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한산이씨 수은공파 일명 소호문중에는 훌륭한 행적을 남기신 분들이 많아서 그 아름다운 행적을 모두다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하여도 남은 평생의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안동의 인물 안동시사 1999년에는 설죽공을 아래처럼 소개하고있다. 묘갈명 및 행장이 이것이외에도 몇개나 되어 일일이 잠시 번역해 보다가 잠시 시간에 쫓겨 내버려두다가 또 몇해를 보내고 있다.
이병은(李秉殷):1782(정조 6, 임인)~1860(철종 11, 경신).본관 韓山. 자는 質汝. 호는 雪竹. 土敬의 子. 외조는 慶州 崔興好. 貧寒해도 주야를 가리지 않고 독서궁리하여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이룸. 「雪竹歌」 수십 편을 창작. ▣참고:「墓碣銘」(崔孝述 撰) 집필:이원걸
설죽가 수십편의 시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아니 모두가 왜 사대부로 당대의 대석학이니 대유학자이니 칭송을 하니 보잘것 없는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가끔 한숨만 나올때도 있지만 나의 6대조 할아버지에 대해 내 스스로 대단하신분이다 자랑을 글 몇편을 쓰면서 제대로 한번도 못해본것이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인것 같다.
영남만인소의 소두 면암 이우의 일로 공의 제자였던 설죽공은 벼슬길을 접고 평생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으며 수많은 문집을 남겼다고 하고 있으나 그 행적을 일일이 찾아볼 여유가 없던 길에 설죽가 몇편에 대해 답한 함홍당 치능대선사의 시와 새해를 맞아 보내온 문안편지에 감사의 뜻을 전한 설죽 이 선생께 올립니다.
속가의 유생과 빈번히 교류한다며 주변에서 질타하자 "서리에 굴하지 않는 기상과 곧은 향기는 산이건 들이건 차이가 없다.또한 설죽의 고아한 풍모를 어찌 율리의 맑은 지조에 양보하겠는가." 항변했던 일을 전하며 상대를 칭찬한 설죽선생께 답하여 올립니다.의 글을 통해 설죽공의 삶을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 내용 몇편을 스캔해 보았으며 설죽공의 자이신 대은공 이수영(형)에게는 먼저 편지를 보내 주인옹과 성성법으로 깨우쳐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 대은정 이공께 답하여 올립니다도 함께 실어보았다.
첫댓글 번역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