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리와 호리
문희봉
옷감을 짭니다. 날줄과 씨줄이 만나 옷감이 짜여집니다. 중간중간 무늬도 들어갑니다. 목도리도 되고, 손수건도 되고, 한복도 됩니다. 날줄만 가지고는 예술품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씨줄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조화와 하모니가 작품으로 탄생시킵니다.
내 고향 당진에 ‘기지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500년 역사의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가 민족문화의 맥을 이어 열립니다. 새로운 문화창조의 기반을 조성하고, 국민의 문화적 향상은 물론 인류문화발전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으로 열립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매년 3,4월에 열리는 데 많은 사람들이 잡아당겨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촌의 닻줄 만드는 방식으로 세 줄 꼬기로 강한 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가 200m이고, 직경이 1m, 무게가 자그만치 40t이나 됩니다. 우리나라 우수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전국적인 축제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줄다리기 줄을 만드는 데 엄청난 볏짚이 들어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새끼줄을 만듭니다. 합심으로 만들어진 새끼줄이기에 합심으로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학생들에게 줄넘기를 가르쳤습니다. 긴 줄을 넷이서 ‘+’자로 엇갈리게 잡고 돌리며 그 안으로 작은 줄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 조화를 이루는 줄넘기입니다. 긴 줄을 돌리는 사람과 작은 줄로 줄넘기를 하는 사람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원만한 줄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됩니다.
우리의 정서상, 농경문화의 특성상 가장 친근한 가축 중 하나는 바로 소입니다. 소는 우직하면서도 근면함과 순박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지만 때로 고집도 세기에 유달리 고집이 센 사람을 황소고집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소와 관련된 말 중에 '겨리'가 있습니다. 겨리란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한 마리의 소가 이끄는 쟁기는 '호리'라고 합니다. 겨리에 동원되는 소는 겨릿소라 부릅니다.
소 한 마리가 끄는 쟁기보다는 둘이 함께 끄는 겨리는 농부의 입장에서나 소의 입장에서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에 수월하게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반면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도 이 이치와 같아서 서로 힘을 합치면 혼자 끙끙대며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을 치러 낼 수 있습니다. 겨리에 담긴 의미처럼 우리도 마음을 합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세계라야 잘 굴러갈 수 있습니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노라면 청춘은 젊어서 아름답고, 나이를 먹을수록 원숙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인생은 살아볼수록 깊은 맛이 납니다.
썩어가면서도 향기를 풍기는 모과 같은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람도 나이 들수록 향기로울 수 있습니다. 사람 속에서 살고, 사람 속에서 흥겨워하고, 사람 속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가능합니다.
숯도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다이아몬드가 숨어 있어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고통은 바로 숯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압력이 아닐까요. 고통은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해주는 축복이 아닐까요. 인내하는 것은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눈 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마시멜로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다면 얼마 후에 또 하나의 마시멜로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당장의 만족을 유예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만족감과 성공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진정한 감사란 어떤 행위에 대한 조건을 달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나에게 좋게 작용해서가 아니고, 근사한 선물을 주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나로 하여금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 감사가 서로를 가깝게 만듭니다. 혼자 있게 놓아주지 않는 그 행위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로 어울리게 해주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상과 조화, 이웃과 조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은 그 삶을 더욱 푸르고 찰진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인생은 방향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부정적인 쪽이 아닌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매일 매 순간이 감사와 축제의 연속입니다.
첫댓글 정성이 가득한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아주 멋진 좋은 작품 감명 깊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화곡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