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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양무리 마을}에 써야 하는데, 저는 {양무리 마을}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보다도 못한 강퇴 대상 이단이라서 {개혁주의 마을}에 씁니다. 바로미 님은 ‘{개혁주의 마을} 글들을 읽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정야베스 님은 읽으시라.’ 생각하고 씁니다. 정야베스 님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려고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결정타’를 날림으로써 ‘축포’를 터트린 연중론]을 계속 쓰려다가 이 글 먼저 씁니다. 긴 길이라서 모두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래쪽 하늘색으로 배경색을 칠한 곳만 읽으셔도 됩니다.
정야베스 님과 로빈슨크로소(바로미) 님이 어제 {양무리 마을} 워필드 님 글에 저를 두고 다음과 같은 댓글들을 쓰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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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베스 2014. 01. 04. 13:06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좋아합니다. 지난 날의 상처(저와 비슷하다고도 생각이 들어서)도 그렇고, 뭔가 집중력을 발휘하여 꿰뚫어보는 통찰력도 그렇고, 정말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자신의 견해와 반대가 되면, 그때는 양상이 달라집니다. 부모 때려죽인 원수마냥 대합니다. 이단 소리 하는 것은 약과입니다. 모멸에 찬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들을라 치면 정말 민망스럽습니다.
이런 글이 <거짓증거>에 해당한다고 <명예훼손죄>로 고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남의 입장을 조금만 이해하려 든다면, 정말 훌륭하신 분인데, 그런 점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 동네 지기님도 머리 아프실 겁니다.
로빈슨크로소 2014. 01. 04. 13:09
사계 님이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요? 글쎄요. 집중력 하나는 정말 나무랄 데 없음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너무 상대방의 말을 과하게 추측하는 그 부분 때문에 꿰뚫다기보다는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빈번한 그 부분이 좀 아쉽긴 합니다. 그 부분만 보완되면 정말 나무랄 데 없지요. 하지만 사람은 다 완벽하지 않지요.
정야베스 2014. 01. 04. 13:33
로빈슨 님! 그래도 우짭니까?
조금은 배려해 주어야 그분도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분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조만간 한판 붙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쫌 고상하게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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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바로미 님처럼 ‘병을 준 뒤 약을 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정야베스 님은 ‘약을 준 뒤 병을 주는 법’의 달인이십니다.
정야베스 님은 제 집중력과 통찰력을, 바로미 님은 제 집중력을 칭찬하는 약을 주셨음으로 두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는데, 전후 문맥을 중요시하는 저는 ‘제 인격 모독’으로 생각해 감사드리지는 못합니다.
{양무리 마을}에서 ‘하르(산山)’라는 별명으로 조엘 비키 목사님 글과 관련해 홀리조이 님 오독을 짚어내는 것을 보셨으면서도 홀리조이 님이 절대이신 바로미 님은 제 통찰력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만, 제 통찰력으로 할 것 같으면, 영어 단어 실력이 없어서 독해 실력이 없지만 대학교 시절에는 교수님들도 인정하신, 어떤 문장들에서는 앞뒤 문맥을 파악해 교수님들과 틀리게 해석하는 영문 독해력에서 나오는 통찰력이었습니다. 또한 ‘교수님들 논리나 작품 주제 파악’을 뒤집는 통찰력이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수석 출신 두 분도 계셨습니다. 이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저에게 배꼽 인사까지 하시며 저를 높이셨던 분입니다.
제 집중력은 어릴 시절 기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초교 4학년 때부터 제 취미는 모눈종이에 간단한 제도 도구들을 가지고 자동차, 헬기, 비행기, 배 같은 것을 모방 디자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큰형님 고교 1학년 {기술} 책에서 건축 설계에 대한 기호와 제도법을 홀로 습득해 모눈종이에 ‘간단한 집’ 건축 설계도를 그리는 게 취미였습니다. 방학 때면 다락방에서 밤을 세워가며 그렸습니다.
그런데 바로미 님이 주신 병으로서 “가상”은 건축 설계도를 그릴 때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 평면도, 전후면도, 좌우측면도, 내부절단단면도 같은 그림을 입체로 상상한 뒤에야 건축 설계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상상이 풍부하지 않으면 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야베스 님이 제 “지난날의 상처”를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정야베스 님 지난날 상처와 제 지난 날 상처와 같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ㅡ또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만ㅡ 저에게서 지난날 상처는 살아오면서 ‘천형의 땅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는 까닭으로 받은 멸시와 천대였습니다. 그 멸시와 천대를 두고 여기에서 하나하나 다 언급할 수 없습니다. {양무리 마을}에서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가장 큰 상처는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집안 장남, 형제 많은 장남과 결혼해, 아들 셋을 남겨두고 스물여섯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난 동생, 사촌 막내 여동생 죽음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 동네 분들께 “어린이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에 나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 협박(?)에 마음을 열고 한 결혼이었습니다.
1994년 봄, 어느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막둥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사촌여동생에게 마당에서 들어오신 시어머니가 “시어머니 말 우습게 아는 네 이년, 농약 마시고 죽어라.” 하시고, “어머니, 막둥이 젖 다 먹이고 축사 일 거둔다고 큰 목소리로 말씀 드렸잖아요. 제가 왜 아이들 셋을 두고 농약 먹고 죽어요?”라며 사촌여동생이 거부하고, 시어머니가 “응, 너는 니 시어머니 말보다도 니 새끼가 더 중요하다 말이지. 그러면 니 새끼가 죽어야겠다.”며 젖먹이 막둥이 입으로 농약병을 들이대시자, 사촌여동생이 “어머니 안 돼요. 제가 죽을게요.” 하며 엉겁결에 농약 병을 낚아채 마셔 버리는 일, 슬픔, 상처였습니다.
서울 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 본 사촌여동생은 그동안 시집에서 있었던 일, 지역감정과 얽힌 이야기들을 저에게 해 줬습니다. 물론, 시누이들과 시동생들 “결혼할 때 전라도 빨갱이 거지 집안에서 오면서 아무것도 안 해 온 주제에”, “전라도 새끼들은 잘하는 것이라곤 야구밖에 없어.” 같은, 그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 할 수 없습니다.
“전라도 새끼라서 저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시부모님한테 순종하고······, 첫애 낳고는 사흘 몸조리하고 축사 일 거들었지만······, 막내 낳고는 하루 만에 거들고······, 이런 일 오빠들이나 언니들한테 내색하면······, 언니들이 애들 놔두고 이혼하라고 할까 봐······, 내색도 못하고······, 오빠, 나 정말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 왔어.” 사촌 여동생은 숨을 헐떡이며 “내가 죽으면······, 오빠는 배운 사람이니까······, 지역감정 타파에 힘써 줘. ······그래서 나 같은 사람 또 생기지 않기를 바래. ······그리고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시어머니께서 키우셔야 하니까······, 믿을 사람은 오빠밖에 없으니까······, 큰오빠ㅡ제 형님ㅡ랑 작은언니가 시어머니한테나 시댁에 해코지하려고 하면······, 오빠가 나서서 전부 막아 줘.”
저는 “오빠가 내 이야기 소설로 써 줬으면 좋겠다.”는 사촌여동생 부탁으로 사촌여동생 모든 말들을 녹음했습니다. 그러나 사촌여동생 장례식 뒤 가슴 아픈 이야기라서 녹음테이프를 버렸습니다.
“지역감정 타파에 힘써 줘.”라는 사촌여동생 부탁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후 2000년 5월 서른아홉살이라는 나이로 결혼할 때까지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다만, 생각이 있었다면, 이른바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꼬리를 물고 터졌던 초대형 참사들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중고 컴퓨터를 구입한 2002년이었습니다.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면서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조중동이 가장 큰 문제다.’고 생각해 왔던 저는 모 ‘언론 비평 사이트’에 가입해 정치, 사회, 역사, 언론 문제에 대한 논쟁에 참여했습니다. 논쟁을 하면서 저는 건축 제도를 하면서 생긴 제 기질대로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상대 심리를 추측해 보기도 하고 상대 답변도 예상해 보는, 이른바 “입체”로 생각하며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정야베스 님, {양무리 마을}에 “돌멩이 던지다가 개꾸락지가 맞아 죽을까 봐 참고 있습니다. 그냥 웃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쓰셨더군요. 저는 ‘나를 두고 쓰신 댓글이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추측이 옳다면, 정야베스 님은 잊으셨나 본데, 제가 이런 ‘입체로 생각하며 하는 논쟁’은 지난해 여름에 정야베스 님과 {양무리 마을}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정야베스 님에게 “저는 여태껏 제 연장자이신 정야베스 님께 예우를 지켰습니다. 상대방 말을 업그레이드해 되돌려 주는 말장난으로 하자면, 정야베스 님은 제 상대가 안 되십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저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계속 저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신다면, 이번만큼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며 여러 차례 경고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를 우물 안 개구리 정도로 여기신 정야베스 님은 여러 차례 했던 제 경고를 업신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우물 안 “개꾸락지”였습니까? {양무리 마을}에서 그 싸움을 지켜보신 분들이 저를 ‘우물 안 “개꾸락지”로 여기셨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알고, 사계 님, 사계 님이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그만합시다.”는 말씀, 잊으셨습니까?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그냥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저를 두고 “<거짓증거>에 해당한다고 <명예훼손죄>로 고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연중론자 분들 ‘거짓증거’들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증명해 “거짓증거들이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고발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거짓증거를 인정하고 사람과 하나님께 회개하시라.”고 했습니까?
홀리조이 님이 {양무리 마을} 지계표 님 글에 “누가 그렇게 비인격적인 말들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판단하실 것을 의뢰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라는 댓글을 쓰셨더군요. “똥고집”, “난독증”, “기억상실증”, “짬뽕신학”, “간교한” 같은, 이른바 “비인격적인 말”로 제가 홀리조이 님, 바로미 님, 바보새 님 인격을 모독할 때 그 비인격적인 말들이 괜히 나온 것이었습니까? 근거 없이 나온 것이었습니까? {뉴스앤조이}에서 박창진 씨 논법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면 불륜’이었는데, 이런 이중인격을 언제쯤이나 버리시려는지······.
바보새 노승수 목사님이 ‘루이스’라는 별명으로 며칠 전에 {양무리 마을}에 인사말을 남기셨더군요. 정야베스 님이 바보새 님에게 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홀리조이 님 홀로 무덤으로 들어가라 놔두지, 바로미 님과 바보새 님은 왜 홀리조이 님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바보새 님은 합신의 명예에 또 먹칠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심을 말입니다.
정야베스 님, “조금은 배려해 주어야 그분도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분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라고 쓰셨습니다. 저는 연중론자 분들 배려 바라지 않습니다. 제 “살맛”나게 하는 건수, 제 말장난으로 연중론자 분들 인격모독을 하게 하는 건수나 연중론자들 분들이 주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교만을 치셨고 치실 하나님, 그분의 징계를 두려워하는 저로서는, “홀리조이 님이 희롱의 말들을 멈추실 때까지 홀리조이 님 그 똥물을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는 핑계를 내세웠습니다만, ‘어찌됐든 주님의 종들에 대한 인격모독이다.’고 생각하는 까닭으로 그 인격모독이 저에게 편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께 여름 연중론 비평 토론을 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하나는 “제 교만을 치시옵소서. 제가 교만해지면 저를 징계하심으로써 제 교만을 죽이시옵소서.”였습니다. 그러나 연중론 비평과 관련해 친구에게 도고의 기도를 전화로 부탁하며 저도 모르게 내 뱉어 버리고 만, “이제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해야겠다.”는 말을 내 뱉어 버리자마자 저는 “내가”에 숨은 제 교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갈릭 목사님께서 연중론 비평에 참여하신 뒤, 홀리조이 님과 바로미 님 영겁회귀 도돌이표 토론을 지켜보며 답답해서 내 뱉고 만 교만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께 추석 무렵에 묘하게 꼬인 일 때문에 지난해 추석 무렵까지 저는 광야와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뉴스앤조이}에서 활동을 하다가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활동을 시작한 얼마 뒤였습니다. 카페지기 목사님 사정으로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저는 카페지기 목사님께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는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교제를 나눈 공공의 카페, 성도의 교통을 나눈 교회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카페지기 목사님께서 개설하신 카페일지라도,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는 성도의 교통을 나누는 카페, 주님의 카페임으로 카페지기 목사님 마음대로 문을 닫으실 수 없는 카페입니다.’는 항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카페를 개설하겠다.’는 카페지기님 약속 뒤에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는 문을 닫았습니다.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가 문을 닫을 때 구사 님 소개로 {양무리 마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독립개혁장로교회 교우 장깔뱅 님과 교제의 끈을 놓치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양무리 마을}에 가입했다.’는 장깔뱅 님 뒤를 따라 {양무리 마을}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장깔뱅 님은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장깔뱅 님 글들을 검색해 봤습니다. 독립개혁장로교회 형제 교단인 독립개신교회, 김홍전 목사님 ‘교회아敎會我’라는 말 때문에 {양무리 마을} 분들과 시비가 일어 탈퇴하신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장깔뱅 님에게 쓰신 댓글, “참고로, 김홍전 목사는 옛분입니다. 그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분의 구원론 부분을 후크마의 구원론으로 보완하셔야 할 것입니다.”는 바로미 님 댓글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김홍전 목사님 강설집을 단 한 권이라도 읽으신 까닭으로 저런 엄청난 말, 교만한 말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카페지기 목사님이 예장 고신 소속 목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예장 고신 일부 목사님들 이른바 “정치색”을 아는 저는, ‘김홍전 목사님 문제’와 ‘정치색 문제’, 이 두 가지 점에서 {양무리 마을} 탈퇴를 고민했습니다. 고민하면서 광주항쟁이나 정치에 대한 {양무리 마을} 과거 토론 글들을 검색해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운영자 바로미 님이 주도하신 광주 문제 토론에서 ‘전라도인들을 빨갱이’ 정도로 보는 바로미 님 정치색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5월 광주를 “민주항쟁”으로 말한 나머지 바로미 님에게 강퇴당하신 회원 분이 한두 분이 아니더군요. 강퇴당하신 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분은 ‘대장’이라는 별명을 쓰시는 목사님이었습니다.
탈퇴보다도 ‘내가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탈퇴를 하더라도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보는 정치색과 김홍전 목사님을 터부시하는 이 두 가지 점을 바로 잡은 뒤에 탈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양무리 마을}에 남았습니다. 김홍전 목사님 문제보다도 “그 흐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바로미 님이 주님의 백성이면, 광주의 피를 매도하는 바로미 님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 않을 것이다. 그 징계를 받기 전에 5월 광주에 대한 바로미 님 시각을 바로 잡아 드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날로서 2011년 3월 22일이었습니다. {양무리 마을}에 올라온 ‘강릉예명 목사님 <하나님의 손길>’을 읽게 됐습니다. 그리고 ‘중생자도 귀신이 들리는가?’ 토론으로 말쿳 님(라마드 목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2011년 5월이었습니다. 저는 {양무리 마을}에 전문대 영어과 2학년 시절인 1988년 여름방학 때 쓴 정치평론 글, <좌경화를 막으려면>을 올렸습니다. 제 예상대로 바로미 님이 태클을 거셨습니다. 그런데 부마학살을 눈으로 경험하신 강릉예명 목사님 도움과 젊은 형제 언어추론 님 도움으로 저는 강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ㅡ지난해 5월에 바로미 님이 5월 광주에 대한 시각을 고치셨음을 {페북}에서 알게 됐습니다.ㅡ
또한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서울 시장 선거 문제로 홀리조이 님이 {양무리 마을}에서 ‘정치색’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양무리 마을}을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으로, 저는 홀리조이 님이 올리신 글, {중앙일보} 논설을 비평하는 글을 쓰게 됐습니다. 2011년 8월 29일이었습니다. [참 해괴망측한 논설 ㅡ{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 <참 이상한 투표>에 대한 비평ㅡ]이었습니다. ‘이철호 논설위원 말장난을 밝히는 비평문’으로서, {양무리 마을} 몇 회원 분들이 ‘언론계에 종사하시냐?’는 문의를 하셨던 비평문이었습니다.
{캘거리 개혁신앙 연구회}를 이은 {SDG 개혁신앙 연구회}에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에 대한 ‘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2011년 9월 13일이었습니다. 문의를 하신 분은 {영혼의 의사}를 펴낸 ‘부흥과 개혁사’, 서울 예수가족교회 교우이셨습니다.
2011년 추석 뒤 {강릉예명} 카페에 가입한 저는 카페지기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연속적인 중생론을 다루겠다.’ 하신 글을 읽고, ‘전라도 깽깽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오랑케 깽깽이라는 희롱의 말도 의도적으로 쓰시는 것을 보면, 권위주의자 손성은 목사님 성정이 보통 성정이 아닌데, 왜 굳이 다루려 하시나?’ 하며 마음속으로는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청년 시절 ‘존 머레이 {구속론} 하문호 역’에서 [영화]를 읽으며 제 머리에 ‘주님의 참된 종’으로 각인된 존 머레이 목사님,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과 관련된 일임을 알고는 {강릉예명}에 ‘존 머레이 {구속론} [중생]’을 타이핑해 올리며 강릉예명 목사님 뜻에 호응했습니다. 그러함에도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를 구입해 읽고 싶은 마음은 그리 없었습니다.
{SDG 개혁신앙 연구회}에서 있은 연중론 비평 토론으로 {SDG 개혁신앙 연구회}에 오신 홀리조이 님 태도, {SDG 개혁신앙 연구회} 카페지기 목사님을 업신여기신 홀리조이 님 때문에 {SDG 개혁신앙 연구회}에서 토론이 중단되는 일 같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양무리 마을}을 탈퇴하신 뒤였습니다. 저는 거의 홀로 {양무리 마을}에서 연중론을 반대하시는 라마드 목사님 모습을 지켜만 봤습니다. 저에게 입체로 그려지는 자료, 비평(판단) 자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비평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는 {영혼의 의사}를 구입해 읽어내려 갔습니다. 노안으로 돋보기를 쓰는 독서 때문에, 또한 노동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영혼의 의사} 논리오류, 좌충우돌 허접한 논리 전개가 곧바로 보였습니다. 논리오류들을 발견한 저는 ‘독해력만 있으면 쉽게 발견할 이런 논리오류들을 발견하시지 못한 채, 이런 허접한 논리 전개를 하는 {영혼의 의사}를 교과서로 삼은 분들, 홀리조이 님, 바로미 님, 바보새 님이 20세기 개혁 신학의 거목으로 평가 받으시는 존 머레이 목사님 {구속론} [중생]이라도 읽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무리 마을} 이른바 “연속적인 중생관 관점에서 보는 성경 읽기 실전 예제”들을 보며 ‘특별 소명 이후가 아닌 일반 소명에 두면 될 것을 왜들 저러시나?’ 생각했습니다. 인격 모독을 당하시는 라마드 목사님 모습을 보며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도 안타까웠습니다.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김성수 목사 신학 비평’을 하시다가 {양무리 마을}을 탈퇴하시게 됐음에도, 저는 판단 자료가 없어서 {양무리 마을} {김성수 목사 신학 알아보기} 게시판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님 신학 문제점들을 파악한 저는 ‘김성수 목사 신학 비평’에 나섰습니다. 2012년 1월 12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봄이었습니다. 라마드 목사님께서 ‘핸드폰 번호를 달라.’는 쪽지를 주셨습니다. 라마드 목사님과 전화로 교제를 나누게 된 저는 라마드 목사님께 “지난 겨울에 거의 홀로 연중론 비평을 하실 때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홀리조이 님 희롱의 말들 때문에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여쭸습니다. 제 예상대로 라마드 목사님께서는 “힘들었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ㅡ그 힘드셨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지 않겠습니다. ㅡ 또한 라마드 목사님께서는 “연중론이 {양무리 마을}에서 다시 거론되기를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해 6월이었습니다. “중생(회심) 상담”이라는 손성은 목사님 용어를 보며 ‘내가 {양무리 마을}에서 분별력이 뛰어나신 강릉예명 목사님과 라마드 목사님을 존경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내가 {강릉예명} 카페에 {영혼의 의사} 비평문을 쓴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때를 맞춰 존 머레이 목사님 {구속}이 다시 번역돼 출판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해 7월 초였습니다. 우연치 않게, ‘참 좋은 글이다.’ 생각하신 한아름 님께서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존 M. 프레임 <중생: 여러분은 누군가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십니까?>’를, 존 머레이 목사님 제자이신 존 M. 프레임 목사님 글을 {양무리 마을}에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제 바람대로 홀리조이 님이 ‘그릇된 글이다.’며 나오셨습니다. 라마드 목사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ㅡ이럴 때 개혁 신앙인들이 절대 대권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찬양이 있습니다만, 마음속으로만 외칩니다.ㅡ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라마드 목사님과 저를 부추기는 배후조정을 했다.’는 홀리조이 님과 바로미 님 판단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라마드 목사님과 제가 주관도 없이 배후조정이나 당할 사람들로 여기시는 데에서 오는 어이없음이었습니다. 특히, 우연치 않게 검색으로 {양무리 마을} {운영자 회의실} 글을 보게 돼 해명하고자 {양무리 마을}에 다시 오신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저에게 주신 쪽지, “저와 홀리조이 님과 {양무리 마을} 논쟁에서 사계 님이 몇 번 언급돼 죄송합니다. 사계 님이 제 선동을 받아서 {양무리 마을}에서 논쟁한 것이라고 홀리조이 님이 우기니 별 수가 없었습니다. 신학 지식도 없는 사람이 강릉예명이 사주하지 않고는 그런 논쟁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하니, 그 동안 제가 한 얘기들은 콧등으로 들은 것 같더군요. 오히려 신학 서적은 저보다 사계 님이 더 많이 읽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사계 님이 그만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기도합시다.”라는 쪽지에서 “신학 지식도 없는 사람”이라는 홀리조이 님 판단, 자신이 절대로 여기는 연중론에 눈이 가려 상대를 하찮게 여기신 판단은 저를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습니다.
바로미 님이 또 의심병이 도져 “그쪽 카페에서 뭔가 또 열심히 작업들을 하시고 이제 다 준비되었다 싶어서 오셨나 봅니다.”는 “가상”을 하셨더군요. 또한 워필드 님 글을 두고 “위의 글은 전에 사계 님이 하던 식 그대로라서”라고 하셨더군요. 그러께 여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저만 있었습니까? 저와 같은 말장난의 천재는 또 안 계셨습니까? ‘봄, 여름, 가울, 겨울’ 님이라는 별명으로 {양무리 마을}에 가입한 분은 없으셨습니까? 저는 ‘봄, 여름, 가울, 겨울’이라는 별명으로 저를 흉내내 {양무리 마을} 회원 분들과 저를 웃기셨던 분이 어느 분이신지 추측을 합니다만······. 아이큐가 대단히 높으신 분이라는.
“이단들이 허접한 논리와 성경해석에 세뇌돼 빠져나오지 못하듯이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 세뇌에서 연중론 목사님들이 빠져 나오실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말씀하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존함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중론이 옳은 줄만 알았다가 그러께 여름 연중론 비평 토론으로 연중론이 그릇됐음을 아셨던 분들은 ‘사탄의 미혹’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정야베스 님과 바로미 님은 여전히 ‘연중론이 옳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연중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존 중생론 세뇌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교만한 말입니다만, 신학공부 시작에서는 홀리조이 님, 바로미 님, 바보새 님보다 제가 더 앞선 사람입니다. 고교 3학년 때 학교 수업 시간에 요즘 신대원생들이 배우는 신학 서적들을 읽음으로써 신학의 기초를 다졌던 사람입니다.
이제 “정야베스 님, 그레이스 님이 문의하신 열 분이 넘는, 우리나라 신학교 교수님들께서 연중론은 그릇됐다고 하신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 드립니다.
연중론의 혼란스런 용어 사용을 정리하는 게 중요한데, 지계표 님 {양무리 마을} 글들을 자세히 읽지 못했습니다만, ‘하나님의 절대대권의 사역으로서 중생’과 ‘그 중생에 따른 인간의 반응으로서 회심’을 구별해 “중생은 믿음(회심)에 앞선다.”는 명제를 확립한 최근 개혁 신학은 “중생”이라고 말했으면 이 뒤를 따르는 말로 “회심” 하고 말하지, “중생”이라고 말해 놓고 이 뒤를 따르는 말로 “넓은 의미의 중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중생’이라는 말은 ‘중생’과 ‘회심’을 포함한 말, 더 나아가서는 ‘중생’과 ‘회심’과 ‘성화’도 포함한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연중론의 이 혼란스런 용어 사용만 제대로 정리하시면 연중론에서 빠져 나오실 수 있습니다. 두 번의 중생은 없습니다. 단 한 번의 중생만 있을 뿐입니다.
중생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회심(변개)은 ‘영적으로 살아난 자가 하나님을 향해 걸음 한 보를 옮겼다.’는 뜻입니다. 중생은 ‘영적 아기가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회심은 ‘영적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하나님 말씀, 신령한 젖인 복음을 먹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 이 글은 김홍전 목사님 {중생자의 생활}에 적힌 설명을 기억을 더듬어 이해하기 쉽게 적은 글입니다.
다음 글은 {개혁주의 마을}이 생긴 뒤 제가 <결국 사랑만이 정답이다.>는 제목으로 올렸던 글에 있는 강릉예명 목사님 댓글들입니다. {양무리 마을}을 탈퇴하시면서 쓰셨던 댓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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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예명 11.12.13. 21:23
한 달 전에 경주에서 조우했을 때 얘기를 다 했죠. 김성수 목사 건으로 카페가 압박을 받고 있으니 살펴보시는 게 좋겠다고요.
3 주를 기다리다 논의가 되어 내가 게시글을 두 개 올려 참여하니 완전히 카페를 훼방하려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매도하고요.
경주에서 연속적 중생관에 대해 내가 정리하고 있는데 김성수 목사 문제가 다소 진척이 되면 홀리조이 님과 검토를 하고 싶다 했죠.
그러나 지난 주 상황이 그럴 수가 있었나요. 그래서 {SDG 개혁신앙 연구회}에 일부러 {토론게시판}이 아니라 {자유게시판}에만 올렸죠.
그리고 의견 차이만 나면 전화로 미리 물어 달라 하는데, 항상 허락을 받고 말하라는 것인지······.
┗ 강릉예명 11.12.13. 21:49
하여튼 저야 별 문제 없습니다. 다만 여러 형제들이 함께 하는 카페가 이유 불문하고 난장판이 되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게 더 실감이 나겠죠. 저는 심장이 아프답니다.
하나님을 약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는 감히 지금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홀리조이 님, 님은 많은 것을 감추고 싶어 하지만 나도 님을 조금 알고 하나님께서 님을 온전히 감찰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결국 사랑만이 정답이다.” 님은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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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죽으면 천국 갈까?” 사촌 여동생은 죽음을 앞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사촌 여동생 물음에 “너는 예수님 믿으니까, 천국 갈 거야.”라는 간단한 말과 “너는 네 아이를 지키려는 모정을 발휘했잖아.”라는 말과 함께 주님의 말씀과 요한 사도의 말씀으로 사촌 여동생을 위로해 줬습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은 영국 천재 여류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가 죽음을 앞두고 애송했던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한일서 4장 18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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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죠이님은 개혁주의마을에 들어온적도 없다고 했는데 설마 님이 올리신 글때문에 열받으셨을라구요...
에라스무스 님, 제가 ‘정야베스 님 “개꾸락지”라는 말은 나를 두고 쓰신 말이다.’라고 추측하는 까닭은 <결정타’를 날림으로써 ‘축포’를 터트린 연중론 - (3)>에 제가 ‘정야베스 님 분별 없음’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추측은 ‘정야베스 님이 제 이 글을 읽으셨다면’이라는 가정에서 해 본 추측입니다. 제가 독심술가도 아니고, 그러므로 “만약 제 추측이 옳다면,” 가정을 전제로 그 글을 쓴 것입니다. 이 에라스무스 님 댓글 역시 “~같습니다.”는 ‘추측’이긴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1.1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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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론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홀리죠이님 자신이 말한글을 본적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비인격적언어가 남발한다는 모함을 하는 분들은 먼저 회심부터 하셔야 할것 깉습니다만....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시대에도 지역감정이 있었습니다. “(천대의 땅) 나사렛에서 어찌 저런 인물이 나올 수가 있느냐?‘는 지역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대한 계명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중생자들은 ‘주님께서 지역감정이라는 차별도 당하셨다.’는 사실에서 ‘지역감정 타파’에도 애쓰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이나 언론으로 강화되고 이것이 악순환을 되풀이해 군대나 사회에서 겪는 경험 같은 환경으로 강화가 됩니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결혼을 하면, 이 사람들에 의해 밥상머리 교육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또 일어납니다.
겸손 님이 제가 바라는 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지역 사람이라고 선하게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경상도 사람보다 더 선인으로 태어나거나 경상도 사람이라고 전라도 사람보다 더 선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악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그 지역 환경에 따라, 또한 자기 가정 환경에 따라 이 죄성이 더욱더 개발되거나 좀 무디어지거나 합니다. 즉, 경상도인 가운데 제가 예로 든 악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라도인 가운데도 겸손 님이 예로 드신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픈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