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픈구지
정연국
늙은 딸이 어린 아버지를 업고
마즈막재 너머 무지개 피어오르는
고향 가는 길에 봄날은 지고
단풍을 느껴야 가을인가
갈잎이 옷고름을 풀어헤치네
옷 한 벌도 내 것 아니네
바람 지느러미가 생각의 부레를 키우네
내게 져야 세상을 얻지
생각을 눌러 쟁이네
창조와 파괴는 같네
돌아보면 사라져 빈껍데기뿐
탄생이 죽음보다 잔인하네
올챙이가 잠자리애벌레에 잡아먹히고
개구리는 잠자리를 잡아먹고
큰노랑테먼지벌레에 개구리가 잡아먹히네
엉겅퀴꽃에 남가뢰는 호박벌에 잡아먹히고
남가뢰애벌레가 호박벌에 붙어
벌집 속에 들어가 호박벌애벌레를 잡아먹고
남가뢰는 체액을 홍날개에 빨아먹히네
여치가 대벌레 잡아먹고
연가시가 여치에 더부사네
없어져야 할 건 더디고
있어야 할 건 금세 사라지네
한때 내 어버이 아닌 이가 없고
물먹은 소 아니 나오는 젖을 빨아대는 아지
아들딸 입에 밥 들어갈 때 가장 배부르네
도무지 여자는 없고 엄마만 있네
오감 없이 곡신 발자국 소리는
너무 커서 너무 고요하네
하늘강은 홀로 아니 흐르네
가시를 가슴에 품고 아니 드러내네
시가 필요 없는 날을 바라며
물고기가 물을 버리고 떠나네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참마음자리에
가없이 우주가 그윽이 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