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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님과 박승기님이 올리신 [갈브레이스의 샤콘느 연주]에 영향 받아 일전에 올린 글을 약간 다듬어 싣습니다.
[기타로 연주한 바흐 샤콘느들]
-따스함과 정갈함을 전하는 기타 샤콘느 6가지-
by BACH2138
기타라는 악기로 샤콘느를 연주하는 시도는 바흐 샤콘느가 가지는 음악적 위상과 일정한 관련을 맺을 것이다. 단일곡으로 바흐음악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곡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 작품은 바이올린의 레퍼토리로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이름 꾀나 내미는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이곡을 남기고 있는데, 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아로새긴 샤콘느 연주는 그야말로 최고의 악흥을 선사한다.
여기에 뒤질세라 클래식기타로 편곡 연주한 샤콘느도 원곡인 바이올린과는 전혀 다른 색과 맛으로 다가온다. 현악기 특유의 지속음이 주는 강렬한 맛은 없지만, 베이스라인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바이올린의 연주에 비해 기타는 아기자기한 울림 때문에 더욱 부담 없이 다가오며, 또한 따사롭게 들린다. 아마 이런 기타의 울림 때문에 기타를 가장 인간적인 악기라 할 것이다. 연주자마다 다른 각도에서 이곡을 해석하는 차이를 몸소 느끼면서 이곡을 감상해본다면 바흐와 그의 샤콘느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래에서 6명의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한 샤콘느에 대한 감상 글을 나름대로 적어 보았다. 글의 기술 순서는 기호의 순서라기보다는 녹음년도 상으로 배열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음반을 최선순위로 두어야 할지는 감상자 개인이 듣고 판단할 몫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페페 로메로나 예페스 등의 연주를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 이들의 기량이나 음악성을 보면 뛰어난 해석을 들려주었을 것 같다. 한편 최근에 들어본 야마시타의 연주에선 강렬함과 촉급함이 분출하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는데, 동호인분 말씀처럼 진짜 사무라이풍의 샤콘느였었다.
그윽함이 깃든 세고비아의 연주
세고비아의 샤콘느는 일전에 소개한 적이 있지만, 세고비아의 연주는 기타가 낭만적인 악기라는 것을 새삼 강하게 일깨운다. 두툼한 음색을 바탕으로 때로 액센트나 비브라토등 기타가 가지는 기교를 적절히 구사하여 선율에 인간적인 맛이 매이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빛깔의 기타 음색을 맛볼 수도 있는데, 선이 굵은 저음의 음색과 맑은 고음의 음색의 교차, 때로는 쥐어뜯는 듯한 음의 안배로 인해 다채로운 기타음향을 들을 수 있다. 다소 어눌하고 끊기는 마디마디의 흐름도 유려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프레이징의 묘미를 들을 수 있다. 이점은 세고비아가 바흐를 바라보는 높은 안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분 부분으로는 평이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곡 전체를 통하여 진행되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세고비아의 음악인 것 같다. 그만큼 음악을 구성하는 조형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연주외관만을 형식적으로 바라본다면 세고비아의 샤콘느는 다른 명인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겠지만, 세고비아는 이에 상반되게, 내적인 면에서 높은 집중과 음악적 영감을 발휘하고 있다. 세고비아의 샤콘느에는 종교 음악같은 경건함은 물론 순수함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여져있는데, 그의 연주를 듣고 뿌듯한 감동을 받는 것은 이런 경건함을 열정으로 내면화한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세고비아의 해석은 낭만적 혹은 주관적인 면을 강조한 연주로 보이며, 오랫동안 음미해볼만한 최고의 샤콘느 기타연주중 하나라 생각한다.(54년 녹음/ DG)
절제의 미감으로 다가오는 존 윌리엄스의 연주
존 윌리엄스의 샤콘느는 기타가 가지는 현대적인 세련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일전에 존 윌리엄스를 기타의 글렌굴드로 단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샤콘느에서도 그대로인 것 같다. 선율을 진행함에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특히 저음 부분에서의 맑은 음색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장기인 것 같다. 또한 빠른 음형에서의 탄력적인 존 윌리엄스 특유의 핑거링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여기다가 그의 연주는 리드미컬함을 추구하고 있어 흐름에 있어서도 조금의 막힘이 없다. 그리고 곡을 바라보는 전체 구도도 굉장히 안정적인 편이다. 그는 뚜벅뚜벅 큰 발걸음으로, 가야 할 때와 잰 걸음으로 가야 때를 명확히 구분하여 나아간다. 특히 바흐음악에서는 이런 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일 거다. 존 윌리엄스가 다른 류트모음곡들에서도 최상의 연주력을 선보였던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 생각되는데, 이 샤콘느에서도 확 드러나는 그만의 음색, 그만의 음악으로 꾸며진 내실있는 샤콘느를 들려준다. 도한 존 윌리엄스의 샤콘느는 이런 점착성의 호소력높은 음색만큼이나 전체적으로 감정을 침전시키는 느낌을 준다. 곡이 중반부로 흘러가면 이런 상황은 변모되어 감정이 다소 부양되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존 윌리엄스의 샤콘느는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게 절제의 미감을 알리는 연주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해석의 가능성이라는 주관적인 특성과 바흐음악에서 느껴지는 객관적인 면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연주로 보인다.(65년 녹음/ 콜롬비아-소니)
마음을 비우고 연주하는 셀레도니오의 연주
셀레도니오 로메로(1917~1996)의 샤콘느가 실린 음반에는 무반주 바이올린 2번 파르티타 전곡과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편곡 연주, 그밖에 가스퍼 상스의 기타곡이 실려 있다. 셀레도니오 로메로와 그의 자식들인 셀린 로메로, 페페 로메로, 앙헬 로메로 등은 클래식 기타 계에선 터줏대감들이다. 모두 독주자로서도 높은 기량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 4부자는 최고의 4중주단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지금은 앙헬 로메로의 아들 리또가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활동하고 있다.
이음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샤콘느 연주는 더욱 특징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다른 연주들과 달리 베이스음이 잘 잡혀있는 게 제일 먼저 귀에 들어온다. 한편 해석의 기본 방식은 세고비아와는 비교되는 것 같다. 세고비아의 경우는 선율에 나름의 음영이나 굴곡을 주는 경우가 많지만, 셀레도니오의 연주는 더욱 엄정한 편이다. 또한 그 음악만큼이나 평탄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런 때문에 감정의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굳건한 바흐를 들려주는 편이다. 곡의 중심부에 들어가면 기타 특유의 기교(트레몰로주법 같음)를 부가하여 곡에 나름의 변화를 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뻣뻣한 연주이다. 샤콘느를 제외한 2번 파르티타의 다른 악장이나 무반주 첼로곡 3번 연주(D조성으로 연주하는 것 같다. 세고비아의 편곡은 A장조인데, 세고비아의 연주가 화성적인 울림을 중시했다면, 셀레도니오의 연주는 레가토를 중시하고 첼로연주를 기타에 담으려 한 듯하다.)에서도 매한가지다. 결국 셀레도니오의 샤콘느 해석은 바흐의 객관적인 면을 많이 강조한 연주인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보기에 따라서는 세고비아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판의 대상(세고비아의 연주가 기교적으로 약간 어눌하고 표현에 있어서 자의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면, 셀레도니오의 연주는 뛰어난 테크닉에 비해 다소 밋밋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안정된 기교와 투명한 기타 음색을 투영한 샤콘느로서 뛰어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바흐 곡들은 모두 아들인 페페 로메로가 편곡한 것들인데, 자연스런 기타 음색과 더불어 녹음도 바로 면전에서 연주하는 것 같이 생생하게 포착되어있다.(86년경 녹음/ 델로스)
부드러운 울림으로 관능미를 자극하는 바르에코의 연주
마누엘 바루에코의 연주는 부드러운 울림으로 바흐를 색칠한 대표적인 기타리스트일 것이다. 그가 연주한 일련의 바흐를 들어보면, 안온하고 푸근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편곡 레코딩에서도 그는 개성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었다. 바르에코는 기타를 다루는 방식에서 같은 낭만적 느낌을 주는 세고비아와는 전혀 판이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 세고비아의 경우 낭만적 해석일지언정 강한 어조의 음악을 들려주는데 반하여, 바루에코는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해석을 추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받는다. 샤콘느 연주도 동일한 패러다임을 시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연주를 들으면 일견 바로크 바이올린연주나 류트의 부드러운 음색이 떠오를 정도로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나는 이런 바흐는 그만의 아우라인 것 같다. 이런 로맨틱한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는 바흐의 폭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무거운 분위가 감도는 샤콘느라 할지라도 기타를 통하면 다소 가볍고 부담 없는 음악으로 탈바꿈 하곤 하는데, 특히 바르에코의 연주는 이런 게 더욱 심화되어있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듯 인간화된 바흐를 들려준다. 사랑과 정감이 흐르는 그의 기타 선율은 남 다른 면이 있다. 바르에코의 연주에서 들려지는 이런 정다운 분위기는 글쓴이에겐 여리지만 관능적 아름다움으로 와 닿는다. 가을에 연인과 들으면 가장 잘 어울릴 샤콘느같다.(90년/ EMI)
가녀린 기타음색과 잔향이 매력적인 줄리안 브림의 연주
줄리안 브림의 샤콘느 연주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느낌을 준다. 특히 고음부분이 날카롭게 들리는 편이며, 삶의 향취가 전해지는 샤콘느를 들려준다. 섬세한 기타 선율과 은은한 잔향은 쳄발로가 생각날 정도로 애잔하다. 이런 줄리안 브림의 해석은 존 윌리엄스의 해석과는 많은 부분 상반 되는 것 같다. 존 윌리엄스의 연주가 어떻게든 음향을 축소하거나 정제시키려 노력했다면, 줄리안 브림은 울림이 가득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로 인해 아스라한 분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또한 존 윌리엄스의 연주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면, 줄리안 브림의 연주는 더욱 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되는데, 내면세계에 천착하는 자아성찰의 느낌도 준다. 줄리안 브림의 바흐에서 느껴지는 이런 분위기는 이 음반에 실린 3곡의 류트곡 에서도 거의 동일한데, 다른 류트곡 들에선 이런 느낌들이 오히려 심한 게(뒤로 갈수록 심한 편임) 흠일 지경이다. 음향 면에서 지나치게 멀리서 녹음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샤콘느에서는 그나마 적정한 수준이어서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런 몽환적인 음색에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무척 감명을 준다. 이는 그만큼 그의 연주가 아름답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줄리안 브림의 연주는 15분대로 다소 느린 편인데, 구조적으로도 견고한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존 윌리엄스와 줄리안 브림 연주에서 들려지는 비슷한 느낌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둘 다 현대감각에 맞는 세련된 바흐를 들려준다는 점이다.(92년/ EMI)
느린 연주로 기타의 중후함을 일깨운 갈브레이스의 연주
갈브레이스의 연주는 스토코프스키의 관현악 버전을 포함하여 샤콘느 전체에서 가장 느리게 해석하는 연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은 굴드의 템포운용만큼이나 독창적이다. 기타에 있어서 느린 연주는 섬세하고 짧은 현의 울림의 특성을 고려 할 때 반드시 친화성이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웅장한 음악을 상정한다면 기타의 여린 선율을 무릎 쓰고라도 충분히 느리게 접근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갈브레이스 역시 이점을 염두에 두고 샤콘느를 연주하는 것 같다. 특히 베이스를 보강한, 울림이 좋은 8현 기타라는 점은 그의 해석을 더욱 설득력 있게 한다. 거의 20분대(음반으로 듣지 않아서 정확한 시간은 모름)에 육박하는 느림보 템포는 지겨울 만큼 심혼에 아로새겨진다. 이런 느린 해석 때문에 음악의 스케일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고, 기존의 기타버전의 샤콘느와는 완전히 절연된 듯 들린다. 기타의 아기자기한 맛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류트 음악같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갈브레이스의 연주는 그 시도만큼이나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것 같다. 독백하듯 유유히 흐르는 선율은 마치 한편의 서사시같이 광활하게 들린다.
많은 기타연주자들(바이올린 연주자들을 포함하여)은 이 샤콘느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흐의 다른 곡에서는 기교를 부리면서도 이곡 앞에 서면 왠지 초라하고 멋쩍은 모양새이다. 샤콘느의 근엄함에 압도된 듯 말이다. 다른 곡에서도 실상은 샤콘느와 매한 가지 일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갈브레이스의 해석은 초절한 구석이 있다. 그는 파격적인 악기(8현기타를 첼로같이 세워서 연주한다)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음악을 풀어가는 것 또한 뛰어나다. 샤콘느를 새로 쓴 듯 겹이 두텁고 조형감이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엄정한 면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있다. 갈브레이스의 연주는 기타로 연주한 샤콘느중에서 가장 중후하게 들리는 연주로 보여 지며, 최근의 샤콘느 해석가운데서도 최고의 해석중 하나라 생각된다. 깊은 사색과 관조의 경지로 이끄는 이 음반은 샤콘느의 영성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연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98년/ 델로스)
청취 음반들
1.세고비아, 존 윌리엄스, 셀레도니오 로메로, 줄리안 브림등 4개의 음반
2.웹(김은호님 홈페이지)에서 들은 2개의 음반-마누엘 바르에코, 폴 갈브레이스의 연주
첫댓글 이젠 양방언의 음악에서도 바하가 들립니다. 바하귀신에 씌인 것에 틀림없습니다. 세고비아의 연주는 카셋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었는데..분명히 피아노나 바이올린과는 다른 맛이 기타연주에는 숨어있어요. 98년 델로스요? 폴 갈브레이스 사러 가야지~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창한 음악이 아니라 소박한 형태로 다가오는 이런 매력이야 말로 기타가 발산하는 바흐라 생각됩니다.^^
기타연주곡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님의 글은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확신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