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언식 럭비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고 럭비 월드컵은 단일스포츠 종목으로는 피파 월드컵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제대회이다. 유럽과 대양주에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며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럭비에 열광하는 국가들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럭비의 인기가 다른 나라들보다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성적은 영 부진하기가 짝이 없다. 하지만 항상 약체라 놀림받는 이탈리아가 이변을 일으키며 월드컵 우승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신의 다리라 불리며 지금도 이탈리아인들에게 전설로서 추앙받는 사나이, 지노 콘델로가 있었다.
콘델로는 베네치아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해왔다. 중학생 무렵, 그는 피오렌티나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고향의 럭비팀인 베네치아 마스트레의 감독이었던 피에트로 리팔로는 피지컬과 스피드를 겸비한 콘델로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럭비선수로의 전향을 권했고 콘델로는 이를 받아들여 본격적인 전설이 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유스팀에서의 그의 활약은 가히 주목할만 했다. 16세부터 18세까지 무려 3년 연속 득점왕과 트라이왕에 뽑였고 이 뛰어난 소년의 실력은 다른 나라의 구단들도 주목하게 되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물론 저 멀리 호주의 프로팀들이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콘델로는 리팔로와의 의리를 지켜 마스트레의 성인팀으로 본격적인 데뷔를 하게된다. 성인팀에서도 유스팀과 다를바 없는 활약을 펼치자 본격적인 타구단들의 영입경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마스트레와의 계약이 끝나자 콘델로는 호주의 명문팀 와라타스로 옮겨가게 되었다. 와라타스에서도 그의 화려한 활약은 이어져 와라타스 입단 첫해, 수퍼 15의 득점왕 3위, 트라이왕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퍼 15에서의 활약은 당연히 국가대표로서의 발탁으로 이어졌고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쉽에도 여러번 출전했지만 와라타스에 입단한지 3년이 지나면서 이번에는 호주대표팀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럭비는 축구와는 달리 선수들의 국적이동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다. 그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해당국가의 국내리그에서 3년만 활동하면 그나라의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었으므로 수퍼 15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콘델로를 호주국대에서 탐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호주국대로의 부름을 단호하게 뿌리친채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를 선택했다. 콘델로가 활약한 이탈리아는 유럽예선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한 것을 제외하고 조2위를 확정지으며 월드컵에 첫 출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피지, 우루과이, 웨일즈, 짐바브웨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우루과이와 짐바브웨는 각각 87 대 57, 113 대 46으로 완파시켰지만 피지와 웨일즈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피지는 그래도 시종일관 점수를 리드하며 64 대 59로 박빙의 승부를 벌였지만 웨일즈와는 한마디로 난타전의 연속이었다. 웨일즈의 스타플레이어인 리스 글렌다워는 콘델로보다 약간 떨어진다는 평이 대세였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공격수였고 양쪽 윙어들인 테리 레인저와 본 스튜와인은 빠른 스피드로 번번히 그들을 가로막는 이탈리아 선수들을 교란시켜 글렌다워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전반전 초반, 콘델로의 첫 드롭 골로 점수를 리드해가던 이탈리아는 중반이 되면서 글렌다워-레인저-스튜와인의 환상적인 합동공세에 역전을 당해 27 대 20으로 역전당해 버렸고 이탈리아 국대감독인 남아공 출신의 비쿠스 반 메르베는 이대로 계속 웨일즈에게 당해 불안한 조2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술을 바꿔 승부수를 띄울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결국 그는 화려한 패스 플레이를 펼치는 웨일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패스를 끈어줄 태클러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패스실력은 다소 떨어져도 강인한 피지컬을 갖춘 콘티 제나로와 스테파노 팔레치오를 투입했다. 이 전술은 다행히 먹혀들어가 스튜와인은 팔레치오와의 몸싸움 중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나갔고 패스 플레이의 한축이 무너진 웨일즈는 다시 이탈리아에게 재역전당해 결국 경기는 39 대 31로 이탈리아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로서 이탈리아는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조1위를 차지하며 8강에 진출했고 이탈리아 전역에서 환호의 함성이 터져나오게 된다.
조별예선에서 조1위로 8강에 오른 것은 상당히 뜻밖의 일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세계럭비계의 반응은 생각보다 제법이라는 정도였다. 럭비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체로 취급받는 이탈리아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전해서 8강에 올랐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럭비계의 중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잉글랜드였기 때문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쉽 득점왕 2년연속 1위에 빛나는 뛰어난 스타플레이어 데이빗 후시를 주축으로 강인한 피지컬과 테크닉을 앞세운 잉글랜드식 토털럭비 전술을 구사하는 강팀이었고 이탈리아는 콘델로와 뛰어난 돌파력을 가진 이시노 리치에리를 제외하면 잉글랜드에 크게 못미치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 메르베는 조직력을 이용한 압박전술로 잉글랜드와 상대하기로 했다.
전반전 초반은 예상대로 잉글랜드의 우위였다. 상대측 미드필더진이 이탈리아의 태클을 견제하며 후시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이탈리아의 방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이용한 후시의 연속적인 드롭 골들이 터졌다. 전반전은 이탈리아가 계속 밀리며 14 대 4로 끝났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도 이탈리아가 제법 선전하긴 했다며 여전히 잉글랜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 메르베는 생각보다 후시의 득점포가 터지지 않는 것을 이용,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이면서 콘델로가 적극 공격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압박은 전반보다 훨씬 더 잘 가동되었다. 덕분에 후시는 트라이 한번 외에는 더이상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콘델로의 화려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콘델로의 장점은 그 가공할만한 돌파력에 있었는데 잉글랜드측의 계속되는 태클과 몰을 그대로 돌파하고 상대편 선수 두명을 매단채 골라인을 향해 질주하는 콘델로의 피지컬과 스피드는 경이의 대상이 되었다. 럭비에서 원래 비슷한 실력의 선수라면 힘이 더 센 선수가 더 유리한데 후시와 콘델로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후시도 천부적인 재능과 피지컬을 가졌지만 힘이라는 측면에서 콘델로보다 더 열세였기에 태클을 받으면 콘델로퍼럼 그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공격이 멈춰졌던 반면 이탈리아는 콘델로를 제외한 나머지 거의 전원이 수비에만 몰두해도 될 정도로 파워풀하고 돌파력있는 공격은 콘델로를 통해 주로 이뤄졌던 것이다. 결국 점수는 역전되어 26대 20으로 이탈리아의 승리로 끝났고 세계는 이 놀라운 이변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콘델로의 뛰어난 재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승리였다.
하지만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잉글랜드보다 한수 위라고 여겨지는 올블랙스, 뉴질랜드였다. 콘델로는 잉글랜드에서 태클러 두명을 사이좋게(?) 양쪽다리에 매달고 뛰어가 그대로 트라이를 성공시킨 모습 덕분에 "신의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올블랙스에는 악마가 있었다. 럭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난으로 하는 말중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대신 최강의 신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돌던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피치의 악마" 벤지 마샬이었다. 콘델로도 수퍼 15에서 득점왕 2위까지 해본적이 있지만 1위를 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마샬의 존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콘델로는 호날두, 마샬은 메시에 비교할 수 있겠다. 신과 악마의 대결은 많은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대결에서 누가 최강인지 가려질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건 호사가들의 말뿐일뿐 럭비는 15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콘델로가 마샬에 못지않은 스타플레이어라지만 다른 선수들이 그를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터였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전원이 거의 스타플레이어들로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뻔해보였고 더이상의 이변은 없을 거라는게 이번에도 역시 중론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또 일어났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두명의 대결답지 않게 경기의 내용은 무척 단순했다. 양쪽 모두 콘델로와 마샬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서로 견제했고 콘델로의 화끈한 돌파와 파워풀한 플레이는 이번에도 빛을 바랐다. 마샬 역시 콘델로 못지않게 이탈리아 태클러 두세명 쯤은 뿌리치며 골라인으로 뛰어갔지만 반 메르베가 노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제아무리 마샬이라고 해도 이중의 태클을 뚫고 트라이를 시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단 두번만이 성공했을 뿐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골은 드롭 골과 컨버전 골이었고 대부분의 골이 트라이였던 콘델로로 인해 초반에 잠시 앞섰던 뉴질랜드의 점수는 이탈리아에게 역전당해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점수는 20 대 16, 거의 박빙인 경기였지만 뉴질랜드의 패배와 이탈리아의 승리, 그리고 또하나의 이변이었다. 마샬은 패배가 확정된 순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점수표시판만을 바라봤고 콘델로는 흥분한 나머지 반 메르베 감독을 번쩍 들어올려 빙빙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변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피지컬과 스피드를 함께 갖췄다는 말은 몸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고 그 수많은 태클을 뚫고 돌파를 했으니 콘델로의 무릎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콘델로는 진통제라도 맞고 결승전에 출전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반 메르베는 그 요청을 불허했고 결국 콘델로는 목발을 한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가 13 대 10으로 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콘델로가 출전했으면 경기의 결과가 달라졌을까? 전력으로 치면 뉴질랜드 못지않은 호주였으니 콘델로가 있었어도 쉽지는 않았을테지만 거기에 더해 사람을 잡는 럭비의 특성상 이탈리아도 많은 주요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이 상당히 틈이 생긴 상황이었다. 호주의 경우 후보층이 매우 두텁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콘델로가 있었다 하더라도 무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항상 기적을 만들어왔던 콘델로의 전적을 봐서라도 단정을 짓긴 힘들다.
당시 이십대 중반이었던 콘델로의 나이를 봤을때 다음 월드컵에서 또 활약할 수 있었지만 정말 아쉽게도 콘델로는 월드컵 준우승을 한 그해 자동차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약체 이탈리아를 준우승까지 끌어올린 콘델로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월드컵 득점왕에게는 지노 콘델로 메달이 주어지며 그의 고향인 베네치아에는 콘델로의 동상이 세워져 베네치아 중앙광장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다만 광장이라는 특성상 비둘기때에 의해 상당히 많이 더렵혀져 동상 옆에는 비둘기를 쫓아내는 공무원이 여섯시간씩 사교대로 동상을 감시하고 있다.
콘델로의 사망 후 이탈리아는 다시 럭비계의 약체로 추락했지만 최근에는 높아진 럭비의 인기와 더불어 식스 네이션스에서도 우승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 이탈리아 국대감독은 콘델로의 파트너였던 스테파노 팔레치오로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이탈리아 럭비계의 사정도 콘델로 때보다 훨씬 좋아져 이젠 제법 국제무대에서도 통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콘델로의 못다이룬 꿈을 이번 이탈리아 대표팀이 뉴질랜드에서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