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침술을 배웠을 때 국내에서 침술인들 사이에서는 이름께나 알려진 침술가들이 써 놓은 책을 통해서 질병 종류별로 각기 다른 침 치료법을 익히려고 애를 썼었다. 그들의 책에는 질병별로, 또는 증상별로 침을 찌르는 자리(경혈)를 나열해 놓았고, 대부분의 책에서는 침 치료의 사례까지 기록해 놓았다.
누가 썼든 침술에 관한 책들의 공통점은 침술치료의 결과가 특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깨가 아플 경우 침 찌르는 경혈을 나열하고 이들 경혈에 침을 놓아 완치시켰다는 사례를 두세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의 침술 입문 시절,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진 한 침술가의 책을 통해서 흥미롭게 쓰여진 그의 침술치료나 뜸요법의 사례를 읽으면서, 대단한 침술가의 책을 통해서 침술을 익히는 것에 대해 커다란 행운으로 여겼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주위에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붙들어 앉혀놓고 침술가들이 그들의 책에서 밝혀 놓은 처방대로 침을 찌르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쩌다 한두 번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당시로서는 치료 효과가 없을 경우 '뭐가 잘못된 것일까'하고 순진하게 실의에 빠져 들고는 했으나 그런 식의 침법은 원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엉터리 침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십수 년 전, 내가 침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시내 침 가르치는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닐 적에 침 선생들은 자기만이 침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추켜 세우고 다른 강습소의 선생은 형편없는 엉터리라고 비방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적인 침법을 대단한 것처럼 과대포장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들에게 침술계에서 가장 실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저 실소만 터져 나올 뿐이다.
침술에 관심을 두고 침술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들이 엉터리로 침을 가르치는 곳을 찾아가서 말만 앞세워 현란하게 설명하는 선생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존경심까지 갖게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초심자들은 침을 가르치는 선생들의 실력을 진정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거나 분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메주를 쑤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메주는 팥으로 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현란한 말솜씨로 떠들어댄다면 메주 쑤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메주는 팥으로 쑤는 것임을 믿어야지 어떡하겠는가.
침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들이 발을 잘못 들여 놓아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이 아니라 팥으로 메주를 쑨다'라는 식의 잘못된 침술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메주는 당연히 콩으로 쑤어야 함에도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떠벌리는 형편없는 사람들이 메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아는척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울 때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야 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오늘날의 침술은 지나치게 형식화 되어 있는 게 큰 문제이다. 침술로 질병을 고치기 위해 질병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경혈들에 침을 찌르는 것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침술로 제대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체 과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침법이어야 한다.
즉,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명에 의하지 않은 경락이론과 음양오행론 및 기혈론을 바탕으로 한 침법이어서는 안 된다. 음양오행론과 기혈론의 이해는 한의학적 의미론에서 벗어나 생물학적(과학적)으로 재해석 되어야 하고 이렇게 재해석된 바탕에서 침술의 메커니즘은 구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침술은 신경계에 개입하여 통증을 차단시키며 동시에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자연치유를 유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이 배제되고 경혈들의 조합을 이룬 형식적인 침술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침쟁이들이 '요리책 식 침법'이라 하여 수백 가지의 질병에 대한 처방대로 단순히 침을 꽂아 놓는 형편없는 침법에 의존하고 있다. 침구치료와 관련된 서적들을 보면 하나같이 맨 앞쪽의 목차에서 100 가지 이상의 질병의 목록을 나열해 놓고,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여러 경혈들을 해당 페이지에서 표시하고 있다. 즉, 각 경락에 있는 경혈들을 조합하여 보충설명과 함께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떤 요리를 할 경우, 맨 앞의 목차에서 관심이 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 알고 싶을 때 해당 페이지를 찾으면 그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을 조합해 놓은 것과 같다. 그래서 '요리책 식 침법'(cook book acupuncture)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요리책 식 침법이 경락이론에 입각하여 억지로 짜맞추기 식으로 형식화 한것을 '침구처방'이라 하며 이같은 처방법은 대부분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인체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발달하지 못했던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적절한 용어들을 동원하여 이치에 맞게끔 만든 이론이 침구이론이고 경락이론이다. 이런 이론들에서 옛사람들의 탁월한 지혜를 엿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더 많이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옛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이론들에 대해 막연한 신비감을 갖고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를테면 옛사람들이 생각했던 음양오행과 기혈에 대해서 과학적인 해석을 거부한 채 신비하고 오묘하게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음양오행의 세계와 기혈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인식을 못하고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침술은 인체에 적용하는 의술이기 때문에 인체에 관한 막연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침법을 응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인체는 과학적으로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생명현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인체에 대한 막연한 지식과 억측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침법이 효과가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침술은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인체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침술이 효과가 있을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옛사람들의 오랜 경험적인 임상을 통해 터득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전통의 억지로 짜맞추기 식의 경락이나 침구 이론에 의해서가 아닌 순전히 수많은 경험의 임상결과로 얻어진 침법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침법에 대한 상세한 기법은 전해지지 않고 단순히 침을 꽂는 경혈들만 전해져 이들 경혈에 침을 찌르기만 하면 치료되는 것으로 현대인들이 착각하고 있다. 더구나 옛날 사람들은 침술에 관한 이론이나 시술법들을 과학적인 근거와 현실성과 관계없이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이런 것들을 현대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참으로 쓸데없는 이론들과 시술법들을 익히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어느 경혈에 침을 꽂아서 어떤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침술이 터득되는 것이라면, 침술을 어떤 특정인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없다. 요리책에 적혀 있는대로 요리를 하듯이, 침구 처방책을 갖다 놓고 처방대로 침을 꽂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surgeon)들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솜씨로 메스를 다뤄야 한다. 그들에게 메스는 단순히 인체의 어느 부위를 자르는 칼이 아닌 인체의 생명을 다루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나 침쟁이들도 침을 다루는 정교한 기술과 세심한 솜씨를 갖춰야 한다. 한의사나 침쟁이들에게 침이란 단순히 경혈을 찌르는 바늘이 아닌 인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도구이어야 한다.
나는 국내에서 한의계이든 재야의 침술가이든 그들의 침 놓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들에게서 한 사람의 스승으로부터 배운 듯이 침 놓는 모양이 획일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깨나 허리, 팔과 다리, 복부나 등 부위에 침을 꽂아 놓은 것을 보면 침이 꽂혀 있는 깊이나 각도가 모두 똑 같다. 그래서 침술의 대가였던 몇몇 사람들이 모자리 침이라고 비꼬아 말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침을 놓을 바에야 누구로부터 침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 책 들여다 보고 침 꽂을 자리 찾아서 그 위에 침을 살짝 꽂아 놓으면 되는 거니까. 요리책 보고 요리를 하듯이 말이다.
침술은 시술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솜씨가 요구되지만 침술 그 자체는 옛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단순한 의술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종류의 질병이 되었든 침을 적정한 부위에 꽂아 기술적으로 자극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질병을 수백 가지로 분류하여 침 찌르는 경혈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이루어진 수많은 처방들은 정말이지 부질없는 방법이다.
인체에 관한 생리적인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침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명확한 해결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우공침술이며 TLS 침법이다. 침술은 특히 신경계와 면역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신경계가 균형적으로 조절되도록 자극할 수 있는 방법과 면역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침 자극법을 알면 인체의 많은 질병들을 유효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침술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은 아니다. 침술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도 많다.
그러나 어떤 질병이 침술치료의 대상이 된다면 그 질병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과학적인 침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은 질병들은 신경계와 면역계의 생리적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데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은 인체에서 엄청나게 많은 증상들을 유발시킨다. 불편한 증상들을 방치하면 몸이 망가진다. 몸이 망가지는 등의 질병이 생기면 다행스럽게도 면역세포들이 모두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놓는다. 이런 걸 옛사람들은 자연치유라고 했다. 그러나 면역세포들도 어떤 이유로 기능이 저하되면 제대로 활성화가 안 된다.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이런 증상을 침으로 자극하여 면역력을 원래대로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침술은 대단한 잠재적인 능력을 가진 의술인 것이다.
침술은 직접적으로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면역세포들에 의한 자연치유를 유도할 수도 있지만, 특히 인체의 모든 통증을 다스리는 데 아직까지는 침술만한 의술은 없다. 어느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 그 부위는 반드시 아프게 되어 있다. 이렇게 상처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뇌가 자연치유를 유도하기 위해 일으키는 현상이다. 그런데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척수 안에 뇌가 보내는 통증의 신호를 차단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 통증차단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으로 아주 적정한 부위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옛날 사람들은 침으로 통증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정확한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그 효과가 들쑥날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통증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침법을 알고 있다면 통증이 있을 때 언제나 이 침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통증을 차단시킬 수 있는 척수 안의 장치를 작동시키는 침법이 TLS 침법이다.
이처럼 신경계와 면역계에 개입할 수 있는 침법만 알게 되면 수백 가지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수많은 경혈들로 조합된 처방들을 복잡하게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질병을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 3가지 유형별로 신경계와 면역계에 침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단지 3가지 방법으로 매뉴얼화 한 것이 우공침술이다. 이 세가지의 매뉴얼화 된 침법만 익히면 수백 가지가 되는 많은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가 막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침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들을 가려낼 수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탁월하면서도 간단명료화 된 침법을 단 며칠 만에 배울 수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