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개개인의 연기는 뛰어난데, 감독과 각본가가 영화를
망쳐놓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기는 있죠.
"킹덤 오브 헤븐" - 정말로 굉장한 흥미를 끌 수 있는 역사적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어쩌하여 스토리 텔링을 이런 방식으로 했는지..잘 이해가 가지
를 않는 작품입니다. 리들리 스콧이 그간 너무 과대평가 받아온 것은 아
닌지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1. 영화에 대한 전체 평
배우 개개인의 연기는 좋습니다. 캐릭터성도 확실해요. 배우의 연기가 좋
으면 이미 영화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겁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망칠 수가
있을까요?! 적군아군 주역단역 모두, 연기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것은, 영화가 목적의식을 뚜렷하게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갈팡질팡입니다.
평민이 기사가 되어, 기사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영화인지,
이국의 땅에서 주어진 기회를 붙잡는 출세 영화인지,
낯선 환경에서 열정적이고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되는 사랑 영화인지,
극적인 전투를 그려내는 전쟁영화인지,
아니면 미치광이 전쟁을 배격하고 만인의 화합을 소망하는 영화인지..
위의 수많은 주제 중 몇가지 중요한 것을 추려내어 담아낸다고만 해도
보통 감독으로서는 힘든 일이고, 아무리 실력있는 감독(예컨데, 대형
스펙터클을 세편 씩이나 훌륭하게 소화해낸 피터 잭슨 같은..)이라고
해도 저 주제를 모두 그려내는 것은 무리일 겁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천민이 벼락출세를 하게 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
득권 계급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는 줄거리로 전개가 됩니다. 지리하
고 느릿한 페이스입니다. 그래도, 아직 도입부니까 참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천민에서 기사가 된 발리앙이 성지로 간 후에, 그 땅에서
훌륭한 영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내고는 있는데, 이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합니다. 평생을 대장간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예의와 예법
을 어떻게 아는지, 어떻게 전혀 낯선 곳에서 영주 씩이나 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 그냥 휙휙휙 되어버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악당 기 드 뤼지냥의 와이프인 시빌라 공주의 꼬심에는
왜 넘어가는겁니까? 불같이 사랑해서 하룻밤 정을 통한 후에는, 갑자
기 피시시~ 식어갑니다. 완벽한 기사는 비겁한 짓 못한다고? 그럼 애
초에 그녀를 품지를 말던가??!!
게다가, 이 흐지부지된 사랑 얘기를 어떻게든 뭔가 극중에 연관을 시키
려고 하다보니, "히틴의 뿔"전투에 십자군들을 내보낸 것이 마치 요부
인 시빌라의 복수극인 것 처럼 그리려고 했는데.. 이것도 대실패.
처참한 꼴을 볼 지도 모르는 이 영화를 구해낸 것은 결국, 마지막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고도, 크리스트교도와 무슬림들에게 똑같이 성스러운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싸움.
이 쯤 되서야 비로써, 앞에서 몽땅 망쳐놓은 내용을 그나마 수습할 수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 특유의 스펙터클한 영상미로 말이죠.
결국에는, 대작이 될 수 있었던 영화를 망치고 또 망쳐놓았다가, 마지막
에 겨우 수습하여 범작이 든, 그런 느낌입니다.
2. 전투씬
까페가 까페인 만큼, 역시 관심있게 볼 것은 전투씬이겠죠.
이것이 정말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아무래도 성스러운 도시라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공방
전에 비중을 더하고 싶었겠지만, 실제 역사상으로는 예루살렘 공방은 비교
적 단기간에 간단히 끝났고 (실제인물인 발리앙 데블랭이 영웅적으로 방어
지휘를 하기는 했지만, 술탄과 간단하게 협정을 맺고 금새 도시를 내줬습
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직전의 대전투 - 갈릴리 호수를 바라
보는 산자락에서 벌어진 "히틴의 뿔" 대전투입니다.
이 히틴의 뿔 전투야 말로 훨씬 전의 만지케르트 전투, 그리고 후대에 몽
골인들을 마물루크 전사들이 물리친 아인잘루트 전투와 함께 당시 중동에
서 벌어진 가장 영향력이 큰 대전투 중 하나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히틴의 뿔 대전투를 두 장면으로 끝냅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것만은 정말이지.. 못참겠습니다.
히틴의 뿔 전투는, 중동에서 십자군이 무슬림람에 당한 최대의 패배이며,
오랜 세월을 십자군 앞에서 무력했던 무슬림들이 실로 최초로 가한 대규모
반격 중 하나이며, 사막을 배경으로 중세의 꽃인 유럽의 기사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간, 굉장히 서글픈 전투 중 하나였단 말입니다.
이것을 두 장면으로 처리한 것은 용서 못합니다.
재능은 없지만, 제가 감독이라면 차라리 쓸데없는 사랑얘기 쫙 빼고, 예
루살렘 함락 후의 쓸데없는 부분도 쏙 빼고, 그 남는 시간에 히틴의 뿔
전투를 극적으로 묘사한 후, 숨 돌릴틈 없이 바로 예루살렘 공략으로 이
어지는 더블 클라이맥스 방식을 사용했을 겁니다.
방금 전에 벌어진 히틴에서의 격렬하고 처첨한 전투의 흥분을, 격렬하지
만 조금 느린 페이스로 진행되는 공성전으로 수습하면서 종막으로 나아
가는거죠.
결과적으로,
기사들이 말 타고 나오는 장면은 딱 한번.
샤띠용의 영지인 케락에서의 자살공격...씬..
가장 봐줄만한 '전투장면'은 사실,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케락 앞에
나환자왕 보두웽 4세가 끌고온 십자군 원군이 등장하는 장면.. 그 당당한
포진.. 그리고 행군.. 이것이 영화상의 모든 전투를 합친 것 보다 더 멋있
습니다
멀리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십자군 군대의 위용에 왜 무슬림
의 노련한 전사들조차 겁을 먹는지 이해할만하죠. 비교적 짙은 옷을 입은
무슬림과는 달리, 희고 번쩍거리는 방패,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무거운
쇠사슬갑옷.. 그 창과 검, 그리고 깃발들.. 그리고 모두가 통일성 있는
복장을 하고 흰 바탕에 강렬한 십자가 문양을 한 것을 보면 누구라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위압감을 느낄겁니다.
그 위압감 주는 장면이.. 유일하게.. 볼만한 전투씬입니다. -_-; 커헉..
3. 무슬림에 대한 묘사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 특징도 없습니다.
그나마 살라딘이 매력적이고 멋진 연기를 보여줘서 합격.
마지막에, 항복조건을 타진하는 장면에서.. 협상이 끝난 후 헤어질 때..
발리앙이 살라딘에게 묻습니다;
(자막이 엉망이라 제 취향대로 번역함..)
발리앙: "전하에게 이 예루살렘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습니까?"
살라딘: "어떤 가치도 없네..."
(몇발자국 걸어간 후 다시 뒤돌아본다)
살라딘: "하지만 모든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
이 장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관대하고 매력적인 군주다운 모습.
....
결론:
리들리 스콧의 영상미를 감상하고, 천년전 중동의 모습과 십자군의
멋진 기치(기치만... -_-;) 구경하고 싶은 분은 봐도 좋겠죠.
첫댓글 최대의 수확: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트레일러를 극장판 크기로 본 것.. -_-;
ㅡㅡ.. ;; 리들리스콧.. 에일리언에 글레디에이터.. 유명한 작품 많이 있던데, 킹덤오브해븐이라.. 직접 봐아알겠구먼.. 뭐 나오기전부터 망친작품일지는 예상했지만..
아싸 영화볼 돈으로 시공디스커버리 한권 더 사야지.
흐. 시공디스커버리는 전질구매하면 반값에 팔던가.
스콧씨 컨디션 안좋은가보구려..
그 중요한 히틴의 전투를 그냥 넘겨 버리다니...... 심하네요. 이슬람 세력의 첫 승리인데..... (갑자기 미디블 토탈워의 "히틴의 뿔" 커스텀 플레이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진다는 ^^) 혹시 미국 관객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 같아서 생략한 건가?
십자군 美화인가...
미화는 아니고 십자군의 어두운면도 사실 많이 보여주엇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비판적인 생각을 보여주기도 하죠.
글레디에이터의 그 전투씬...롬토탈워를 하고나서 보는바람에 '어, 저건 오나거?' '앗, 발리스타다' '무적의 사기장군부대'등의 생각을 하면서 봐서그런지 정말 재미있었는데...킹덤오브해븐은 그런재미가 없겠군요(그래도 주말에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