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필가 이화련] 만인의 연인! (강추!)

[오지영]

제목에 개인적 의견을 내는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건 압니다만-
같은 팬(?)입장에서 너무 공감되고 기분좋은 글이라
감히 추천드립니다;

--------------------


[에세이―이화련] 만인의 연인


[사설/칼럼] 2002년 06월 24일 (월) 17:31

널리 알려진 사람 중에 특히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묵묵히 한 길을 가면서 자신을 빛내고,그 빛으로 주변까지 환하게 하는 이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문학인은 물론 피아니스트,가수,영화배우…. 내가 여자여서 그런지 꼽아 보면 거의 남자들이다．속을 잘 들키는 통에 가족들도 내가 누구누구를 좋아하는지 다 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축구선수 홍명보다．나는 그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처음 보았는데,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믿음직스러운 모습이다．여전히 늠름하게 한국 축구를 지키고 조마조마한 순간마다 침착한 수비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의 성실함은 팀의 버팀목이 되고 날렵하고 굳센 체력은 상대팀의 공격에 빗장을 지른다．골을 넣는 화려한 역할은 다른 선수에게 맡기고 동료가 마음놓고 공을 몰고 나갈 수 있도록 뒷심이 되어준다．때로는 직접 적진을 파고들어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을 날리기도 한다．스페인과의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에서 그는 전 국민을 숨죽이게 하였고 또 일시에 화산처럼 솟구쳐 오르게 하였다．마지막 키커였던 그의 골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을 결정짓는 깔끔한 마침표였다．스페인의 골그물을 시원하게 흔들고 나서 두 팔 벌려 활짝 기꺼워하던 그 모습은 내 마음에 선명하게 사진 찍혔다．

신문에 홍명보 선수의 사진이 나면 정성껏 오려 둔다．그에 대한 얘기라면 눈을 크게 뜨고 읽다가 살짝 심사가 꼬이기도 한다．잘 생기고 과묵해 보여 반할 만도 하지만 팬이 그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이번에도 한·일월드컵의 그를 보려고 일본의 여성 팬들이 떼지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열의는 고맙지만 왠지 입이 비죽거려진다．현해탄을 건널 것까지 있나,그냥 텔레비전으로 보면 되지…．

하기야 이제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의 고지에 우뚝 서서 우승까지 바라보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승리를 일궈낸 선수들은 전 국민의 아들이요 연인이다．4800만 대한사람,나아가 세계인의 관심까지 뜨거워지고 있는데 기껏 사진이나 오리고 앉아 있는 나는 팬이랄 것도 없다．

나는 그를 딱 한 번 만났다．작년 겨울,일본에서의 선수생활을 접고 포항 스틸러스에 막 합류했을 무렵이었다．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마주쳤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한 줄 건너 나하고 어슷하게 마주 앉은 자리,그의 작은 손놀림까지 눈에 들어왔다. 부인과 어린 아들이 함께였으며 조용하면서도 단란한 분위기였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그날 그에게 사인을 받았는데 자랑을 하다 조카에게 빼앗겼다．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달라니 어른 체면에 주지 않을 수 없었다．쥐었던 보물(?)을 놓치고 말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그가 우리 동네에 산다는 것이다．홍명보 선수가 우리 동네에 산다! 진작에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이화련(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