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石坡亭)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건물.
내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하응(李昰應)의
별서(別墅)로서 안태각(安泰閣)·낙안당(樂安堂)·망원정(望遠亭)·유수성중
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 8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뜰에는 해묵은
노송(老松)들이 차일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서쪽 바위산에서 흘러
내린 계류(溪流) 한가운데에는 평대(平臺)를 쌓고 그 위에 서양식 건축기법
이 더해진 유수성중관풍루를 세웠다. 4모지붕이나 기와를 씌우지 않은 색다른
지붕을 하고 있다.사랑채인 대원군별장은 1958년종로구 홍지동으로 옮겨져
따로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의 터 뒤쪽 바위
에는 ‘三溪洞(삼계동)’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아서 원주인인 영의정 김흥근
(金興根)이 살 당시에는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렀다. 뒤에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이라 바꾸고 대원군의 호도 석파로 하였다고 한다. 소유권은
이희(李喜)→이준(李埈)→이우(李堣) 등으로 세습되어오다가 6·25전쟁 직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현재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 서울
성곽의 북서쪽밖에 자리잡고 있어서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선
말기의 건축술이 조화된 대표적 건축이다.
윤동주문학관(尹東柱文學館)
윤동주 시인의 문학작품과 자료를 전시하는 문학관.
2012년 7월 25일에 개관하였으며 윤동주(尹東柱)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이다.
대지는 90㎡ 이며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자료와 친필
원고, 시집, 당시에 발간된 문학잡지 등을 전시하며, 그리고 윤동주 문학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는데 이 영상실은 물탱크를
재활용하여 만들었다. 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시낭송회와 음악회, 백일장 등이
열리며, 문학관 뒷편 인왕산 자락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시절 이곳에서 가까운
누상동 9번지(서울 종로구 옥인길 57) 소설가 김송(金松.1909~1988)의 집에서 후배
정병욱(1922~1982, 시인)과 함께 하숙생으로 살았으며 당시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작품을 남겼다.
윤동주문학관 건물의 특징은 청운동에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 시설을 재건축
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뛰어난 공간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물탱크 내부
를 영상실로 만들었는데 외부에서 한줄기의 빛이 스며들게 설계되어 독특한 분위기
를 연출한다. 탱크의 윗부분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뒤쪽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계단으로 연결된다. 2013년 1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공공
건축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건축문화잡지인 월간 스페이스(Space)가 선정한
한국의 현대건축 'Best 20' 중에서 18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
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大賞)에 선정되었다.
출처:(두산백과)
인왕산길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229번지의 사직공원에서 종로구 옥인동을
거쳐 종로구 부암동 257번지의 창의문에 이르는 길이 2,300m,
너비 12~15m의 2차선 도로이다. 산허리와 능선을
따라 개설되어 경복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인왕산길의 이름은 서울 4대 내산의 하나인 인왕산 중턱에 길을
낸 데서 비롯되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 이후에 수도권 경비 강화를 위해 개통되었다. 1972년
11월 26일에 북악로로 이름 붙여졌으며, 1984년 11월 7일에
지리적 위치와 교통 흐름을 고려하여 창의문을 기준으로
북악산길과 인왕산길로 분리하였다.
출처:(두산백과)
대원군(大院君)
(TBC 연속극 주제가)
장덕조:작사
박춘석:작곡
이미자:노래
운현궁 솟을 추녀 은은한 풍경소리
사나이 가슴에는 풍운의 먹구름
아아아 높은 자리는 외로운 자리
누구를 믿었던가 대원군
음음음음음 흥선 대원군
♥
*청국 땅 찬바람에 눈물의 귀양살이
건청궁 연못가를 물들인 핏자욱
아아아 세도인심은 허무도 한데
사랑만 남았구나 대원군
음음음음음 흥선 대원군.
2017-03-31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