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스승의날 입니다
60여년이 가까와도 잊지못할 내인생에 등불같은 선생님이 오늘 불현듯 떠오릅니다.
나는 서울로 중학교가는 내꿈이 물거품이 되면서
학교 공부는 아예 관심이 없고
그냥 친구 만나서 놀기삼아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때 선생님 기억이 떠오른다 .
1학년 담임 김정수 선생님
국사를 아주 정확하게 핵심을 머릿속에 바로 찔러 아주 재미있게 잘 가르치셨다.
나는 공부는 안해도 국사과목을 재미있게 들었다.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 국사과목을 다 좋아한것 같다.
1학년 첫 봄소풍을 버머리공굴 다리에 갔다.
점심때 동무들은 끼리끼리 오손도손 모여서 맛있게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멀찌깜치 보니 선생님은 저쪽에 우리와 한참 떨어진곳에 우두커니 서 계신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드실 밥은 누가 말을 안해도 반장 부반장이 싸오게 되어 있었다.
아무도 싸 오지 않는것 같다 .
나는 갑자기 화가 나고 목소리가 높아지며 소리를 질렀다.
야 ! 이새끼들아
저기 우리 선생님은 굶고 계시는데 우리끼리 맛있게 처먹고 있나
두명 보자기 들고 빨리 날 따라온나
다니면서 부잣집. 공무원집 애들이 싸온 맛있고 좋은 먹을것은 무조건 압수하니 보자기가 가득 했다.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고 좋았다.
그 다음부터는 미리 반장이 싸오도록 하고 그날 맛있는것은 다시 거뒤서 선생님께 갔다 드린것 같다.
중3때 옆친구가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나하고 한판 붙자고 해서 영당에서 싸웠다.
나는 평소에는 겁도 많고 마음이 여리고 얼띠고 남과 싸우는것은 참 싫어 했다.
그러나
위기와 위험에 처하면 담대하고 상대방에 급소를 정확하게 공격하는 내안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그때 그를 초죽음으로 만들어놓고 집에 왔다.
그일로 나는 처음으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맞은 친구 어머니가 거세기로 면내에 소문이 나고 아무도 못말리고 억척스러워서 빌러 갔다 .
3학년 담임 구자용 선생님
윤위상 교감 선생님
신재도 학생과장
넷이서 왕복 10여키로 걸어서 갔다.
세분다 내한테 아무말이 없으시다 .
말없는 대화속에 내 어린 마음에도
나 때문에 흙먼지 펄펄나는 신작로길을 걸어서 .....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 그지 없었다.
뭔가 내 가슴 속 다가오는 깨달음과 느낌이 많았다.
무언의 가르침과 사랑의 그 힘이...
구자용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셨다.
책을 덮어놓고 이야기 하듯 재미있게 물 흐르듯 참 가르치시며 한번도 화를 내거나 꾸짓고 야단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살면서 덕망과 실력을 겸비하신 훌륭하신 선생님을 아직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너그러운 사랑으로 제자를 품으시며 그렇게 말썽을 부려도 한번도 나를 꾸짓거나 때리거나 나무라지 않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나에게 꿈과 힘을 주셨다.
60여년이 가까와도 그때받은 선생님이 내게 베푸신 큰 사랑을 결코 잊을수가 없다.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 간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졸업하고 꼭 찾아 뵙고 싶어서 몇차레 수소문 해봤지만 ....
그뒤 경북대 교수로 영전하셨다는
일찍 저세상으로 가셨다는...
소문만 돌았지 뵈올수가 없었다.
반세기가 지나도 아직도 선생님의 사랑은 기억에 생생하고 그 사랑의 힘이 내 삶에 큰 버팀목이 된것 같다.
첫댓글 아득한 옛 이야기 읽고 갑니다.
저는 좋은 선생은 기억 안 나고 나쁜 선생만 기억납니다.
초등 5학년때 늙으수레한 조옥례 선생님
짝이랑 이야기했다고 나와서 서로 따귀 때리라고
채근하는데 나는 친구를 때릴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살짝 나의 뺨을 때리기에
저는 엄청난 배신감으로 짝의 따귀를 세게 때렸어요.
서로 무지막지하게 때리게한 선생
그거 인간이 아닌 악마였습니다.
이후로 나는 친구도 사귈 수 없었고
선생들은 전부 나쁜 사람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책에서 봤는데 이 방법이
서로를 이간 시키는 일본식 벌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문득 나는 좋은 선생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에게는
상처 줄 수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