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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 11~22 :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자 !
정태경 목사 2018년 10월 21일 주일 설교 ( 이야기설교 )
설교 작성 ( 이야기 설교 )
< 교회는 한 공동체로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
유머 : 모처럼 서울에 사는 아들 집에 들렀던 어머니가 부산 집으로 내려가게 됐다. 착한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태워 드리려고 공항으로 모시고 갔다. 할머니는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화장실을 다녀오던 할머니는 앞쪽에 넓은 텅 빈 의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스튜어디스가 제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 말했다.
-“할머니, 여기는 비싼 돈을 내야 앉을 수 있는 비즈니스석이에요. 어서 할머니 자리로 돌아가셔야 해요.”
-“무슨 얘기야? 빈자리는 내가 맡은 건데. 누구나 먼저 앉는 게 임자야.”
할머니의 시끄러운 소리에 신문을 보던 옆에 신사 분이 조용히 할머니 귀에 대고 한마디를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놀란 듯이 자신의 자리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왜 할머니가 놀란 듯이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뛰어갔을까?
신사 분이 말하기를 - “할머니, 그 자리는 부산 가는 자리가 아니라 제주도 가는 자리예요.”
부산을 가야하는데 제주도 가는 자리라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웃음
세상에서 타는 비행기는 일등석 비즈니스석 일반석등 차별이 있지만 교회에서는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문제제기> 평형을 뒤집음(갈등) -하나가 잘 안되는 문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에베소 교회는 지금의 터키 지역 소아시아 항구에 위치한 교회로 에베소는 로마의 수도인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수리아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 도시였습니다 인구가 25만 정도로 많고 교통과 상업과 무역이 활발한 도시로 아데미 신전이 있는 종교적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던 도시였다
황제 숭배가 만연해서 신전을 짓고 황제숭배를 의도적으로 조장했다. 계시록 2장에 7교회에 편지하노라 하면서 그 이름 중에 처음 등장하는 교회가 에베소 교회다 그만큼 중요한 교회다
이런곳에서 에베소 교인들은 온갖 거짓교사들과 이단들과 대처하면서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했다. 거짓된 이론을 파헤치고 분별하기 위해서 계속 이단과 싸우고 대처하는 모습속에서 그들은 결국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주님으로 부터 책망을 받게 되었다 너무 오랜시간 대처하고 싸우다보니 사랑이 식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교회에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말씀하신다. 처음 행위, 처음 예수믿고 뜨거웠던 마음을 기억하고 주님과의 첫사랑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개척했고 아볼로가 사역했고 사도바울이 머물면서 복음을 가르쳤던 그 지역의 모교회와 같은 교회였고 복음의 능력이 왕성한 그런 교회 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헬라인, 이방인 성도들이 함께 있어서 성도들간에 여러 가지 문제와 차별이 있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는 원래는 가까워질 수가 없는 관계였다
그들의 지금까지의 믿음이 서로 달랐고 생활 방식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다
11절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할례받은 유대인으로부터는 무할례자라는 칭함을 받았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자들 이었고 전에는 서로 멀리 있던 자들이었다
한마디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하나 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한 교회 한 성도가 된 것이다
한 교회에 모여 성도가 되었지만 서로 차별을 하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이 이방인 성도들을 차별하였다
‣원인 (갈등분석, 심화 – 절망감) -절망감 :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원인 : 유대인의 할례문제로 인한 차별의식 / 선민의식
-서로 다른 이방인과 유대인이 에베소교회에서 교인이 되었지만, 이러한 상태로 절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들중에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 받는 것은 맞지만 이방인들도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안에서는 하나님의 동일한 시민이요 권속이라는 정체성을 알지 못하였다
한 성령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 가야 하는데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지어져가는 성전의 원리를 알지 못하였다
또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와 헌신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는 거룩한 자부심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한다
서로 차별하는 에베소 성도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막힌 담이 생기게 만들었고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교회에서 성도들끼리는 영적 우월감이나 세상적인 종, 상전 같은 계급이나 빈부격차나 차별을 버려야한다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분열을 주장하고 서로 다투게 하고 나누어지게 한다
성령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나 성도들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차별하고 다투고 분열하고 사랑이 식어지면 기존 교인들도 낙심하지만 새로온 신자들과 믿지않는 자들까지도 모두가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동기 목사님 경상대 병원에 입원 : 교회 분열 때문에 낙심되고 좌절되어 철야 기도하다가 뇌출혈 )
교회는 서로 싸우지만 않아도 부흥된다는 말이 있다 ( 어떤 사람의 편이 되지 말고 주님 편이 되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성도들은 예전에 잘모를 때 따라갔던 구습이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거룩한 새사람으로 거룩한 옷을 입으라고 말하고 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과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폐하여졌으니 이제는 주안에서 서로 하나되고 서로 화평한 삶을 이루어가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시기심이나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해버리고 내가 우선적으로 그것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낸다
내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싫어하고 힘들게하고 본인이 못견뎌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심이나 열등감은 공동체를 낙심하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분열시키고 힘들게 한다.
민수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편을 차지하고 난 후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요단
동편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자기들 두지파의 양떼와 짐승이 많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기 좋고
물과 목초지가 많은 요단 동편을 먼저 차지하려고 한다. 어찌보면 두지파가 차지하는게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이런 행동은 공동체를 허무는 것이다. 나머지 열 개 지파는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곳에서 생명을 건 전쟁을 해야하는데 자기들만 이곳을 차지하고 목축하면서 여기 머물러 있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싸울 것이 많이 남았는데 나 혼자만 전리품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다른 지파도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도 이 지역을 달라고 할걸 왜 자기들만 이땅을 차지하지 그럼 우리는 뭐야 하는 이런 비교의식과 불필요한 경쟁 의식이 생기게 된다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전쟁에서 싸울 힘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나 한사람 정도야 괜찮겠지, 약속의 땅이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는데 아무데나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게 임자지 하는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 공동체를 허물어 뜨린다. 이런 행동을 조심해야한다
‣해결(아하!)(클라이막스-극적인 반전)
-예수님이 친히 모퉁이 돌이 되어주심으로 서로 한 성전이 되어간다
-성령안에서 하나가 됨 -성전, 하나님 처소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됨
사도바울은 차별과 분열이 있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서로가 하나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가 한 성령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져야한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출애굽할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집안에 있으면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구원 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안에 있으면 누구나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은 한 가족이다. 가족은 서로가 좀 세상의 지위나 학력이나 외모가 달라도 서로 비판
하거나 차별이 없어야한다.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먼데 있는 자들과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으니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끼리도 당연히 서로 화목해야한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헐어주셨는데 우리가 차별이나 분열로
다시 중간에 담을 쌓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중간에 막힌 담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허물어 버리고 다시 쌓지 말기를 축복한다
20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어 주셔서 그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함께 지어져 가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은 교회 성도의 모습을 건축물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모퉁이 돌이신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한 성전 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모퉁이돌 (코너스톤) 건물의 기초가 되는 돌이다. 그위에서 서로 벽돌이 올라가고 벽이 연결되고 기둥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만큼 모퉁이 돌이 중요하다 모퉁이 돌이 없으면 그 건물은 바로 세워질수가 없다.
세워도 금방 무너져 버리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건물이 지어져버리기도 한다
주님이 친히 모퉁이 돌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완벽하게 지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성전을 지어 갈수가 없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거하시는 성전이 될 수가 없다
성전의 기초가 주님이기에 그 위에서 서로 연결되어 성벽이 되고 성전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어 가야 한다. 건물은 서로 틈이 있으면 금방 무너진다. 비가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면 금방 부식되고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건축을 하다보면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시멘트 반죽을 해서 막아준다
시멘트가 단단히 굳어지면서 원래 개개의 벽돌과 벽돌이 이제는 튼튼한 벽체로 하나가 된다
성도끼리의 허물과 약함이 보이면 서로 사랑으로 덮어주고 튼튼하게 이어져야 하나가 될수 있는 것이다
‣복음을 경험 (확신과 감동)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이 되게 하심
‧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목하게 해주심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아시고 또 연약함과 서로가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또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게해주셨다. 우리도 이런 화평의 관계를 이웃과도 유지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차별없이 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한 성령으로 하나님아버지께 나아가는 동일한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 권속 眷돌볼권 屬무리속 하나님이 돌봐주는 무리, 한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봐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나의 하늘나라 정체성을 잊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축복한다
우리는 주님안에서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돌봐주시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 우리는 한 가족, 한 공동체다
우리는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었다.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결과기대 -우리가 해야 될 일
‧ 거룩한 시민, 하늘나라 권속의 자부심으로 살아가자 ‧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니라
( 권사님들과 성경 공부 중 은혜 나눔의 시간 )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궁금증과 여러 가지 질문들이 풀어진다
왜 안 믿는 가정에서 하필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왜 믿지 않는 가정이고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내가 주의 종이 되었는지?
왜 그렇게 세상에서 바쁘고 성공하고 출세와 화려함을 쫓아가던 내가 이제는 개척교회 목사가 되어 애들하고 전도하며 총쏘기 하고 놀고 할머니 할아버지 즐겁게 해드리고 대낮부터 박수치고 춤추고 놀고 있는지?
왜 오늘 여기 머무는지?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 모든 궁금증이 주님을 만나면 풀어진다.
주님이 내 삶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보내서 여기에 온 것이고 주님이 하라고 말씀 하셔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돌봐주라고 맡겨주신 사람들이기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보았기에 돈이나 학력이나 직장이나 좋은 집이나 명예나 세상에서 가진 것이 있어야 괜한 자신감이 있었고 그런 것이 없으면 괜히 주눅들과 자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를 보기 때문에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그분의 자녀요 나는 주님 안에서 은혜로 구원 받은자라는 그 감격 하나 만으로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세상에서 이것저것 하느라 그렇게 바쁘게 살던 사람이 이제는 주님 나라위해 전도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즐거운 교제 나누고 서로 심방하며 중보기도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보며 이웃에게 용기를 주고 오케스트라 공연하러 다니고 하는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우리의 정체성이다. 아멘!
주님이 보내셨기에 여기 있는 것이다
주님이 맡겨주신 일이기에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주님이 부탁하신 사람들이 오늘 여기 있기에 내가 여기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삶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은 주님의 것이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길 축복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라 우리의 눈이 어디에 초첨을 두고 살아가는 가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담기고 마음에 담긴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있다
민 32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르우벤과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요단 동편을 차지하라고 허락한다. 그 대신에 그 지파의 남자들은 아내와 자식들이 안심하고 살도록 하기 위해 성읍을 건축하고 짐승들을 키우기 위해 목축지를 마련한 후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서 칼을 차고 행진하며 전쟁에 참여하라고 말한다. 그 지파들은 그렇게 앞장서서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맹세한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장서고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고 요단 동편 자기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삶의 우선 순위가 중요하다. 먼저는 공동체 가 살아야 내가 살고 우리 가족과 자녀들이 사는 것이다
교회가 행복해야한다. 교회 가는게 즐겁고 예배생활이 즐겁고 성도들끼리 같이 교제하는 게 행복해야 가정생활이나 직장에 가는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나라 없이 떠도는 난민들을 보라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기 나라, 조국의 소중함을 안다
아름다운 교회를 떠나버렸고 행복한 공동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힘들어 하는지 모른다
행복한 교회 , 주님안에서 서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서로 축복하며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고 격려하고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해 주는 그런 멋진 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앞서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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