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즐거운 행복만땅 하루 되시압!
저는 "우리가 왜 이렇게 물건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글에서 징한 느낌이 꽃히더군요.
점 점 더 숭악해지고 이기적이고 잘난 세상에서
위대한(?)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편으로
뽀대를 중시하는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존재했었는지 모르는 德을 가진자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살아나고 그러한 진정한 미덕을 쫒아가는 아름다움
사회가 우리 회원님들에 의해 살아나길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더 풍요로워 지는데 도움이 될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무슨 소리!? 튼튼한 두 다리, 두 팔을 냉큼 휘저으며 땀 흘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등에는 책인지 도시락인지 그 무엇을 넣었을 가방이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매사에 열심일일 것만 같은 젊은이들인데. 이들이 장착한 헬멧에 무릎보호대에 팔꿈치보호대를 보노라면 오랜 세월 우리 어른들이 경시해왔던, 그래서 종종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던 안전(!), 그렇다 안전제일을 되새기게까지 해주는데. 거기에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으니 20센티는 더 커 보이고 무언가 특별한 게 있는 듯한 가죽장갑까지 끼고 있으니 (면장갑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폼난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인류(人類)로 보인다.
건강해보인다. 그리고 건전하다. 나도 어쩌다 외국 나가보면 이러한 신인류를 보며 부러워했다. 정말 재미있고, 기분전환에 아주 유용하고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신체활동. 바로 내가 찾아 헤매던 스포츠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 젊은층에선 들불 번지듯 번지고 있다 한다. 우리 학교 입구에도 얼마 전 별로 찾는 사람 없던 약국이 문을 닫더니 며칠의 공사 끝에 삐까번쩍한 인라인스케이트상점이 생겼다. 그 인테리어의 화려함도 군계일학이지만 지나다 보니 종업원 또한 그 옛날 똥밭이었다던 하단동 바닥에서도 유일무이하다. 한국말은 곧잘 한다만 오렌지색 머리에 레게파마로 치렁치렁 땋아 내렸고 얼굴색은 남쪽에서 온 듯 시꺼멓다. 반바지도 긴바지도 아닌 바지인데 색상은 무슨 색동옷 같기도 하고 웃옷은 옛날 우리 아버지 입던 런닝구에 염색실험한 듯 하다. 안팎이 상당히 전위적이고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가게이다. 어쨌든 이런 새로운 분위기의 신종스포츠 인라인스케이트는 특히 온라인을 통해 성인층까지 빨아들이며 무서운 기세로 확산해 각종 동호회와 대회가 곳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미 인라인 인구는 400만으로 110만 마라톤 인구 따라잡은 지 오래고, 500만 조깅 인구도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 좋은 스포츠가 무슨 문제가 있을까. 우선 겁나게 비싸다. 여가활동으로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청소년들에겐 자체조달이 불가능한 액수다. 초등학생들은 십몇만원짜리도 사서 신지만 그 이상 연령층을 둘러보니 가장 인기 있는 스케이트가 50만원쯤 하고 어떤 건 돈백이란다. 부속품도 정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고 첨에 이삼십만원짜리로 시작한 사람도 좀 타게 되면 그 두배 비싼 스케이트로 교체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비싼 인라인스케이트에 사족을 못 쓰는지 궁금하다. 초중고, 그리고 많은 대학생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는 이미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다. 아르바이트한 몇 달치 월급을 등록금 아닌 스케이트에 아낌없이 털어 넣고, 부모더러 사내라고 조르고 또 조른다. 그러다 자포자기에 빠지면 훔칠 생각, 삥 뜯을 생각, 집 나갈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과장이라고? 나이키나 리복운동화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런 거 아닌가. 미국서는 에어 조던 농구화 때문에 10살 갓 넘은 아이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나이키의 계시를 받들어서 말이다. (Just Do It!) 또 내 제자 중 하나는 100만원짜리 스케이트 카드로 긋고 지금 대리운전하고 있다. 대학원 다니는 여자친구에겐 한 60만원짜리 사줄테니 사라 했단다. 대범하기도 하지. 나중에 뉴스에 등장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럴 아이는 아니지만.
잠깐 딴 얘기 해보겠다. 우리나라에서 입장객 수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야구, 축구, 농구? 전혀 틀렸다. 이들은 4등, 5등, 6등이다. 1등이 골프, 2등이 경마, 3등이 경륜이다. 한마디로 돈지랄이 전제되는 스포츠들이다. 웃기는 사실 또 하나. 국민의 정부 때 개인소득 만불도 못넘는 주제에 문광부는 국책사업으로 골프의 대중화를 내세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거리에 나서면 십자가만큼 많아 보이는 게 골프연습장이다. 실제로 요즘 탁구나 테니스 치기가 골프 치기보다 어렵다. 폼생폼사의 민족인 것 같다. 그 좋은 팔굽혀펴기와 쪼그려뛰기를 내팽게치고 별 운동도 안되는 골프에 다 뛰어드니 말이다. 정리해보자. 스포츠라고는 돈지랄 하는 스포츠가 사방에서 활개치는 상황인데 기본적으로 소비가 전제조건인 인라인스케이트가 청소년층으로 번진다. 골프가 그러하듯 과시적 사치성 소비지향 스포츠는 과거엔 성인층에 국한되어있었는데 이를 모든 연령층으로 본격적으로 확대시킨 게 인라인스케이트다. 또 청소년과 닿아 있던 거의 유일한 고소비 스포츠인 스키와 스노우보드는 겨울 한철 두메산골에 있는 스키장에서 청소년들을 유혹했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는 사계절 전천후의 특성을 무기로 일상의 공간에서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여기저기서 보란 듯 쌩쌩 지나다니니 아이들은 부모를 조르게 되고 부모도 내 새끼 불쌍한 놈 될까봐 결국 비장의 무기 신용카드 꺼내게 된다.
같이 (아니면 남들 따라서) 소비하지 않으면 왕따되는 사회. 왕따 안되려면 카드도 쓰고 뽄드라도 같이 마셔야하는 사회. 함께 해요~하며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조화로운(?) 사회. 돈벌기 위해서는 재벌기업도 청소년을 집중공략하는 사회. 초보자는 초보자용을 타야된다고 전문가가 그렇게 이르는데도 그놈에 폼 때문에 경기용 사야 되는 사회. 누가 그랬다지. 우리는 몰랐을 때 더 행복했다고. 인간소외라는 것 요즘 더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왜 이렇게 물건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노동이 아닌 소비를 통해 착취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이제 정말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우리의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일단 카드로 사 놓고 대리운전알바라는 고된 노동으로 메우려는 내 제자가 바로 그런 모습 아닌가? 좋은 운동, 효과적 운동, 경제적 운동이 뭔지 뻔히 알고 있을 체대학생조차 그런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선택을 한 걸 보면 인라인스케이트는 사실 운동의 측면에서보다는 유행과 패션과 집착과 소비의 측면에서 조망되어져야하지 않을까.
나도 이 마당에 고백한다. 작년 연말 내 아들놈 다니는 어린이집 재롱잔치에 갔다. 캠코더 아닌 카메라 가져간 부모도 몇 안됐지만 카메라에 눈 갖다 붙이고 찍는 사람은 아예 나밖에 없어 쪽팔리기도 하고 애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능력 없는 애비는 아닐까? 이후 몇 달을 고민했다. 혹시 이놈 나중에 “아버지. 왜 난 어릴 적 동영상이 없어요?” 따지듯 물어보면 어쩌지? 결국 여름휴가 때 멋지게 찍어주고 싶어 캠코더 하나 샀다. 이것도 애비노릇이라 굳게 믿으면서. 물론 카드를 내밀었다. “12개월은 안되요?”하는 질문과 함께. 나 지금 카드 메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도 상술에 넘어간 것 같다는 의구심과 이로 인한 꿀꿀함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