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팥으로 만든 건 다 좋다. 질퍽한 팥죽을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든든하다. 먹은 것 같다. 밥이 좋지. 죽이 뭐 대단하냐 하지만 내겐 더없이 댕기는 음식이다. 시내 음식점 중엔 팥죽 파는 데가 드물게 보인다. 팥칼국수 집도 있다. 잔잔한 새알을 넣어 희뜩희뜩한 것을 한 사발 퍼 넣으면 검붉은 팥 특유의 맛이 감질난다.
큰 그릇에 넘치도록 담아낸다. 뜨거워 윗부분을 설설 긁어서 먹으면 어느새 바닥이 드러난다. 물배로 가득 채워 띵띵하게 걷다 보면 식식거려도 이내 꺼진다. 남들은 그런 불그레해서 흉측해 뵈는 것을 누가 먹나 해도. 별나게 나만 멋대가리 없이 찾는다. 다들 싫은가 흔하지 않다. 가물에 콩 나듯 한 식당이다.
예전에 국광 사과가 시어서 넌더리가 났다. 자두를 잘 먹는다. 다 입에도 못 대는데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해치운다. ‘꼬약’이라 해서 작은 것이 몰캉몰캉하다. 입에 넣고 꾹 누르면 씨만 남고 신 껍질과 과즙은 사르르 넘어간다. 그게 참 좋다. 거름더미에 한 그루 나선 가지가 휘어지게 열렸다.
고향 감나무는 붉게 익는 것보다 중간에 떨어지는 게 많다. 뒹구는 반쯤 삭은 풋감으로 어린 시절 배를 채웠다. 뭉글뭉글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물컹하게 넘어가면 그저 그만이다. 복숭아도 벌레 먹어 떨어져 풀밭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어 무른 살을 삼킨다. 목구멍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마치 콜라를 마실 때 식도가 시원한 맛이다.
아내가 별스러운 사람이란다. 사과는 시다면서 싫어하고, 몸이 틀리는 자두를 즐겨 먹으니 말이다. 가족은 단단한 과일을 좋아하는데 나만 물러터진 홍시와 복숭아, 자두를 찾는다. 굵은 대봉을 두면 하나씩 익어 나온다. 당뇨로 조심하면서 아침에 반쪽씩 든다. 텃밭에 딸기가 나와 오뉴월엔 보석같이 빛나는 붉디붉은 산딸기를 맛본다. 모두 저장이 안 돼 제철에 들어야 한다.
동지 팥죽을 대문에 칠하곤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설과 추석에 송편을 만들면서 팥이 들어간다. 가끔 떡집에 팥시루떡을 사 온다. 내 좋아하는 것을 만나는 게 좋아라. 어쩌다 밥에 팥을 넣어주면 너끈히 비운다. 길거리에 팥빙수가 나오고 단팥죽도 보인다. 가까이 가려다가도 너무 달콤해 멈칫한다. 귀신도 싫어한다는 팥을 왜 그리 탐낼까.
세상에 제일 맛 나는 게 회자이다. 입에 오르내린다고 하잖는가. 회와 구운 고기의 맛깔에 사족을 못 쓴다. 횟집과 불고기 점은 사람이 잘 드나든다. 뒷담 벼랑에 구렁이와 풀 섶의 꽃뱀을 많이 봐 와서 실증이 있는데 구불거리는 검은 뱀장어가 징글맞아 회라면 정나미가 덜하다. 고기를 좋아했는데 돼지국밥과 소불고기를 먹고 체한 뒤 먹기만 하면 부담이다. 냄새도 느끼해서 꺼려진다.
체했을 때 달포 내내 입에서 트림이 나오고 고약한 냄새가 날 괴롭혔다. 교회 야외 행사에서 실컷 들라며 자꾸 구어 내는 소 사태 불고기를 질리게 삼키곤 그만 물리고 말았다. 그때 지나면 괜찮지 했는데 웬걸 두고두고 가시지 않는다. 진저리가 난다. 따라서 날짐승도 싫어졌다. 어쩌다 모임에서 끼니를 하려면 고기는 개밥에 도토리처럼 밀쳐내고 밥과 나물국 김치만을 대한다.
집에서도 야단났다. 가족이 고기를 좋아하는데 가장이 저 모양이니 아낸 안 된다며 퍼 안긴다. 그래도 걷어내고 밥만 달랑 드니 안쓰러운가.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며 막 입에 쓸어 넣는다. 마지못해 질겅질겅 씹어 넘기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뒷맛이 떠름한 게 속이 더부룩해서 견딜 수 없다. 그 좋은 물고기회와 뭍 불고기가 이리 맛없어서 무슨 재미로 사나.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다. 그래서 평생 등 휘어지게 농사짓고, 하루 세끼를 위해 직장에서 일하며 고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먹고 돌아서면 때가 다가온다. 거기다 주전부리 간식으로 온통 먹는 빛이다. 친구와 거침없이 줄기차게도 했던 말을 다시 해대며 밤늦게까지 술과 안주를 넘긴다. 사흘이 멀다며 먹는 자리를 만든다. 사람의 먹음새가 무섭도록 섬뜩하고 엄청나다.
그런데 나만 밥도 줄어들어 전 안에 깔린 작은 그릇이다. 내키는 음식이 없다. 고작 밥과 김치, 된장국이다. 삼시세끼 때 되니 들 뿐 끌리지 않는다. 시답잖다. 그래도 허기지는 일이 별로 없어 늙바탕이어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맛집을 찾아 어디든 가는 데 그럴 필요가 없다. 먹는 즐거움이 대단한데 하나도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홍시와 자두, 복숭아, 산딸기가 좋아도 당뇨로 참아야 한다. 세상 사는 맛이 끼니 때우다가 잘 먹는 것으로 바뀌어나간다.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는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자는 것이다. 그게 다 예전 세상으로, 지금은 잘 먹어 성인병을 걱정하는 때이다. 입이 달아 마구잡이로 삼켜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세상에 나만 점점 체중도 줄어든다.
가다가 때맞춰 팥죽집이 있으면 들리고, 없으면 그냥그냥 지난다. 아내가 그걸 알고 믹서에 갈아 가끔 죽을 써준다. 번거로운 찹쌀 새알까지 만들어 넣어준다. 고마워라. 몽글몽글 팥이 든 찐빵과 봉긋봉긋한 뽀얀 호빵, 단팥빵이 가게에 나온다. 단맛이 많아야 찾는가. 설탕과 당원을 잔뜩 넣어 꿀맛이다. 달짝지근한 게 입에 맞는 맛이어서 잘 넘어가는데 혈당수치가 겁나 그만 손이 떨린다.
늦가을이 되면 길거리에 포장집이 생긴다. 지난날 가루음식 먹거리나 꼬지 점, 선술집이 아니다. 붕어빵을 구워 판다. 시내를 다니다가 때 되면 먹거릴 찾는데 대개 고기가 곁들여져 있다. 깔끔한 편의점으로 들어가 삼각김밥과 우유를 집어 들었다. 가끔 컵라면으로도 때우니 편하다. 그러다가 붕어빵을 보니 웬 떡인가 싶다. 팥이 들어있다. 별로 달지 않는 따끈따끈한 것을 한 입 베어 물면 아이고 맛나라.
첫댓글 재밋게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우리 세대엔 다 그랬지요 초복이 지나면
떨어진 땡감 물 단지에 담가 배를 채웠죠
중학교 교문 앞에 풀빵, 호떡이 얼마나 먹고 싶은는지...
지금은 붕어 틀에 반죽을 넣어 붕어빵...
늘 건강하십시요
박 회장님 가을 비가 자주 내립니다..
밭의 채소가 잘 자랍니다.
언제 상동 맛집에 가요.
집 사람이 사모님 보고 싶어 합니다.
천년만년 젊음 그대로일줄 알았습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다른사람들이 권해도 귓등으로 흘렸더랬습니다.건강검진결과를 받고보니..천하일미라해도 칼로리가 걱정되고 혈당이걱정스러워서 저절로 멀리하게됩니다.
체중도 안나가고 아침저녁 귀한시간짬내서 운동하고 출근하는데 내가 왜???
팥죽은 엄마의 최애음식이셨습니다.서천읍내가실때면 항상....엄마생각이 갑자기!!
드시는것만큼 움직여 운동하셔도 안될라나요??
건강 검진을 받았군요. 나이 들면 조금씩 어디 나쁘다 합니다.
그래 운동하시면서 음식 조심하면 됩니다.
약을 꼭 챙겨 드십시오.
고향 서천 읍내를 보고 싶습니다.