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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 …… 지금의 언어도 좋고 앞으로의 언어도 좋다. 지금 나도 모르게 쓰는 앞으로의 언어. |
김수영의 산문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김규항 씨의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라는 칼럼을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고, 그 평가의 진위를 가려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한참을 있다 군 시절 휴가 때 책을 사고, 또 한참 뒤인 지금에야 그의 산문을 완독해보았습니다. 그를 만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네요.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글을 읽었습니다만, 그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는 친구가 되기엔 너무 단호하고, 외면하기엔 측은하며, 사랑할까 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차려놓은 술상을 엎듯 자신이 가진 부끄러움을 낱낱이 고해버립니다. 그러나 그 고약한 성미가 지겨워 책을 덮을라치면 어느 샌가 그는 남루하지만 눈빛 형형한 선비로 변해 '사랑이 없는 정치가 만드는 근대화는 그 완성이 즉 자멸(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이며 그 속에서 시인은 '촌초의 배반자(시인의 정신은 미지)'가 되어 끝없는 새로움으로 기성을 탈피하여 '언어를 통해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살(생활현실과 시)'아서 '불필요한 어리석은 사랑의 일(무허가 이발소)'을 행해야 한다는 무지막지하게 치열하고, 치열해서 멋진, 너무나 근본적이기에 너무나 전위적인 사랑을 설파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할 자유를 위해 자신을 세상의 적으로 돌리는 전사 연 하다가도, 동시에 술을 먹고 아내를 패고 창녀를 사다가 욕정을 풀고 고리대금을 해 생활을 꾸리는 비겁한 찌질이로 자신을 발가벗겨 버리죠. 그래서 저는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입니다. 그는 제 스승도, 친구도, 남남도, 원수도 될 수 없는, 읽을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촌초의 배반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어떤 고정된 모습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것이 그가 규정한 시인의 정의에 가장 충실한 글을 쓰려고 했던 결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관계를 고정시킬만한 이름들을(스승, 친구, 아랫것 등) 때만 되면 뒤집어버리는 그의 입체적인 자기 폭로 속에서 반전 있는 한 남자를 봅니다. 멋진가 하면 찌질하고, 찌질한가 하면 멋진 그의 반전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과하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모든 글이 다 '싸움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참여파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독재에 시로써 저항한 사람' 정도로 단순화시켜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싸움은 그렇게 간단한 정리로 넘어갈 수 있는 1차원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그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여하한 행동(p.50 요즈음 느끼는 일)' 모두를 용인하는 것이었고, 그 행동은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p.201 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원래가 최고의 상상인 언어(p.378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인 시를 통해서, '단순한 전달과 노예의 언어(p.283 히프레스 문학론)'로 굴러 떨어진 언어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작업이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p.220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작업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 모든 것들과 싸우는 시인은 그 적이 특정 정당이나 단체, 인물이 아닌 '우리들 대 이여, 혹은 나 대 전 세상(p.241 시의 뉴 프런티어)'이 되어 '선천적인 혁명가(p.239 시의 뉴 프런티어)'가 되는 것이지요. 타자를 상상하고 사랑을 시도하는 모든 행위가 '완벽하게' 용인되기 전까지 시인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분명한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론 자유를 막는 정치에 화를 내고, <이만하면> 언론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무지한 여류 문인에게 화를 내고,
'...창작의 자유는 백 퍼센트의 언론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트가 결한 언론자유는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p.178 창작자유의 조건'
기성을 탈피해서 사랑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도 없이 사랑하는 '척'만 하는(진정 한국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사상에 입각하지 않고 어설픈 서구의 시 style만 잘난 척 하며 따라하는) 후진 문단에 화를 내고, 마찬가지로 사랑할 대상과 진심만 있으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믿는 후진 참여시에 화를 내고, 화를 내다가도 애놈과 여편네가 있는 가정에 묶여 안락을 느끼는 자기에게 화를 내고, 화를 내기만 하고 하는 게 없는 자기에게 화를 내고, 화를 내고 화를 내고 화를 내다 술병이 나버린 자기에게 다시 화를 냅니다. 이렇게 전 세상에 대고(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누구보다 꾸준히, 격하게 화를 낸 결과가 바로 그의 글이 된 것이죠. 그래서 그의 글은 화병이 나 소리치다 콜록거려 나온 가래 같은 질척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복사 씨와 살구 씨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을 꿈꾼 시인이었고, 그것을 쫄지 않고 말하고 행하기 위해선 '김일성 만세'도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요구한 (당시로선)정치적 급진주의자, 시인이라는 자의식조차 버리고 타인에게 몰입하기 위해 모든 기정사실을 적으로 돌릴 것을 요구한 전위예술의 옹호자였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밝혔지만, 그는 너무나 근본적이었기 때문에 가장 전위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걸 지키며 살려 했던 이 남자가 6.25와 북진 통일론과 박정희 정권 틈바구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 속에서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힘든 세상살이가 결국 그의 찌질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놀라는 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찌질함마저도 싸움의 도구로 만들어 글을 써냈다는 점입니다. '판문점의 감상' 시작노트(p.461) 같은 걸 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남자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명분 밑에 그와 반대되게 살고 있는 하찮은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대비해 놓습니다. 판문점이란 이름 아래에 돈을 떼먹은 한 여자를 '년'이라고 부르는 자기의 모습을(p.461 판문점의 감상), 순수문학이란 이름 아래에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기의 모습을(p.102 금성라디오), 지식인의 이름 아래에 날림 번역으로 돈을 받아먹는 자기의 모습을(p.88 모기와 개미) 일부러 동시에 붙여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에 대한 체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상의 실현은 나와 내 주변이라는, 가장 아래서부터 변화시켜야 하는 작업이었기에(가만히 생각해 보니, 역시 원수는 내 안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우리 집 안에 있고 내 안에 있다. 우리 집 안에 있고 내 안에 있는 적만 해도 너무나 힘에 겨웁다. p.130 삼동 유감) 이 남자는 그 폭로를 통해서 먼저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이 변화를 위해서 받아든 과제가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공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쉬운 듯하지만,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뜨거움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과오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이를 최선을 다해 고치려는 각오가 없이는 감히 써낼 수 없는 글들이 이 남자의 산문집 안에는 십몇 년에 걸쳐 꾸준히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인간은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을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p.185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찌질함이 치열함을 위한 재료가 되는,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의 인생이 되는 반전의 매력-그것이 이 남자의 매력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선 지식인을 이렇게 규정하더군요. '자신과 자신이 연대한 계급 안에서 나타나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자'라구요. 김수영이 죽은 게 68년이고, 사르트르가 그 책을 엮은 계기가 된 도쿄-교토 강의가 있었던 게 65년이니, 김수영이 사르트르의 주장을 접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피지배계급과의 철저한 연대'를 주장하는 그 책의 정의가 김수영한테 100% 정확히 들어맞지도 않을테구요. 그렇지만 사르트르의 주장을 '누구보다 말대꾸를 잘하고, 앞장서서 뉘우치는 자'라는 간단한 말로 바꿔 바라보면, 김수영이란 사람은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p.184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이 되고자 했고, 이를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역설적으로 그런 찌질한 자신을 만들어낸 60년대의 한계를 고발했습니다.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그는 '시대의 한계를 자신의 한계로' 만드는 데 있어 누구보다 치열했던 사람이었고, '눈앞에 주어진 모든 과제를 근본적으로 만드는' 데 있어 아직까지 이 남자만큼 성공한 사람을 저는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수영은 지식인이란 정의가 있기 이전부터, 지식인을 자신의 인생으로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이 남자를 부를 말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식인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고독과 절망을, 그리고 고독이나 절망조차 용납하지 않는 생활(p.31 무제) 속에서 속물도 속물 아닐 수도 없었던 이 남자의 남루함을, 저는 감히 '간지난다'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는 진정, 조선반도의 후줄근한 간지남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