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질 듯이 바닥을>
“야, 미치겠다!”
구로동 골목에서 어느 집 담벼락 밑에 쭈그려 앉은 나일엽은 우선 담배 한 대를 뽑아 길게 한 모금 집어삼켜서는 목젖부터 흠뻑 적신 후에 전재득에게 건 통화의 첫마디다.
“왜? 맘에 안 드나?”
“햐~ 씨발, 혹시나 했는데, 역시다 야. 월급이 125만 원이란다.”
“큰 버스회사라메?”
“그라이깐, 갸가 잘 몰라서 그렇제. 그 큰 버스랑게 서울은 마을버스도 시내버스처럼 큰 버스를 쓰거덩. 완전 마을버슨 게 사무실도 존만하고 월급이, 그것도 올라서 125만 원이란다. 씨발게.”
“우에노?”
“햐, 그라이 우예먼 좋을지 모르겠다. 씨발.”
안철한으로부터 취직할 버스회사를 소개받기로는 한 보름 전이었다. 그 보름 동안 일엽은 곰곰이 고민해 봤다. 변산을 떠나 안산에 정착하면서 제일 먼저 시도한 일이 안산에 본사를 둔 경완여객에 여러 번 입사를 도전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낙방했고, 낙방의 원인이 뚜렷하고 개선될 가능성이 없을 바에는 홀연히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시내버스 입사를 접고는 마을버스로 발길을 돌게 되었고 그 마을버스 사장도 입사 면접에서 그랬다.
“나일엽씨, 이런 조건이라면 아무리 사람 모자라는 마을버스라 하더라도 어디를 가나 안 받습니다.”
깡마른 체구에 차가운 금테 안경을 낀 사장은 기계에서 동전 분류를 하다 말고 일엽과 마주 앉아서 하는 면접에서 하는 말이다. 낙담의 심정으로 돌아서는 일엽을 사장은 다시 불러 세웠다.
“시내버스든, 마을버스던지 홀아비 독신에다가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는 없어요. 혹시 신용 문제까지는 어쩐지 모르겠으나 그러함에도 아저씨 인상이 맘에 들어요. 한번 같이 일을 해 보도록 하지요.”
일엽은 사실은 신용불량자 신분이었으나 그 서류는 요구하지 않아서 준비를 안 했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한 안산의 3번 마을버스, 진부 운수에서 운전을 시작했으나 길게 하지는 못했다.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이 115만 원인데, 겨우 생활은 되었으나 변산에서 빚진 농자금 대출금은 갚을 여지가, 한 푼도 없는 셈이다.
그렇게 그만둔 운전일을 일엽은 2년 후에 다시 하자고 안산에서 서울의 구로구 구로동까지 올라가서 그것도, 정규직의 시내버스도 아니고 비정규직 마을버스를 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2007년 나일엽이 그렇게 시작된 구로동에서 마을버스 운전은 2012년 7월에 제주도로 이주할 때까지 한 오 년 이어진다.
달걀처럼 얇은 껍질을 가진 탁구공만 한 동그라미가 거실 바닥을 굴러서 계단을 똑딱 똑딱 튕기면서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실 문에 한 번 동그라미가 부딪치자 니스칠을 한 지하실 문이 스르르 열리고 탁구공처럼 동그라미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바닥을 구른다. 열린 문의 희미한 채광을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르는 동그라미는 지하실 반대편의 출입문으로 굴러서 니스칠이 벗겨져서 다소 지저분한 문에 똑딱 하고 부딪친다. 그러자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그 문이 또 스르르 열린다. 문 앞에서 잠시 주춤하던 동그라미는 문 아래로 뻗은 계단을 똑딱거리며 튕기면서 내려간다. 계단은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마감 처리를 하지 않은 공사장의 현장처럼 험했다. 동그라미가 계단을 다 내려가자 그곳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고 니스칠이 벗겨지고 다소 지저분했던 문짝이 주먹을 얻어맞은 듯이 뻥뻥 뚫려 있다. 동그라미가 한 번 문에 부딪히자 문이 스르르 열렸고 뻥뻥 뚫린 문 앞에서 잠시 주춤하던 동그라미는 안쪽으로 다시 굴러든다. 발갛게 꼼지락거리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던 생쥐가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고 바닥을 스멀거리던 바퀴벌레 떼들이 황급히 구석의 틈 사이로 몸을 숨겼다. 탁구공처럼 하얀 동그라미는 상관없다는 듯이 뻥 뻥 뚫린 문이 비취는 채광을 따라 굴러갔다. 동그라미는 반대편의 또 다른 출구로 굴러, 노크하듯이 부딪히자 뻥 뚫린 문보다도 더 부서져서 골격이 유지되지 않는 문이 스르르 열렸다. 열린 문 저쪽은 동굴처럼 캄캄했고 역겨운 냄새가 소용돌이치면서 올랐고 동그라미는 그쪽으로 굴러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