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 구이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제 식당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가장 중요한 사진이 없었다.
음식을 앞에 놓으면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보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가끔 특별한 혹은 특이한 음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다. 어제도 그랬다. 카자흐스탄 음식점에 갔더랬다. 막걸리를 즐기는 나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으러 가자, 고 결정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라더니 막상 가니 카자흐스탄이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데, 그게 중국만이 아니라 러시아 쪽도 아우르고 있었나 보다. 같이 일하는 러시아인 파트너와 몇 번 왔던 식당이라고 했다.
암튼 이 분이 음식을 샐러드부터 스프와 고기 등을 골고루 주문을 했다. 더불어 맥주도. 이 식당에서 파는 맥주는 종류가 네 가지였다. 그 네 가지를 죄다 마셔보자, 고 해서 한 병씩 주문했다. 어떤 맥주를 마실 것인지는 일단 시음을 한 뒤에 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음... 호프 맛이 강하구만.
용량이 500밀리미터쯤 되는 맥주 한 병을 7명이 유리잔에 조금씩 따라놓고 맥주 시음단이라도 된 것처럼 음미하면서 마셨다. 다들 한두 마디씩 한다. 이렇게 4가지 맥주를 도수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마셨다. 처음 마신 3번 맥주가 가장 낫다고 의견 일치. 그래서 이후로 맥주는 3도가 조금 넘는다는 3번 맥주만 마셨다.
맥주를 맛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사진을 찍고 싶다, 는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맥주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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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갈비인데 절반쯤 먹고난 뒤에 사진을 찍어야겠다, 는 생각이 퍼뜩 났다. 그래서 꼬라지가 이렇다.
다음에 나온 가지에 토마토와 치즈를 얹은 샐러드도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일행이 전부 7명인지라 맛만 보는 수준이었다. 음식 역시 가능하면 이것저것 종류별로 먹어보자, 고 하면서 종류는 많이 양은 조금 주문했던 것이다. 샐러드는 거의 입맛만 다시는 수준이었다. 먹긴 먹었는데 먹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남는 그런.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양고기 만두였는데, 양고기 속이 들어가서인지 다들 포크 내밀기를 꺼려하는 눈치다. 4개를 7명이 나눠 먹으면 잘해야 반 개가 차례가 오는데, 내가 1개 반을 먹었다.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먹을 만 했는데, 내가 망설이지 않고 덥석 먹어치우자 남은 1개를 나더러 먹으라고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양갈비와 양꼬치 구이 등이 나왔다. 음식들 위에는 잘게 채친 양파가 얹혀 있어서 같이 먹으면 느끼한 맛을 상쇄시켜 준다. 그리고 결정적인 음식, 청어를 소금에 절여서 삭힌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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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꼭 짬뽕 같다. 스프의 일종이라는데 국수처럼 보인다. 면발은 쫄깃거렸고, 국물은 약간 칼칼.
낯선 음식에 대한 탐구정신은 아마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앞서지 않을까? 내가 여자라서 하는 말이다. 홍어처럼 소금에 절인 청어를 삭힌 것이라고 하니 다들 먹기를 망설인다. 음식을 주문한 일행은 맛이 괜찮으니까 먹어보라고 하는데, 서로 눈치만 본다.
이럴 때,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나, 가장 먼저 청어 조각에 포크를 꽂았다. 양파와 삶은 감자를 함께 먹었다. 비린내, 나지 않는다. 약간 살이 물컹거리지만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씹히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도 내가 가장 많이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포크를 잡아끄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잘게 채친 양파를 얹어서 먹으면 뒷맛이 개운하다.
먹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이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는데 결정적으로 청어를 못 찍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청어 사진을 찍었다고 착각한 것일까? 하여간에 착각도 가지가지 한다. 맥주, 별로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음식 맛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한데 같이 갔던 남정네들은 자꾸만 속이 니글거린다면서 속을 잠재울만한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2차는 대구찜을 한다는 식당으로 가서 삶은 꼬막이랑 대구찜을 먹었다.
어쨌거나 먹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사진은 딱 3장 찍었다. 그나마도 다행이지. 남기긴 남겼으니.
올리브의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