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지역 네트워크운동 조사 보고
정리 : 김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만난 사람 : 홍선(관악사회복지), 이주희(관악사회복지), 이명애(난곡주민도서관)
조사자 : 김현/이창림/이해정
날짜 : 2011년 5월 20일
※ 관악지역 네트워크운동을 조사하기 위해 세 명의 활동을 만났다. <관악사회복지>의 홍선 씨와 이주희 씨, 그리고 <난곡주민도서관>의 이명애씨가 그들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이주희 씨가 20대 후반이지만, 중학생 때부터 청소년 동아리 ‘햇살’에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신참이라고 보기 어렵다. 벌써 횟수로 12년째다. 모두 관악지역의 베테랑 활동가들이다. 오전에는 홍선 씨가 어려운 시간을 내주었고,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 이주희 씨와 대화를 나눴다. 이명애 씨와는 <난곡주민도서관>에서 오후에 만났다. 세 활동가가 관악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네트워크 활동을 꿰뚫고 있는지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관악에서만 20여 년 간의 활동 경험이 있는 이명애 씨와 지역복지운동 영역을 초기부터 개척한 홍선 씨, 그리고 청소년 동아리 ‘햇살’의 대부분의 역사를 경험한 이주희 씨 정도라면 관악 지역 네트워크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어차피 누구를 만나든, 전 영역을 소상히 안내해줄 활동가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대체로 관악 지역사회 네트워크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활동가임에는 틀림없다. 이 세 활동가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정리해보기로 한다.
1. 단체 중심의 네트워크
<관악사회복지>의 조직 구조는 크게 이사회와 운영위원, 사무국으로 나뉜다. 운영위원회는 각 모임의 대표들로 구성된다. 모임으로는 청소년 모임인 햇살, 여성 자원봉사 모임인 해오름, 직장인들의 자원봉사 모임인 꿈꾼이, 청년모임인 오존, 그리고 은빛사랑 등이 있다. 알뜰 환경 매장은 3호점까지 있다. 이곳은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곳이다. 이런 모임의 대표들이 당연직으로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회원들 중에서 추첨하여 당첨(?)된 분들과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위촉되어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운영위원회는 한 달에 1회 모임을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악사회복지>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로는 ‘건강지원네트워크’가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네트워크라기보다는 직접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분들을 위한 지원그룹이다. ‘건강지원네트워크’는 관악구의사회와 한의사회가 <관악사회복지>와 함께 의료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주민을 발굴하여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지불하는 본인부담금을 감면해주는 활동을 일컫는다. <관악사회복지>, 의사회, 그리고 한의사회가 일종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실시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회의구조는 없다. 2003년부터 시작했고, 횟수로 9년째다.
최근 가장 활발한 네트워크 사업으로는 ‘올바른 참여예산제 제정을 위한 관악네트워크’(관악참여예산네트워크)이다. 복지예산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던 <관악사회복지> 입장에서 이 네트워크에 결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동안 해왔던 복지 관련 예산분석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관악의 지역운동은 개인 간 네트워크보다는 단체 간 협력이 매우 강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단 회의를 갖추고 있고 실무자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 동안의 네트워크 역사를 되돌아보면 개별 활동가나 주민들이 주도하는 네트워크는 거의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관악이라는 지역은 단체들의 활동이 왕성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참여예산네트워크의 경우는 개인을 기초로 해서 운영하자는 의견이 많지만,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당분간 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관악주민참여예산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는 <관악사회복지>를 비롯해, 관악주민연대, 푸른공동체 살터, 도림천살리기 주민모임, 관악청년회, 자활센터, 봉천나눔의 집 등이다. 촛불집회 이후에 만들어진 ‘관악참여시민연대’도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세 개의 정당도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단체, 교육운동단체, 학교운영위원협의회 등도 참여함으로써 가장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관악구청이 참여예산조례를 입법예고한 2010년 10월을 기해서 제안되고 만들어졌는데, 관악구가 제시한 조례가 참여예산제도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역운동단체들은 관악구청에 지역단체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악주민연대가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면서 만들어지게 됐다. 참여예산네트워크는 궁극적으로 동네 단위에서부터 움직임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지역단체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제안을 하게 된다.
2. 깊은 상처를 남긴 개인 간 네트워크
이에 비해 2010년 6.2지방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악유권자연대’는 단체 베이스가 아니라 개인 멤버십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다. 관악유권자연대는 그 동안의 역사 속에서도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연대활동이었다. 정당과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깨진 네트워크 활동이라고 홍선 국장은 진단한다. 정당과의 연대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속도의 차이로부터 온다. 시민사회단체의 연대 목적은 단체마다 다양할 수 있으나 정당의 목적은 분명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선거 시기에는 당론의 범위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연대활동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를 따져야 하는 단체의 입장에선 정당의 속도는 버겁다. 또 하나, 시민사회단체가 버거운 점은 정당과의 행동에 대한 외부 시선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정당의 지지부대 역할, 혹은 들러리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단체의 행보가 발 빠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입장을 같이 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같은 사안을 두고 정당은 정당성만 획득하면 연대했던 단체들과 상의하지 않고 일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참여예산네트워크를 하면서도 단체와 상의 없이 의회 차원에서 진행함으로써 단체가 황당해했던 상황도 있었다. 정당은 정치적 판단을 그들 스스로 했던 것이다. 반면 지역단체들은 매우 심각한 행위로 보았다. 문제는 정당은 그런 간극의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빠른 속도를 지향하는 정당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당의 입장에서 연대의 주체로 시민사회단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크게 실이 될 것이 없다. 사실 정당은 정당 간 연석회의를 통해 사안별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시민사회단체는 그들끼리 네트워크를 통해 사안에 대응하면 깔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당 간 연석회의는 한국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성을 지닌 정당이 없거니와, 지역차원에서 정당 간 정책협의를 만들어나가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정당은 매개자로 시민사회단체를 희망하는지 모른다. 경험의 부재일 수도 있지만, 역량의 부재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조건에서 정당은 시민사회단체를 등에 업고 무엇인가 이루려다보니 시민사회단체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에서부터 갈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속성들 때문에 가치를 지향하는 연대에서는 지속적으로 손을 잡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참여예산네트워크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직 합의된 내용은 아니지만, 대체로 조례가 제정되는 순간까지 네트워크가 유지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이후의 과제는 보다 가까이 주민 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참여예산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갈릴 수도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는 주민들을 조직하고 교육하고 심의하는 훈련을 기를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관악사회복지는 주도적으로 네트워크를 제안하는 단체는 아니다. 관악주민연대가 가장 활발히 제안하는 편이다. 진보정당들의 제안도 적지 않다. 관악사회복지는 주로 러브콜을 받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복지라는 영역만 다루다보니 큰 틀의 운동을 제안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무적인 역량이 여느 단체나 정당보다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역복지협의체는 민관협의체다. 지역단체는 물론이고 행정기관, 복지관 등이 참여하는 폭넓은 연대기구다. 여타의 네트워크 조직보다 활동역량의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직의 생리가 완전히 다른 행정부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지역복지협의체는 법적인 권한이 뚜렷치 않은 애매한 협력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의 자세도 애매하다. 가령, 이 협의체를 통해 무엇인가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예산에 반영이 안 됐다”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행정은 네트워크 활동에 의지가 약하다. 더군다나 담당자가 짧은 시간에 자주 바뀐다. 업무의 연속성이 약화된다. 이 부분은 행정의 일반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물론 행정절차상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는 속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공무원 신분상 몸 사리기로 처신한다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는 나름대로 역할분담을 하기도 한다. 한 쪽에서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나머지 한 쪽에서는 중재안이나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 과정 속에 행정부를 설득시키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행정과의 네트워크는 단체장의 의지, 법체계의 강제성 등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악사회복지의 회원 밀착도, 혹은 충성도는 어느 정도인가? 홍선 국장은 100명의 회원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함께 참여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회원은 약 30명 정도, 그 중에 10명 정도는 참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약 10%가 적극적인 회원일 거라고 추측한다. 주민이나 회원들이 관악사회복지에 직접 어떤 사업을 제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운영위원회나 각 모임에서 개별적인 회원들이 제안하는 경우는 있지만, 지역의 이슈나 사안을 직접 제안하는 주민이나 회원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관악사회복지 재정마련을 위해 쌀 20kg을 판매한다면 얼마나 팔 수 있을까? 홍선 국장은 조심스럽게 100포대는 팔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열심히 판매한다는 전제에서.
3. 네트워크의 몇 가지 요소들
잘 되는 네트워크의 조건은 무엇인가? 홍선 국장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단체들)이 이에 맞는 적절한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열심히 활동하는 구조일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참여하거나 의사결정구조에만 참여해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형식적인 연대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제안하는 단체가 초기부터 장기적인 구상과 전망을 가지고 예술적으로 꾸려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성과라고 하는 것이 지역에서는 언론에 주목받을 만큼 그리 크지 않다. 그 성과를 독차지 하려는 단체가 있더라도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독점적으로 성과를 싹쓸이 하려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는 중앙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연대활동은 그 총대를 멜 단체가 필요한 듯싶다. 관악사회복지를 제외하고 관악주민연대가 가장 헌신적으로 네트워크 활동에 임하곤 있지만, 워낙 단체 활동이 많고 여력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홍선 국장은 이야기한다.
관악의 운동 형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웹이나 SNS 방식보다는 면대면 관계를 더 활용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관악의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지역에서는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오다가다 만나면서 일들이 만들어지고 추진되기 때문에 오프라인 공간이 여전히 중요하다. 온라인은 아직도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
조직의 형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네트워크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조직을 먼저 생각한다면 운영 방식에서부터 관리까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고 활동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할 우려가 크다. 예를 들면, 회의 날짜를 잡게 되면 지난 회의 결과를 공유해야 하고, 개별 조직 차원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한 군데서 정확치 않은 내용이 교류되면 시비가 오가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충분한 정보를 교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한다면 더 다양한 그룹들의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관악은 주로 사안별 네트워크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일상적인 연대체가 그리울 때도 있다. 지역의 장기적인 비전을 그리면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일상적인 면대면 관계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일장일단이 있다.
주민들이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네트워크에 홍선 씨는 관심이 많다. 일명 ‘경제 공동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상은 없지만, 협동조합 같은 것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 아프면 의료비를 관악구에서는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 교육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협동조합 형태,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공제은행 등, 단체마다 관심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그런 힘들이 네트워크로 꾸려지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이 홍선 씨의 생각이다. 홍선 씨도 먹고 살아가야 하니까.
4. 청소년 동아리 '햇살‘의 경우
관악에서 독립적인 청소년 네트워크는 없다. 다만 민간 협의체 차원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경우와 민간단체와 복지관이 협력하는 네트워크 차원에서 다루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최근에 생긴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상이 잡혀 있지 않다. 더구나 주로 청소년 관련한 현장 활동가들이나 사회복지사, 공부방 선생 등이 참여하고 있어서 서로의 욕구가 다르다. 다만 청소년들을 지근지처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청소년들에 대한 욕구조사를 시작으로 첫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관악사회복지 내의 소모임인 ‘햇살’은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고등학생 30명, 대학생 9명에 중학생이 소수로 모여 있다. 현재 14기째를 맞고 있다. ‘햇살’은 지역사회 혹은 대외적인 활동은 그리 크지 않다. 내부적인 모임이 주를 이룬다. 가끔씩 외부 활동을 견학하기도 하고 공부모임도 갖곤 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모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들은 ‘햇살’을 자원봉사 하는 공간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햇살’에 간다고 하면 용인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워크숍을 간다거나 엠티를 가게 되면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게 온다. 관악사회복지 회원의 자녀라면 무한 신뢰가 전제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들은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
일상적으로 1주일에 1회씩 모임을 갖는다. 아이들은 주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이 소통의 피크다. 온라인이 그들의 소통 도구다. ‘햇살’에는 특이한 제도가 있는데, ‘독대제도’가 그것이다. 아무 때나 청소년들이 찾아오면 담당 실무자는 의무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만큼 실무자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와 조건에 맞추려 노력한다. ‘추노’라는 것도 구성되어 있다. 안 나오는 아이들을 찾아가 데려온다는 뜻으로, 주로 대학생 선배들이 이 역할을 한다. 대학생 그룹은 5년 이상 활동한 친구들이다. ‘햇살’ 활동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여느 청소년들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다. 대학생은 재생산 매개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 활동가와 청소년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우스갯소리로 “간식이 부족할 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실제 담당 활동가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먹이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햇살’ 회원들은 돈을 모아서 자신들만의 공간도 만들고, 간식도 충분히 먹는 것이 꿈이다. 얼마 전에 ‘클럽’을 빌려서 후원행사를 한 이유도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날 행사에서 아이들은 100만원 모았다. 적은 돈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흥분되는 금액이다. 지금까지 공간 마련을 위해 모두 300만 원 정도를 모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우 큰돈이다. 통장을 열어볼 때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가장 흐뭇하다고 담당 실무자는 말한다. 습한 지하 공간이 아니라 햇볕이 잘 드는 공간에 자기들만의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것이 아이들이 가진 소박하면서도 험난한 꿈이다.
‘햇살’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연속성의 문제다. 아이들은 고3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고2까지 ‘햇살’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학생 그룹을 보면서 아이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고3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해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대학생 그룹을 보면서 배운다. 또한 1년 단위로 프로그램이 다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어렵다. 매년 똑같은 방식의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실무자로서는 식상하면서 지루함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뭔가 정체된 느낌이다. 그러나 매년 반복적인 교육과 활동은 비단 청소년 동아리의 특성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어떤 조직이든 경험할 수밖에 없는 재생산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햇살’회원들은 분기별로 다른 지역을 탐방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노가리’라 부르는데, 수다를 떨다, 라는 뜻도 있지만, ‘노력하는 청소년의 가능성’의 줄임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탐방은 나름대로 효과는 있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않는 편이다. 탐방하는 단체나 모임이 어떤 것이 됐든, ‘햇살’이 가진 조건이나 현실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객체화시키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지역에서 ‘햇살’ 활동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햇살’에 대한 인지도는 높다. 그러나 ‘햇살’ 회원들은 자기 활동에 묻혀 있기 때문에 타 단체 활동을 제대로 이해하는 편은 아니다. 심지어 관악사회복지가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아이들 표현을 빌면 <관악사회복지>는 ‘본부’다. 관악사회복지 전화번호도 ‘햇살 사무실’로 저장해놓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햇살’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 농활 갈 아이들을 모집할 때는 30명을 채우기 버거웠으나, 이젠 30명 모집은 거뜬하다. 그 이상 모을 수 있으나 담당자가 버겁기 때문에 30명을 넘지 않은 선에서 모집한다. 관악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햇살’처럼 장기간 모임을 갖는 동아리는 드물다. ‘품’이나 천안의 ‘누리하나’ 정도가 청소년 모임으로 지속화한 사례다. 그만큼 청소년 모임은 쉽지 않다. 안정적인 수입구조, 공간의 문제, 재생산의 문제 등이 유지되어야 앞으로의 모임도 흘러갈 수 있을 듯싶다.
5. 이명애의 눈에 비친 관악사회 네트워크 - 관악주민연대를 중심으로
관악주민연대 자체가 네트워크 조직이다. 그러나 95년 만들어질 당시엔 연대체의 개념이나 네트워크의 개념을 바탕으로 창립된 것은 아니다. 아직 그런 개념이 정립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지역운동이나 풀뿌리운동과 같은 개념이 정립된 시기도 아니었다. 도시빈민지역운동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몇몇 동네의 주민모임과 세입자대책위 등이 모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창립하게 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지방자치제 부활로 인한 지방선거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데 큰 이견은 없다.
91년 지방선거가 부활 된 첫 선거에서 빈민운동가 출신이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했고, 95년 처음으로 단체장을 선출했던 선거에서도 지역의 여러 단체들이 관여하기도 했다. 당시 관악은 재개발이 열풍이었다. 철거 지역 주민들은 단체장 선거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재개발 인허가권 관련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그런 와중에 관악주민연대는 구청장 후보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했고, 상당한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단기간 내에 1만 명의 주민 서명도 받아냈다. 이렇듯, 지방선거를 하지 않았다면 동 단위별 저항에 그쳤을지 모른다. 선거는 이러한 저항을 한 군데로 모으는 그릇이 될 수 있었다.
관악주민연대의 주요 사업은 대부분 네트워크 사업 방식이다. 관악주민연대에게 네트워크 활동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지역운동의 기반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역의 공부방이나 민중교회 등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활동을 해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체 혼자서 활동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암묵적인 지역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타 단체와 분리해서 해야 한다는 인식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연대활동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시기가 왔다. 단체 정체성과 멤버십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한 97-98년 전후였는데, 그 시기는 어느 정도 철거싸움이 정리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기존 활동가가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은 관악 지역운동의 전통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연대활동에 ‘왜 주민연대는 꼭 참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직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악주민연대는 연대활동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령 97년 IMF가 터지고 관악주민연대가 관악실업극복국민운동을 만들었지만, 외부의 시선은 관악주민연대와 별개의 조직인데 왜 관악주민연대가 관여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관악주민연대는 관악실업극복국민운동을 주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서 멤버십에 대한 고민이 99년 전후로 심각하게 심화되었다. 연대체의 성격에 대한 각 단체의 입장이 정립되지 못한 것에서부터 오는 오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오해는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연대체의 경우, 더 도드라질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전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의 생각은 ‘왜 관행적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했던 관악유권자연대는 관악주민연대 입장에서도 큰 상처로 남았다. 한 지역에서 두 개의 진보정당이 각각 후보를 냈고, 둘 중 하나를 가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후보로 추대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경선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진보․개혁 정당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고심 끝에 룰을 만들고 경선을 준비했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진 룰이라고 하더라도 빈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멤버들의 입장도 갈렸다. 결국 경선 과정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만 낳았다. 원칙과 신뢰가 깨진 순간은 모두가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가 좋은 경험이길 바랐지만, 아픈 상처를 남긴 경험이었기 때문에 선배 그룹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이것이 관악의 수준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속성의 차이로부터 온 갈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제도 정치에 속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가 제도정치를 중재하려 했던 점에서 큰 착오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힘의 균형을 주도할 역량에는 미치지 못했다. 정당은 권력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다.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른 원칙이나 신뢰보다 권력지향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그런 속성들이 극단을 보여주었던 것이 지난 2010년 지방선거였던 것이다. ♣
http://grasslog.net/home/13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