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학교 여선생이 미성년 남학생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기사화됐었다. 외국의 토픽 기사인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남학생이 미성년자이지만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여선생을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남선생이든 여선생이든 미성년 제자와의 성관계는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옛 제자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20여년 전 나는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대학원 재학중이었고 석사과정을 마치면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학교에 오래 머물 예정은 아니었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독일어반, 불어반, 일본어반, 중국어반, 서반어반으로 구분됐었다.
그 당시 나도 불어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불어반에 특별한 애착이 있었다. 불어반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월등히 많았었는데 수업 중 유난히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번 주의를 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주의를 주는 과정에서 옆에 있던 학생이 "얘가 선생님을 좋아한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 학생 모두에게 꿀밤을 주면서 장난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스승의 날 그 문제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와 선물과 카드를 놓고 갔다. 카드에 써있는 내용을 읽어보니 그 학생이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만해도 사춘기 여학생들의 일반적인 감수성으로 치부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후 그 학생의 수업태도가 좋아졌기 때문에 서로 부딪힐 일도 없었다.
그해 가을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수업이 빈 시간에 교정 벤치에 앉아 잠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벤치 아래 한 묶음의 프린트물이 눈에 띄었다. 확인해보니 내가 수업할때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프린트물이었다. 당시 나는 학생들이 필기하는 시간이 아까워 필기할 내용을 미리 프린트해서 나누어주고 수업시간에는 프린트 내용을 설명만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벤치 아래 있던 프린트물에 써있는 이름을 보니 그 프린트물의 소유자가 그 문제학생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학생이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고의로 그 프린트물을 그 벤치 아래 둔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 벤치에 즐겨 앉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기억에 남을 추억을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학생 반에 수업이 있는 날 나는 그 프린트물과 까뮈의 소설 '이방인'을 들고 교실에 들어갔다. 한글 번역판 소설이 아닌 불어 원문 소설이었다. 그 학생을 호출했다. 꿀밤을 몇 대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 너는 선생이 힘들게 만든 프린트물을 어떻게 관리하길래 네 프린트물이 운동장 벤치 아래서 가을 바람에 나부끼냐?" 그 학생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프린트물 옆에 있던 이 소설책도 네 것이냐?" 그 학생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 네가 이 책의 주인을 찾아줘." 그리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 학생이 그 소설책은 선생이 자기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그 나이에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책의 주인을 못찾겠다며 다시 가져오지는 않았다. 다시 가져오면 네가 보관하고 있으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 책을 그 학생에게 선물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불어반 학생이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불어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고,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나는 이 학교에 오래 머물지 않을 이방인이라는 의미였으며, 나의 무관심이 혹시라도 그 학생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내가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학생이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그 일이 그 학생의 담임선생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것 같았다. 그 때부터 나를 쳐다보는 담임선생 눈길이 전과 달라졌다. 하루는 그 학생 반의 수업시간에 교장선생이 교실로 들어오더니 평소와 달리 한참동안 수업진행을 지켜보다가 나갔다. 나는 그 담임선생이 그 일을 교장선생에게 보고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음날 나는 사직서를 교감선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사직서는 다른 말 없이 내 판단이 잘못됐다면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었고 학생들 피해가 없게 중간고사 전까지만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교감선생이 교장선생에게 보고한 후 나를 호출했다. 교감선생은 그 학생의 담임선생이 지나치게 예민했었던 같다는 듯이 말하며 사직을 말류했고, 그후 그 담임선생은 한동안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2년 후 내가 프랑스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나는 그 학생의 신상에 대해서 더이상 아는 바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 학생은 내가 추억을 선물하면서 사직서까지 쓰게 된 과정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쯤 삼십대 후반 정도 됐을 것인데 혹시라도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 글을 읽은 후의 심정은 어떠한지 댓글을 남겨주기 바란다.ㅎㅎ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양한다.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추억이 될 듯 싶으니...ㅎㅎ
20여년 전 나는 제자에게 소설책 한 권을 선물하고 사직서까지 썼었는데 지금은 여선생이 남학생 제자와 성관계까지 했는데 서로 합의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천년이 흘러도 선생과 미성년 제자와의 성관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