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명 피지컬 코치는 부산 아이파크에서 일하기도 했다 ⓒ 신재명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폭염 주의보와 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연달아 송신되는 더운 여름날. 상대 골문을 향해 질주하는 저 선수들은 어떻게 체력을 유지할까. 왜 여러 팀이 줄부상에 신음하며 부상자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을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막연한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피지컬 코치로 유명한 신재명 코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르는 것들, 알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물어봤다. 그는 한 무더기 되는 질문에 차근차근, 조목조목 친절하게 아주 전문적으로 알려줬다.
그는 15년째 해외에서 피지컬 코치(Fitness coach)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행정을 공부하려고 떠난 브라질에서 피지컬 트레이닝 매력에 빠졌다. 이후 브라질, 포르투갈 무대를 경험했고 2015년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2016년 중국 다롄 트랜센더스 FC의 러브콜을 받아 중국으로 진출했다. 이후 바오딩 롱다 FC에서 6개월 동안 코치로 일하다가 현재는 한국에 들어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피지컬 훈련을 하고 있는 다롄 선수들 ⓒ 다롄 트랜젠더스 FC 제공
피지컬 코치가 뭐기에
그는 우선 피지컬 코치라는 용어에 대해서 먼저 짚어줬다. 한국과 일본은 피지컬 코치라고 부르지만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체 코치’가 되어 버린단다. 그는 “피지컬 코치는 쉽게 말해 체력 코치”라며 “유럽과 축구 선진국, 중국도 피트니스 코치라고 부른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체력 코치’를 뜻하는 ‘피트니스 코치’가 맞다”며 용어를 정정해줬다. ‘피지컬’과 ‘체력’ 사이 묘한 괴리감이 신 코치의 설명으로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한테 익숙한 피지컬 코치로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직책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피지컬 코치의 세계가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까. 무슨 일을 하기에 각 팀에서 일반 코치와는 다르게 피지컬 코치라는 따로 구분된 직책을 주며 고용 임금을 지급할까. 신 코치의 대답에 의하면 피지컬 코치는 팀 선수들의 전체적인 체력을 강화시키고 그 체력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만들어 놓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수들의 부상도 예방한다. 일반적으로 훈련장에서는 본 운동 전의 ‘웜 업’과 본 운동 후 실시하는 마무리 운동인 ‘쿨 다운’을 도맡아 진행한다. 경기장에 도착하면 경기 전에는 주전 선수들, 경기 중에는 후보 선수들의 웜 업을 책임진다.
좀 더 자세하게 파고 들어보니 선수들 몸 데우고 식히는 일 이외에도 여러 가지 역할이 있었다. 선수들 체력뿐만 아니라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며 부상 방지와 회복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신 코치는 이 중에서도 체력유지와 회복에 중점을 두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강화시킨 체력을 시즌 내내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축구 선수들이 경기 후 체력을 다시 회복하려면 24~36시간이 걸린다”면서 “3일 간격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리그 일정이 잡히면 회복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3일 후 경기를 대비하긴커녕 훈련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감독들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빠른 회복 속도가 관건이라는 것.
단순히 선수들 회복 잘 시킨다고 피지컬 코치를 따로 맡기진 않을 듯했다. 같은 최전방 공격수라도 서로 다른 유형의 선수들 예를 들어가며 이들의 훈련 프로그램도 혹시 다른지 물어봤다. 신 코치는 “포지션별로 맡은 임무가 다르기 때문에 체력도 그 임무에 최적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줬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미드필더는 스피드와 지구력이 중요하므로 이에 더 중점을 두고 훈련을 진행한다고 한다. 수비수라면 공수 전환 시 수비라인을 유지하면서 상대 팀의 강한 공격을 막아내야 하므로 스피드는 물론, 파워와 민첩성 등에 좀 더 집중한다. 더 세부적으로 측면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별도로 훈련시키기도 하고 센터백과 사이드백을 나눠 훈련을 진행할 때도 있다고 한다. 선수 개인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같은 포지션이라 하더라도 별도로 체력 훈련을 하기도 한단다.
이것이 본질이었다. 감독과 스태프들은 전술과 전략을 구상한다.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선수들이 최대한 보여줄 수 있도록 피지컬 코치가 체력적으로 준비한다. 추상적인 전술을 직접 실현 하는 것은 선수들일지언정 선수들이 전술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피지컬 코치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의 부상 방지와 회복뿐만 아니라 체력도 신경 쓰고 경기력도 향상될 수 있도록 선수들을 지도한다. 쉽게 말해 ‘감독이 하고 싶은 축구를 하게끔 하는 것’이다.
신재명 코치(가운데)는 프로 팀들의 연이은 줄부상에 대한 원인을 전달하기도 했다 ⓒ 신재명 제공
조급한 팀 운영이 줄부상을 낳는다
올해는 유독 팀에 부상자가 많아서 경기 운영이 힘들다는 감독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연이은 부상에 신음하는 팀들은 무엇이 문제일까. 팀에 부상자가 많다던 한 프로팀 감독은 “이적 시장 막바지에 영입된 선수들이 동계 훈련에 늦게 합류해 몸을 충분히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부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재활 후 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경기에 내보냈더니 또 다치더라”라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신 코치의 의견을 물었다.
신 코치는 “특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팀 사정도 생각해야 하고 그만큼 선수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적 시장 막바지에 급하게 선수를 영입할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팀 훈련을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전체적인 팀 경기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의견을 보충했다. 이어 “오랫동안 쉬다가 뒤늦게 합류하는 외국인 선수는 피지컬 테스트, 적응훈련 등 필요한 절차가 많은데 감독으로서는 거액을 주고 데려왔으니 어서 경기에 투입시키고 싶어 할 것”이라며 “뛸 수 있다는 선수 말만 믿고 제대로 된 훈련 절차를 거치지 않아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전했다.
부상자가 많다던 구단들은 사정이 급했다. 계속되는 부진의 늪에 빠진 감독들 표정에서는 조급함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급함, 낙담 속에서 수비수를 공격수 자리에도 놓아보고 공격수를 미드필더로 내려보기도 하며 경기를 치렀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이 선수가 뛸 수 있다면 좋을 텐데…”하며 고심 끝에 선수에게 출전 가능 여부를 물었을 것이고 선수는 무조건 팀을 위해 “뛰겠다. 뛸 수 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겨울,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야심 차게 영입한 선수들로 당장 반등을 노리고 싶었을 것이다. 구단과 팬들은 당장 승점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누구 한 명도 “길게 봅시다” 한마디 꺼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상 위험은 특히 여름에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더운 날씨는 선수들의 호흡을 어렵게 하고 일사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 코치는 “여름철 회복 활동이 겨울보다 어렵다”라고 말하며 “체력 소모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여름철 부상 방지와 회복을 위해 수분 섭취를 자주 하도록 지도하며 몸의 열을 감소시키기 위해 아이스 배스(Ice Bath)를 이용하는 등 각종 노력을 기울인다.
프로팀 소속 선수들은 여름철 체력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스포츠 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류는 가장 흔한 단백질 음료부터 해서 선수 부모님이 마련해주는 액체용 보약까지 다양하다. 이런 경우 신 코치는 사전에 선수들을 모아 도핑, 금지 보충제에 대해 교육하는 것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고 있다. 교육 후에도 선수들과 직접 면담을 통해 섭취 중인 보충제가 있는지 물어보고 보충제 함유성분을 국제반도핑기구에서 매년 발행하는 반도핑 성분 리스트와 대조하는 등 치밀하게 관리를 한다.
신재명 코치가 본 대표팀 체력 관리는?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마이애미로 전지훈련을 떠났던 홍명보호.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에는 이케다 세이고라는 실력 있는 피지컬 코치가 함께였다. 그런데도 홍명보호는 마이애미 전지훈련에서 선수단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훈련 일정까지 변경했던 적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호주 아시안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조별예선을 치르는 도중 손흥민, 구자철, 김진현이 잇따라 감기에 걸렸다. 당시 슈틸리케호에는 아르헨티나 피지컬 코치 1세대였던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가 함께했다. 두 인물 모두 피지컬 코치로서 명성이 높다. 대표팀은 왜 체력 관리에 실패했을까. 대표팀과 클럽은 무엇이 다를까.
신 코치는 “해외에서 대부분 활동하다 보니 대한축구협회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계에 아는 분이 거의 없다”라면서도 소신 있게 그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먼저 책임론을 꺼냈다. 그는 “선수들 건강과 체력을 담당하는 팀 닥터와 피지컬 코치가 선수들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봐야 한다”라며 직답했다. 그러나 그는 “피지컬 코치로서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릴 수는 없다”라며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무리 피지컬 코치와 팀 닥터가 선수들 관리를 잘한다 하더라도 선수 개개인이 코치들의 조언이나 지시를 무시하고 제대로 따르지 않는 예도 있다고 했다. 그 외 날씨나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감기 등 선수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피지컬 코치나 팀 닥터로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는 리그를 치르는 클럽팀과 대표팀이 참가하는 대회 성격이 다르므로 선수 관리에 차이가 생긴다고 했다. 특히 짧은 일정 동안 연달아 토너먼트를 치르는 대표팀의 경우 선수들 체력관리가 더 어렵다. 그는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경기를 치러야 하는 바쁜 일정 속에 ‘진이 다 빠지도록’ 뛴 선수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 아이스 배스 활용은 물론 선수들한테 공기 압박 슈트도 입히고 미세한 전기 자극을 이용해 선수들의 근육을 회복시키기도 했다. 반면 리그의 경우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토너먼트 대회보다는 길어 그만큼 선수들의 회복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신태용호에 합류한 이재홍 피지컬 코치와의 인연을 밝히며 그를 응원하기도 했다. 신 코치는 이재홍 코치에 대해 “아는 동생”이라며 그가 브라질 유학을 떠난 후 만든 ‘피지컬 코치 공간 FISICO’라는 커뮤니티 그룹 회원이었다고 한다. 신 코치가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기도 했단다. 그는 이어 “이 코치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피지컬 코치로 활동해왔으니 이번에도 잘할 거라 믿는다”라며 U-20 대표팀 스태프였던 플라비우 코치와 우정하 코치도 함께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폭넓은 그의 경험과 데이터가 가장 큰 무기다 ⓒ 신재명 제공
피지컬 코칭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고 싶다
아직 K리그는 브라질 출신의 피지컬 코치들을 선호하고 있다. 신 코치가 브라질 유학을 떠났을 당시에도 브라질의 피지컬 코칭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브라질 코칭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축구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하락세를 겪었다. 반면 현재 축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나라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이었다. 양국은 축구협회 차원에서 피지컬 코칭 과정을 개설하고 전문적인 피지컬 코치들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현장에 적용하면서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스페인 축구협회의 경우 산학협력을 통해 피지컬 코치 자격증과 더불어 석사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제시했다. 브라질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2년 전부터 협회 차원의 코칭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신 코치는 브라질 피지컬 코칭이 최전성기를 누릴 때부터 브라질의 교육을 경험했다. 이어 현장에 뛰어들며 포르투갈, 한국, 중국을 거치며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선수들의 피지컬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는 “대부분 감독들이 선수들의 회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선수 개인별 피지컬 데이터를 통해 분석을 거친 뒤 맞춤 훈련을 제시하면 훈련 때마다 선수들의 회복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들은 훈련 형태와 강도를 조절하는 데 쓰인다.
그는 “다양한 나라, 리그, 감독,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좋은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브라질 클럽 SC인테르나시오날에서 활동한 당시 함께 훈련한 선수 중에는 현재 AS로마에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알리송 베케르가 있다. 그가 SC인테르나시오날 2군 팀에서 훈련을 진행했을 당시 1군에는 현재 상하이 상강에서 뛰고 있는 오스카도 있었다. 그의 폭넓은 경험과 데이터는 특히 국가대항전 경기에서 가치를 발휘한다. 상대 국가 대표팀 선수들 피지컬 능력을 분석하고 그에 대비한 전술 훈련 진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동시에 여러 나라의 피지컬 코치들과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장점 또한 있다고 한다.
그는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들이 축구 피지컬 코치학과를 별도로 개설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대학교 체육관련학과만 전공해도 기본적인 이론들은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브라질지도자연합회(STPERS)의 자격인증을 얻어 ‘축구 피트니스 코칭 과정’까지 개설했고 벌써 1기 수료생들을 배출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피지컬 지도자 과정은 학생과 일반인들이 지원하기엔 문턱이 다소 높다”며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이들이 피지컬 코칭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개설했다”라고 교육 과정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신 코치는 올해 말에 자신의 세 번째 책을 출판할 계획을 하고있다.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피지컬 코치에 관한 내용으로 출간한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피지컬 코치라는 직업에 매진하는 것이 목표다. 또 미리 밝힌 내용대로 적절한 시기에 대학에서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 모아온 선수들의 피지컬 데이터가 자신의 재산 ‘1호’라고 말했다. 그가 과거부터 열정적으로 모아온 경험과 데이터는 현재 자신의 경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전달되면서 미래까지 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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