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인연
다 같이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반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 송하여 드립니다.
<열반경>
“나는 진리를 깨닫고 지금까지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겠노라.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하여라.
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다시 말씀하시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법(法)의 몸이니라.
육신은 생사가 있음이나 법신의 몸은 생사가 없는 진리의 몸이므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니라.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니라.
시간은 마치 쏟아 붓는 물과 같아서 덧없음이니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합장 내리십시오
이 열반경에 있는 말씀인데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한 번은 상당히 몸이 아픈 비구가 있었습니다.
이 비구가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고 싶으니
부처님 곁에 데려가 주시오 해도
이 비구가 너무 아프고 몸도 성치 않고
아무도 그를 데리고 부처님 곁에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 귀에,
바람결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 제자가 있는 숲속에서 부처님을 애타게 뵙고 싶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데
아무도 부처님 곁으로 데려오는 자가 없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몸소 그 곳으로 가십니다.
가셔서 하신 말씀이, 비구에게
나는 진리를 깨닫고 지금까지 너희들을 위해서 진리를 설했노라.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세상을 깨달은 것은
바로 진리라고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달았다.
나는 이 진리를 지켜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하였느니라.
이 세상에 진리를 빼어 놓고 진리 가운데 어떤 것도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하신 말씀이 나는 진리대로 행하였노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항상 너희 곁에 있는 것과 같느니라. 그랬습니다.
설사 내가 대각사에 있던, 우리집에 있던, 미국에 가든
설사 이 세상을 하직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어디 계세요?
항상 내 곁에...
‘단장님! 조금 전에 부른 가사 한 번 해 보실래요?’
부처님은 어디 계시다고 했어요? 마음에..
가슴에 있다고 그랬어요.
오늘 정말 제일 좋은 노래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시고, 내 가슴에 계시고,
내 마음에 계시고, 내 생각 가운데 계시고
어느 곳이라도 내가 있든 없던 늘 그렇게 계시다. 그런 이야기지요.
여래는 육신이 아니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여래 또는 부처라고 부르는 그 분은 육신이 아니다.
선언하신 것이야. 이 육신이 아니다.
법의 몸이니라. 진리의 몸이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육신은 생사가 있으나 법은 생사가 없는 진리이므로 영원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이 부처님은
이 거룩한 수미단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이 부처님 아니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부처님,
저 하늘 어디쯤에 앉아 계실듯한 그 부처님이 아니시라
부처님은 뭐라고 했어요? 진리다 그랬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은 다 같은 것입니다.
하루는 아나율이 이렇게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만약 이 세상을 떠나시고 열반에 드시고 나셔서
어디가 覺하시나이까? 궁금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저도 우리 스님, 고암스님 어디에 계실까?
열반하시고 난 후에 어디에 계실까?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어디에 계실까?
우리 어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러십니다.
나는 이 세상에 진리의 몸으로 왔느니라.
나는 진리의 몸을 떠날 때도 진리의 몸으로 돌아간다 그랬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진리의 몸이요
이 세상을 떠난 것은 진리의 몸으로 돌아간다 그랬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내 몸이 나타난 것은 진리의 몸이 현현된 것이고
나타나지는 것이고
내 몸이 사라졌다는 것은 진리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진리)
진리로 돌아가는 것이어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다음 생에 윤회해서 또 다른 몸을 받고 나오면
진리의 몸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 진리의 몸이 태어나서 어떤 업을 받던 안 받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인도의 나가라주나 용수보살이죠, 유명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이 중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중간 사상 그러지요?
중론, 말을 들어본 것 같지요?
유명한 논서입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어려워요.
중론, 백비론, 백론... 여러 논서를 쓰셨는데 상당한 논리가입니다.
얼마만큼 훌륭하면 보살이라고 했을까요? 용수보살이지요.
이 중론에 보면 雙遮雙照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철스님이 雙遮雙照해서 백일 법문을 수도없이 많이 썼습니다.
중론에 雙遮雙照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논서대로 이야기하면 그러니 좀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 연이 작용해서 나타난 세계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
정월대보름, 또 하나 미타재일 또 하나 동안거 해제
오늘이 아주 좋은 날이어요. 그래서 뭐 먹는 날이어요?
오곡밥, 부럼 깨는 날
차 그런 내일 부럼 깨면 안 됩니까?
내일 오곡밥 먹으면 안 돼요?
돼요? 정말 돼요?
아하 되는구나. 오늘 먹어도 되고, 내일 먹어도 되고,
그런데 왜 내일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요?
왜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라고 다 할까요?(우리가 정했기 때문에)
맞습니다. 우리가 정해 놓았습니다. 인간이 약속해 놓은 것이어요.
미국이나 영국 가면 정월대보름 아무리 설명해도 모릅니다.
이해를 못해요? 그것 뭐하는 것이야
부럼 깬다고 해요. 부럼이 뭔데?
오곡밥을 먹는다고. 왜 오곡밥을 먹어야 돼?
다른 날 먹으면 안 되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나 기타 등등은 서로서로의 약속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말의 약속입니다.
말이라는 말은 말이라고 하자
이렇게 지은 집을 법당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렇게 생긴 것을 보면 아하 저것은 법당.
이렇게 생긴 나무는 소나무라고 하자.
저것은 대나무라고 하자. 그래서 말의 약속이어요.
말의 약속은 말 그대로 아주 기가막힌 신비가 들어있어요.
말에 현혹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지요?
미쳐버릴 수도 있어요.
좋은 말을 들어서 사람이 깨달으면 어떻게 돼요.
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들으면 그 가르침대로 하면 선생님도 될 수 있고
이 사회에서 성공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갖고 있는 신비는 끝이 없지요.
그래서 인과 연은 다 함께 작용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고정불변이 없다 그랬어요.
용수보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인과 연이,
인은 뭐요? 씨앗입니다. 말하자면 비유입니다. 이것도
말에 속지 마세요.
성철스님이 항상 말에 속지 말라 속지 말라고 하니까
내 말에 속지 말라고 하니까
교인들, 목사들은 그 말을 이해를 못해서
그것 봐라 성철스님이 내 말에 속지 말라고 했다.평생 거짓말 하고 살았다 그렇게 설교한데요.
그래서 성철스님이 하신 말씀 내 말에 속지 말라는 말에 속지 말라 이 말이어요.
오직 진리를 따라가 봐야지, 관해야지,
어느 말에 따라가다 보면 결국 넘어진다 이 말이어요.
이 세상 일체 모든 것들이 다 인연에 달려있어요.
그래도 이 인연이 고정불변이어요.
고정불변이 뭐냐?
절대 고정불변하지 않는 것, 다 돌고 돌아
오늘 이렇게 인연이 됐다가 또 이렇게 인연이 되고 늘 변해요.
그래서 무슨 말로 표현이 돼요? 무상.
항상되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구 내 이 富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삼성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애플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고
이 세상은 어는 것도 영원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종대왕도 영원하지 않고, 링컨이라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녀요.
다만 그 분이 해 놓은 업적이 커서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뿐이지요.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이 그러신 것이어요.
육신, 생사가 없다.
내가 간 뒤에도 나의 가르침이 너의 스승이다.
그렇게 진실로 가르쳐 준 것이지요.
야부도천선사가 금강경을 논하시면서
금강경에 게송을 하나씩 붙여 놓은 것이 있어요.
기가막혀서 제가 또 소개합니다.
千尺絲綸直下垂라,
천척이나 되는 사륜을 말하면 옛날에는 사륜의 뜻이 두 가지가 있어요
쓰는 것에 따라서
천척사륜 했으니까 千尺이라는 것은 긴 줄인데 낚싯줄이어요. 쉽게 말하면
그런데 絲綸하면 임금님의 칙서입니다.
비단絲자, 綸자는 새긴다 자욱난다 그런 뜻인데
비단에다 임금이 글을 써서 칙서를 내렸어요.
그래서 사륜이라고 했어요.
여기서는 사륜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낚싯줄입니다.
천척이나 되는 사륜을 바로 강물에 드리우니까
一波纔動萬波隨라
한 파장이, 한 낚시가 딱 떨어지니까 물결이 나지요?
물결이 하나만 일면 끝입니까?
또 일어나고 계속 연이어서 또 흐르고 또 흐르고 또 흐릅니다.
한 파도가 일어나니 만 파도가 일어나
자 여러분들 마음속에 어떻습니까?
한 생각이 나면 오만가지 생각이 나요.
오만가지만 일어납니까? 육만 가지 팔만 가지 백만 가지 다 일어나지요.
오늘 하루 종일 망상을 폈는데도 그 망상이 부족해서
내일 펴도 끝이 없고 모레 펴도 끝이 없고
죽을 때까지 그냥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나
왜 그러냐?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 파도를 일으켰기 때문에
夜靜水寒魚不食한데
밤은 깊고 물은 차가워
그래서 고기는 물지를 않아요.
밤은 깊고 물은 차가워서 고기는 물지 않아
滿船空載月明歸라.
배에 가득히 밝은 달빛만 가득 실고 돌아오는구나.
집에 돌아와.
이것이 깨침의 세상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오늘이 해제 날이지요? 깨침의 세상이 이와 같은 것이다.
여러분 여기는 도시라서 재미없지요?
온갖 불빛이 밝으니까 달빛이 희미하지요?
자 시골의 어느 강둑을 걸어가는데 달빛이 휘엉청 밝아.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달빛을 가득히 안고, 짊어지고, 일체 생각을 딱 끊어버리고
걸어가는 그 사람 속에 가장 아름다운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야부도천사의 또 좋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시가 많은데
또 소개하면
山堂靜夜座無言이라
이것은 제가 정말 애송하는 시인데
산당하면 산사를 산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산사에서 고요하게 앉아 있으니, 한 밤에
寂靜寥寥本自然이라
적정요요해,
세상이 고요적적하다고 그러지요? 일체 소리가 딱 끊어졌어.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어떤 소리도 없어, 딱 끊어졌어.
적정요요해
아하 이 자리가 어느 자리냐하면 본 자리
이것이 본래 자연이야.
자연이 뭐여요 바로 부처님 세계여요
그대로 이것이 진리이다 그런 뜻입니다.
何事西風東林野하니
무슨 까닭으로..何事는 무슨 일로
서풍이 더 불어 와, 서풍은 차가운 바람이지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니
一聲閑寒餘長天이로다
찬 하늘에, 아마 겨울이었던 모양이지요?
하늘에 기러기 한 마리가 끼욱~ 하고 소리를 내면서
장천을 지나간다. 긴 하늘을 날아가더라.
그것도 깨달은 소식입니다.
어떤 세계가 그렇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뜻이 무슨 뜻이지요?
기러기가 여름철에 날아갑니까?
겨울이 와서 따뜻한 지방으로 가려고 날아 온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식이어요?
우주가 돌아가는 소식이다. 세상사다.
세상사가 그런 것이어요.
누가 여러분들한테 서운하게 했다고 서운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뭐가 그래요? 세상사가
어느 댓살이나 먹은 꼬마가 지나가다가 누가 묻습니다.
선생이 묻기를 ‘인생이란 뭐지? ’그러니까
‘예 제가 알아요.’
‘뭐냐?’ 그러니까
‘팔자여요’
‘어디서 배웠느냐?’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매일 그럽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인생은 팔자입니다. 팔자대로 사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무엇이라고
여러분들 기러기 한 마리 날아가는 것을 보고서도 세상을 알고
동풍이 불면 동풍이 부는대로 알고
서풍이 불면 서풍이 부는대로 알고
지금 남풍이 제주도 앞바다까지 불어 왔습니다.
곧 이제는 꽃이 피고 잎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따뜻한 봄날이 오게 되어 있어요.
봄날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고.. 이렇게 순환이 돼.
인생도 마치 이와 같이 그러니까 서운 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역경이 있어요.
그런데 역경을 거치지 않으면 익지가 않아요.
정말 가끔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요즈음 정부에서 대통령을 모셔놓고 장관을 뽑는데 청문회 하지요?
별의별 것, 어떻게 그렇게 알아냈는지 몰라. 귀신이야 귀신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겁이 나서 아예 손들어 버려 난 안 나간다고 하고는 싶은데
참 기가막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맑은 물에 콩나물처럼 싹 길러서 갖다 놓으면 얼만 좋을까?
그런데 그것은 햇빛만 보면 금방 시들어.
정말 이 역경도 디디고 저 역경도 디디고 그렇게 살아오면서
발버둥 친 모습들이 보여요.
장관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다 까 보면
20년,30년,40년,50년, 60년 살아오면서 얼마만큼 발버둥쳤는지 몰라.
그 가운데 나라도 정말 남에게 해 안 끼치고,
국가 돈 도둑질 않고, 남 사기치지 않고, 그 정도 했으면 데려다가
일꾼으로 잘 쓰다가 정 안되면 또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보니까 좀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좀 전에 이야기한 雙遮雙照
쌍차는 막을차자입니다. 그냥 遮照여요 遮照
막기도 하고 비추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뭡니까? 닫아지는 것이지요.
닫아지면서 거기에서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
닫힘과 열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어요.
그것이 雙遮雙照입니다.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동시에 닫히기도 하고 동시에 열리기도 해요.
세상일이 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상대성 이론 그랬지요?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펼쳐보면 이것이 끝나서 저것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해야 쌍차도 되고, 막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 것이지
상대가 없이, 대상이 없이 열리거나 막아지는 것이 아녀요.
손바닥은 어떻게 해야 소리 나요? 마주쳐야.
아무리 지 혼자 왔다 갔다 해도 소리가 안 나.
그래서 동시에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전자 음전자 하는데
전극이 막 운동하다가 양전자가 사라지는 동시에 음전자가 있었는데
동시에 음전자가 사라지면 양전자가 다시 나타나.
이것이 쌍차쌍조다 그런 말이어요.
둘 모두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야.
우리 인생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는 동시에 또 다른 모습의 생명이야.
다른 모습의 생명이 다시 이 세상에 다른 모습으로 현현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서운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도 없지요. 우리가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구 나 죽기 싫은데 서운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옛날 스님들, 노스님들이 흔히 그러지요?
옷을 빨리 바꿔 입어야 되는데
어떤 옷? 육신
육신이라는 옷을 바꿔 입어야 된다. 항상 그러십니다.
여러 가지 삼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법신 삼매란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자신의 몸을 삼는 것을 법신삼매라고 말한다.
참선은 정에 든다고 그랬지요?
정에 든 것은 일체 삼매가 딱 끊어진 것을 정에 든다고 그래요.
참선삼매 그렇잖아요.
그러면 망상이 다 끊어져서 진리에 들어가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귀신이 와서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요.
왜 진리로 화현되었으니까
내 이 몸이 진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죽어도 어떤 영혼으로 떠돌고, 어떤 중생으로 떠돌고
무엇인가 무릇 떠돌면 그것은 윤회하게 되어 있어요.
자 부처님은 무로 돌아가든가.
무로 돌아가는 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바로 본 자리
요요적정, 그 자리로 돌아가 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해젯날 왜 그렇게 스님들이 3개월, 또는 3년
6년 고행을 하면서 참선해서 깨닫는다고 하는데 정말 깨달음이 뭘까?
무엇을 깨닫는다고 할까? 궁금하지요?
상견(常見)단견(斷見)은 소동파 이야기를 할게요.
옛날에 내가 한 번 말씀드렸던 것인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가르침이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어요.
소동파라는 분은 당송의 8대 시인에 들어가는 것이어요.
그 중에서 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다고 그러는데
나는 적벽부가보다는 소동파가 깨달은 선시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이 소동파가 아주 어려서, 5살 먹어서 시를 썼대요.
천재지요.
그리고 17살인가에 진사에 합격했어요. 송나라 사람입니다. 송초
진사에 합격을 했는데 어디 나가서 요즈음 말로하면 참판
참판이라고 하면 서기입니다 서기
이 직책을 맡고 있다가 공부 더 해야한다고 짐을 싸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고향은 사천입니다. 저 멀리 아주 멀리 간 것이야.
다시 얼마 있다가 친구하고 그래도 우리 과거 시험 한 번 더 보자.
그래서 시험 봐서 장원급제를 했어요.
그 친구는 차석을 하고... 참 영재들이어요.
그런데 임금한테 입바른 소리를 너무 잘해. 이 젊은 친구가
입바른 소리 하면 예뻐요? 안 예쁘지.
그래도 입바른 소리를 잘 들어야 돼요.
그러다가 이 소동파가 미움을 받아서.... 많은 역사가 있어요.
장안 속에 살면서 제일 심취한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에 심취해서 시간만 나면 절의 스님들 만나서 법담하고
좌선하고 경전 읽고 그래서 소동파가 읽은 책이 만권인데
그 가운데 오천권이 불교입니다.
어마어마하게 책을 읽은 것이야
이 소동파가 하루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 근처에 유명한 선사가 있다는데 만나보지는 않았는데
이름이 승호선사야
내가 가서 그 선사를 한 번 달아봐야 되겠다.
우리 뭐라고 그래요? 흔히 아무개 달아본다고 그러지요?
떡~ 갔습니다. 찾아가서
‘스님! 여기 승호선사가 있다는데 누가 승호선사입니까?’
그 절에 가면 누가 주인인지 대강 알지요?
승호스님 앞에다 놓고 승호스님을 묻는 것이어요.
짐작하지만 그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승호선사가 그럽니다.
‘누구요?’ 그랬어요.
너는 누구냐 이 말이어요.
제가 옛날에 호주에 잠시 있는데 어느 젊은 친구가 하나 왔어요.
한참 이야기하고 돌아가는데 등 뒤에다 대고
‘Who are you?' 너는 누구냐? 하니까
확~ 돌아서더니 ‘저 머리 깎으면 안 돼요?’ 그래서 중 만들었어요.
영국 사람인데 자 너는 누구냐?
그러니까 이 소동파가 하는 말이 秤가입니다 그랬어요.
그런데 중국에는 성이 秤씨인가는 없습니다.
秤자가 저울칭씨입니다. 저는 저울입니다 秤 그랬어요.
그러니까 스님이 무엇하는 칭이냐? 칭가냐?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 온 것은 스님을 한 번 달아봐야 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악~~ 몇 근이나 되는고?’ 그랬어요.
이 소리가 몇 근이냐 이 말이어요. 콱 막혔습니다.
근 수를 달을 수가 없어.
그러다가 스님이 머뭇거리니까 ‘마음 마음하는데 내 마음은 몇 근이나 되는고?’
또 물었어요. 아무소리도 못해.
‘내 마음은 그렇다고 치고 네 마음은 몇 근이나 되는가?’ 하고 또 물었어요.
아무 소리 못했어요.
얼굴이 발가져서 아무소리 못하고 가버렸어요.
뒷퉁수를 데게 맞았잖아요. 스님한테 혼난 것이야.
아하 그것 정말 듣던데로네
그래서 분해가지고 그럴 때는 어디에 가요?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으로)
다른데 가서 분풀이는 좀 해야 돼.
그래서 소동파는 승호스님한테 창피를 당하고서 歸宗寺로 갑니다.
歸宗寺가서 늙은 스님이나, 노스님이나 놀려주고 와야 되겠다.
그래서 귀종사에 가서, 늘 잘 아는 스님인데
스님한테 가서는 차도 얻어먹고
스님한테 글도 배운답시고 여쭙기도 하고 그러고 다녔는데
오늘은 기분이 되게 나빠
승호선사한테 되게 당했으니까 오늘은 귀종사에 가서 운거요원선사를 만나서
내가 놀려줘야 되겠다.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서 떡 갔어요.
운거요원선사가 보니까 소동파가 왔거든
소동파는 그때는 상당히 지휘가 있었어요.
요즈음으로 말하면 군수정도 됐어요.
군수가 오셨는데 나이가 적어도 옛날 애들이 아니잖아요.
요원선사가 말하기를 절의 의자가 뭐 그리 좋겠어요.
‘자리가 누추하지만 여기 군수님 앉으시지요’ 그랬단 말이야
이 소동파가 하는 말이
‘선사님! 저는 누추한 곳은 잘 안 앉습니다.
스님을 의자 삼아서 앉으면 어떻겠습니까?’ 했어요.
요원선사가 그랬어요.
‘사대가 본무이거늘, 사대육신 그러잖아요.
사대가 본래 없거늘, 텅 비었는데, 어느 사대에 가서 앉으려고 하는고?’
하고 물었어요.
또 꽉 막혀 버렸어요.
이것 어떻게 하나 하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선사가 다시 한 마디 합니다.
‘내가 너에게 그 동안 죽~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곧 마음의 세계이니 마음에 세상을 다 이루기도 하고
놓기도 하고 한다 했는데 너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 하고 다시 물었어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서 뚝뚝 털고 나서면 ‘스님!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갔어요.
이 소동파가 두 선사님한테 당하고 나서 너무 창피해.
나 같아도 창피할 것 같아요.
너무 창피해서 말을 타고서 하염없이 말 잔등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대가 本無한데, 사대가 본래 없다고 하는데
그래 스님이 옛날부터 그랬지. 사대가 본무 해. 원래 없어.
마음도 오고감이 없고, 그렇다고 마음이 낳기도 하고 놓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지. 말 잔등에서 그냥 골똘이 생각하는데 말은 주인이
채찍을 하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를 몰라.
길이 있는 데로 한참을 가다 보니까
이 소동파가 말잔등 위에서 앉아 있는 것이어요.
얼마나 갔는지 몰라. 날이 어두웠어요.
그런데 말이 간 곳이 어디냐 하면 큰 폭포수 밑에까지 간 것이야
폭포 밑에서 말이 갈지를 몰라
찬바람이 휙~ 날리면서 폭포수 소리가 들려
그 소리 듣는 순간 확연히 깨달았어.
와~~ 이것이구나. 그래서 그 자리에서 시를 하나 짓습니다.
그 시가 뭐냐 하면
溪聲便是長廣說이라.
시냇물소리 폭포소리 모두 다 설법 아님이 없음이요.
장광설이야. 부처님 설법이야
山色豊非淸溪身이라
이 산색이 산천 삼라만상 모두가 깨끗한 부처님 몸 아닌 것이 없다
夜來八萬四千偈라
어젯밤 다가온 무량한 이 소식이
他日如何擧似人하랴.어떤 곳에는 似을 보일示자로 쓴 곳도 있다
다른 날에 이 좋은 글을 누구를 위해 설해 줄까
그러고서 그는 그 가까이에 있는 동림사에 가서 밤새도록
동림사 주지하고 깨달음 경지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어요.
‘스님! 제가 뜻밖에 저 폭포수 아래에서 큰 보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뭐라고 하신 줄 알아요?
‘그 보물은 아무나 가서 줍는 것이다. 너만 혼자 주운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럽니다.
공기를 네가 숨 쉬고 값 치룬 적이 있느냐?
네가 하루 종일 햇볕을 받고 고마워서 값 치룬 적이 있느냐?
네가 동림사에서 잠자고 밥 먹고 가면서 값 치룬 적이 있느냐?
이상 그 수많은 공덕들이 값을 안 치러도 다 그 자리에 있다.
게송이 하나 더 있어요.
西林壁에서 지은 것인데 좋아서 하나 뽑아 왔어요.
橫看成嶺 側成峰이요
눕혀보면 고개요 세워보면 봉우리라
遠近高低 各不同이라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은 모습이 각각 다 달라.
不識廬山 眞面目이라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어라.
只緣身在 此山中
다만 내가 이 산중에 있다.
그 산을 보면서도 산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인간사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리로 눕혀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눕혀보면 저렇게 보인다.
저 산령도 눕혀보면 산령인데 봉우리도 되고
그런데 내가 어디 있는가 하고 가만히 살펴보니까 내가 어디 있어요?
이 산중에 있어, 여산에, 여산 가운데
여러분들이 어떤 산중에 있습니까? 지금?
사바세계 산에 있습니다. 수미산 속에, 어디 갈 곳이 없어요.
적벽부가가 굉장히 긴데
아까 소동파 이야기하고 적벽부가가 뭐가 유명한가 궁금할 것 같으니까
한 구절만 소개합니다. 한글로만 소개할게요.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절벽은 깎아지른 듯 천척높이로 솟았다.
산은 까마득히 높은데 달은 너무 작구나.
강물 줄어드니 바위 돌들이 들어난다.
인생은 바람결에 날리는 먼지와 같으니 무엇 때문에 그리들 애태우는가.
이 적벽부가는 마지막 인생에서 또 임금한테 쫓겨나가지고 중국 해남도 있지요?
해남도로 귀향살이 갑니다. 귀향살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다가 도중에 죽지만
그 적벽을 지나갑니다. 그 적벽이 어느 적벽이어요?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이 있지요?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미 큰 적벽이 있고 그 앞에 강물이 흘러
거기를 지나면서 세상을 횡으로 뉘어 놓고 보고서 지은 시입니다. 이것이
다시 읽어드리면 좀 다릅니다. 조금 전에 들은 것하고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절벽은 깎아지른 듯 천척높이로 솟았다.
산은 까마득히 높은데 달은 너무 작구나.
강물 줄어드니 바위 돌들이 들어난다.
인생은 바람결에 날리는 먼지와 같으니 무엇 때문에 그리들 애태우는가
많은 영웅호걸들이 얼마만큼 자기 주장들을 하기 위해서 쓰러졌습니까?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습니까? 말도 못하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높은 나무 끝에 매 한 마리 앉아서
강물 속을 들려다보면서 또 어떤 먹이 감을 찾는가.
물소리가 나뭇가지에 걸쳐서 밑에 쳐다보고 있지요? 무엇을 잡을까
물소리만 그럽니까?
김정은이가 2천5백만 북한동포를 넣고서 어떻게 고생을 시킬까 연구하는 것 같아요.
그저 빨리 손들고 살려주십시오 하고 남한에만 오면
우리 7천5백만 민족이 잘살 수 있는데 그것을 몰라.
물건에는 각각 주인이 있는 것이거니
어느 것이든 내 것 아니면 털 끝 하나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강물위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 산간에 비추는 달빛 누구라도 즐긴다.
누구라도 가져도 아무리 써도 값을 달라 안는구나.
친구와 권거니 들거니 술잔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친구와 잠들었는데
벌써 새벽이 온 줄도 몰랐네.
어느 분이 그랬어요.
닭 목을 비틀어도 뭐가 온다고 그랬어요? 새벽은 온다고 그랬지요?
김영삼 전대통령이
닭하고 아무 상관없이 새벽은 와.
이 분이 친구하고 술잔을 기우리다 보니까 벌써 세월이 많이 흘러서
시간이 가서 새벽이 왔어. 그 새벽이 어떤 새벽이어요?
자기가 귀향살이에서 풀려서 병든 몸을 끌고 황제를 뵈러 가는 중이어요.
그렇지만 자기는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적벽을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이 적벽을 보지 못한다.
알은 것이어요.
이제 세상을 살면서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다보고
이제 우리 스님들 해제했다니까 우리는 결제한 바도 없으니까
해제할 것도 없지요?
마음 편하게 잡숫고 오늘 정월 대보름이니까 오곡밥 드리고
부럼도 받아가시고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법문 마칩니다.
성불하십시오.
장산 합장
(불기2557년 1월 미타재일 대각성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