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4칙] 불교와 도교의 본원은 원래 다른 것이 없지만, 그 말류와 지파는 진실로 천차만별이다.
나는 불교와 도교의 본원은 원래 다른 것이 없지만, 그 말류와 지파는 진실로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념처관四念處觀」을 닦으라고 가르친다.
첫째, 몸은 청정하지 않다고 관하라.
둘째, 느낌은 괴로움이다 관하라.
셋째, 마음은 무상하다 관하라.
넷째 법은 무아無我이다 관하라.
이미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이 전부 허망에 속한 줄 알아 이 몸이 고苦. 공空.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이고 깨끗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진여묘성이 저절로 현현할 수 있다.
도교는 최초의 정진을 근거하면 연단운기煉丹運氣로써 우직 장생을 구함을 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무릇 도교에 의해 수행하는 것은 이것을 정종正宗으로 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불교는 크게는 포함하지 않음이 없고 세밀하게는 열거하지 못함이 없다.
크게는 신심. 성명性命의 도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조금도 새는 것이 없을 분만 아니라, 작게는 세속제의 효제. 충신과 예의. 염치 등 지극히 작은 선도 조금도 새는 것이 없다.
오직 연단운기 등에 대해선 절대 한 글자도 언급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깊게는 계율로 여긴다. 왜냐하면 불교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환망임을 알게 되고, 도교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진실임을 지키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음은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마음을 가리키고, 본유의 진심이 아니다. 연단 일법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명이 더욱 더 늘어나 가장 좋은 과보로 신선이 되어 승천할 수 있지만, 생사요탈을 말하자면 잠꼬대 같은 소리이다.
[역주] 정토의 사념처
사념처에서 념은 관하는 주체인 지혜이고, 처는 관하는 대상인 경계이니, 지혜로써 경계를 관함을 염처로 삼는다. 첫째는 신념처身念處이다. 정토의 몸은 구경의 청정이라고 관한다.
이는 사바세계에서 청정하지 않다 관하는 것과는 다르다. 둘째 수념처受念處이다.
정토의 느낌은 순수하게 부사의한 즐거움으로서 온갖 괴로움의 핍박이 없다고 관한다.
셋째 심념처心念處이다. 정토의 마음은 진실로 상주하여 생멸과 무상을 멀리 여읜다고 관한다. 넷째는 법념처法念處이다. 정토오음五陰의 법은 자재함을 나라고 삼는다.
이는 일체제법은 무아이다 관하는 것과 다르다.
[제 295칙] 도교의 삼관수행은 전부 식신識神을 쓰는 일이다.
오늘날 외도는 온 세상에서 모두 그렇다. 왜냐하면 불법의 깊고 미묘한 뜻을 사람들이 알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외도는 불법의 이름을 곧 절취하지만, 불법의 진의를 모른다.
이에 연단운기煉丹運氣로써 보신하는 법으로써 보신하는 법으로써 생사요탈의 법이라 여긴다. 그들은 이미 무엇으로 인해 태어나고 죽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되는대로 헛소문을 퍼뜨리기만 하여 정을 닦아서 기로 변화시키고(煉精化氣), 기를 닦아서 신으로 변화시키며(煉氣化神), 신을 닦아 허로 돌아가서(煉神還虛), 다시 한곳에 합하면 바로 득도한다고 말한다. 실제상으로 이는 완전히 식신용사(識神用事: 의식체의 작용)이고, 심성. 진여. 이체의 한 일과 모두 관계가 없는데 여전히 자화자찬하면 말하길, “육조대사가 법을 산란하게 전해서 법이 재가인에게 돌아가고 승가에 법이 없다.”는 말을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써서 거짓으로 진실을 훼손하고 삿된 것을 바른 것으로 삼는다.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미혹된다.
그리고 저들 외도가 세상에 두루 전파될 수 있는 연유는 득력에 두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비전秘傳이다. 득명한 스승이 진실로 전하면 닦지 않아도 곧 성취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법설을 아주 신기하게 얻고서 말한다. “쥐가 들으면 쥐가 모두 성취할 수 있고, 참새가 들으면 참새가 모두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도를 전할 때 반드시 밀실에서 작은 목소리로 미세하게 말하여 바깥에 다시 사람을 파견. 순찰하게 하여 어떤 사람이 도청하는 것을 방지한다. 둘째는 엄시금령嚴示禁令이다. 설사 부자.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법설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말하면 반드시 천벌을 만난다. 그래서 아직 도를 전하기 전에는 먼저 맹세하게 하고, 후에 그 맹세를 어기면 그 어떠한 호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말하며, 주문을 외우고 서약하게 된다. 주문을 외운 후에야 전도하며, 맹세를 한 이후 비로소 도를 전한다. 이후 설령 어떤 사람이 그가 틀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라도 자신이 명세를 어겨 호된 대가를 만날까봐 두려워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감히 이외도를 벗어나 불법을 배우려하지 않게 된다. 설사 외도가 비밀리에 도를 전하지 않고 공개하여 함께 듣는다면 주문을 외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세상 사람 중 선뜻 그들의 도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보충】 삼관三關수련법
삼관 수련은 불교의 마음 닦는 수행법과 도교의 몸 닦는 수행법이 융합된 것이다. 공적영지의 마음과 호흡양생의 조화로 정精. 기氣. 신神을 합일시키는 수련법이다.
삼관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악을 끊으며 선을 쌓고 자비의 심성을 증장시켜야 한다. 집중력과 관찰력이 균형적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선정의 힘과 통찰의 힘을 키워야 한다.
초관의 연정화기煉精化氣와 중관의 연기화신, 상관의 연신환허를 합친 말이다.
첫째 초관의 연정화기는 몸속에 감추어진 원정을 채취하여 원기로 변화시키는 수련이다. 연정화기란 단전에 응축된 정기를 독맥과 임백의 궤도를 통해 주천시키는 수련이다.
둘째 중관의 연기화신은 채취한 원기를 원신으로 변화시키는 수련이다.
연기화신이란 연정화기 수행에서 얻은 정기를 척추 속에 밀어 넣어 삼관을 뚫고 기를 단련시켜 보신을 만드는 과정이다. 삼관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복식호흡으로 숨이 있는 듯 없는 듯 코로 미세하게 숨을 쉬는 호흡법이다. 공적영지의 마음으로 은은히 운행하는 내기內氣만 관조할 뿐 조작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상관의 연신환허는 원신元神을 보신保身으로 변환시켜 법신과 맞게 하는 수련이다.
ㅡ 대풍 범각스님, 《몸을 닦는 수행은 어떻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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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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