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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훈(顔氏家訓) <1,2권>
안지추(顔之推) 지음
정보 제공 :교보문고
《안씨가훈》의 저자 안지추는 타지를 유랑하던 때의 시대적 고통을 세밀하게 기록하여 자식에게 교훈으로 남겼다. 그리고 자식들이 훌륭히 성장할 수 있도록 자상한 훈계를 잊지 않았다. 자식들을 부모가 남긴 이삭이나 주워 먹게 기르지 말고 자식 스스로 농사지어 수확하는 기쁨을 알게 하라고 하였다. 오늘날 고민스런 부모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역자 : 임동석
역주자 임동석 (林東錫)은 1949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교육대학 국제대학교 건국대학교대학원 졸업. 한학자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에게 한학을 배움. 국립대만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중화민국 국가문학박사(1983). 건국대학교 교수,문과대학장 역임.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대학원 강의. 한국중국언어학회 중국어문학연구회 한국중어중문학회 회장 역임.
저서에 ≪조선역학고≫(中文) ≪중국학술개론≫ ≪중한대비어문론≫. 편역서에 ≪수레를 밀기 위해 내린 사람들≫ ≪율곡선생시문선≫. 역서에 ≪한어음운학강의(漢語音韻學講義)≫ ≪광개토왕비연구(廣開土王碑硏究)≫ ≪동북민족원류(東北民族源流)≫ ≪용봉문화원류(龍鳳文化源流)≫ ≪논어심득(論語心得)≫ <한어쌍성첩운연구(漢語雙聲疊韻硏究)> 등 학술논문 50여 편.
책머리에
일러두기
해제
(1) 저자 안지추(531~591?)
(2)서명《안씨가훈》
049안씨가훈
<卷一>
1. <서치序致> 第一 : 001 ~ 002( 2장)
001(1-1) 가훈家訓을 쓰는 이유
002(1-2) 나는 이렇게 가정교육을 받았단다
2. <교자敎子> 第二 : 003 ~ 009( 7장)
003(2-1) 갓난아이 때부터 가르쳐라
004(2-2) 매는 부득이할 때만 들어라
005(2-3) 맹목적인 사랑은 화근이다
006(2-4) 아이는 바꾸어 가르쳐라
007(2-5) 지나치게 교만했던 낭야왕瑯邪王의 말로
008(2-6) 자식의 후환은 부모가 만든다
009(2-7) 시류에 얽매이지 말고 큰 덕을 가르쳐라
3. <형제兄弟> 第三 : 010 ~ 015( 6장)
010(3-1) 형제애는 처자로 인해 소원해진다
011(3-2) 처자와 복첩으로 인한 화근을 대비하라
012(3-3) 형제는 길 가는 사람보다 낫다
013(3-4) 동서끼리의 문제
014(3-5) 옆집에 살아도 형제간의 예의를 지켜라
015(3-6) 전쟁에 나가 함께 죽은 삼형제
4. <후취後娶> 第四 : 016 ~ 020( 5장)
016(4-1) 백기伯奇와 증삼曾參의 효행
017(4-2) 서얼과 측실 출신
018(4-3) 전처와 전실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
019(4-4) 되돌아간 후취
020(4-5) 혼정신성昏定晨省에 감복한 아버지
5. <치가治家> 第五 : 021 ~ 036(16장)
021(5-1) 천하의 흉민
022(5-2) 자녀 교육은 관대함과 엄격함을 함께하라
023(5-3) 검소함과 인색함의 차이
024(5-4) 가용을 절약하라
025(5-5) 집안 식구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라
026(5-6) 집 안의 좀벌레
027(5-7) 화를 낸 적이 없는 방문열房文烈
028(5-8) 사위에게 너무 인색했던 장인
029(5-9) 남편보다 똑똑한 아내
030(5-10) 남북 부인의 적극성 차이
031(5-11) 북방 부인들의 솜씨
032(5-12) 딸 많은 집에는 도둑도 들지 않는다
033(5-13) 장모의 사위 사랑
034(5-14) 혼인은 엇비슷한 상대와 하라
035(5-15) 빌려온 책은 더욱 소중히 다루어라
036(5-16) 굿하지 말라
卷二
6. <풍조風操> 第六 : 037 ~ 076(40장)
037(6-1) 삼밭에 쑥이 나면 저절로 곧게 자란다
038(6-2) 돌아가신 부모가 그립다고 삶을 폐할 수는 없다
039(6-3) 피휘避諱는 실정에 맞게 하라
040(6-4) 피휘로 바뀐 명칭들
041(6-5) 자녀를 개, 돼지로 부르지 말라
042(6-6) 이름을 지어 줄 때는 그의 삶을 생각하라
043(6-7) 훌륭한 선인을 흠모한다고 이름까지 같게 해서야
044(6-8) 개, 돼지로 불리는 사람의 심정
045(6-9) 백대의 표준이 될 선례
046(6-10) 시대에 따라 바뀌는 호칭
047(6-11) 호칭에 오류가 없도록 하라
048(6-12) 남북의 손님맞이 풍습
049(6-13) 호칭의 남북 차이
050(6-14) 사는 곳의 언어와 풍습에 주의하라
051(6-15) 질姪의 호칭
052(6-16) 북방은 이별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053(6-17) 외조부, 외조모의 호칭
054(6-18) 족인族人이라는 호칭
055(6-19) 장인丈人의 명칭 유래
056(6-20) 복야僕射와 공公
057(6-21) 이름과 자字
058(6-22) 오복五服에서의 호號와 곡哭
059(6-23) 문상을 가지 못할 경우
060(6-24) 내 삶이 아깝다고 울지 않으랴
061(6-25) 조상 귀신이 괴롭힌다는 속설을 믿지 말라
062(6-26) 부모 중 남은 한 분을 모실 때
063(6-27) 상복을 벗을 때
064(6-28) 부모가 지내던 재실과 침실
065(6-29) 부모가 남긴 집기들
066(6-30) 창자가 끊어진 어린아이
067(6-31) 기일忌日에 삼갈 일들
068(6-32) 사일社日 행사까지 취소된 예
069(6-33) 피휘避諱의 비현실성
070(6-34) 말의 혼동
071(6-35) 돌잔치 풍속
072(6-36) 고통스러우면 어머니를 부른다
073(6-37) 부모의 죄를 비는 방법
074(6-38) 가족이 전쟁에 나갔을 때
075(6-39) 사람을 사귈 때는 예를 갖추어라
076(6-40) 손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7. <모현慕賢> 第七 : 077 ~ 083( 7장)
077(7-1) 친구 사귐에 유의하라
078(7-2) 공자孔子는 그저 옆집에 사는 늙은이
079(7-3) 남의 미덕을 훔치지 말라
080(7-4)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
081(7-5) 천하 양보와 한 푼의 이익 다툼
082(7-6) 나라의 존망이 이러한 사람에게
083(7-7) 제齊나라가 망한 이유
卷三
8. <면학勉學> 第八 : 084 ~ 113(30장)
084(8-1) 공부는 때가 있다
085(8-2) 수레에서 굴러 떨어지지만 않아도 저작랑著作郞
086(8-3) 귀신도 숨길 수 없는 기록들
087(8-4) 옛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라
088(8-5) 성공한 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089(8-6) 독서하면 이렇게 변한다
090(8-7) 배우지 아니함만 못한 공부
091(8-8) 배움이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092(8-9) 어릴 때 외운 것은 지금도 입에 붙어 있다
093(8-10) 박사가 나귀를 사면서 나귀 려驢자도 모른다
094(8-11) 모르면서 남을 비방하지 말라
095(8-12) 나는 현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096(8-13) 황후의 병간호로 죽은 황제
097(8-14) 옴으로 고생하면서 독서로 이를 극복한 황제
098(8-15) 가난을 이겨낸 고학苦學들
099(8-16) 오랑캐 출신이면서 학업을 이룬 인물
100(8-17) 나를 모신다고 너희들 학문을 폐할 수야
101(8-18) 남에게 묻기를 좋아하면 부자가 된다
102(8-19) 귀로 들은 것은 믿지 말라
103(8-20) 문자는 책을 연구하는 근본이다
104(8-21) 견문을 넓혀라
105(8-22) 두 지명의 유래
106(8-23) 회이수二首의 고증
107(8-24) 백수水
108(8-25) 물물勿勿
109(8-26) 촉蜀 방언 두핍豆逼
110(8-27) 갈이라는 새
111(8-28) 순채蓴菜의 방언들
112(8-29) 같은 음의 글자가 50여 자
113(8-30) 한 귀퉁이로 모두를 단정하지 말라
卷四
9. <문장文章> 第九 : 114 ~ 135(22장)
114(9-1) 문장은 오경五經에 근원을 두고 있다
115(9-2) 억지로 붓을 들지 말라
116(9-3) 좋은 글 짓겠다고 욕심내지 말라
117(9-4) 아부하는 문장은 쓰지 말라
118(9-5) 장독항아리 덮는 데나 쓰일 글
119(9-6) 남의 문장 비평
120(9-7) 천리마에도 재갈과 채찍이 필요한 이유
121(9-8) 개혁되어야 할 문풍
122(9-9) 치우치는 글은 삼가라
123(9-10) 우리 집안은 유속流俗을 따르지 않았다
124(9-11) 글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125(9-12) 심약沈約과 임방任方의 우열
126(9-13) 파경破鏡은 원래 흉악한 짐승 이름이다
127(9-14) 비평을 싫어하는 문인
128(9-15) 남을 대신하여 글을 써 줄 경우
129(9-16) 만가挽歌의 유래
130(9-17) 문체의 격식을 잃지 않도록 하라
131(9-18) 재사才士도 용사用事를 놓칠 때가 있다
132(9-19) 명주明珠의 흠집, 미옥美玉의 티
133(9-20) 정치情致가 있는 왕적王籍의 시
134(9-21) 눈앞에 보여주는 듯한 시어詩語
135(9-22) 청교淸巧한 시
10. <명실名實> 第十 : 136 ~ 142( 7장)
136(10-1) 명성과 실질
137(10-2) 밟는 땅이 몇 촌밖에 되지 않는다고
138(10-3) 여기의 성실함이 저기서 나타난다
139(10-4) 실력은 없이 이름만 난 어떤 선비
140(10-5) 남이 다듬어 준 문장으로 이름을 누리다가는
141(10-6) 지난날 공적이 다 무너진다
142(10-7) 매미 허물 같은 성가聲價
<卷=>
11. <섭무涉務> 第十一 : 143 ~ 146( 4장)
143(11-1) 나라에 쓰이는 재목 여섯 가지
144(11-2) 이름만 있고 실천 능력이 없는 선비
145(11-3) 말을 보고 호랑이라고 소리지른 고관
146(11-4) 농사란 힘겨운 일이다
卷五
12. <성사省事> 第十二 : 147 ~ 153( 7장)
147(12-1) 말을 많이 하지 말라
148(12-2) 상서上書의 네 가지 유형
149(12-3) 간쟁諫爭의 방법
150(12-4) 값을 축적하여 때를 기다려라
151(12-5) 이득이 있는 곳에 위험이 함께 있다
152(12-6) 밥 짓는 자를 도와주면 밥맛이라도 본다
153(12-7) 역법曆法 논쟁
13. <지족止足> 第十三 : 154 ~ 156( 3장)
154(13-1) 욕심은 우주도 삼킨다
155(13-2) 가득 채운 것은 귀신도 싫어한다
156(13-3) 벼슬은 이 정도로 제한하라
14. <계병誡兵> 第十四 : 157 ~ 159( 3장)
157(14-1) 우리 안씨의 내력과 무사武士
158(14-2) 전쟁도 학문의 바탕이 있어야
159(14-3) 독서하지 않는 무인은 밥통, 술 단지에 불과하다
15. <양생養生> 第十五 : 160 ~ 162( 3장)
160(15-1) 신선술神仙術이 속임수는 아니지만
161(15-2) 생명이 있고 양생술養生術이 있는 법
162(15-3) 목숨을 어디에 쓰겠는가
16. <귀심歸心> 第十六 : 163 ~ 181(19장)
163(16-1) 전생, 현생, 내세
164(16-2) 사진오음四塵五?과 육주삼가六舟三駕
165(16-3) 불교에 대한 다섯 가지 비방
166(16-4) 허탄한 논리라는 데에 대한 해명
167(16-5) 한 무제는 속현교續弦膠를 믿지 않았다
168(16-6) 묘탑妙塔이 솟아나는 일쯤이랴
169(16-7) 길흉이 응험하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해명
170(16-8) 승려가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해명
171(16-9) 세금도 부역도 없음에 대한 해명
172(16-10) 선악에 대한 보답을 의심하는 데에 대한 해명
173(16-11) 군자가 도살장을 멀리하는 이유
174(16-12) 머리카락 속에서 병아리 우는 소리
175(16-13) 낳은 아이가 물고기 모습
176(16-14) 양 울음소리를 내며 죽은 사람
177(16-15) 불쌍한 소를 잡아먹은 결과
178(16-16) 도둑질한다고 손목을 잘랐더니
179(16-17) 직접 잡은 쇠고기만 먹던 자
180(16-18) 물고기 떼가 덤벼드는 병으로 죽은 사람
181(16-19) 음계陰界에 기록될 악행들
卷六
17. <서증書證> 第十七 : 182 ~ 228(47장)
182(17-1) ?행채荇菜
183(17-2) 고채苦菜
184(17-3) 유체지두有之杜
185(17-4) 경경모마牡馬
186(17-5) 여정출挺出
187(17-6) 시시施施
188(17-7) 흥운기기興雲祁祁
189(17-8) 유예猶豫
190(17-9) 해점
191(17-10) 영향影響
192(17-11) 진陳와 진陣
193(17-12) 관목灌木
194(17-13) 야也와 금衿
195(17-14) 촉재주蜀才注의 ≪역易≫
196(17-15) 라고굉股肱
197(17-16) ≪한서漢書≫에서 알 수 없는 글자
198(17-17) 왕망王莽의 자색와성紫色聲
199(17-18) 책(策, )
200(17-19) 복와 복宓
201(17-20) 영위계구寧爲口, 무위우후無爲牛後
202(17-21) 고점리高漸離의 기양伎
203(17-22) 미媚는 모의 오기이다
204(17-23) 진시황秦始皇의 칭권稱權
205(17-24) 중외지복中外福
206(17-25) 금중禁中와 성중省中
207(17-26) 사성소후四姓小侯
208(17-27) 선어魚와 전어魚
209(17-28) 불탐호혈不探虎穴, 안득호자安得虎子
210(17-29) 풍취삭패風吹削肺
211(17-30) 염시산과鹽蒜果
212(17-31) 알 수 없는 글자
213(17-32) 답백伯의 뜻
214(17-33) 장인丈人와 대인공大人公
215(17-34) 백리해百里奚를 읊은 노래
216(17-35) 복건服虔이라는 사람
217(17-36) 먼저 나온 책에 뒷사람이 기록되어 있는 오류
218(17-37) 치미尾와 사미祠尾
219(17-38) 육색계외六色
220(17-39) 권무산權務山의 표기와 유래
221(17-40) 오경五更의 유래
222(17-41) 출朮와 산계山
223(17-42) 꼭두각시놀이와 곽독郭禿
224(17-43) 장류長流와 추관秋官
225(17-44)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가치
226(17-45) 문자학文字學 연구의 방법
227(17-46) 인십사심人十四心가 파자하여 덕德자가 된다고
228(17-47) 暴(폭, 포)의 두 가지 음과 뜻
卷七
18. <음석音釋> 第十八 : 229 ~ 239(11장)
229(18-1) 손숙연孫叔然과 반절법反切法
230(18-2) 남북의 음운 차이
231(18-3) 고금의 음운 차이
232(18-4) 동곽아東郭牙가 거를 칠 것임을 알아차린 발음법
233(18-5) 惡(오, 악)의 차이
234(18-6) 보甫와 보父
235(18-7) 언焉의 쓰임
236(18-8) 야邪의 용법
237(18-9) 패敗의 두 가지 경우
238(18-10) 정확한 발음을 위해 노력하라
239(18-11) 자신의 이름을 바르게 발음하라
19. <잡예雜藝> 第十九 : 240 ~ 252(13장)
240(19-1) 자손들은 글씨를 배우지 말라
241(19-2) 왕희지王羲之는 글씨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242(19-3) 왕희지王羲之는 서법의 연원
243(19-4) 글씨 개찬改竄과 오류
244(19-5) 잘못 알려진 작품
245(19-6) 그림에 뛰어나 고생한 사람
246(19-7) 짐승을 잡기 위한 활쏘기라면 배우지 말라
247(19-8) 점과 금기에 얽매이지 말라
248(19-9) 산술算術은 중요한 과목이다
249(19-10) 의술과 처방도 조금은 익혀 두어라
250(19-11) 곁에 거문고를 두고 살아라
251(19-12) 도박과 내기는 구분할 줄 알아라
252(19-13) 투호投壺와 탄기彈?놀이
20. <종제終制> 第二十 : 253 ~ 256( 4장)
253(20-1) 쉰 살 정도면 요절은 아니라더라
254(20-2) 부모 무덤을 옮기지 못한 채
255(20-3) 내 죽거든 칠성판 정도면 된다
256(20-4) 옛날에는 묘지만 있었지 봉분은 없었다
○ 부록
Ⅰ. 관련자료
1. ≪北齊書≫ 文苑傳 顔之推傳
2. ≪北史≫ 文苑傳 顔之推傳
3. 淸, 文津閣 四庫全書??本 提要及辨證
Ⅱ. 역대 서발
1. 宋本 ≪顔氏家訓≫序 繆鉞
2. 宋本 ≪顔氏家訓≫跋 沈揆
3. 宋, 呂祖謙雜說 呂祖謙
4. 明, 嘉靖 甲申 遼陽傅氏(太平)刻本 ≪顔氏家訓≫序 張璧
5. 明, 萬曆 顔嗣愼刻本 序跋, ≪重刻顔氏家訓≫序 顔嗣愼
6. 明, 萬曆 顔嗣愼刻本 序跋, ≪顔氏家訓≫後敍 于愼行
7.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顔氏家訓≫序 顔志邦
8.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顔氏家訓≫序 翁廣烈
9.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顔氏家訓≫後序 如
10.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顔氏家訓≫小跋 顔志邦
11.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重刊顔氏家訓≫小引 顔陽星
12. 明, 程榮 漢魏叢書本 序跋, 三刻黃門≪家訓≫小引 顔思聰
13. 淸, 朱軾 評點本 ≪顔氏家訓≫序 朱軾
14. 淸, 黃叔琳刻 顔氏家訓節本 ≪顔氏家訓節≫序 黃叔琳
15. 淸, 盧文 抱經堂刊本 ≪注顔氏家訓≫序 盧文
16. 淸, 盧文 抱經堂刊本 壬子年重校 ≪顔氏家訓≫ 盧文
17. 淸, 盧文 抱經堂刊本 ≪顔氏家訓≫趙跋 趙曦明
18. 翁方綱≪復初齋文集≫卷十六書盧抱經刻≪顔氏家訓≫注本後 王利器
19. 魯巖所學集卷十一跋≪顔氏家訓≫ 張宗泰
20. 徐北溟≪顔氏家訓補注≫題記 向楚
21. 藏園 書題記徐北溟補注≪顔氏家訓≫跋 傅增湘
22. 關中叢書第三集本 序 宋聯奎 등
23. 懿行 ≪顔氏家訓記≫序跋 王大隆
24. ≪顔氏家訓補注≫序 李詳
25. 嚴式誨 ≪顔氏家訓補校注≫序 嚴式誨
26. 山堂詩集卷二以≪顔氏家訓≫寄示兒子學洛系以詩 ? 管世銘
27. 劉盼遂 ≪顔氏家訓校箋及補證≫題記 劉盼遂
28. 楊樹達 ≪讀顔氏家訓書≫後序 楊樹達
29. 周祖謨 ≪顔氏家訓音辭篇注補≫序 周祖謨
30. 王重民 ≪勤讀書抄題記≫ 王重民
31. 民國 王利器 ≪顔氏家訓集解≫敍錄 王利器
Ⅲ. ≪顔氏家訓≫ 佚文
Ⅳ. ≪顔之推集≫ 輯佚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되어라
뛰어난 자식은 뛰어난 부모가 만든다!
21세기 오늘날 바로 본받아야 할 예지와 교훈
부모의 바른 행동만큼 훌륭한 가훈은 없다!
《안씨가훈》의 저자 안지추는 타지를 유랑하던 때의 시대적 고통을 세밀하게 기록하여 자식에게 교훈으로 남겼다. 그리고 자식들이 훌륭히 성장할 수 있도록 자상한 훈계를 잊지 않았다. 자식들을 부모가 남긴 이삭이나 주워 먹게 기르지 말고 자식 스스로 농사지어 수확하는 기쁨을 알게 하라고 하였다. 오늘날 고민스런 부모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자녀를 위한 진실한 충고 ≪안씨가훈≫
진晉나라 때 사안謝安이라는 이는, 그의 아내가 “어떻게 당신은 자식 교육에 애쓰는 꼴을 볼 수가 없죠?”라고 불만을 토로하자 “나는 항상 자식을 가르치고 있는데……”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부모의 바른 행동만큼 훌륭한 가훈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글로 남기고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 또한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안씨가훈顔氏家訓≫만큼 진실하고 자상한 가훈이 과연 있을까?
≪안씨가훈≫의 작자 안지추顔之推는 남북조의 혼란기, 그리고 수나라 통일까지의 전란을 몸소 겪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고향을 등지고 수천 리 머나먼, 풍속과 삶의 방법이 다른 북방, 남방을 유랑하던 때의 시대적 고통을 세밀하게 기록하여 자식에게 남겼다.
“자식의 후환은 부모가 만든다.” “형제간의 우애는 처자로 인해 멀어진다.” “혼인은 엇비슷한 상대와 하라.” “성공한 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도박과 놀이는 구분하라.” “어려서 배우는 것은 대낮에 큰 길을 가는 것과 같지만, 늙어서 배우는 것은 촛불을 잡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 죽으면 칠성판 하나면 된다” 등의 구절은 바로 우리에게 안겨주는 안지추의 교훈들이다.
“자식은 자식대로 타고난 복이 있으니, 자식을 위해 말이나 소가 되지는 말라兒孫自有兒孫福, 莫爲兒孫作馬牛”는 속담이 어찌 자식 교육을 포기하라는 뜻이겠는가? “이삭을 줍는 것이 비록 이롭다 하나 스스로 농사짓는 것만은 못하다拾穗雖利, 不如躬耕”라고 하였다. 이처럼 부모가 남긴 이삭이나 주워 먹는 자식으로 기르기보다는 자식 스스로 농사지어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재물은 천만금을 남겨주어도 이를 지켜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바른 삶의 방법을 일러주면 제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며 개척하고 성취할 것이다. 나름대로 터득하고 행복을 맛보며 사회와 인류를 위해 바른 가치를 실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부모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닐까? 이같은 정신이 모든 집의 ‘가훈家訓’이 될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곳이 되고 또한 행복과 화평을 누리는 곳이 되리라.
≪안씨가훈≫의 저자, 안지추
안지추顔之推는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부터 수대隋代까지 걸쳐 살았던 학자로 자는 개介이고, 낭야瑯邪 임기臨沂 사람이다. 안지추는 학식이 넓고 육경六經과 사서史書는 물론 음운과 문자, 훈고 등에도 통달한 학자였다. 그의 ≪안씨가훈≫에는 치가治家, 수신修身, 정치, 교육, 종교, 문학과 예술 등은 물론, 음운과 훈고, 심지어 자신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유언까지 다루고 있어, 실로 중국 역대 가훈의 본보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유가儒家를 숭상하여, 효와 우애로써 가정과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의 예술과 잡기에 대한 인식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자녀들에게 실증적, 실용적 접근을 권하기도 하였다. 특히 불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과 옹호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불교를 내교內敎라 부르고 이를 유학(외교外敎)과 병행하되 유학은 현실적 사회생활과 처세에 응용하며,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대원칙을 통해 바른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밖에 도가의 양생설養生說에 대하여도 현실적인 적응을 요구하고 있으며, 무속巫俗의 폐해, 금기禁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 과학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였고, 자신의 죽음과 그 뒤에 이어질 장례와 묘지, 제사 등에 대해서는 절용을 내세워 간곡한 유언을 남기는 등 비교적 긍정적이고 세심한 배려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