의 선지식인 인천 용화선원 조실 전강 선사가 그를 받아들여 맏상좌인 송담 스님의 상좌가 되게 했다. 그는 훗날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고, 경기 평택 만기사에서 모친이 열반할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그는 전국을 떠돌며 무예를 익혀 무예의 고수로도 알려졌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흥왕사·청룡사·신륵사 주지를 지냈고 경기 지방경찰청 경승으로도 활동했다. 2014년 원로의원에 당선됐고, 평택의 만기사 주지를 맡아왔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10일 오전 10시 경기 화성시 용주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