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1995)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9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1438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주변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 중에 부상자가 속출해 수 많은 재산상, 인명상 피해를 끼쳤다.
삼풍백화점은 멀쩡히 서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우르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닙니다. 수 개월에 거쳐서 조금씩 조금씩 붕괴가 진행된 것이지요.
1995년 4월, 그러니까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약 두달 전부터 건물의 5층 남쪽 천장 근처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해진 조치는 고작 최상층의 상점을 지하로 옮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사고 당일, 균열의 수가 상당히 늘어난것이 발견 되었고 간단한 검사를 한 결과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사 측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종업원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았죠.
결국 같은 날 저녁, 백화점은 처참하게 무너져내렸고, 사측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더 큰 인명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삼풍백화점 건물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균열이 가고 결국 붕괴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다양한 이유들을 추정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무리한 설계 변경 클릭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충격적인.. 이었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건물은 무량판 구조로, 하중을 고려하여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구조물이지만 수익을 위하여 회장의 독단으로 설계가 변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규모는?
○ 인명피해 사망자 : 502명 (남 106명, 여 396명; 사망확인 472명, 사망인정 30명) 부상 : 937명 실종 : 6명
○ 재산피해 부동산 양식 : R/C조 5/4층 73,877㎡전체 붕괴 건물 : 900억원 (추정) 시설물 : 500억원 (추정)
동산 상품 : 300억원 (추정) 양도세 : 1,000억원 (추정) 총 피해액 : 2,700억원 (추정)
○ 피해보상액 인적 피해보상비 : 2,971억원(추정)
인명피해만 해도 상상할수도 없는 숫자인데 재산피해까지 말을 잃게 만듭니다. 이 만큼의 피해는 6.25전쟁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건물 붕괴조짐이 나타났을 때, 백화점이 급히 취한 행동은 ‘비싼 물건의 대피’였다.
사람들은 백화점 안에 그대로 남겨둔 채…. 1백여명 이상이 죽었고, 1천여명이 부상했다.
실종신고된 사람도 3백60여명에 이른다.
이준 삼풍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 “무너질 것을 알았다니요. 아니 내 재산도 함께 묻히는데, 무너지리라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에겐 여전히‘ 돈’이 먼저였다.
천민자본주의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몰고오며 무너져내렸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명대로 살 수 있기만을’ 기도해야 할 것인가.
한국현대사에서 평화시 인명 피해로는 가장 많은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채 잔해만 남은 삼풍백화점. 군사독재시절 '한강의 신화'라 불리던 경제성장제일주의의 파산을 상징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실종자 구조에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모여 있다. 사고 후 사회 각계의 도움이 이어졌지만, 구조지휘체계의 혼선은 구조작업 걸림될이 됐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빗 속의 구조 현장
철근이 뒤엉킨 처참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한 실종자가 눈을 가린채 구조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 갇혀있던 실종자가 갑자가 강한 빛에 노출되면서 시력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은 지구보다 무거운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한다. 사진은 사고로부터 10일이 1995년 7월9일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
가슴까지 물이 찬 사고현장은 수색작업을 어렵게 했다.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유진환양의 생존을 확인하고 구출통로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어수선한 사고현장을 돌아다니는 포크레인들
1995년 7월11일, 새벽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밤샘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최명석 씨 구조소식이 전해진 1995년 7월9일 오전 정부차원의 구조대책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반포대교에서 경찰이 막자 한 실종자 가족이 "길을 비켜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3백50명이 넘는 실종자 가족들이 1995년 7월3일 오후 대기장소인 서울교대 체육관 벽에 행방불명된 가족들의 인적사항을 적은 벽보를 가득 붙여놓은 채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9일째인 7일 오전 서울교대 강당에서 아직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지친 모습으로 잠을 자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안실에서 오열하는 희생자 가족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 풍경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옥외주차장에서 열린 삼풍 희생자 합동 발인식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굿이 펼쳐지고 있다.
1995년8월30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서울지법 정문 앞에서 삼풍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이 백화점 이준 회장 등에 대한 살인죄 적용 등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5년 7월10일 오후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이 삼풍백화점에 대한 설계변경과 가사용 승인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뒤 구속수감되기 위해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옛 삼풍백화점 자리에 건설된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 앞에 보이는 상가 건물이 원래 녹지예정부지였던 곳이다. |
출처: 눈&귀 원문보기 글쓴이: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