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4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게다가 사음 영감에게 끌려오며 악다구니를 부리며 심하게 울었던 탓인지 도대체 어지러워 오래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심한 어지러움 속에서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황산강 2부 코피(4회)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깼다. 깜깜했다. 이렇게 깜깜한 어둠은 난생처음이다. 그야말로 어둠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어둠에 눈이 조금씩 익었다. 둘러보니 희끄무레한 게 보였다. 문이거니 싶어 기어가려 했다.
오른쪽 손목이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왼손으로 부목 댄 오른 손목을 잡았다.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고정식이 아니었다.
송종우였다. 일어나서 조심조심 희끄무레한 곳으로 갔다. 문이다. 문을 열었다. 문틀에 걸터앉아 발로 더듬거렸다. 짚신이 밟혔다.
방안 어둠에 눈이 익어서 밖은 그래도 조금씩 분간이 되었다. 사립문 옆 나무울타리 앞에 섰다. 왼손으로 중우(바지)를 힘들게 내리고 오줌을 눴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별이 엄청나게 많았다. 하늘을 가로질러 희끄무레한 구름 같은 것이 강처럼 걸쳐 있었다. 저게 은하수이거니 했다.
안골 쪽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종미가 잠결에 칭얼대는 소리 같았다. 어쩌다 깨었을 때 안방에서 들리던 소리 같기도 했다.
야시 소리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야시한테 홀리만 삐도 못 추린다. 우리 새끼 지금 빨리 들온나. 안 춥나.”
할매가 방문을 열고서 나를 불렀다.
화장실, 아니 뒷간, 아니 통시가 너무 더러웠다. 냄새가 지독했다. 구더기도 무서웠다.
그래서다. 오줌은 울타리에 누었지만, 대변을 볼 수가 없었다. 사흘째. 얼굴에 붓기가 사그라졌다.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부러진 손목도 잘 맞춰져서 부었던 것이 가라앉으며 낫고 있다.
다만 대변을 볼 수 없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송종우로서의 삶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 와중에 고정식에 대한 기억은 꿈으로 잊혔다.
나흘째 아침.
여전히 통시에 가지 못했다. 똥을 누지 못해 새벽부터 계속 끙끙 앓았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가 솥에 물을 데웠다. 잿물을 내렸다. 뜨뜻한 물을 바가지에 담아 내 엉덩이를 들게 했다. 잿물을 넣고 씻겼다. 딱딱하게 구슬처럼 굳은 덩어리들이 잿물에 미끄러워졌던지 엄마가 맨손으로 파내었다.
제법 많이 파냈다.
그러고 나서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한 무더기 시원하게 쏟아냈다. 거기엔 피가 제법 묻어 있었다. 그러고 나자 날아오를 것 같았다.
고정식은 송종우가 꾼 꿈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원동소학교 입학식 날이다. 우리 범보(넓은 보) 마실에서도 형님들 여럿이 원동까지 오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아래로 등이나 가슴에 검정 광목 책보를 둘러멨다. 여럿이서 같이 창가를 부르며 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마실 안 누나들은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나도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보내달라고 여러 차례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약속해주지 않았다. 애를 많이 태웠다. 그런데 정말 하늘님이 도와주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큰 풍년이었다.
오늘은 짚신을 제쳐두고 난생처음 고무신을 신었다. 양말이 없어서 감발을 했다. 짚신이 아닌 꺼먹고무신을 신었다. 솜 넣은 광목 중우적삼도 먹물 들인 새것이다. 왼쪽 가슴에 옥양목 손수건을 달았다.
엄마도 옥양목 버선에 안방 실겅(시렁)에 얹어두었던 흰 고무신을 꺼내 신었다. 어제저녁에 잿물을 내려 누리끼리했던 것을 짚수세미로 박박 씻은 덕에 고무신이 새 신발처럼 하얗다.
광목에 검정 물을 들여서 솜 넣어 누빈, 발목까지 오는 광목 검정 치마를 입었다. 시집올 때 입었다던 흰 옥양목 저고리에 솜을 넣어 누빈 광목 검정 배자도 걸쳤다.
머리도 잘 빗어서 나무 비녀로 쪽을 지었다. 무슨 기름이라도 발랐는지 쪽진 까만 머리에서 반들반들 윤이 났다.
“차려입으니 엄마도 참 이뻐.”
“대가리 시똥도 안 버꺼진 놈이 뭐 이쁘다마다 하고 있노.”
입학한다고 어제 원동 장터 이발소에 가서 스님처럼 빡빡 밀었다. 선득선득한 내 머리 위에 아버지가 솥뚜껑 같은 손을 얹었다 내렸다. 정수리가 다시 선득거렸다.
“종우 지 눈엔 이미가 젤 이쁘것지.”
할매가 종미를 안고서 한마디 하셨다. 할매 품에 안긴 종미가 ‘엄마’라고 하며 버둥거렸다.
엄마 손잡고 안골에서 내려오는 도랑을 건넜다. 사월 초하루, 봄볕이 따사롭다. 도랑 물가에는 푸른 풀이 제법 탐스럽다. 범내를 따라 원동역 쪽으로 내려갔다.
사음 영감 증손녀가 제 엄마 손잡고 저만큼 앞서간다. 저 윗마을 새보로부터 우리 마을 범보까지 여학생은 사음 영감 증손녀인 ‘후지코(富子)’가 첨이다.
우리 마실 아무도 한자 소리대로 ‘김부자’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렇게 불렀다가는 후지코 할아버지인 김 주사가 혼을 냈다.
후지코는 갈래머리를 했다. 솜 넣어 누빈 새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물을 들인 옥양목 솜치마를 입었다. 꺼먹고무신이 아니라 흰 코고무신을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