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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어리랏다 3~1 .
지금 이 순간.
뭐라고 해야할까?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랄까?
터널 안에 들어가 그 안을 지나오다 터널의 끝에 이르면 주위의 모든것이 환해지고 눈이 부실만큼 모든게 밝아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지하철 한켠에 앉아 옛 중국의 여자들 처럼 앙증맞은 사이즈의 발을 감싸안고 있는 등산화를 바닥에 통통 거리며 있었다.
그러면서 혼자 키득 거렸고 그런 내 모습을 산비틀 언니가 귀엽다며 옆에 앉아 민망스럽게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나이 마흔 다섯에 귀엽다는 이야기를 듣는건 어디에서 누구에게 듣던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언니. 그만좀 찍어요! 남사스럽게..."
산비틀 언니는 고등학생 같다며 그래도 사진 찍는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 사이 두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 가족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데는 많은날이 필요하진 않았다.
남편은 다정 다감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하영이와 나는 조금 더 서로에게 이해심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 일을 겪고난 이후 난 산행에 대한 미련은 접었었다.
이제 누구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이 닫혀져버려 산행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산비틀 언니와 몇번 통화를 하고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보기에는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는지 어느날인가 그 때 내게 사준 등산복을 다시 고스란히 사와서 내놓는데 그 앞에서 차마 안간다고.. 안입는다고.. 밀어버리기에는 왠지 미안스러웠다.
"진짜?"
"응.. 보내기 싫을 만큼."
"아이참.. 농담하지 말구요!"
"정말이라니까..! 잘어울리는데?"
오늘 아침에 등산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있는 내게 남편이 뒤에서 배를 끌어안으며 코를 목 뒤에 파뭍고는 목을 간지럽히며 그것도 모자라 귓속말로 귀를 간지럽혔다.
남편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내 배를 조여오자 몸의 힘이 어느 한곳에 모여들었다가 다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갔다오구. 좋은구경 잘하고 그러고 와!"
왜이리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대는지.
난 그런 남편에게 기댄채 남편의 숨을 빨아들였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산에 올라가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유부초밥의 냄새가 남편에게서 전해져왔다.
"이러다 늦을지도 몰라."
시간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였지만 혹 모자를 수도 있었다.
"빨리 해주면 되잖아요!"
아직 파자마 차림인 남편의 파자마 하의 의 밴드 속으로 내 손이 기어들어가자 남편의 심장의 속도가 등을타고 전해져 몸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남편의 심장의 속도 만큼이나 내 손의 움직임 또한 빨라졌고 손 안에 잡혀있는 남편의 자존심이 성을 내며 온도를 더해갔다.
"당신 힘들어. 산에 못올라가 안돼! 낮에는 도봉산 점령하고 오고, 밤에 나를 점령하도록 하라고."
남편이 잠시 잠깐 내 젖가슴을 희롱 하고는 나를 놓아주었다.
내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남편은 내 엉덩이를 찰싹이며 나를 꾸짖어댔다.
"밤에는 핑계대지 마요! 어떻게든 올라탈꺼니까."
남편이 놀란척 하며 실실거려댔다.
요즘은 남편보다 내가 더 섹스의 요구가 많았다.
이런일.. 저런일 겪으면서 남편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진 내 모습이었다.
"뭐가 그리 잼있어?"
난 발을 동동 거리며 혼자 생각에 피식 거리며 자꾸 웃어대자 산비틀 언니가 입을 둥글게 미간에 주름을 잔뜩 넣고 눈에 힘을 주며 내게 답을 내 놓으라는듯 물었다.
글쎄 더 친해지면 이런것도 나눌수 있을라나?
영숙이 하고도 이런건 나누지 않았는데?
그냥 느낌 만으로 어렴픗이 짐작을 해대는 거지.
어쩔땐 나도 그럴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영숙이는 지 남편과 좋은일이 있으면 말할때 보면 표정에서 그런 것들이 새어 나왔다.
내 주관적인 느낌이었지만 얼추 맞다는걸 알수 있었다.
나만 아는 영숙이의 비밀이 그런 표정이 있는날은 꼭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일 이겠지만 이 언니와는 어디까지 공유가 가능할지 고민을 해봐야 될듯했다.
지금까지의 본것과 느낌은 괜찮았다.
난 그런 언니의 표정을 피해 혼자 다시 피식거려댔다.
이런 음흉한 생각은 혼자 즐기는게 좋았다.
내 몸의 구석 구석을 방황하며 베낭여행을 하도록 만들어줄까.
아니면 위에 올라앉아 멍한 표정, 들뜬 표정을 짓도록 구워 삶아볼까.
문제는 그럴 체력이 남아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하철의 역 정보란에 '도봉' 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1호선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웅장한 산새의 모양의 모습들이 펼쳐져 보였다.
길을 걸으며 또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옆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산들을 보며 그냥 예쁘다.. 아니면 영혼없는 울림의 '아! 좋다!' 만 했었는데 그런곳을 오른다고 하니까 분명 눈 앞에 보이는 산보다 더 높고 험한 산이 많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 내겐 눈 앞에 보이는 산이 제일 크고 높고 험한 산이었다.
그러자 덜컹 겁이 차올랐다.
올라갈 수 있을까?
중간에 올라가서 못갈것 같으면 어떡하지?
내가 그렇게 차창 밖의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내 마음이 보였는지 산비틀 언니가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붙들었다.
그래...! 남들 다 올라다니는 산인데 그리 대수겠어?
죽기 아니믄 거품물기 겠지.
"자~~! 다 왔다. 내리자."
지하철이 '망월사' 역의 플래폼에 들어서자 산비틀 언니가 내릴 준비를 하였고 나도 따라 준비를 했다.
"휴~~우! 언니 가방 안무거워요?"
산비틀 언니가 양 어깨에 둘러맨 가방은 내 것의 두배는 되는것 같았다.
뭐가 그리도 잔뜩 들었는지..
등산복을 입고 있는것이 아니면 집나온 여자로 보일듯 했다.
"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다른사람들은 더해! 집채 만한 베낭도 메고 다녀!"
난 집채 만하다는 소리에 허걱 거렸다.
엄홍길 씨라도 산악회에 있단 말인가?
아웃도어 광고에 엄홍길 씨가 그런 집채만한 것을 등에 메고 반 원시인 같은 모습으로 포효하는 것을 보여주는 광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생각이 KTX 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쉼없이 오고갔다.
어질어질 거렸다.
산비틀 언니를 따라 망월사 역에서 내리고 개찰구를 지나 역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산비틀 언니는 "꺄~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역 밖에 이미 와있는 몇몇의 사람들과 깡총깡총 뛰며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며 만남의 기쁨을 나누어댔다.
마치 평생을 떨어져 살아온 이산가족 들이 상봉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눈물만 빠진.
어쩜 저럴수 있을지.
간간히 들어가보는 카페에서 산비틀 언니는 지난주에도 강원도 무슨 산인가의 원정산행도 다녀왔었다.
지금 이산가족 상봉 하듯이 반가워하며 깡총깡총 뛰는 다른 사람들은 다녀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산비틀 언니가 그들과 조금 떨어진 이후 나를 보더니 나를 그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기 시작을했다.
"여기는 랏다! 아니다 산어리랏다."
언뜻 보아도 내가 제일 막내스러웠다.
화장을 하면 여자나이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막내가 맞는듯했다.
난 멋쩍었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 서열이야 그 이후에 확인해도 되는 것이었다.
공손해서 손해볼껀 없는 일이니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산어리랏다 에요. 그냥 랏다 라고 불러주세요!"
"아..! 이 분이 랏다 시구나!"
"반가워요! 완전 이쁘게 생기셨네..!"
내 얼굴에 생기가 돌아 보일러를 틀어놓은 것 마냥 땀이날 정도로 사람들의 환대가 이어졌다.
자주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이라 엄청 쑥쓰럽고 민망스러웠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답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지하철이 들어올때 마다 서 너명, 많게는 일곱 여덟 명씩 모여들었고 그럴때마다 난 같은 인사를 반복적으로 해대야했다.
조금 민망스러움에 좋다고 해야할지.. 곤욕이라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이 얼추 사십 명 가량은 되어보였고 그러자 역 앞에는 토요 산사랑 산악회 사람들로 북적여 대며 웅성거려댔다.
"자...! 짐 챙기시고 출발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나와 인사를 하며 뜬금없이 손을 내미는 바람에 얼레벌레 악수를 하게된 남자분이 외치자 하나 둘 씩 각자의 베낭을 메고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랏다야! 우리도 가자."
산비틀 언니가 베낭을 메며 나를 챙겨댔고 난 그런 언니의 뒤에서 언니를 따라 걸었다.
기념비적인 내 생애의 첫 산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일렬로 주욱 늘어선 대형으로 둘 셋 씩 짝을 짓거나 혹은 혼자 대형을 맞춰 걷기를 시작했다.
역 근처라 그런지 아직은 산행이라 하기에는 아스팔트가 너무 많았다.
"이제 몸은 괜찮으세요? 그 때 우리 산비틀 님이 걱정 많이 했는데."
인사를 나눌때 뭐라고 자기 소개를 한 듯 했는데 절대 기억이 나지 않는 남자분이 내 뒤에 걸으며 말을 걸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 악몽 같았던 날을 왜 끄집어 내느냐고 쏘아붙히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기에 난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대신해 버렸다.
지금껏 살아온 날 중에 최악의 날 가운데 하나였기에 생각의 그릇에 담기조차 싫었다.
다만 그래서 좋은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 날 이후 남편이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최대한 피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뭐 아무것에나 다 그렇게 히스테리 섞듯 반응을 하는줄 아나.
그래서 그런지 피곤한것 같아 그냥 슬쩍 떠보는 반응에도 남편은 충분히 에로틱하게 답을 건네주었다.
십 분 정도 올라갔을려나 길을 따라 걷다가 조금 넓은 공터 같은 곳이 나오자 그 곳에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둘러섰다.
"여기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체조 한 다음에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베낭을 내려놓고 주변사람들과 잡담을 하는 사이 이야기를 꺼낸 분부터 자기소개를 이어나가기 시작을 했다.
"안녕하세요.. 산울림 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산울림 1호 입니다!"
"방갑습니다! 세라비 입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자기소개는 마음님. 엉겅퀴님. 잠시 댓글에서 이야기를 나눴었던 들국화님 등등 을 거치더니 빛의 속도로 어느새 산비틀 언니에게 까지 와 있었다.
"또 봅니다! 산비틀 입니다! 저 끌고 가는거 잊지 마세요! 오늘은 꼬랑지도 있습니다!"
난 그때까지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를 못하고선 다른사람들의 하는 것을 벤치마킹 해서 하려고 문구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그냥 산어리랏다 라고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랏다 라고 불러달라 라고 까지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 하는 사이.
산비틀 언니의 조금은 해괴한 자기소개를 듣다가 꼬랑지 라는 표현이 나를 지칭하는듯 했다.
웬 꼬랑지?
산비틀 언니 꼬랑지 잡고 가야하는거야?
그런데 더 중요한건 그 언니의 꼬랑지 라는 표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변에서 "풋!" 거리는 소리도 들렸지만 그 다음을 이어가야 할 내가 빵 터져버린 것이었다.
나보고 꼬랑지 라는 표현도 웃겼지만 채 정하지 못해서 망설이며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난 한순간 박장대소를 하며 주저앉은채 웃어버렸다.
민망스러워 입을 틀어막고 심지어 입술을 깨물면서 멈추려 해보았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출지도.. 그칠지도.. 모르고 막 터져나왔다.
난 그렇게 터져버린 웃음 때문에 민망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진짜 이 언니는 왜 내 앞에서 하필이면 그렇게 괴상하게 자기소개를 해 가지고 나를 이리 만들어 놓았는지 몰랐다.
아후 진짜 꼬랑지가 뭐야 꼬랑지가.
결국 웃음이 터져버린 나를 어찌 할수가 없자 나는 우선 건너뛰고 다른사람 부터 다시 자기소개를 이어나가야했다.
그리고 잠시후 난 웃음이 터져 나오는건 어찌어찌 겨우 이겨내었는데 민망함 때문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첫 산행의 댓글부터 무단결석으로 사고를 치더니 이젠 첫 자기소개 때부터 제대로 사고를 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아마도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듯 했다.
독보적 이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하루종일 그렇게 있을 수 만은 없었으니 난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긍...! 산비탈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 대었고 난 그런 언니의 팔을 툭 하고 쳤다.
"언니는.. 그만좀 웃어요!"
그래도 언니는 계속 키득댔다.
내가 볼에 공기를 잔뜩 불어넣고 뿔따구난 표정을 지어대자 키득 거리는 것을 꾸욱 하고 참아대었다.
"자! 이제 조금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건너뛰신 분이시죠? 자기소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또 뭐얌?
왠 건강상?
산악회야? 개그회야?
그러자 일이 이렇게 꼬인것도 부담스러울 판에 모든이의 시선이 한순간 내게 몰리자 다시금 얼굴이 화끈거려오며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미치고 팔짝 뛸것 같았지만 해야 될 일은 해야 했기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목을 풀어주는 기침을 한번 하고는 내 소개를 시작했다.
별것 아닌거잖아!
그냥 인사하고 이름 이야기 하고 그러면 되는데 뭐 이게 대수야?
바보였니.. 나?
그래도 어색하고 떨리는건 똑같았고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산어리랏다 라고 합니다. 저~~.. 음.. 잘 부탁 드립니다."
처음에 왠지 잘 시작을 했다 라고 느꼈는데. 나 바보 맞나봐!
중간 되니 앞이 하얀 백지상태가 되면서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이었다.
"랏다 라고 부르세요! 그렇게 불러달래요!"
그래!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얼버무리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보기 안쓰러웠던 건가?
역 앞에서 내게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던 분이 내가 할 이야기를 도와주었다.
이런! 내 소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된다 라니.
바보스러웠다.
그때였다.
"반갑습니다! 천리마 입니다! 늦었습니다."
내 옆의 옆 쪽에서 누군가가 불쑥 나오며 조금 가파른 호흡을 더듬더니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 때 까지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얼핏 보아도 전부 나 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나이를 물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들은 전부 나 보다 나이가 많은것이 확실해 보였고.
희끗희끗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난 그런 분들이 산행을 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가능하기에 나오신 분들 이실 것이기에 걱정부터 하며 겁을 먹고있는 내가 왠지 부끄러워 보였다.
상대적으로 여자 분들은 희끗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막내 같았다.
그런데 지금 막 자기소개를 마친 남자는 나와 또래 같았다.
친해질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 와 비슷한 또래가 있다는 것이 심적으로 안정감을 가져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또래로 보여서 그런가 유심히 보게 되는듯했다.
키는 나와 비슷했고, 얼굴은 둥글둥글 하게 생겼고, 배도 조금 있어보이고 눈에 띄일 만큼 종아리와 허벅지의 사이즈가 비슷해 보였다.
허벅지가 가느다란 건지.. 종아리가 굵은 건지..
모든이 들의 자기소개가 끝이나자.
솔직히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가슴에 명찰 이라도 차고 다니고 그러면 모를까 알고 기억 하는데 상당시일이 걸릴듯 했다.
내가 자주 나온다는 조건하에.
지금으로서는 한 달에 한 번도 버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개가 끝이나고 간단히 몸을 풀기 위한 맨손체조가 이어지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해댔다.
고개를 한참 내 들어야 보이는 꼭대기 까지 올라가야 한단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보아도 흠짓 했는데 밑에서 이렇게 바라보니 수능 만점 받으라는 미션이 더 쉬워 보이게 느껴졌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자 어쩐 일인지 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베낭을 짊어지니 그 사이 무슨 돌덩이 두 세개가 들어갔는지 무거움으로 어깨를 짖누르는것 같았고, 자칫하면 뒤로 발라당 자빠질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는 앙증맞다고 예뻐 보이던 등산화가 쇠말굽 이라도 달아놓은듯 무거워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있는 힘을 다해야 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아니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난 이미 지쳐가는 듯 했다.
이런 딘장!
우짬좋아? 겁을 먹으면 중추신경에 제약이 생긴다더니 지금 내가 그런것 같았다.
모야 대체 아장아장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낙오 하게 생긴 것이었다.
"꼬랑지! 잘 붙잡고 따라다녀. 뒤쳐지믄 집에 못가! 알았지?"
응? 뭐. 뭐라구요? 어딜 못간다구?
"ㅋㅋ 그걸 믿어? 나랑 같이 산책 하듯이 천천히 가보자고. 아~~! 오늘은 외롭지는 않겠네. 히히..!"
산비틀 언니가 나를 놀려 먹은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개그 스타일인가?
전화통화 할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산비틀 언니가 내 앞에서 올라가고 난 그 뒤에 언니를 따라 올라갔고 맨 마지막에 온 천리마 분이 내 뒤에 붙어 올라왔다.
내 뒤에 남자가 있다는게 좀 신경이 쓰였지만 내가 속도를 못낼텐데 답답해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신경을 거슬려댔다.
오른지 십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있었다.
벌써부터 내가 왜? 하는 후회가 밀려들어 오려고 문을 두드려댔다.
눈을 들어 올려보니 아직도 시작도 안했다는 듯 산 꼭대기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몇시간을 올라야 저기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것 처럼 느껴졌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산비틀 언니는 난 벌써부터 저질체력 바닥을 찍으려 하는데 저질체력 이라더니 맞는것인지 씩씩하게 잘도 올라가고 있었다.
난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을 하더니 산비틀 언니와 두 세발자욱 차이나던 것이 어느새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언니! 꼬랑지 늘어지고 있다고요!
내가 못올라가기는 하는 것인지 뒤에 붙은 천리마 분이 나 때문에 멈칫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민폐를 제대로 끼치고 있는것 같았다.
"저 때문에 힘드시죠? 먼저 올라가세요!"
멈칫 거리는 것이 신경이 쓰여 난 천리마 분더러 나를 지나칠것을 권했다.
그래야할것 같았다.
"괜찮은데요! 힘드시면 제가 밀어드릴 테니까 걱정말고 천천히 가세요."
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스러웠다.
그러면서 고마웠다.
"지난달 까지는 좋았는데.. 이제는 많이 졌네요!"
그랬다.
그 때 북한산 12성문을 가려고 할 때는 막 단풍들이 물들기 시작을 할 때였는데.
지금은 웬만한 것들은 모두 낙엽이 되어 밟혀댔고 드문 드문 바람을 견딘 것들만 색이 바랜채 아슬하게 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그 어디서 본 글처럼 겨울이 오고 그리고나서 봄은 다시 찾아오듯 가을도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비록 일 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때가 되면 올 해 못본 것까지 다 합쳐서 몽땅 볼거라고 믿고 또 다짐했다.
물론 그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일 일도 모르는 판에 일 년 후를 제대로 기약 할수는 없겠지만 아쉬움은 그렇게 우겨 넣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했다.
지금은 그런것을 따질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저기를 뭔 수로 오르느냐.
그게 내 당면 과제였다.
벌써 어깨는 짖누르듯 아파왔고, 허리도 뻐근한 듯 느껴졌고, 허벅지가 당겨왔고, 무릎이 시큰거려왔다.
땀은 비오듯 흘러댔다.
이제 얼마나 올라왔다고.
벌써부터 망한 기분이 들었다.
잘못 선택을 한 듯 싶었다.
산악회가 내게 왠 말 이라니?
"랏다야! 왜 힘들어?"
그럼 언니는 안힘들어요?
저질체력 나한테 다 떠넘긴 거에요?
꼬랑지 죽갔어요!
난 산비틀 언니의 이야기에 대꾸조차 할 수도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바빴다.
"안되겠다.. 좀 앉았다 가자."
산을 오르는 길에 조금 굽어진 곳에 산비틀 언니는 자리를 잡고 서서 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런 언니를 보며 부끄러워졌다.
올라오기 시작한지 아직 삼십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먼저 가세요."
뒤따라오던 철리마 분에게 나를 추월할 것을 이야기 하였지만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우리와 같이 있다가 같이 올라간다고 하고 있었다.
난 그렇게 산비틀 언니 곁에 다다르자 땅이 꺼질것 같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고.. 아고.. 헥헥 거리며 난 이제 한 발자욱도 더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등 살등 거렸다.
"원래 처음은 힘든거야.. 난 더했어. 시체처럼 업혀 내려왔다니까!"
잉? 업혀 내려와?
아이고...! 그럼 나는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건가?
"언니.. 진짜요? 누가 언니를 업고 내려왔데요?"
잉? 그러자 산비틀 언니의 얼굴이 붉그스레졌다.
아닌가? 원래 지금 그런건가?
"제가 업고 내려갔죠!"
천리마 분에게 그날 업혀서 내려갔던 것이었다.
산비틀 언니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그날 이후 천리마 분과 같이 산에 오르는 날엔 언니가 천리마 분 것까지 점심을 싸온다는 것이었다.
난 잠시 언뜻 보이는 천리마 분의 등을 살폈다.
자칫 오늘 내가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산비틀 언니는 내려올때라 그랬는데 지금 내 상태로 봐선 난 올라가다 업힐 수도 있을것 같았다.
그럼 난 뭘 싸들고 다녀야되지?
"아휴~! 말마 그날 천리마 동생 아니었으면 큰 일 날뻔 했다니까. 나 아직도 못내려 왔을껄!"
난 키득거렸다.
그러면서 대충 천리마 분의 나이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산비틀 언니가 동생이라고 표현 하는것 보면 나랑 비슷할것 같았다.
"이제 슬슬 다시 가죠?"
천리마 분이 주저앉아 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난 주저없이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러고보니 남편 이외에 외간 남자의 손을 잡은게 몇년 만인듯했다.
약간 긴장이 조금 풀려서 그런지 아니면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기운이 나는것 같았다.
휴~~! 휴~~!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연신 쏟아져 나왔지만 기분은 좋아지고 있었다.
조금 가파른 곳은 산비틀 언니가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손을 내밀어 끌어주었고.
어떨땐 천리마 분이 뒤에서 나를 밀어주었다.
그런데 살짝 기분이 조금 안좋았다? 민망스러웠다 가 맞을라나?
하필이면 미는 부분을 내 엉덩이를 밀어댔다.
이보세요! 거기는 엄한손 접근금지 구역 이거든요!
그래도 도와준다고 그러는건데 뭐라 하지는 못하겠고 하는 수 없이 낑낑 대더라도 스스로 조금 더 노력을 하려 들었다.
중간정도 올라왔을라나?
몇번을 철퍼덕 하고 앉았다가 일어서서 오르기를 해댄듯했다.
어느새 500ml 짜리 물 한병을 다 마셔댄 나였다.
"쫌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망월사야! 거기서 좀 쉬면서 가면되."
산비틀 언니도 힘이 들기는 한지 처음보다 말하는게 애처롭게 들려왔다.
오르면서 이렇게 낑낑대며 오르면 뭐가 있으려는지 궁금스러웠다.
이럴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러니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오르는 것이겠지?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글쎄 뭔가가 있을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허망스러울 것도 같았다.
"두 분 거기 서 보세요!"
천리마 분이 산비틀 언니와 나를 세웠다.
난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산비틀 언니는 뭔가 아는것 같았다.
얼른 나를 잡아끌어 옆에 세우더니 포즈를 잡아댔다.
아! 사진을 찍자는 거였구나!
나 때문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그런가?
지금껏 올라오기 바빠서 사진도 한장 못찍고 올라왔다.
천리마 분이 앞에 메고있던 카메라를 얼굴에 갖다대자 나와 언니는 꼭 붙어선채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천리마 분에게 카메라를 내가 받아들고 산비틀 언니와 천리마 두 분의 사진도 찍었다.
나도 찍으라는데 난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얘는 나중 가면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 후회하지 말고."
그건 나도 알기는 한데 엄한 남자와 단 둘이 찍는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듯 했다.
그냥 일반적인 일이지만 그 일반적인 것에도 난 괜한 수근거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종의 내 자기방어 같은 것이었다.
다시 오르기 시작을 하고.
나 때문인지 우리가 오르는 속도가 늦기는 한 것 같았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우리를 지나쳐 올라갔고 조금 더 있으니 벌써 저 꼭대기 정상을 갔다가 오는 것인지 내려오는 분들과도 심심치 않게 맞닥들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의도치 않게 서서 쉬는 시간이 자주 주어졌다.
내겐 좋은일 이었다.
우리를 추월해서 올라간 사람들 에게선 못 느꼈었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은 형형색상의 등산복을 입고 있었고 지나치며 가슴팍, 어깨 밑 그리고 목 있는 곳에 티비에서 보던 아웃도어 제품의 로고들이 박혀있었다.
처음보는 것들도 꽤나 되었다.
마치 아웃도어 박람회장을 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산비틀 언니는 몸 전체가 현빈이 선전하는 업체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내가 이야기 안했었나? 우리 애 아빠가 이거 매장 하잖아. 랏다도 나중에 뭐 더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 내가 싸게 줄께. 그래도 난 이민호가 더 좋은데."
우와... 언니는 이민호 이야기를 하며 입이 이~~만큼 찢어졌다.
비싼돈 주고 광고모델 들을 쓰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천리마 분은 여럿 메이커가 얽혀 있었다.
그런것을 보며 남편이 바꿔입게 해준 점퍼가 고맙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런곳도 헉헉! 거리는 년이 옷만 좋으면 뭐해?
내 스스로의 위안을 삼았다.
힘들고 힘겹게 오르다보니 이제서야 우리는 망월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모양이 이쁜 암자였다.
흙길을 계속 오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곳에 발을 디디니 긴장이 쏙 하고 빠져나간 나는 헤롱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늘상 그런건 아니었지만 벤치에 앉을때도 손수건을 받치고 앉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부끄럽게 이제 등산복 안의 팬티까지 땀으로 젖은 나는 찬기운이 바닥으로 부터 스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꼼짝도하기 싫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이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드는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눈 앞에 그래도 꽤 올라왔는지 산의 시발점이 먼발치에서 느껴졌고 굽이쳐 오르던 길들이 언뜻 보여졌다.
새삼 올라오느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산의 풍경이 그림처럼 엮이어 들어왔고 그걸 바라보는 내 얼굴에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며 내 머리들을 날려댔다.
시원스러웠다.
"랏다야! 거기서 뭐해? 이리와..."
재잘거리고 까르륵 대는 소리들 사이로 산비틀 언니가 나를 불러댔다.
언니를 보니 아마도 올라온지 한참 되었을 다른 분들하고 언니는 같이 사진을 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남자분 두어 분이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고 무슨 화보촬영 이라도 단체로 오신것인지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산과 어울리는 모양들을 담고 있었다.
"너도 빨리와. 사진 찍게."
난 일어나지 못하게 잡아끄는 바닥을 뿌리치고는 언니와 합세를 해서 사진을 찍었다.
남는건 사진 뿐이라더니 그동안 사진 찍는 내공들이 많이 쌓이신건지 다들 알아서 얼짱각도 들을 만들어 대었고 허리손 포즈는 기본이고 산의 기운이라도 제대로 받고 내려가려는 것인지 스틱을 들고 하늘을 향해 키스하듯 얼굴을 들고는 만세포즈도 거리낌없이 만들고들 계셨다.
이건 누가봐도 화보촬영 맞았다.
난 독사진도 찍고, 산비틀 언니와 투샷도 그리고 다른 분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올라오느라 지쳐댄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진짜 신기하게도 까딱 하기도 싫더니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느낌이 어디로 도망을 간것인지 그런 느낌이 하나도 들지를 않았다.
사진을 거의 여자분 들과 만 같이 찍었는데 딱 한장만 천리마 분과 같이 찍었다.
오르면서 그래도 많이 도와 주었는데.
많이 올라왔다 싶었지만 왜 내 눈엔 저 밑에서 볼 때랑 지금이랑 똑같게 보이는지 모르겠는 산 꼭대기 까지 오르려면 또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기에 산비틀 언니가 먼저 같이 찍고는.
"너도 이리와 같이 한장 찍어!"
그 이야기를 싫다고 그러기 미안스러워 나란히 서서 포즈를 잡고 찍었다.
그러는사이 성격들이 급하신 것들인지 아니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게 한참 지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벌써 오르기 위해 이동을 한 뒤였다.
"우리도 얼른 뒤따라가자."
베낭을 다시 짊어지자 으긍...! 무릎까지 땅에 박혀버린듯 움직이기가 버거워졌다.
진짜 왜그러니?
그냥 베낭만 맸을 뿐이라고.
아무래도 누군가의 등에 업혀 올라갈것 같은 예감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런 예감을 뒤로 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뒤쳐져서 올라왔던 우리의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세라비 라는 분과 다른 한 분이 우리와 속도를 맞춰 (정확한 표현으론 내 속도에 맞춰) 같이 올라와 주었다.
그래서 천리마 분이 이 두 분 뒤에 서게 되자 난 조금 안심이 되었다.
땀이 들어찬 엉덩이를 밀어준다고 손을 댄다면 무척이나 민망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망월사를 발 밑에 두고 오르는 길은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까지의 오르막은 산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겐 숨이 턱 끝까지 들어차는 것도 모자라 현기증이 올라올 정도였다.
점점 앞서가던 산비틀 언니와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을 하였다.
한발 한발 오르는게 고역스럽게 여겨졌다.
진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힘들게 느껴졌고 발을 내밀어 오르다 힘에 부치는지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을 하자 그렇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나를 뒤에 있던 세라비 님이 내 엉덩이를 더 밀리지 않게 떠받치기 일쑤였다.
천리마 분의 손이 아닌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했으나 그럴 겨를도 느끼지 못했다.
위기감이 나를 감돌았다.
괜히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을 했고 그냥 내려가고픈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올라갈 힘이 남지 않았지만, 내려갈 엄두도 나지를 않았다.
산비틀 언니가 내게 손을 내밀어 끌어 주었지만 잠시 뿐이었고 뒤에서 밀어주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
그렇게 내가 오르지 못하고 헤매이자 내 뒤엔 동맥경화, 변비가 걸린 것처럼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졌다.
결국 망월사를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린 길 한쪽에 비켜앉아 다른 사람들이 오르고 내릴수 있도록 해줘야했다.
난 풀이 죽은채 바닥에 널부러졌고 모두들 그런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긍 뭐가 죄송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좀 쉬면 괜찮을꺼야."
"그래요. 랏다님 괜찮을 거에요."
하지만 난 괜찮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있었다.
몸은 이미 기운 빠진 모습이었지만 다리도 이미 내 다리가 아니었다.
연체동물 마냥 흐느적 대는듯 했다.
다시 오르기 시작했지만 곧 다시 멈추어서야 했고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했다.
"안되겠네요. 여기 업히세요!"
OMG!! 결국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
산비탈 언니에 이어 나도 천리마 분의 등을 신세져야 하는 일이 된것이었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버티었지만 사실 내가 그 방법 밖에 없다는걸 제일 잘알고 있었다.
"고집피우지 말고 업히세요. 따로 방법 있는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산비틀 언니가 내 베낭을 짊어지고, 천리마 분의 베낭은 세라비 분과 다른 한 분이 같이 들었다.
"비틀이가 점심도 싸왔을텐데 돌 넣고 다녀? 뭐가 이리 무거워?"
물론 그냥 하는 이야기 겠지만 난 너무 부끄럽고 미안스러웠다.
너무 짐이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민망함을 무릎쓰고 난 천리마 분의 등에 업힌채 올라갔다.
이제부턴 내가 오르는게 아니었다.
"안힘드세요?"
"생각보단 가볍네요! 산비틀 누나와 비교하면 솜털 수준 인데요?"
산비틀 언니의 눈이 반짝 거려댔다.
"랏다야! 점심 많이 싸왔지?"
어! 아닌데 언니는 나 먹을것만 싸오라며요?
"천리마가 굶고싶은 갑다."
"누나는..! 나 굶으믄 누나가 나 업고가요!"
난 등에 업힌채 키득 대면서도 불편함이 밀려왔다.
먼저는 나 때문에 짐이 한 두개씩 늘어난 것에 대해 불편하고 미안스러웠다.
꿋꿋하게 잘 오르던 산비틀 언니도 내 베낭까지 들자 눈에 띄게 오르는게 무뎌졌고 다른 두 분도 비슷했다.
그리고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겠지만 천리마 분의 손이 자꾸 내 팬티의 경계선에 닿아있어 신경이 쓰여왔다.
내려달라 하고 싶었지만 내리면 다시금 한 발자욱도 오르지 못할것 같아 참았다.
남편의 등에 업혀본 것도 근 십년이 지난듯 했는데 오늘 처음본 사내에게 업혀있다니.
남편에겐 이건 죽을때까지 비밀로 부쳐야될 이야기였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하게 됐어.
하면서 죄의 고백 마냥 용서를 구하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지언정 이 이야기는 절대 꺼낼 수 없을것 같았다.
업힌게 섹스보다 더 추한 모습이란 말인가?
아닌것은 맞는데
'이 여편네가 이럴줄 알았어!'
그런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일것 같았다.
얼마를 더 지나가자 모두 지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저 내려 주세요! 걸어올라 갈께요."
미안스러워 더는 그렇게 못 업혀 있을듯했다.
그렇게 난 등에서 내려왔고 천리마 분의 등에선 땀의 열기가 식는 모습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나를 안쓰럽게 했다.
천리마 분은 나를 내려놓는 대신 산비틀 언니가 가지고 있던 내 베낭을 대신 짊어지었다.
나만 맨몸이 된 것이었다.
업혀있는 것보단 덜 미안스러웠지만 그래도 미안함은 여전했다.
산비틀 언니는 얼굴까지 붉그스레져 있었다.
"오늘 점심 어디서 먹는다고 그랬어요?"
세라비 분이 물었으나 모두 거기에 답을 못내놓고 있었다.
"못들었는데. 올라가다 보면 보이겠죠.. 뭐."
다들 힘이 들기도 했고 이제 곧 열 두시가 다가오는 시간대라 배에 허기가 생기는 듯 했다.
그렇게 본 대형의 사람들과는 상당히 많이 떨어진듯 한 느낌을 받는 우리들 만의 산행이 다시 이어졌다.
"괜찮아요. 처음엔 다 그렇죠 뭐. 내려가서 천리마 맛난거나 사줘요!"
진짜 그래야 할듯 했다.
미안스러워도 넘 미안스러웠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우리들 중 맨 앞에서 걷던 산비틀 언니가 조금 머뭇거리는것 같았다.
"여기서 사패산 쪽으로 가는것 맞죠?"
양갈래로 벌어진 길을 만난 탓이었다.
우리가 뒤쳐져도 한참을 뒤쳐지기는 했는지 오르면서 옹기종기 모여 사진들을 찍는 모습의 사람들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응! 사패산 쪽으로 가면 되. 근데 사람들 어디서 밥 먹을껀가? 안보이네."
열두시가 반 이나 지나고 있었는데 밥 먹느라 모여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다들 이제 배가 고파왔는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다.
주책맞게 민폐나 끼쳐놓고.
세라비 분이 자신있게 사패산을 이야기하자 산비틀 언니가 사패산 표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그 쪽 방향으로의 우리의 여정이 이어졌다.
"많이 힘드시죠?"
물론 힘들 것이었다.
괜한걸.. 뻔한걸.. 물어보는 나였다.
천리마 분은 별것 아니라는 반응 이었다.
그러자 더 미안스러워졌다.
진짜 내려가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 될듯 했다.
사패산 방향으로 한동안 걸었는데도 밥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없었다.
산비틀 언니가 통화를 시도하기 위해 폰을 들었지만 통화불능 지역이었다.
그건 다른사람 폰도 마찬가지였다.
난 덜컹 겁이 밀려왔다.
지방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것도 매일 IT 가 어쩌고 저쩌고 떠드는 나라에서 통화불능 지역이라니...!
믿을수가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만일 이런데서 조난이라도 당하면 큰일일듯 싶었다.
그나저나 밥은 언제 어디서 먹는담?
"지나친거야? 어디 다른데서 먹는거야? 미치겠네. 배고픈데."
산비틀 언니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 높은곳을 올라가더니 야호 하듯 손을 모은채 '토산' 을 외쳐댔다.
'토요 산사랑 산악회' 의 줄임말 인듯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언니의 낭낭한 목소리 뿐이었고 그것도 두 세번 하자 목소리가 갈라져 들었다.
"누나! 그냥 우리끼리 먹죠 뭐."
천리마 분도 배가 고팠는지 그냥 다섯이서 오붓하게 먹자고 제안을 했고 모두 배가 고팠던 탓인지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만든 주 원인 제공자 였기에 그냥 하자는대로 해야했다.
산비틀 언니가 소리치는걸 포기하고 내려왔다.
"그래! 우리끼리 먹자. 배고파 더 이상 못갈것 같애."
그래서 우리들은 얼추 우리 다섯 명이 앉을 수 있을만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고 산비틀 언니와 세라비 분이 돗자리를 꺼내 자리를 깔자 각자 베낭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기 시작을 하였다.
난 먹을 밥 하고 반찬 세가지 그리고 참치 통조림이 다였는데 이게 왠걸....
산비틀 언니가 대신 점심을 싸온다는 천리마 분도 나 보다 가지 수를 더 많이 꺼내놓고 있었다.
산비틀 언니는 자신거, 천리마 분거 밥 말고도 반찬만 네가지 였고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불고기 반찬도 있었다.
세라비 분도 밥에 반찬들이 너 댓 가지를 꺼내놓았고 꺼내놓은 반찬들이 휘황찬란했다.
김치는 기본이고 색깔이 이쁘게 나온 잡채랑 정갈한 모양으로 각을 잡아 썰어놓은 보쌈 고기에 미역무침도 있었다.
나머지 분도 먹음직한 것들만 골라담아 온듯 했다.
이게 등산 와서 먹는 점심인지 잔칫상 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고 거기다 소주, 막걸리 그리고 캔맥주 까지.
"왜 헉헉 거리면서 여기까지 온지 알아? 이거 먹을라고 참고 올라온거야! 누구랑 먹게될까? 누가 뭘 싸왔을까? 이게 나를 끌어당긴다니까!"
산비틀 언니는 벌써 앉자마자 사람들이 가지고 온 것들을 꺼내놓자 마자 입에 넣음과 동시에 말을 해댔다.
안봐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그 모든것 들을 다 우기적 거리며 입에 넣는듯 했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깔깔 거렸고 나 역시 배꼽을 잡았다.
완전 이쁜구석 대박 많은 언니였다.
뭘해도 밉지않고 예뻤다.
"랏다야! 한잔 할껴?"
산비틀 언니는 밥 먹는 것도 모자라 벌써 소주를 두 잔째 비우면서 내게 마실건지 물었다.
그러면서 손은 천리마 분에게 한 잔을 따르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남편과 밥 먹으면서 소주 한 두잔을 마시기는 했는데.
오늘은 어쩔까 싶었다.
음~~! 마시고도 싶기는 했는데 아직 산을 다 오른것도 아니고 걷기 힘들듯 싶었다.
그런다고 안 마신다고 하기도 그렇고 결국 나는 종이컵에 캔맥주를 한 컵 받았다.
요것만 비우기로 했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야! 뭐야? 여기들 있었어? 왜이리 늦었어?"
"아! 진짜~~! 어디서 밥을 먹었길래 거기서 와요?"
우리끼리 그렇게 밥을 먹고 있을때 이게 무슨일인지 한참 전에 올라간 사람들이 우리가 지나온 곳에서 줄지어 오고 있었다.
"밥 먹을때가 없잖아. 저~~쪽 에서 먹었지."
조금전 산비틀 언니가 사패산 푯말을 보고 약간 갈팡했던 곳에서 사패산 반대편으로 가서 거기서 밥을 먹고 온 것이었다.
그래놓고 우리보고 찾기를 바란 것인지.
"뭐에요! 대장님은 우리가 그럼 어떻게 찾아요!"
세라비 분까지 밥풀을 튀겨대며 장난식으로 성을 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와.. 나도 여기서 먹을껄.. 맛난거 대빵 많다!"
"애리 언니! 언니도 천리마 한테 업혀봐. 그럼 같이 먹을 수 있어."
"으잉~? 또 누가 저 항공모함을 탔어?"
항공모함? ㅋㅋ
그래 업혀보니 등판이 넓기는 했다.
그래도 항공모함 급은 아니었는데!
글쎄! 덤프트럭 정도?
"우리 랏다가 신고식 제대로 했데요!"
ㅠ. ㅠ
난 밥 먹다 말고 쥐구멍 찾아야했다.
"에잇! 난 연차가 있으니 남사스럽게 쓰러지지도 못하고 난 언제 항공모함 타보나?"
"나도 시승예약 해놓을래.. "
이건 업힌게 좋은건지 부끄런건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들 타보고싶다고 한마디씩 거들고는 우리를 지나갔다.
"사패산 정상에서 기다릴 테니까. 먹고 천천히 와."
"우리 도착하기 전에 단사 찍으면 안되요!"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가고 난 후 밥을 먹으며 물었다.
"단사 가 뭐에요?"
"응! 단체사진!"
아~~! 말 줄임말은 꼭 십대만 쓰는건 아니었다.
우린 밝은 분위기 속에 점심을 먹고, 맛나게 싸온 사과랑 배로 디저트도 나누고 산비틀 언니가 가져온 보온병의 따스한 물로 커피까지 마셨다.
그냥 간단하게 김밥이나 그런것으로 대충 때울줄 알았던 산에서의 점심은 그냥 일반적으로 먹는것 보다 훨씬 더 푸짐하고 제대로 된 코스로 즐긴것 같았다.
산비틀 언니 말처럼 이 맛에 꿋꿋하게 오르는게 이해가 갔다.
주변을 정리 하고는 우리들도 슬슬 사패산 정상을 향하여 몸을 움직였다.
"지금은 제가 멜깨요."
난 밥을 먹어서 기운도 나고 또 베낭의 무게도 조금 이지만 가벼워 졌기에 나중에 또 주고 심지어 업히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내 두 발로 걷기를 원했다.
화장실 가기 전과 나오고 나서가 다르다더니..
난 밥 먹기 전과 먹은 후가 달랐다.
전에는 왜 온다고 했는지.. 업힌 상태로 이게 무슨 추한 꼴을 보이는 건지 몰라 후회만 막급이었는데.
먹은 후의 지금은 모든게 좋았다.
힘든건 여전했지만 뭐 나만 힘든것도 아니고 괜찮을듯 싶었다.
그래! 가자 사패산 으로...!
그 사이 산비틀 언니가 저 만치나 걸어가고 있었다.
어랏?
"언니! 나랑 같이가요!"
내가 꼬랑지 인거 밥 먹더니 잊었나보다.
3~! 부는 요기까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