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1840-1916)】 " 환영 Apparition"
그야말로 인상주의 범람의 시대, 낳자마자 버려진 짐승의 새끼처럼제 운명을 걸머지고 신비의 좁은문을 향해 내질러간 고독한 항해사, 보이는 세계로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본 꿈과 그리움의 화가
보르도의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그의 쓸쓸하고 적막한 현실의 반영인지, 그림의 소재가 눈깔, 머리통, 눈물 흘리는 거미. 괴기스럽고 어디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그림과 흑백의 토굴 속에서 버림 받은 한 인간의 절규와 빛을 향해 탈출하려는 배고픈 영혼의 자유 의지, 그리고 신의 창조물로서 소묘와 석판화 등 빛과 어둠으로 무장하고 창조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인간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그와 함께 울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르동이 흑빛의 세계를 떠나 19C 낭만주의와 20C 초현실주의를 잇게하는 상징과 기막힌 환타지의 세계를 연결한 장본인이 되었다니, 그의 초기 섬뜩하고 미스테리한 그림 만큼이나 신비스런 그의 변화가 주의를 끌게 된다. 또 그가 어떻게 이 흑백의 지긋지긋한 삶과 예술을 위한 예술의 암흑지대를 건너게 된 것인지....! 까닭은 둘째치고 자신을 내버린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원망에서일까? 저주받은 운명처럼 사십이 될 때까지 홀로 산 그에게 문득 다가 선 스물 일곱의 지적이고 섬세한 '까미유',
보통 Apparition이라는 단어는 종교적으로 사용한다. 성모나 예수, 또는 천사 등의 환영이 어떤 사람 앞에 나타나는 현상,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건, 신앙심이 생기게 하던 하는 일을 하는 현상이다.
오딜롱 르동은 환영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가 목탄화와 석판화로 흑백의 그림을 그리던 흑색시대 noirs에서부터, 그가 파스텔과 유화물감을 잡고 남들보다 더욱 화려한 컬러를 사용하던 시기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다. 따지고 보면, 르동은 동일한 제목으로 비슷한 주제의 그림을 계속 반복해서 그리는 성향이 있다. 찾아보면 동일한 제목의 그림이 계속 나타나곤 한다. 비교적 현대의 작가로,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고 아직 개인소장으로 남아있는 그림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다 보면 그림은 계속 나오게 마련이다 . 일단 미술관, 그것도 규모가 큰 미술관에서는 예산이 많아서일까, 인터넷 작업에 충실한 편이다. 요즘은 현장 뿐 아니라, 전세계의 온라인 고객들이 인터넷으로 그림을 찾아오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소장으로 어느 금고에, 또는 개인 저택이나 사무실의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경매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터넷을 위한 자료화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런 경우는 자료 찾기가 힘이 들다.
르동의 작품 중 환영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은 세 점을 찾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종교적, 구체적으로 기독교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이 그림들에 대한 해설에서도 딱히 종교적인 이야기는 없다. 르동의 그림은 그림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 것을 묘사한 것인지, 표시를 해 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맨 위의 그림, 환영의 경우 그림의 오른쪽에 하얗게 그려진 두명의 사람 형상이 있고, 그중 하나 (오른쪽)에는 후광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오른쪽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환영을 왼쪽 사람이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나타난 환영이 누구이고, 이를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상징주의 그림이라면 이에 대한 정보를 상징으로 그림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을만도 한데, 사실 그런 것은 르동의 스타일이 아니다. 대신 그림에는 가운데에서 왼쪽으로 그림 전면부에,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꽃과 나비, 그리고 다른 형상들을 잔뜩 그려놓았다. 어떤 면에서는 미술관의 해설처럼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주마등식 Phantasmagoric으로 표현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화가의 생각이 있지만, 그것이 해설가나 나같은 (해설을 보지 않고는, 또는 해설을 보고나서도 그림을 이해할 수 없는?)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래 그림 역시 왼쪽에 날개가 달린 형상이 빛에 휘감겨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형상은 그 환영을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어떤 누가 나타난 것을 누가 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폭발하듯 화려한 색의 향연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친절하지 않아서, 또는 나처럼 보는 사람이 충분히 똑똑하거나 감수성이 많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고, 실제 전하는 해석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림은 아름답고, 색채는 폭발하고 있고, 나는 르동의 뜨겁고 괴기스러운 그림을 좋아한다.
환영, Apparition, 1905년 작품, 40x67cm, 뉴욕현대미술관 MoMA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