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잡는 게 매다
내의원시험에 낙방한 유의태(허준의 스승)는 화가 치밀어서 어의로 있는 양예수와 ‘구침지희(九鍼之戱)’로 서로의 침술을 겨루어보자고 했다.
‘구침지희’는 살아있는 닭의 몸 안에 9개의 침을, 침 머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찔러 넣되, 닭이 아파하거나 죽어서는 안 되는 침술의 경지이다.
9개의 침을 닭에게 다 찔러 넣고 마당에 던졌는데 유의태가 던진 닭은 ‘꼬꼬댁’하고 내뺐는데, 양예수가 던진 닭은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양예수는 유의태에게 세 번 절하며 “해동에서 제일가는 명의는 유의태의원이요!“라고 외쳤다. 무면허의사인 유의태의 실력이 더 좋았다는 얘기다. 책과 드라마에서 나온 얘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몸속에서 발견된 침 때문에 침, 뜸으로 유명한 구당 김남수 옹(96)이 기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그 제자들의 모임인 ‘뜸사랑’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몸속에 침이 들어있는 것도 희한한 일이지만, 그 당사자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기에 국민의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도 처음에는 군부독재시절의 피해자가 벌인 복수극이 아닐까? 하고 손에 땀을 쥐어가며 흥미진진했는데, 그것이 아니어서 무척 실망(?)했으니까 말이다. 어찌됐건 남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죄가 되어 벌을 받는다면 웃기는 일 아닌가? 이런 웃기는 법 앞에 누가 고개를 숙이겠는가? 그 동안 서양의학에만 의존한 나머지 우리고유의 의술이나 처방을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작년 봄, 일요일 아침, 곡성에서 자전거를 타고 구례로 야생화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린 이 하나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구례구역전에 다다르자 자전거에 올라타기도 힘들었다. 가게 몇 군데를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진통제가 있을 리 없었다. 혹시나 하고 구례구역 매표원에게 애걸하다시피 했더니 고맙게도 타이레놀 두 알을 찾아다 주었다. 그날은 천만다행이도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만약에 구례구역 매표원한테서도 진통제를 구할 수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르면 8월부터 박카스 등 드링크류나 마대카솔 같은 연고제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감기약, 해열제, 진통제가 제외된 것은 일의 핵심을 벗어난 밥그릇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편에 서서 잘못된 것은 고쳐서라도 그것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약의 남용을 염려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환자에겐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병만 잘 고친다면 의사든, 의원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동양의학, 서양의학, 한의학, 대체의학, 민간요법 등, 가릴 것이 뭐있겠는가? 학력이나 자격증 따윈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실력이 있으면 환자가 찾고, 없으면 안 찾을 것 아닌가? 결국, 명의는 환자가 만들고 꿩 잡는 게 매인 것이다.
옛날의 우리 할머니는, 봄이면 들에 나가 쑥, 냉이, 씬나물(씀바귀)을 뜯어다가 식구들 건강을 챙겼고, 병정놀이하다 이마가 깨지면 된장을 싸매줬다. 체하면 바늘로 손가락 끝을 따 주었으며, 배가 아플 땐 손으로 쓸어주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할머니 손은 약손이었다. 우리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무면허의료행위로 벌을 받아야 하는지? 마는지?
첫댓글 정치권이 의료집단의 반발과 이기주의를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국민만 희생양이 되겠지요. 선진국에선 약국에서 슈퍼물건도 팔고 슈퍼에서 상비약도 팔지요. 유용한 침구사 제도를 지켜내지도 못하면서 은밀히 침이나 뜸을 맞아대는 일부 정치가들의 행태야말로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겉포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네. 글도 그렇네.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서슴치 않으면서 글로는 큰 소리 치는 사람이 많은걸 보면. 박두진 선생이 한 말씀, 큰 정의는 외면하고 작은 정의에 눈 부리리는게 오늘의 현실이라셨는데. 친구 덕에 맘 닦으며 반성문 쓰면서 하루 시작하네.
안삿갓님의 글을 대할 때마다 고향의 향수에 젖습니다. 그리고 냅다 고향으로 달려 갑니다. 풀 한 포기며, 그저 흩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곳에 고향 친구가 없어도 그냥 좋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통통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힘 있는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