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을에 호기심 많은 소년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늘
궁금했던 소년은
마법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마법사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비법을 알려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긴 여행 끝에 마법사를
만나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 말하고 소원을 들
어주십사 간청했다. 마법사는 소년에게 요술 안경을 주었다.
"이 안경을 쓰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단다.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절대로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소년은 설레는 마음으로 요
술 안경을 쓰고 마을로 나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이 환히 보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정한
척 하면서 소년을 비웃고
미워하며 질투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믿었던 친구들
의 그런 마음을 보았을 때 소년은 절망했다. 곧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마법사의
말을 이해하게 된 소년은 요
술 안경을 돌려주기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났다.
몇
해 전인가부터 작은 글씨가 보이질 않아 안과에서 돋보기 하나 얻어온 뒤 글씨는 그런대로 보여 좋은데
텔레비전 화면 하단의 금방 바뀌는 자막을
읽지 않고도, 동생을 넷씩이나 집에 남겨두고 자카르타 백화점
앞 육교에서 구걸하는 아이의 흑진주 같은 눈, 1달러로 하루를 견디는 멕시코 브라질
나이지리아 빈민들 행
색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명분 없이 수십수백만 달러를 천연스럽게 수수(授受)하는 인간들 시커먼 속까지
너무 선명하게
보이니, 원!
- 박동진의 「돋보기 유감」
요술 안경을 돌려받은 마법사는 소년에게 요술 단추를 선물로 주었다.
" 이 단추를 가슴에 달면 다른 사람들이 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단다."
그 후로 소년은 어찌
되었을까? 결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그 끝에 이런 상상은 해본다.
일주일에 한 번 '요술 단추를 가슴에
다는 날'로 정하고 온누리 사람들이 함께 해보는 거다. 적어도 요술 단
추를 단 그날만큼은 반듯한 마음을 보여주려고 서로 노력하겠지. 반복하다 보면 습관처럼
마음의 근육들이
투명해져 우리들의 우울한 뉴스도 밝은 쪽으로 물들지 않을까? 물들어 아름답게!
물들어 따뜻하게! 그리하여
어느 날부턴가 뉴스의 하단으로 흐르는 자막들은 꽃이고 별이고 새가 되는 거지. 오월의 산들바람, 덩굴장미
울타리, 숲속의 오솔길이 되는 거야. 요술 단추는 마법의 나라에서 왔으므로 세상이 마법처럼 변한다 해도 전
혀
놀랄 일은 아니다.
돋보기로 보는 티브이의 아픈 세상 외면하지 않고 염려의 마음을 갖게하니 고맙다. 내
돋보기는 타인의 마음
을 훔쳐보기만 하는 요술 안경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무엇보다도 돋보기에 비친 시인의 詩에 물들어 절
로 시 훔치는 도둑놈이 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